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화 >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갑자기 눈앞에 채팅창이 보인다면 어떨거 같나?
응?
구글글라스를 이야기하는 거냐고?
노노!
맨눈에 갑자기 채팅창이 똭! 나타나면.
어떨 거 같냐고 묻는 거다.
미친 거 아니냐고?
노노!
지극히 정상이다.
요즘 좀 덥기는 하지만 정말 정상이다.
그런데 왜 그런 거 묻느냐고?
방금전부터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엌, 야구장이다.]
저거!
저거 보이지?!
“나만 보이는 거 아니지?!”
“뭔 개소리야?”
“예?”
“더위 먹었냐?”
아...실수로 입밖으로 내고 말았다.
“정신차려 임마!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아?”
“흠흠, 물론 압니다.”
“투아웃이다. 아웃카운트 하나만 잡으면 체인지야.”
“예.”
“정신 똑바로 차려. 저 새끼 좌완한테는 쥐약이다. 1할 1푼밖에 못 쳐.”
“알겠습니다.”
“얼렁 잡고 내려와라.”
“옙!”
투수코치님이 공을 건네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젠장.
정말 나만 보이나?
[근데 왜 관중이 없음?]
[아마야구인가?]
[동네야구 같은데?]
[그래도 경기장은 꽤 괜찮지 않음?]
채팅이 연달아 올라간다.
도대체 이게 뭐지?
“플레이볼!!”
아, 경기 시작됐다.
일단 집중하자.
저놈만 잡고 내려가면 오늘 임무는 끝이다.
[오-! 던지려나 보다]
[주자도 있는데?]
[1, 2루네]
[맞으면 쓰리런에 역전인데?]
[오~허니잼!]
...저것에도 일단 신경을 끄자.
타자에게만 신경을 쓰자.
포수가 사인을 냈다.
코스는 몸쪽 꽉차는 공.
아놔.
초구부터 몸쪽이냐.
자신없지만...어쩔 수 없다.
1군에서 내려온 포수다.
그의 말을 거절할 명분따위는 내게 없다.
“후우-!”
심호흡을 하고 세트포지션에 들어갔다.
1루 주자가 눈에 들어왔다.
왔다갔다...거참, 가만히 좀 있지는!
신경쓰이는고만!
진정, 진정하자.
타자에게만 집중을 하고 공을 던지면!!
타닥!
발을 내디뎠다.
[스트라이드가 왜 이럼?]
[상하체 같이 도는 거 실화?]
[하체 전혀 이용 못 하고요.]
상체를 회전시키며!
[상체를 돌리는데 팔이 왜 끌려나옴?]
[개판 오분전!]
릴리스 포인트에서 공을...!
[벌써 놓는다고?]
[실화냐?]
“차앗!!”
손을 떠난 공이 매섭게 날아갔다.
어?
근데 너 왜 거기로 감?
네가 가야 될 곳은 타자의 몸쪽이거든?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들어가라!!
따악-!
“아아...”
이건 아니다.
안넘어갔다.
[넘어갔네]
[굿~바이~]
[갔다]
아니야, 안 넘어갔어!
절대 안 넘어갔...!
[갔다니까?]
이런 젠장...
이런 상황에 쓰리런이라니.
최악이다.
아아...저승사자가 올라온다...
“한놈만 잡으라니까! 그것도 제대로 못 하냐?!”
“죄송...합니다...”
“내려가!”
젠장...누군 맞고 싶어서 맞았나?
나도 아웃 잡고 싶었다고요.
[코치가 선수한테 화를 내누?]
[근데 나 같아도 화 냈을 듯]
“이게 다 저것 때문이야.”
[엌ㅋㅋㅋㅋㅋ]
[우리 탓을 하누?]
[ㅂㅅ인증?]
“내 말이 보인다고?”
[ㅇㅇ 들림]
[인터넷 방송 안봄?ㅋ]
[그나저나 님 야구 초보임?]
[야구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한 수 가르쳐 드릴?]
“당신들이 뭔데 날 가르쳐?!”
[나? 매튜슨.]
[나는 월터 존슨.]
[자기소개 시간임? 난 사이영.]
...실화냐?
* * *
경기가 끝났다.
결과는 패배.
쓰리런이 치명타였다.
투수코치님께 한소리를 들은 뒤에야 숙소로 돌아왔다.
“하아...지친다.”
[던진 것도 없는데 지치누?]
[양심 어디?]
“아...저게 있었지.”
[저거?]
[대선배님들한테 저거?]
[예의범절 어디감?]
“아니...그런데 진짜 크리스티 매튜슨에 월터 존슨이에요? 거기다가 사이영이라니...”
[안 믿음?]
[님이라면 믿겠음?ㅋㅋ]
[하긴 나도 이게 된다는 게 신기할 따름.]
[뭐, 믿든말든 그건 님 선택임.]
“하아...”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크리스티 매튜슨.
월터 존슨.
이 두 사람이 누군가?
메이저리그 명예의전당에 오른 최초의 5인.
그중에서 단 두 명밖에 없었던 투수들이 바로 이들이다.
거기다가 사이영은 누구인가?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상인 사이영상이 바로 이 사람의 이름을 딴 역사상 최고의 우완 중 한 명이다.
무려 700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로 유명하다.
그런 이들이 채팅을 치고 있다고?
“이게 말이나 되냐고.”
[뭐가?]
“매튜슨! 존슨! 사이영! 이 사람들이 인터넷 용어나 쓰면서 채팅을 치는 게요!”
[인터넷 용어 허니잼]
[개꿀잼]
‘하아...’
[임마! 저승에도 있을 건 다 있어!]
[ㅇㅈ 와서 보고 놀라지나 말아라.]
[한 번 와보쉴?]
[오면 못가지만 나름 살만함]
“격하게 거절하겠습니다.”
[아쉽.]
“그래서 당신들이 정말 그 전설의 선수들이라 쳐요. 그런데 갑자기 왜 채팅창에서 나타난 겁니까?”
[모름]
“예?”
[모른다고. 갑자기 저승튜브에 채널 떠서 들어와봤음.]
[나도 ㅋ]
[이하동문!]
“아니, 제가 방송을 킨 적이 없는데. 어떻게 거기에 채널이 있어요? 난 유튜브도 안하는구만.”
[모름]
[나도 이승 채널 뜨는 거 처음 봄 ㅋ]
[내가 아는 귀신한테 들어보니까, 가끔 있다던데?]
[ㄹㅇ?]
[ㅇㅇ]
[나도 저승사자한테 들음. 간혹 영물 구해주면 그런 일이 생긴다던데. 님, 최근에 뭐 동물 구해준 적 없음?]
“동물이라면...”
기억을 되짚었다.
“그러고 보니 한 달 전에 고양이가 도로에 갇혀 있어서 그거 안전한 곳으로 옮겨준 적은 있습니다.”
[그거네!]
[그거야!]
“예?”
[고양이는 예로부터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놈이었음]
[혹시 검은고양이 아님?]
“맞습니다.”
[검은고양이라면 확률은 더 높네.]
[크~역시 착한 일을 하면 복이 찾아온다니까.]
[이러니까 세상은 살만한 거지.]
“...이게 복입니까?”
[그럼 복이지!]
[뭔가 띠꺼운갑다?]
“아니, 솔직히 공 던지는데, 채팅창 뜨면 신경쓰이잖습니까.”
[그래서 뭐?]
[우리가 있어서 방해 됨?]
[그럼 방송 닫든가.]
“방송을 닫을 수 있다고요?”
[쌉가능.]
[그냥 방송종료라고 말하면 됨.]
[한 번 방송종료하면 다신 못 킴 ㅋ]
[끄쉴?]
솔직히 당장 끄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만약 이 사람들이 정말 매튜슨이고 존슨이고 사이영이면?’
레전드 플레이어.
그들과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건 장점이 아닐까?
‘혹시 야구라도 배울 수 있으면...’
사실 믿음은 잘 가지 않았다.
[왜 말이 없으심?]
[아~이 집 방송 못하네.]
[님?]
[잠?]
저런 인터넷 용어나 쓰는 레전드 플레이어라니.
믿음이 갈 수 없지 않은가?
‘일단 그냥 내버려두자.’
그래도 만약이란 게 있다.
이들이 정말 레전드 플레이어라면 연결고리를 끊어서 좋을 게 없었다.
“그런데 선배님들.”
[응?]
“제 생활이 방송에 노출된다고 했는데, 방송에서 뭘 해야 되는 겁니까?”
[야구?]
[뭐 그거밖에 할 수 있는 거 없지 않음?]
[그것도 잘 못하는 거 같긴 하던데.]
[ㅇㅈ]
[더럽게 못하더라.]
[나 치과 가야 될 듯.]
[나도 어금니 파열 됨.]
“아나...아무리 그래도 저 프로입니다.”
[프로라고?]
[네가?]
[풉!]
“...물론 반프로이긴 합니다만...”
[반프로는 또 뭔데?]
“그...제가 육성선수입니다. 월급을 받긴 하는데, 아직 정식선수는 아니라서...”
육성선수는 간단히 말해 연습생이다.
과거에는 실제 연습생이나 신고선수라고도 불렸다.
이들은 정식선수가 아니다.
퓨처스리그에는 출전할 수 있지만 1군 엔트리에 들기 위해서는 선수등록을 해야 된다.
하지만 한 구단에서 선수등록이 가능한 인원은 모두 65명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선수등록을 하지 않고 육성선수 신분으로 구단에 등록을 한다.
프로에는 모자라지만 가능성은 있는 선수.
24살 정신우는 딱 그런 선수였다.
[세미프로 같은 건가?]
[그것보다는 루키 수준의 애들 말하는 거 아님?]
[ㅇㅇ 그런 듯.]
[루키 애들이면 별로 재미없겠는데?]
[ㅇㅈ.]
[하긴 낮에 봤을 때도 별로였지.]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 ㅋㅋㅋ]
[너 그래도 반프로라는 애가 공 던지는 게 ㅂㅅ임?]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를 해왔다.
매일매일 공을 던지고 연습했다.
그런데 병신이라니?
“말이 좀 심하십니다...그래도 나름 노력하고 있는데.”
[나름?]
[나아아아아름?]
[ㅋㅋㅋㅋㅋ 올해 들은 개그 중 탑인 듯.]
저들의 채팅을 보고 있자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렇게 엉망인가? 라는 마음이 들었다.
“도대체 어디가 그렇게 엉망인 겁니까?”
[진짜 모름?]
“예.”
[아나...좋아. 그럼 알려줄게.]
[불펜 ㄱㄱ]
* * *
실내연습장은 고요했다.
경기 이후이기에 딱히 연습하는 선수는 보이지 않았다.
신우는 불펜에 섰다.
“던지면 됩니까?”
[ㅇㅇ]
[평소대로 던져보셈.]
고개를 끄덕이고 와인드업을 했다.
신우는 좌완이었다.
거기에 사이드암으로 최고구속은 133km까지 나왔다.
사이드암치고는 나쁘지 않은 속도.
제구력도 큰 문제는 없었다.
가끔 하나씩 빗나갈 때가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구종은 어떻게 할까요?”
[포심.]
“예.”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킥킹을 했다.
그리고 스트라이드와 함께 상체와 팔을 돌리며 공을 뿌렸다.
쐐액-!
파앙!
고무판을 공이 때리며 둔탁한 소리가 났다.
“하나 더 던질까요?”
[ㄴㄴ]
[너 원래 사이드암이냐?]
“예?”
[뭔가 폼이 이상한데.]
[님도 그리 느낌?]
[나도 같은 생각.]
[와인드업할 때, 뭔가 이상함.]
“아니, 그걸 한 번 보고 알아요?”
신우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실 제가 원래는 오버핸드였거든요. 그런데 어깨에 부상이 오는 바람에...”
[부상?]
“예. 슬랩이라고...”
어깨에는 관절와순이라는 조직이 있다.
이 조직을 과도하게 사용하거나 무리한 힘이 지속적으로 가해지면 조직이 손상을 입는다.
이것을 슬랩이라고 한다.
[슬랩이라면 재활하면 되지 않음?]
[수술도 가능할 텐데.]
“처음에는 재활을 택했습니다. 당시 이제 막 주목을 받고 있던 시점이었고, 수술을 택하면 프로지명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프로지명을 1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수술을 하게 될 경우 재활에만 1년이 걸리기에 비수술적치료를 택했다.
하지만 그것이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이후 증상이 더 심해졌고 결국 구속의 저하까지 이어졌습니다. 프로지명까지 물 건너간 상황에서 프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희소성이라도 높여야 했습니다.”
[그게 사이드암이었다?]
“예. 좌완 사이드암은 프로에서도 희소성이 있었으니까요.”
[즉, 원래부터는 사이드암이 아니었다는 거네.]
[그래서 폼이 이상했네.]
[무게이동도 이상했고.]
[하체 쓰는 것도 엉망이었지.]
[상하체가 같이 도는 것도 문제고.]
[릴리스 포인트도 개판임.]
연속으로 들어오는 팩폭에 할 말을 잃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문제가 많았을 줄이야.
[그런데 코치는 왜 이런 걸 안 잡아줌?]
“원래 같이 폼을 수정해주던 코치님이 계시는데, 작년 말에 그만두셨거든요. 그 뒤로 오신 분이 계시긴 한데...”
[즉, 상황이 복잡했다?]
“예...”
투구폼의 변경은 투수에게 꽤 어려운 일이다.
쓰리쿼터로만 던지던 신우에게 있어 사이드암으로의 변경은 무척이나 고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사이드암으로 바꾼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프로에서 뛰겠다는 열망.
다른 하나는 당시 코치였던 이진철이 현역시절 사이드암으로 프로에서 한획을 그었던 인물이란 점이었다.
그에게 지도를 받으면 사이드암에 적응할 수 있을 거라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다.
점점 사이드암에 익숙해졌고 공을 던지는 것에 다시 재미를 들리고 있을 때였다.
이진철이 해고되었다.
내부적인 일이야 자세히 모르지만 이진철 코치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구단을 떠났다.
[한수 가르쳐드릴?]
“예?”
[너 계속 2군에 있으면 우리가 심심함]
[ㅇㅇ 메이저도 아니고 케비오면 최소 1군은 가야지.]
[그래야 좀 볼만해짐.]
[ㅇㅈ]
“선배님들이 절 가르쳐주신다고요?”
[ㅇㅇ]
[고?]
전설의 플레이어들.
과거의 선수들이지만 이들에게 배울 수 있다면 큰 이득이 될 것 같았다.
“고!!”
전설의 플레이어들에게 야구를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이 됐다.
“아, 정신우씨. 여기 계셨네.”
그때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프런트 직원으로 보이는 이가 서있었다.
“잠깐 좀 볼까요?”
“아, 예.”
갑자기 왜 부르는 것일까?
뭔가 좀 불안했다.
[그의 불안은 곧 현실이 되었다.]
“이상한 나레이션 좀 하지 말아줄래요.”
“예?”
“아...아닙니다!”
[ㅋㅋㅋㅋㅋㅋ]
혼잣말 하는 것 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정신우씨, 이번주까지 짐 빼주세요.”
“예?”
“방출입니다. 월급은 10월까지 정상적으로 들어갈 겁니다. 월급날에 확인하시면 되고요. 짐 옮기실 때, 필요하시면 이쪽으로 연락하시면 저렴한 가격에 이사를 도와줄 겁니다.”
“저...저기, 잠깐만요. 방출이라고요? 아직 8월인데요?”
통상적으로 방출통보는 비시즌에 이루어진다.
퓨처스리그의 시즌종료는 9월 중순이다.
즉, 아직 한 달이란 시간이 남아 있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벌써 방출통보라니?
“뭐, 그만큼 필요없다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숨이 턱 막혔다.
설마 면전에 대고 저런 말을 할 줄이야.
[저런 싸가지 없는!]
[헐-!]
[말세다, 말세여!]
그들도 한 마디씩 더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최소한 9월까지만 기회를 주십시오. 그럼 꼭 변한 모습을...!”
“필요 없습니다. 이미 결정은 났고요. 주중으로 짐은 모두 빼주시길 바랍니다. 더 이상 연습장도 사용하시면 안 되고요. 원정경기에도 따라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방적 통보.
육성선수인 신우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