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8화 >
* * *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됐다.
눈이 내리고 사람들의 옷차림은 두터워졌다.
하지만 신우는 이런 날에도 땀을 흘리고 있었다.
“헉...헉...!”
집 인근의 헬스장.
신우는 미국으로 떠나기 위해 매일 같이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흡!”
근력운동을 통해 파워를 증진시키고 유연성 운동을 통해 투구동작의 유연성을 더했다.
[너는 피지컬이 좋은 편이다. 동양인치고는 키도 크고 팔도 길어서 유리한 편이지. 무엇보다 타고난 유연함이 좋다. 하지만 파워와 스테미너가 부족해. 두 가지를 늘리지 않으면 메이저에서는 통하기 어렵다.]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운동에 열을 올렸다.
물론 근력운동만 하는 건 아니었다.
야구선수에게 필요한 근육은 웨이트 트레이닝만으로는 모두 단련하기 어렵다.
특히 투수의 경우 전신을 모두 활용해야 한다.
전신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 팔로만 공을 던지게 되면 부상도 빠르게 찾아오고 또한 공에 제대로 된 힘을 실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매튜슨은 신우의 훈련 스케줄을 다양하게 구성했다.
더 힘들었지만 신우는 견뎌냈다.
오직 한 가지 목표만을 가지고 말이다.
[메이저에는 괴물 같은 놈들이 많다. 그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지금으로는 불가능해!]
[야야! 발 보인다!]
[속도 높여! 미끄러지면 부상이다!]
[부상 입으면 너 메이저 못감 ㅋ]
[지금 24살이지? 내년이면 25살이네? 이제 한 두 살 먹을 때마다 메이저는 멀어진다고 보면 됨 ㅋ]
[정신집중하고! 몸속에 있는 근육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느껴!]
[근육에 주어지는 압력을 느끼지 않으면 무쓸모야.]
쏟아지는 훈수들에 정신이 산만해지고 했지만.
신우는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했던 훈련들은 잘못됐었어.’
[아예 불필요한 건 아니었어.]
[ㅇㅇ 만약 그 훈련들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 훈련도 아예 버티지 못했을 거임.]
[ㅇㅈ]
[문제는 과거의 훈련은 체계적이지만 또 그렇지 않다는 거지.]
[묘하게 과거와 현대의 훈련법이 섞여 있었지.]
[일종의 과도기 같은 거임.]
[무엇보다 너 스스로가 예전과 변했다.
‘제가요?’
[그래. 예전에는 너는 자신을 믿지 못했어.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생긴 너 자신에 대한 불신은 훈련의 효율을 떨어트리게 만들었다.]
매튜슨의 말은 사실이었다.
신우는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부상, 구속의 저하, 과거보다 못한 실력.
여러 가지들이 그를 괴롭혔다.
운동에 전념을 했지만 스스로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전설의 플레이어들.
명예의전당에 오르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저들이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과거에 남아 있지 않았다.
저승에서 논문을 읽으며 야구에 대해서 야구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축적된 데이터를 가지고 신우를 가르치고 있었다.
덕분에 신우는 구단이 아니었음에도 체계적인 훈련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2개월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 * *
인천공항.
이른 시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떠나기 위해 공항을 찾았다.
“휘유, 사람 많다.”
그중에는 신우도 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공항의 풍경에 신우는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신우야, 여권은 챙겼니?”
“아까도 물어봤잖아요.”
“몇 번이나 확인을 해야지!”
“네네.”
어머니의 말에 신우가 주머니에서 여권을 꺼냈다.
“여기 있어요.”
“잘 챙겨. 잊어버리면 안 되는 거야.”
“옙.”
“미국 가서도 밥 잘 먹어야 되고. 언제든지 힘들면 돌아오렴, 알았지?”
“예.”
물론 힘들다고 돌아올 생각은 없었다.
미국까지 가는 거다.
어떻게든 성공해서 돌아올 것이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그곳에 뼈를 묻겠다.
그런 각오였지만 걱정하시는 어머니의 앞에서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어제도 못 주무셨지...’
[부모란 그런 거다. 자식이 다 컸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품을 떠날 때는 걱정이 되는 법이지.]
[ㅇㅈ.]
[나도 그랬었음.]
[나 2차 대전 나갈 때도 우리 어머니 엄청 우셨지.]
세계대전.
수많은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전성기를 뺏어간 전쟁.
1차와 2차 세계대전이 개전하면서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도 자발적으로 입대를 했다.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었으며 부상으로 공을 던지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우리 어머니도 같은 마음이실까?
신우는 어두운 얼굴의 어머니를 바라보다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했다.
와락-!
“어머.”
어머니를 안았다.
“건강하게 다녀올게요.”
“...그래. 그거면 돼. 건강하게만 있다가 언제든지 돌아와도 돼.”
“예.”
[...잘했다.]
성인이 된 이후 처음이었다.
어머니를 안아드리는 것은.
그렇게 어머니와 작별을 하고 신우는 한국을 떠났다.
메이저리그라는 무대를 위해서.
* * *
메이저리그.
야구가 시작된 곳이자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을 탄생시킨 베이스볼의 역사 그 자체인 곳.
부와 명예를 한 번에 쥘 수 있기에 전 세계의 모든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를 꿈꾸었다.
자연스레 경쟁이 심해지고 수준은 나날이 높아졌다
당연하게도 메이저리그에 입성할 수 있는 선수는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 들어가기만 하면 엄청난 혜택들이 선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22시즌을 기준으로 메이저리그의 최저연봉은 58만 5000달러다.
한화로는 6억 9천만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KBO에서 탑텐안에 들어가는 연봉이었다.
거기에 연금혜택과 각종 복지를 더하면 말 그대로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이동은 전용기를 타고 다녔으며 원정을 떠날 때 손 하나 움직이지 않아도 직원들이 알아서 처리해주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는 단순히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들어가기만 하면 받을 수 있는 최저의 조건이었다.
만약 메이저리그에서 커리어를 쌓아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가면 연봉은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21시즌을 기점으로 100만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는 선수가 모두 500명을 돌파, 최고기록을 세웠다.
22시즌에는 507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기록을 세웠다.
2천만달러 이상을 받는 고액연봉선수는 모두 44명으로 이 역시 역대 최고기록을 수립했다.
평균연봉 역시 450만 달러를 기록했을 정도로 메이저리그에서 주전이 된다는 건 부를 약속받게 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행운이 뒤따라야 했다.
[MiLB에는 다양한 리그가 존재한다. 가장 밑의 등급인 루키를 시작으로 R+, SSA, 싱글에이, 더블에이, 트리플에이 순서로 이어진다.]
‘저...루키랑 싱글에이부터는 알겠는데 R+랑 SSA는 뭐에요?’
[R+는 루키 어드밴스드 리그를 말한다. 루키보다는 수준이 조금 더 높지만, 크게 상관은 없지. 너 정도라면 이 단계는 바로 패스할 가능성이 높다. SSA도 마찬가지야. 쇼트시즌의 싱글A리그인데, 6월부터 열린다. 드래프트를 통해 계약한 선수나 루키보다는 포지만 싱글A에 가기에 부족한 선수들이 뛰는 곳이다.]
[너라면 이 두곳은 바로 패스할 거임.]
[여기 가면 솔직히 다른 팀으로 가야지.]
[ㅇㅈ]
생각보다 많은 리그가 있었다.
‘한국프로야구가 트리플A수준이라는데 맞나요?’
[리그를 다른 리그에 비교하는 건 어렵지, 선수마다의 차이가 존재하니까.]
[ㅇㅈ]
[케바케임.]
[중요한 건 네가 가장 빠른 시일내에 트리플A까지 올라가야 된다는 거다.]
[ㅇㅇ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스프링 트라이아웃에 합격해야 됨.]
‘그런데 일반인이 메이저리그 트라이아웃에 참가할 수 있다니, 처음 알았어요.’
[뭐,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겠지.]
[미국에서는 꽤 유명함.]
[메이저리그 팀이 연다고는 하지만 사실상은 MiLB 테스트다. 즉, 거기서 합격을 해도 마이너리그 계약을 우선적으로 맺게 되어 있어.]
[하지만 그것도 바늘구멍 통과하기나 마찬가지니까,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음.]
트라이아웃.
한국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 역시 트라이아웃이 아닌 추천 덕분에 테스트를 보고 입단을 한 것이다.
트라이아웃과는 거리가 먼 그런 케이스였다.
한국도 그러할진데 메이저리그다.
물론 마이너리그이기는 그렇다고 쉬울리는 없었다.
하지만 해낼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신우를 태운 비행기가 미국으로 향했다.
* * *
미국에 연고는 없었다.
무작정 배낭 하나 메고 미국에 왔다.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으나 신우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예전의 그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일이다.
만약 혼자였다면 오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가 아니었다.
[올~미국!]
[이야-! 감회가 새롭네.]
[영상이나 사진으로는 봤는데, 이렇게 보니까 또 다르게 보이네.]
‘아니, 어차피 지금도 영상이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래도 조금 다름.]
[ㅇㅇ]
[네가 뭘 알겠냐.]
‘예이, 예이.’
대충 대답을 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미국이란 도시에 왔다는 게 신기했지만 일단 거추장스러운 짐을 풀어야 했다.
숙소를 게스트하우스로 결정했다.
호텔에 묵을까도 생각했지만 돈을 아껴야 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현재 신우의 재산은 모두 2500만원이었다.
육성선수로 일하면서 모았던 돈이 천만원에 어머니가 주신 돈이 천만원이었다.
어머니는 그동안 신우가 생활비와 용돈이라며 드렸던 돈을 모두 모아두셨다.
그리고 다시 신우에게 주었다.
어떻게든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머니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이거 받지 않으면 미국에는 못 갈 줄 알아!)
어머니의 단호한 말에 결국 두손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남은 500만원은.
이진철이 주었다.
(미국에 가면 돈 쓸 일이 많을 거다. 넣어둬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사제지간이라고는 하나 프로팀에서의 관계였다.
또한 신우는 이진철의 제안도 거절했었다.
자신을 생각하고 해준 제안을 말이다.
그렇기에 이 돈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진철은 막무가내로 돈을 쥐어주었다.
(나도 예전에 메이저를 꿈꾼 적이 있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했어. 하지만 너는 꿈을 위해 뛰기로 했다. 무엇보다 네가 나중에 성공하면 열배로 갚으면 되지 않냐?)
자신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한 말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이진철이 그렇게 말하니 받지 않을 수도 없었다.
어머니와 스승님.
두 사람의 정성이 깃든 돈이었다.
헛되이 쓸 수는 없었다.
‘그래도 가는 법을 모르니...’
일단 택시를 잡았다.
* * *
게스트하우스는 한국인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외국에 나가면 한국인을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고 해서 긴장했었다.
하지만 게스트하우스의 주인 가족은 무척이나 친절했다.
“그럼 메이저리그를 위해서 미국에 왔다는 거야?”
“예.”
“이야-! 젊어서 그런가? 대단하군! 오직 꿈을 위해서 먼 미국으로 오다니 말이야!”
중년의 사내가 감탄했다.
그가 이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인 로버트 박이었다.
한국이름은 박현성, 직업은 변호사였다.
“트라이아웃이라...팀은?”
“일단 되는대로 하나씩 다 받아볼 생각입니다. 어디든 받아주는 곳이 있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렇군. 여기에 있는 동안 편히 있어. 내가 도와줄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언제든지 말해요. 이이가 야구광이거든요. 아마 두 손을 걷어붙이고 도와줄 거예요.”
“물론이지! 이왕이면 다저스에 합격됐으면 좋겠군! 그곳은 한국인 선수들이 언제나 잘하던 곳이니까!”
다저스 팬인 듯 흥분하며 말하는 박현성이었다.
다저스라...
가면 좋긴 하지만 가능성은 적었다.
[다저스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팜이 가장 잘 되어 있는 구단 중 하나다. 당연히 유망한 투수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고 그들을 언제 콜업을 할 건지 이미 스케줄이 정해져 있을 거다.]
[즉, 네가 마이너 계약을 맺더라도 메이저를 밟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거임.]
[차라리 팜이 좀 약한 곳을 골라서 가는 게 좋음.]
그렇게 고른 곳이 뉴욕 메츠였다.
[젠장, 내 메츠가 어쩌다가 이렇게...]
[스텡겔, 너무 실망하지마요.]
‘스텡겔...?’
[메츠의 창단감독이야.]
‘아...’
[애송이! 메츠로 가기로 마음 먹은 이상! 어떻게든 합격해서 메츠를 우승으로 이끌어라!!]
[무리무리. 당신이 있을 때도 우승을 못했는데, 어떻게 지금 합니까?]
[마지막 우승이 86년이었던가?]
[40년이 다 되어가네.]
케이시 스텡겔이 불쌍해지는 신우였다.
어쨌건 이러한 이유로 메츠를 시작으로 트라이아웃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