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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로 메이저리거-9화 (9/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9화 >

* * *

미국에 온지 일주일이 지났다.

겨울이었지만 플로리다는 무척이나 따뜻했다.

덕분에 야외에서 본격적인 야구훈련을 진행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 프로팀들이 겨울이 되면 미국으로 스프링캠프를 오는지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웜업이 빨라.’

[근육이란 날이 추워지면 경직되고 날이 따뜻하면 유연해진다. 웜업은 근육을 풀어주고 체온을 높여 몸이 격한 움직임을 해도 되는 상태를 만드는 거다. 당연히 날이 따뜻할수록 웜업이 빨라지고 근육이 유연해지니 부상의 위험이 낮아지는 법이지.]

‘예, 그런거 같아요.’

무엇보다 미국은 공원이 무척이나 잘 되어 있었다.

한국도 최근 공원이 많이 늘어났지만 지방도시에 살았던 신우에게는 먼나라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조금만 걸어가도 공원이 나왔고 그곳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심지어 여기저기에 야구를 즐기는 이들도 있었다.

‘한국은 야구의 인기가 높지만 일반인이 그걸 즐기는 건 꽤 어렵지.’

첫 번째로는 장비가 비싸다.

글러브는 저렴한 것은 몇만원에서 비싼 것은 오십만원이 넘는다.

배트 역시 마찬가지였고 기타 장비를 산다면 꽤 많은 돈을 투자해야 했다.

두 번째는 장소다.

야구를 즐기기 위해서는 넓은 공터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장소를 찾기 어려웠다.

있다 하더라도 산책이나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 야구를 하기에는 부적합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된다는 것도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야구를 즐기는 이들은 매우 적었다.

최근 사회인야구가 발전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일부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들 역시 야구를 하기 위해서는 한두시간씩 차를 타고 이동해야 겨우 야구를 즐길 수 있었다.

새삼 미국와 한국의 야구문화의 차이를 체감할 수 있었다.

따악-!

게스트하우스 인근의 공원.

이곳에는 야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었다.

오늘도 그곳에서는 야구가 한창이었다.

프로는 아닌 듯 했지만 수준이 나쁘지는 않았다.

구경을 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툭!

“응?”

그때 달려가던 신우의 앞으로 야구공이 떨어졌다.

공을 집은 신우가 날아온 방향을 바라봤다.

야구장의 펜스를 넘어 날아온 듯 했다.

“헤이-!”

그때 백인 남자가 경기장을 나오며 공을 던져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짐! 저기까지 50m는 된다. 그냥 가서 받아와.”

“하긴 그것도 그렇네.”

그때 펜스 안쪽에서 동료가 짐을 타박했다.

50m.

일반인이라면 던지기 어려운 거리다.

공이 온다고 해도 정확히 던지기 어렵다.

거기다가 주위에는 산책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짐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라운드를 넘어가려는 순간.

“어?”

“응?”

두 사람의 시선에 공을 잡은 동양인이 폼을 잡는 게 보였다.

가벼운 스트라이드의 뒤를 이어 쓰리쿼터에서 공을 뿌렸다.

쐐애애애액-!

50m거리를 가로질러 공이 짐을 향해 날아들었다.

짐은 깜짝 놀라 글러브를 들어 올렸다.

퍽!

“윽!”

묵직한 소리와 함께 글러브를 낀 손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짐이 더 놀란 건 날아온 공 때문이었다.

‘거의 일직선으로 날아왔어.’

무려 50m나 떨어져 있었다.

1루와 3루의 거리가 38미터이니 더 떨어져 있는 거리를 송구한 셈이다.

그것도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공을 말이다.

“야구선수라도 되는 걸까?”

친구인 잭이 다가오며 물었다.

동양인 남자는 다시 달려가고 있었다.

멀어지는 등을 보며 짐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쨌건 대단한 송구였어.”

“그러게 말이야.”

“들어가자.”

“어.”

아직도 얼얼한 손을 흔들며 짐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플로리다에 도착한지 열흘이 됐다.

오늘은 신우에게 조금 특별한 아침이었다.

뉴욕 메츠의 일반인대상 트라이아웃이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몸상태는 어떠냐?]

“최고에요.”

매튜슨의 질문에 자신있게 답했다.

처음에는 걱정도 많이 했다.

이진철이 미국에 가면 가장 어려운 게 적응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먹는 것은 물론이고 특히 시차 덕분에 숙면을 취하는 게 어렵다고 했었다.

하지만 신우에게는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의외로 시차적응이 쉽네요.”

[네가 특이한 거임.]

[나 어렸을 때는 시차적응 안 되가지고 컨디션 개판이었는데.]

[ㅇㅇ 나도 국제대회 나갈 때 그랬음.]

[거기에 먹는 것도 적응 못 해서 힘도 없었지.]

[나는 물이 입에 안 맞았음.]

[엌ㅋㅋ 나는 멀쩡했는데.]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람마다 다른 듯 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자신에게는 잘 된 일이라는 것이다.

시차적응에 문제가 없으니 곧장 훈련을 통해 몸상태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한 가지 불안한 건 공을 던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괜찮을까요?”

[어제 롱토스보니 괜찮아 보이더만.]

[ㅇㅇ 별 문제 없었음.]

[어제 몇퍼센트로 던짐?]

“한 30퍼센트 정도로 던졌습니다.”

[그 정도면 괜찮을 듯.]

[ㅇㅈ]

[트라이아웃 가서는 초반부터 기선을 잡아야 됨. 기회 몇 번 안주니까.]

[레알 단번에 눈도장 못 박으면 모가지지.]

[특히 투수는 기회가 몇 번 없으니까. 초반부터 눈도장 못 찍으면 끝임.]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반부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각오를 다진 신우가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전장으로 떠날 시간이었다.

“지금 가는 건가?”

게스트하우스 입구에 있던 박현성이 물었다.

“예. 지금 가야 시간을 맞출 수 있어서요.”

“포트 세인트였나?”

“예.”

뉴욕메츠의 캠프는 포트 세인트 루시에 차려졌다.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웨스트팜비치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3시간이 걸렸다.

지금부터 부랴부랴 움직여야 겨우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1분이라도 늦으면 트라이아웃을 물 건너간다.

그렇기에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도 아침은 먹고 가야지.”

“시간이...”

“내가 데려다 주겠네.”

“예? 하지만...”

“차로 가면 40분이면 갈 수 있을 거야. 좀 늦더라도 1시간이면 도착할 거고 말이야. 그러니 아침은 먹을 시간은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폐를 끼칠 수는...”

“같은 한국인끼리 돕는 거지. 자, 들어가지.”

박현성이 신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갔다.

거절을 할 수 없었기에 신우는 그의 뒤를 따랐다.

* * *

박현성 덕분에 정말 편하게 포트 세인트 루시에 도착했다.

원래라면 3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

하지만 차로 이동하니 한 시간만에 도착했다.

‘미국에서는 무조건 차가 있어야겠네.’

[한국이 대중교통 잘 되어 있는 거임.]

[킹정.]

[미국은 택시 아니면 자차가 무조건 있어야 됨.]

[너 계약하면 무조건 차부터 사자.]

‘예.’

[풉! 계약 못할 수도 있다는 건 생각도 안 하죠?]

[아, 님...]

[분위기 파악 못하네.]

[쟤 클럽하우스에서도 저랬음.]

연속으로 쏟아지는 비난에 신우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 모습을 본 박현성이 물었다.

“자네는 긴장을 별로 하지 않는군.”

“예?”

“아, 예전에 우리 게스트하우스에 몇 번, 이곳으로 트라이아웃을 하기 위해 묵는 선수들이 있었거든.”

“그래요?”

“아무래도 우리 동네가 여기에서는 좀 가깝고 저렴한 편이니까.”

맞는 말이다.

이 주변은 숙박을 하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갔었다.

돈을 아껴야 되는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들은 하나 같이 긴장을 하더군. 트라이아웃 며칠 전부터 신경이 날카롭게 서있었어. 그래서 말도 붙이지 못했었지.”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다.

만약 자신도 혼자였다면 그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거다.

그들과 다른 점은 딱 하나였다.

신우는 혼자가 아닌 레전드 플레이어들과 함께라는 것이다.

그들과의 대화는 긴장을 풀어주게 만들었다.

때로는 가볍지만 진지할 때는 진지한 그들과의 대화가 릴렉스할 수 있는 이유였다.

“여기까지 꿈을 이루기 위해 왔으니 반드시 붙게나.”

“예! 감사합니다!”

박현성에게 격려를 받은 신우가 스포츠백을 들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박현성이 미소를 지었다.

‘꼭 꿈을 이루게.’

* * *

경기장에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뭔가 정돈된 분위기라기보다는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서류를 내고 등록을 한 뒤, 경기장에 들어갔다.

경기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독립된 유니폼이 아닌 각자가 가지고 온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어떤 이는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고 있기도 했다.

[일반인대상이지만 전 프로선수들도 참가한다.]

[타팀 유니폼 입고 있는 애들은 전 프로라고 봐야지.]

[저기 초록색 유니폼도 독립리그 애들거임.]

[ㅇㅇ 독립리그 애들도 많이 왔네.]

‘독립리그요?’

[한국은 발전이 덜 됐지만 미국의 독립리그는 수준도 높고 역사도 오래됐다. 사람들한테 인기도 많고.]

‘그렇군요.’

“편한곳에 짐을 두고 준비하세요. 짐은 도난당하지 않게 주의하시고요.”

“아, 예.”

직원의 말에 스포츠백을 내려두고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프로구단에서 입었던 유니폼이었다.

야구화를 신고 가볍게 몸을 풀자 곧 경기장의 문이 닫혔다.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백인남자의 우렁찬 외침에 선수들이 모였다.

그때 닫힌 문 너머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제발 들여보내줘요! 테스트만 받게 해주세요!”

“안됩니다. 이미 시간이 끝났어요. 돌아가세요.”

고작 몇 초 늦은 것이다.

하지만 직원은 단호하고 냉정했다.

결국 실랑이를 벌이던 선수는 경비를 부르는 소리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크크! 병신, 시간도 제대로 못 지키다니.”

“그러게 말이야.”

옆에서 들리는 대화에 고개를 돌리자 거구의 두 사내가 돌아가는 선수를 보며 비웃음을 짓고 있었다.

영어회화를 완벽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대충이나마 알아들을 수 있었던 신우였기에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두 사내 중 짧은 머리의 백인남자가 신우가 자신을 보는 걸 발견하고는 인상을 썼다.

“칭총새끼가 어딜 노려보냐?”

칭총.

동양인을 비하하는 단어다.

원래는 중국인이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동양인을 전반적으로 비하하는 뜻으로 변질됐다.

어쨌건 느닷없는 시비에 기분이 좋을리 없었다.

인상을 구기며 한 마디를 내뱉으려는 순간.

“잡담 그만!!”

코치의 일갈에 무산됐다.

‘후우...그래. 괜히 이런 쓰레기랑 마찰을 일으킬 필요는 없지.’

1분만 늦어도 테스트조차 볼 수 없는 곳이다.

만약 소란을 피운다면?

테스트가 물 건너갈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돌아갈 순 없었다.

그렇기에 신우는 이를 악물며 화를 참아냈다.

[미안하다...]

[쏘리...]

아놔! 나라 망신 다른 놈이 다 시키네!]

[저 새끼 뭐야?! 야! 아굴창 날려버려!]

[저런 써글놈의 새끼가!]

[가정교육을 어케 받은 거임?]

난리가 난 채팅창 덕분에 위로를 받으며 코치의 설명을 들었다.

옆에 녀석도 더 이상 시비를 붙일 생각이 없는지 고개를 돌렸다.

‘경기에서 만나면 두고보자.’

신우는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했다.

* * *

트라이아웃의 테스트는 포지션별로 달랐다.

타자는 달리기부터 시작했고 투수는 불펜투구가 스타트였다.

불펜장으로 이동한 투수들이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뻐억-!

뻑!

퍼엉-!

한 명의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공은 평균 5개에서 8개 사이였다.

아무리 많아도 10구를 넘지 않았다.

“11번, 변화구를 던져봐.”

“예? 예!”

간혹 변화구를 던지는 투수가 등장했다.

그때마다 주위에 있는 투수들이 부럽다는 눈으로 그 선수를 바라봤다.

“저 친구 공이 좋더니 변화구까지 테스트 받는군.”

“예?”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순박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가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신우의 대답에 그가 고개를 돌렸다.

“응? 몰랐나? 테스트를 받을 때, 포심의 질이 좋으면 변화구까지 던지면서 심층적으로 테스트를 받는 거야. 즉, 변화구를 던질 수 있다는 건 가능성을 봤다는 거지.”

“아...”

“루카스라네.”

“아, 정신우입니다.”

“시누?”

“예.”

어설픈 발음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는 미안해. 설마 아직도 인종차별발언이나 하는 멍청이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아닙니다. 루카스씨가 그런 것도 아닌데요.”

“아니야. 같은 미국인으로서 사과를 해야 될 부분이야. 자네들 한국인들도 비슷하잖아? 내가 잠깐 한국에 있었서 그건 잘 알아.”

“아...한국에 계셨어요?”

“잠깐 있었지. 그때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 기회가 된다면 또 가고 싶군.”

“그렇군요.”

루카스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와 대화를 나누며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대부분 레전드 플레이어들이 해준 이야기와 비슷했다.

“공은 초구부터 전력으로 던져야 돼. 감독관이 많지 않으니 초반에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2구부터는 아예 보지 않을 수도 있어.”

“예.”

“무엇보다 실수가 있어서는 안 돼. 폼이나 딜리버리 등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투구동작 중에 멈추거나 미끄러지는 등, 실수가 나오면 그걸로 끝이라고 보면 돼.”

트라이아웃을 자주해봤는지 실용적인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55번!!”

“내 차례다, 먼저 갈게.”

“예. 꼭 붙으시길 바랄게요!”

“고마워.”

루카스가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빈 마운드로 향했다.

신우는 간절히 빌었다.

그가 합격하길 말이다.

하지만 그는 변화구를 던지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오고 말았다.

‘공은 나쁘지 않았던 거 같은데.’

[나쁘지 않음.]

[ㅇㅇ]

[구속도 괜찮았지.]

[합격할 거 같은데?]

‘예? 하지만 변화구는 안 던졌는데요?’

[감독관마다 다름.]

[포심만 봐도 어느 정도 각이 보이면 그냥 합격시키는 일도 많음.]

[그러니 너도 일단 포심에만 집중하도록 해라.]

‘예.’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60번!!”

“예!”

신우의 차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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