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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로 메이저리거-6화 (6/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6화 >

* * *

뻐억!!

“몇키로야?”

“140km.”

“140인데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지?”

소리만 들으면 150중반은 되어 보였다.

스피드건에 찍힌 구속을 본 이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이진철은 그 이유를 바로 알아챘다.

‘회전력이 좋아.’

신우는 왼손으로 던질 때도 간혹 구위가 좋은 공들을 던졌다.

그 횟수가 적다는 게 문제였지만.

‘단지 캐치볼에서도 모든 공들의 구위가 일정하게 좋다.’

만약 신우의 속사정을 몰랐다면 이진철은 그가 원래 우완투수였다고 믿었을 거다.

‘도대체 어떤 마술을 부린 거지?’

왼손투수가 오른손으로 던진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신우는 고작 3개월만에 해냈다.

‘연습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3개월.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싶었다.

하지만 눈앞에 결과가 나와 있었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놀라기는 박광수도 마찬가지였다.

좌완에서 던졌던 공들은 대부분 그저그랬다.

간혹 좋은 공들이 들어왔지만 딱 그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던지는 공들은 예상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경일이형이랑 비슷하거나, 그 이상.’

나경일.

작년 드래프트에 참가, 4순위로 지명된 투수다.

최고구속 144km의 좌투.

그는 올 시즌 1군에서 계투로 활약하고 있었다.

추격조였지만 그래도 1년차 투수가 후반기까지 1군에서 뛰었다는 건 대단한 활약이다.

그런 나경일과 비슷한 공이라니.

박광수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재밌어졌어.’

비록 좌완 사이드암은 아니었지만.

이런 투수라면 대환영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박광수가 이진철에게 말했다.

“감독님! 캐처가 필요할 거 같습니다.”

“뭐?”

“제대로 승부를 해보고 싶거든요.”

뭐라 이야기를 하려던 이진철.

하지만 박광수의 눈빛을 보고는 설득하는 걸 포기했다.

“하아...마음대로 해라.”

그의 한숨과 함께 승부가 결정됐다.

* * *

급조된 승부.

하지만 필요한 건 모두 준비됐다.

구심에 포수 거기에 외야의 수비들까지.

심판을 맡은 이진철이 규칙을 설명했다.

“아웃카운트는 3개, 내야의 공은 모두 아웃처리한다. 외야는 수비가 통상적으로 잡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아웃처리가 된다. 외야에 나가 있는 애들이 못잡더라도 내가 판단하겠다.”

“예.”

“알겠습니다.”

한 경기에 통상적으로 타자가 얻는 기회는 3번에서 4번.

이진철은 그중에서 3번의 기회를 준 것이다.

승패의 기준은 두지 않았다.

‘직접 상대해본 본인들이 판단할 수 있겠지.’

마운드로 돌아간 신우는 흙을 고르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과여어어어어언!]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쟤 못 잡으면 메이저는 포기해야지.]

[ㅇㅇ 크브에서 왕이 되자!]

[크왕!]

[크왕 신우!]

시작하기도 전에 초를 치는 채팅창이었다.

‘아니, 내가 믈브 안 가면 좋겠어요?’

[정신우 : 본인 방금 믈브 가서 공 던지는 상상함.]

[킹치만 어림도 없지!]

[무리무리.]

[벌써부터 심장이 증기기관차처럼 팔딱팔딱 뛰네.]

‘아놔...’

[저치들 말은 무시해라, 신우야.]

그때 매튜슨의 채팅이 보였다.

그의 한 마디에 마음이 안정되는 게 느껴졌다.

[저 녀석은 분명 좋은 타자가 될 거다. 하지만 오른손으로 던지는 너는 더 좋은 투수다.]

[우우-!]

[훈훈모드 갑분싸고요!]

뒤이어 올라오는 채팅들은 더 이상 신우의 마음을 흔들 수 없었다.

‘전력으로 가겠습니다.’

[그래.]

피처 플레이트를 밟고 선 신우가 로진을 손에 묻혔다.

새하얀 가루가 허공에 흩날렸다.

매튜슨의 한 마디 덕분일까?

더 이상 긴장이 되지 않았다.

“신우야! 준비됐냐?!”

“예.”

“좋아. 플레이볼!”

이진철의 외침과 함께 짧은 승부가 시작됐다.

* * *

뻐억!

“스트라이크! 아웃!”

구심의 손이 올라갔다.

두 번째 아웃카운트.

박광수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아우...오랜만에 잡아서 그런가 무쟈게 아프네.”

포수를 맡은 임길우가 미트를 빼고 손을 흔들어댔다.

“엄살은!”

“아니, 엄살이 아니라니까요. 정말 아픕니다. 뭐, 내가 오랜만에 잡는 것도 있었지만 저 녀석 공은 돌이에요, 돌. 140짜리 공이 아니라니까요.”

임길우는 프로에서 포수로 뛰었다.

150km의 강속구도 받아냈고 외국인들의 공도 받았었다.

그런 임길우의 평가였기에 신뢰가 갔다.

‘공이 살아있긴 했지.’

회전이 많이 걸린 공은 마지막 순간까지 공이 뻗어온다.

이 뻗어온다는 건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공의 낙하지점이 다른 공보다 낮다는 것이다.

공은 직선으로 날아오지 않는다.

개인차가 있으나 완만한 궤적을 그리며 포수의 미트에 꽂힌다.

회전력이 좋으면 떨어지는 각도가 좁아진다.

떨어지는 각이 좁아지면 타자가 정타를 만들어낼 확률이 낮아진다.

그렇기에 회전력은 현대의 투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다.

‘악력과 제구력도 잡혀 있다. 거기에 구속까지 140km 전후가 나오는 상황. 만약 제대로 몸을 만들고 시즌에 들어간다면...?’

이진철의 등에 소름이 돋았다.

순간적으로 1군 마운드에 서있는 신우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충격이 좀 심하겠네.’

이진철의 시선이 박광수에게 향했다.

녀석은 엘리트코스를 밟아왔다.

어릴 때부터 프로선수에게 레슨을 받았다.

리틀야구에서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야구까지.

적수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박광수가 제대로 공을 건들지도 못하고 있었다.

엘리트로 커온 박광수이기에 충격이 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이진철의 오판이었다.

“흠흠!”

배터박스에서 물러난 박광수가 콧김을 내뿜으며 배트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면서 시선은 신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흥분을 한 걸까?

하지만 다시 타석에 들어서는 박광수의 눈빛을 본 이진철은 그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즐기는 거냐?’

녀석의 눈동자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자신을 압도하는 공을 던지는 사내와의 대결을 말이다.

“감독님! 시작하시죠!”

“어? 어어, 그래. 투아웃이다! 플레이볼!”

배터박스에 선 박광수가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신우가 눈가를 찡그렸다.

‘이 상황에서도 도발이냐?’

[멍청아! 저게 어떻게 도발로 보이냐?]

‘예?’

[저건 그냥 지금 상황을 즐기고 있는 거잖아.]

‘즐겨요? 왜요?’

[...넌 야구가 즐겁지 않냐?]

말문이 막혔다.

야구가 즐겁다?

그렇게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진심으로 이야기하면 그냥 하는 것이다.

야구가 일이니까.

지금까지 해왔던 게 야구밖에 없으니까.

열심히 해서 성공한다.

그리고 어머니를 편하게 모신다.

그것이 야구를 하는 목적이었다.

이걸 그대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매튜슨은 마치 알고 있다는 듯 채팅이 올라왔다.

[목적이 무엇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아. 동기부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지. 단, 야구를 즐기는 게 중요하다.]

[동감.]

[야구는 자기와의 싸움임. 맨탈이 강해야 하는데, 그 자체를 즐기지 않으면 롱런하기 어려워짐.]

[몇십년동안 똑같은 루틴을 반복하는데, 그게 싫으면 어떻게 하겠음?]

[재능이 있는 것보다 노력하는 자가 성공한다. 하지만 재능이 있으면서 노력까지 한다면 그 사람을 이길 사람은 없다.]

[엌ㅋㅋㅋㅋ 명언 쏟아내누.]

야구를 즐긴다.

신우는 그것을 곰곰이 되씹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릴 때를 떠올려, 야구를 처음했을 때. 재밌었냐?]

재밌었냐고?

대답은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재미가 없었다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예. 재밌었어요.’

[그때를 떠올려라. 목적을 위해 야구를 하면 그 목적을 이룬 순간, 슬럼프가 찾아온다. 하지만 네가 지금 하는 것을 즐긴다면 슬럼프가 오더라도 극복이 가능해.]

맞는 말이다.

그 생각이 들고 타석의 박광수를 바라봤다.

자신을 도발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매튜슨의 조언을 듣고나니 다르게 보였다.

그때 한줄의 채팅이 올라왔다.

[야구를 즐겨라.]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피처 플레이트를 밟고 투구동작에 들어갔다.

와인드업포지션에서 다리를 차올렸다.

[엉덩이에 힘을 주고!]

힘을 줌과 동시에 축발이 기울면서 중심이 낮아졌다.

동시에 어깨와 왼발이 몸쪽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모인 힘을 회전력으로 바꾸어 스트라이드를 했다.

촤앗-!

[엄지에 힘을 꽉 줘! 몸의 균형을 잡는 건 엄지다! 엄지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야 하체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엄지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지면에 발이 고정이라도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너의 몸은 이제 활이 되는 거다!]

흔히들 말하는 공을 손으로 챈다.

이 말 때문에 공을 팔로 던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투구는 팔이 아닌 상체로 하는 것이다.

스트라이드가 되면서 발이 땅에 닿는 순간.

견갑골을 당겨 팔을 뒤로 이동한다.

이 순간.

투수의 몸은 마치 활과 같은 형태가 된다.

양쪽 팔꿈치는 활시위가 되고 손 위에 놓인 공은 화살이 된다.

활대는 바로 투수의 상체다.

가슴과 어깨 그리고 등근육까지.

상체의 모든 커다란 근육을 활용해 힘을 축적시킨다.

지면에 발이 땅에 닿아 고정되는 순간.

골반을 회전시켜 회전에너지를 만들어주었다.

회전에너지에 따라 신우는 상체의 회전을 시작했다.

상체가 돌아가고 가슴이 앞으로 당겨졌다.

하지만 그의 오른팔은 여전히 어깨의 뒤에 있었다.

한참이나 뒤에 있는 그의 팔은 지면과 일직선상으로 눕혀져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캐터펄트에 장전된 바위와 같았다.

[릴리스포인트는 너의 팔과 등 그리고 엉덩이와 발끝이 일직선이 되는 지점이다! 무조건 앞으로 끌고 나오는 게 아니야!]

‘예!’

뒤에 잡아두었던 팔이 더 이상의 에너지를 견디지 못하고 발사됐다.

팔이 상체회전의 궤적에 따라 돌아갔다.

그리고 팔과 등 그리고 엉덩이와 발끝이 일직선이 되는 순간.

[지금!!]

지금까지 모아두었던 모든 에너지를 공으로 방출시키겠다는 각오로. 공을 챘다!

두 개의 손가락에서 전달된 힘은 공에 강력한 회전에너지를 만들어냈다.

그 순간.

“츠하아아앗!”

신우는 평소와 다른.

약간의 이질적인 감각이 중지에서 느껴졌다.

하지만 미묘한 차이였기에 무시하고 투구의 마지막을 이어갔다.

그의 손을 떠난 공은 18.44m를 가로질러 박광수를 향해 날아갔다.

‘최고다!’

오늘 던진 공 중 베스트다.

박광수는 그것을 단번에 파악했다.

‘그렇다면!’

촤앗-!

오른발을 고정시킨 박광수가 스윙을 시작했다.

‘나도 최고로...!’

강렬한 회전에너지가 만들어낸 박광수의 배트가 매섭게 돌아갔다.

‘받아치겠어!!’

후웅-!

모든 걸 쪼개버리겠다는 듯.

강력한 힘을 담은 배트가 돌아갔다.

‘이건...!’

구심인 이진철.

그리고 포수인 임길우.

두 사람은 확실히 볼 수 있었다.

공의 궤적 그리고 배트의 궤적.

두 궤적이 일치하는 걸 말이다.

‘광수가 이겼...’

이진철이 그렇게 판단을 한 순간.

‘어?’

공의 궤적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그 궤적의 변화는 종이 아닌 횡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배트의 궤적은 변하지 않았다.

그 결과.

탁!

둔탁한 소리와 함께.

콰드드득!

배트가 쪼개졌다.

높게 떠오른 공은 내야에 떨어졌다.

“아웃!”

동시에 이진철의 손이 올라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승부가 마무리된 것이다.

하지만 박광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망부석처럼 부러진 자신의 배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신우가 배터박스로 걸어왔다.

“고생했어.”

“...선배님.”

“어?”

“마지막에 던지신 공, 뭐였습니까?”

“포심이었는데?”

“예?”

“말도 안 돼!”

의아한 표정을 짓는 박광수.

반면 이진철은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커터 아니었어?! 분명 마지막에 공이 휘었는데?”

“커터요? 저 커터 어떻게 던지는지 모르는데요.”

“뭐?!”

신우가 공을 들어 그립을 잡았다.

“평소처럼 이렇게 던졌어요.”

그의 그립은 평범한 포심 패스트볼 그립이었다.

그 모습을 본 이진철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감독님이 왜 저리시지.’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짧은 채팅이 올라왔다.

[ㅅㅂ. 밸런스 좆망겜.]

‘에...?’

자신이 뭘 한 건지 여전히 모르는 신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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