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7화 >
* * *
신우는 방에 누워 있었다.
‘내가 커터를 던졌다고?’
일명 커터.
정식명칭은 컷패스트볼이다.
변형 패스트볼의 일종으로 우투수 기준 좌타자의 몸쪽으로 파고든다.
횡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변화구인 슬라이더와 성격은 비슷하다.
하지만 변화가 슬라이더보다 적고 구속은 더 빨랐다.
‘제가 정말 커터를 던진 거예요?’
[그래.]
‘어떻게요?’
[네가 던진 걸 우리한테 묻는 거냐?]
[아...이게 바로 국영수로 공부했다는 서울대 수석합격자의 인터뷰인가?]
‘...한국인도 아니면서 그런 건 또 어떻게 아셨어요?’
[짤방은 저승에서도 유행이거든 ㅋㅋ]
[쓸데없는 소린 그만하고. 너 커터를 아예 못 던지는 거냐?]
‘아뇨, 던지는 방법이야 알고 있죠. 하지만 제구를 제대로 잡지 못해서 실전에서 써본 적은 없어요.’
커터는 무척이나 유용한 공이었다.
첫 번째로 포심과 궤적이 비슷하다.
포심이라 생각하고 공을 휘둘렀는데 변화가 일어나 스위트스팟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커터다.
두 번째는 공의 회전이다.
슬라이더는 공의 회전을 앞이나 뒤가 아닌 옆으로 준다.
그렇기에 눈이 좋은 타자들의 경우 공의 회전을 파악하고 타격하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 커터의 회전은 패스트볼과 마찬가지로 역회전이 걸린다.
온전한 역회전인 패스트볼과 달리 약간 비스듬한 방향으로 회전을 하지만 짧은 시간에 파악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마지막은 공을 던지는 방법이다.
슬라이더의 경우 공을 던질 때 손가락이 공의 옆면에 가있다.
반면 패스트볼은 공의 윗부분을 감싸고 있기에 릴리스포인트와 팔이 나오는 각도들이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차이점 때문에 슬라이더와 패스트볼을 던질 때는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커터의 경우 패스트볼에서 변형된 구종이기 때문에 공을 채는 방식이 패스트볼과 흡사했다.
단지 그립이 패스트볼에서 약간 사선을 잡는다는 느낌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장점들 덕분에 커터는 메이저리그, KBO를 가릴 것 없이 투수들에게 애용되는 구종이었다.
신우 역시 커터를 배워보려 노력했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던지는 건 할 수 있지만 경기에서 사용하기는 부족한 그런 구종이 커터였다.
가장 이상한 건 그립이다.
‘커터는 그립이 따로 있잖아요. 하지만 전 커터그립이 아니라 포심 그립을 잡고 던졌는데, 어떻게 커터가 나가요?’
[그립은 분명 정석이란 게 존재하지만 그건 기초적인 것을 설명하기 위한 정석이다.]
[ㅇㅇ 특정 구종이 마스터피스라 불리는 투수들은 대부분 정석적인 그립을 바꿔 자신만의 그립을 만드는 법임.]
[얘 던진 건 리베라와 비슷하지 않았음?]
[ㅇㅈ. 그립에 변화를 준 게 아니라 가해지는 힘에 변화를 줘서 회전방향을 바꾼 거 같던데?]
[이쉑 레알 재능충이었네.]
이들의 반응을 보니 좋은 거 같았다.
그런데 뭐가 좋은 걸까?
[마리아노 리베라의 커터가 명품이라는 평가를 받은 이유는 포심과 구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포심과 구별이 되지 않아요?’
[그래. 애초에 포심과 같은 그립을 잡고 던지기 때문에 공을 놓는 릴리스 포인트나 딜리버리가 모두 같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티핑이 노출될 확률도 적고 딜리버리 과정에서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다.]
[특히 회전수도 큰 영향을 끼침.]
‘회전수요?’
[응. 리베라의 전성기시절에는 rpm을 측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가 없지만. 그가 마흔살 때, 던졌던 포심의 rpm은 1573회였음.]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평균rpm은 2200을 상회한다.
말년이라고는 하지만 리베라의 40살 시즌의 성적은 매우 훌륭했다.
61경기 출장 3승 3패, 33개의 세이브를 기록했다.
60이닝을 던졌고 1.80의 평균자책점과 0.83의 WHIP, bWAR은 2.4를 기록했다.
불혹의 나이에도 불구,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정상급 마무리로 활약했다.
그런 리베라의 포심의 회전수가 고작 1573회라니?
회전수가 많을수록 공의 구위가 좋아진다라는 이론은 최근 강력한 가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실제로도 회전수가 높은 투수들의 공이 더 위력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리베라는 정상급 마무리로 활동한 마흔살에 리그 평균을 훨씬 밑도는 회전수를 가지고 있었다.
‘그게 가능해요?’
[너는 커터의 회전수가 포심보다 평균적으로 얼마나 떨어진다고 생각하냐?]
‘음...’
[약 900회 정도 떨어진다.]
[절반 가까이나요?]
[그래. 그런데 리베라의 커터 회전수는 1528회였다.]
“...예?”
[즉, 그가 던지는 포심과 커터의 회전수는 사실상 동일했다는 거지.]
[거기다가 구속도 포심이 평균 92마일이었고 커터는 91마일이었음.]
“그게 말이 돼요?”
[ㅇㅇ 됨.]
[그러니 메이저 애들이 그렇게 못쳤지.]
[그냥 공을 잘 던져서 메이저리그에서 역대급 마무리가 됐다? 있을 수 없는 일임. 잘 던지는 건 기본이고 거기에 특별함이 깃들어야 되지.]
“와...”
[그 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마리아노 리베라의 공은 특별했다. 그리고 그 공을 네가 던진 거다.]
“...전 그냥 포심 던졌다니까요?”
[리베라도 마찬가지다.]
“다시 던지라고 하면 못할 가능성이 높아요.”
[알아.]
“...그럼 의미가 없잖아요.”
[의미가 없기는.]
[이제부터 굴러야지.]
“...예?”
[일단 손가락 힘부터 기르자.]
[손가락으로 푸시업 ㄱㄱ]
[그거 좋네.]
[50개 일단 ㄱ]
“...손가락으로 푸시업을 50개를 하라고요?”
[야 임마! 너 애를 뭘로 보는 거야?!]
그때 올라오는 채팅에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음.
그렇지.
손가락으로 푸시업을 어떻게 50개를...
[100개는 해야지!]
예?
[맞어! 애 무시하지마!]
[하긴, 이미 던졌으니 어느 정도 힘이 있겠네.]
[ㅇㅈ]
[3세트 고?]
[좋다. 100개 3세트.]
“저기요...?”
[시작해라.]
믿었던 매튜슨마저...
신우는 이날 깨달았다.
인간의 한계는 없다는 것을.
* * *
대학야구의 시즌이 모두 마무리됐다.
신우는 이진철과 함께 학교 근처의 고깃집에 앉아서 뒷풀이를 즐기고 있었다.
“이야-! 정말 네가 도와줘서 다행이었다.”
“에이, 제가 오히려 다행이었죠. 코치님 덕분에 시설도 쓸 수 있었고 거기다가 수입도 얻었는데요.”
“으하하! 그렇게 말해주니 기분은 좋네.”
이진철이 잔을 들어 소주를 입에 털어넣었다.
“크으-!! 한 잔 할래?”
“아닙니다. 제가 한 잔 드리겠습니다.”
“왜? 너 가끔이지만 한 잔씩 했잖아.”
“그랬죠. 그런데 끊었습니다.”
“그래?”
끊을 수밖에 없었다.
매튜슨이나 다른 이들이 술을 먹지 말라는 말은 딱히 안했다.
그럼에도 끊은 건 단지 훈련이 죽을만큼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겉만 멀쩡했지 근육은 연신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 술을 마시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신우가 잔에 소주를 따르자 이진철이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앞으로는 어쩔 거냐?”
신우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이진철이 말을 이었다.
“사실 왼손이었던 너의 사이드암의 폼을 고쳐주고 어느 정도 보완을 해주면 육성선수로 들어갈 구단을 소개시켜줄 생각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야. 왜인줄 아냐?”
알고 있다.
그리고 이진철은 대답을 원한 게 아니었다.
“너의 오른손으로 던진 공을 봤기 때문이다.”
쭈욱-!
이진철이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전율이었다. 과거에도 수많은 투수들이 손을 바꿔서 던졌다. 나름 성공한 이도 있지만 대부분 실패했지. 성공한 이들도 너 같은 반전은 없었다. 왼손투수가 오른손으로 던진다고 공이 더 빨라진다? 그건 거의 없는 일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건 기적이야, 임마!”
기적.
거창하지만 인정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기적이었다.
“넌 이제 육성선수급이 아니야. 당장 1군에 올라가서 공을 던질 수 있다. 네가 원한다면 구단들과 내가 연결해주마.”
이진철은 발이 넓다.
구단의 지인들에게 이야기하면 언제든지 신우가 테스트를 받을 수 있게 도울 수 있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이진철은 신우가 공을 던지면 국내의 모든 구단들이 와서 계약서를 내밀 것이라고 믿었다.
그만큼 신우의 공에는 특별함이 있었다.
무엇보다 고작 2-3개월만에 변한 모습이었다.
앞으로 어떤 훈련을 하느냐에 따라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도 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체계적인 시설에 들어가서 훈련을 해야 돼.’
그래서 신우에게 이런 제안을 한 것이다.
신우가 대성을 하기 위해서는 좋은 시설, 그리고 빨리 프로구단에 들어가는 게 중요했다.
시설이 중요한 것도 맞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프로구단에는 좋은 지도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지도를 받으면 신우는 한단계 성장할 것이다.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선수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어쩌면 그보다 높은 곳을 바라볼 수도 있었다.
어디까지가 한계이건 한시라도 빨리 구단과 계약을 맺어 체계적인 관리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코치님이 저를 생각해주시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응?”
“하지만 죄송합니다.”
“...이유를 물어도 되냐?”
“처음 방출을 당했을 때, 앞이 캄캄했어요.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죠. 코치님도 아시겠지만 전 야구만 했었잖아요?”
신우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유망주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었다.
특히 2군에서 포텐이 터지길 기다리며 훈련을 하는 이들.
녀석들은 언제나 빛을 보길 원했다.
하지만 빛을 보는 건 소수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야구를 등지고 사회에 나가야 했다.
학창시절 공부는커녕 교과서도 펴보지 않은 아이들이 냉정한 사회에 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소수에 불과했다.
“어둠속에 있던 제가 빛을 찾았습니다. 오른손으로 바꾸고 구속이 돌아오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때 생각났어요. 제가 야구를 시작했던 계기.”
“계기?”
“어릴 때, 아버지가 야구를 좋아하셨어요. 매일 저녁 소주나 맥주를 드시면서 야구를 보는 게 일상이었죠. 저는 옆에 앉아서 안주를 먹었죠. 먹으면서 TV를 보면 볼 수 있는 건 야구밖에 없었어요.”
“그때부터 꿈꾼 거냐?”
“아뇨. 사실 그때 아버지가 보시던 KBO의 야구는 제게 아무런 감흥도 없었습니다.”
“설마...”
“어느 날, 아버지가 일요일 아침에 술상을 차리시더라고요. 뭔가 싶어 아버지 옆에 앉았는데, 그동안 본 야구장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야구장이 TV속에 있었죠. 사람들은 몇배는 많았고 선수들은 화려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
무슨 이야기를 할지 감이 잡혔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이 갔던 건, 마운드 위에 고고하게 서있던 투수였어요. 강속구를 뿌리며 상대를 잡아가는 그의 모습에 저는 아빠한테 처음으로 야구를 하고 싶다 말했어요.”
“설마...”
“예. 저는 메이저리그에 서는 날을 꿈꾸며 야구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조금만 더 노력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신우야, 메이저도 좋다. 나도 네가 메이저에 갈만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체계적인 훈련을 받는 게 중요하다. 일단 한국구단과 계약을 맺고 그들에게 지도를 받아서 너의 야구를...”
“지도자라면 충분히 있습니다.”
“뭐? 하...도대체 누구한테 지도를 받는지 모르겠지만 프로코치와 감독들은 현역시절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던 이들이다. 프로에서 70승을 찍었던 나도 1군에 올라가지 못해. 그만큼 1군 코치란 자리는 소수에게만 허락된 자리야.”
[이놈 뭐라하누?]
[70승을 찍은 게 소수에게만 허락된 거임?]
[게비오면 가능함.]
[근데 70승은 너무한 거 아님?]
[사이형, 70승 언제 찍었음?]
[3년차에 72승 찍음.]
채팅이 미치도록 올라갔다.
신우는 등에서 땀이 삐질삐질 솟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채팅을 볼 수 없는 이진철은 진심을 담아 신우를 설득해갔다.
“네가 던지던 커터! 그 커터를 너의 것으로 온전하게 만들어줄 투수코치도 프로에 있다!”
[이미 만들고 있쥬?]
“그리고 너 2군에 있을 때, 커브를 배우고 싶었다며? 이글스에 있는 강우식 선배가 현역시절 커브의 달인이었던 거 알지? 그런 선배들에게 네가 직접 배울 수 있는 거야!”
[브라운형! 얘가 커브 배우고 싶다는데?]
[앙? 나중에 가르쳐주지 뭐.]
이진철의 말에 반응하는 듯 올라가는 채팅창.
덕분에 신우의 식은땀은 마를새가 없었다.
이날.
결국 이진철은 신우를 설득시키지 못했다.
사실 설득이 될 리가 없었다.
신우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택시정류장으로 향하는 이진철을 보며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가졌다.
‘죄송해요, 코치님. 저를 생각해주시는 건 알지만...’
그의 시선이 채팅창으로 향했다.
‘이미 제게 최고의 코치들이 함께 하고 있어요.’
[오올~]
[감동인데?]
[캬하-! 드디어 우리의 진가를 알았자너.]
저런 채팅을 보면 조오오오오금 믿음이 안 가지만...
[그럼 결정을 한 거냐?]
‘예.’
신우가 몸을 돌렸다.
“내년에 미국에 도전하겠습니다.”
[좋았으!]
[가즈아!!]
[가즈아아아아아아아!!]
벌써 11월.
고작 3개월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ㄴㄴ 3개월이나 남은 거임.]
‘그런가요?’
[ㅇㅇ 3개월이면 얼마나 많은 걸 할 수 있는데.]
‘많은거요?’
[일단 너 육체개조부터 하자.]
‘예?’
[맞어. 너 이번에 푸시업하는 거 보니까 체력 즈질이더라.]
‘제가요?’
[ㅇㅈ. 애가 너무 허약함. 일단 심장은 만들었으니까, 본격적으로 근력훈련이랑 전반적인 밸런스를 잡아야 될 듯.]
‘허약해요?’
[유연성도 잊으면 안됨. 얘 유연성이 없어서 온 몸이 삐걱댐.]
[일단 다리부터 찢어놓자.]
[허리도 새우로 만들어버리고.]
[우리 스케줄부터 짜실?]
[오, 좋다! 간만에 미팅 ㄱㄱ]
[3개월이니까, 하루에 한 4시간씩 하면 되겠지.]
이 인간들...
왜 이렇게 신났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휘잉-!
“으으...추워.”
팔로 몸을 감싸며 집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어머니한테는 어떻게 말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