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2화 (102/120)

제102화

“잘 챙겼어?”

“네, 아직 의식은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로이드를 데려왔으니 이제 집 안으로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빗속을 헤치고 마차가 들어서자 집사가 화들짝 놀라 저택에서 나왔다.

“어, 어!”

마차에서 내리는 우리의 모습을 본 집사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비로이드 님!”

헐레벌떡 뛰어온 집사는 헤센이 들쳐 메고 있던 비로이드를 건네받았다.

“비가 오는데 바닥에 쓰러져 있어서 구해 왔네.”

“세상에…… 이게 무슨.”

“습격을 당한 모양이야. 워낙 요즘 흉흉하니까.”

나는 부러 비를 좀 맞았다.

자기 주인을 구해 준 사람이 비에 맞아서 서 있는데 몸이라도 녹이고 가라고 하는 게 도리지.

그냥 가라고 한다면 나중에 이 빚을 어떻게 갚겠어?

“아가씨 몸이 많이 찹니다.”

헤센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살폈다.

“역시 그냥 두고 저택으로 돌아갔어야 합니다. 안 그래도 몸이 안 좋으신 분인데…….”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집사를 보았다.

“감기 좀 걸린다고 죽기야 하겠어? 괜찮아.”

“아…… 그, 그럼. 잠시 들어오십시오.”

“정말 그래도 되겠나?”

“네, 주인님께서도 감사하실 겁니다.”

집사의 말에 나는 인자하게 웃어 보였다.

다행히 상황극이 효과적으로 먹힌 것 같다.

철옹성 같던 두 번째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루비온 가문의 보석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물기는 이걸로 닦으시면 됩니다. 몸을 녹일 차를 준비해 오겠습니다.”

“고맙네.”

내부를 살펴보니 정말로 안 보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돈이 정말 많은 작자인가 봐.’

내가 알 정도로 고위 귀족도 아니면서도 이 정도 부를 누릴 정도라면 말 다한 거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곤 손님이 머물 수 있는 방으로 향했다.

폭신한 침대와 아기자기한 소파, 그리고 벽지와 모든 소품들이 취향에 맞았다. 꽤나 고아한 취향이었다.

“헤센 경. 어떤 것 같아?”

“생각 이상입니다. 이 정도면 두 배의 값을 쳐도 가치가 있겠군요.”

“그렇지? 그런데 두 배로 사진 않을 거야. 나는 생명의 은인이잖아.”

헤센은 내 뻔뻔함에 혀를 내둘렀다.

“아가씨는 정말.”

“뛰어난 수완가라고 해 둬.”

“……네.”

“그나저나 이 정도 재산을 가지고 있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

벨루아 정보상에서도 모르는 재산이라. 이상했다.

나는 턱을 쓸며 주변을 살폈다.

“이거 견적 좀 내 봐.”

“어떤 거 말입니까?”

“이 집 안에 있는 모든 것.”

“……돌아다니란 건가요?”

당연한 걸 묻잖아.

이렇게 들어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지.

“뭐 해? 안 움직이고.”

“……정말 아가씨는 저를 너무 막 대합니다.”

나는 방긋 웃어 보였다.

헤센은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럼 여기서 쉬고 계십시오.”

“그래그래, 다녀와.”

나는 손을 휙휙 저으며 헤센을 내보냈다.

발걸음이 조금 멀어졌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흐음, 이 방에는 뭐 없겠지.”

비로이드는 뭘 알고 있길래 그 보석을 사려 한 걸까.

게다가 갑작스레 야반도주하는 것처럼 집을 내놓는 것도 이상하긴 했다.

시기가 공교롭게도 보석이 경매에 나왔을 때니 더욱 수상하고.

“뭔가 연결점이 있을 텐데.”

소설 속 내용을 끄집어낼 때가 된 것 같다.

물론 이미 스토리가 바뀌긴 했지만, 골격은 똑같겠지.

일단은 루비온 가문의 보석을 얻게 되면 저주를 풀 방법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게 정말로 존재할 줄은 몰랐지…….

알았다면 진즉에 그걸 찾아다녔을 텐데.

여주를 만나 저주에 풀리는 결말만 알고 있어서 그걸 잊고 있었다.

소설 내에도 나오지 않는 부분인데.

‘혹시 리온도 저주를 풀기 위해서 루비온 가문의 단서를 쫓은 건가?’

그렇다면 이야기가 얼추 들어맞았다.

초대장이 필요했으니 급히 누군가를 타깃으로 삼았을 터.

그게 하필이면 비로이드였고.

“여길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야겠어.”

짐을 뺄 때 사람을 시켜 지켜보게 할 생각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리온이 오면 딱이긴 한데.

경매 물품을 낙찰받기 위해 주인과 만나고 있을 테니 시간이 꽤 걸릴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시간을 끌어야겠네.

일단은 헤센이 밖을 나갔으니 다른 일을 벌여야지.

일단은 급히 세면대로 가서 얼굴에 식은땀처럼 물을 묻혔다. 그러곤 입술에 칠해진 색을 지웠다.

거울을 보니 꽤 아픈 사람처럼 보였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나는 소파에 쓰러지듯 누워 앓는 소리를 냈다.

헤센 경이 곧 돌아올 테니 나를 발견하겠지.

“아가씨!”

때마침 헤센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화들짝 놀란 목소리와 함께 그가 내게 다가와 나를 들쳐 멨다.

“아가씨 열이…… 어?”

“쉿, 조용히 해. 시간 끌어야 하니까.”

“다음에는 미리 상의 좀 하면 안 됩니까?”

“그럴 상황이 아니었잖아.”

나는 눈을 감은 채 복화술을 했다.

“빨리 사람이나 불러와. 리온이 여기 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하니까.”

“……리온 님이 여기에 오십니까?”

“응, 올 거야.”

말을 하진 않았지만 우린 통하는 게 있었으니까.

문양 따위 말고 그보다 더 결속력이 강한 무언가 말이다.

“알겠습니다.”

헤센은 다시금 밖으로 나갔다. 집사를 불러 내 상태를 말하자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은 의사를 요청하겠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아 빨리 올지는 모르겠습니다.”

문틈 사이로 집사의 얼굴이 보였다.

여기서 만약 귀족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꽤나 곤혹일 터.

“일단은 몸이 괜찮아질 때까지 이곳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집을 파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예…… 그건 그렇습니다.”

“주인의 몸도 좋지 않은 것 같은데. 계약할 의사가 있으니 깨어나거든 알리세요.”

“알겠습니다. 조금씩 정신이 드시는 것 같으니 곧바로 전하겠습니다.”

나는 두 사람의 대화에 안도했다.

자, 그럼 이제 리온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겠네.

조금 더 아픈 척 늘어져 볼까나.

나는 소파에 축 늘어진 채 쌕쌕거렸다.

* * *

리온은 술집 안쪽에 준비된 방으로 들어갔다.

“이게 정말로 팔릴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저주를 건 매개체나 마찬가지인지라.”

“……값어치를 알아본 것뿐입니다.”

“역시 비로이드 님께서 보낸 사람은 다르군요!”

리온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자 역시 살 생각을 없었을 테니까.

삼천만 골드라면 웬만한 귀족들도 선뜻 내기 힘든 돈이었다.

그 가격에 팔았으니 기분이 좋을 테지.

역시나 진행자의 입꼬리가 내려가질 않았다.

루비온 가문에서 내려오는 보석이라니, 다들 호기심을 가졌을 것이다.

어쩌면 진행자는 팔 생각이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입소문을 타고 더 많은 사람들이 경매에 몰리기 바랐을지도.

“보관하는 방법도 알려 드리겠습니다. 아마도 비로이드 님께서 굉장히 좋아하실 겁니다.”

리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보다 루비온의 보석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별말 없이 재잘거리는 진행자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

“저주가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뭐 찝찝한 건 마찬가지이니 조심하세요.”

“그 저주가 뭔지도 아십니까?”

리온은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여 턱을 괬다.

“그럼요,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로 인해 멸문했는데.”

진행자는 고개를 저었다.

떠올리자 끔찍한지 손사래를 치며 얼굴을 구겼다.

“붉은 눈을 가진 아이가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전원을 죽였던 사건.”

감정 하나 묻어 나오지 않는 음성에 흠칫 몸이 떨렸다.

진행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띄웠다.

“역시 아실 줄 알았습니다! 마지막 남은 핏줄이었을 텐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마치 괴담 같죠?”

“괴담이라…….”

자신의 아픔을 가십처럼 이야기하는 이를 보자 가슴이 아려 왔다.

‘그만 가 봐야겠네. 시간도 꽤 지났고.’

리온은 놀아나 주는 것이 슬슬 지겨워지려 했다.

제대로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세간에 퍼진 내용만 알고 있었다.

이자에게서 알아낼 만한 정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돈은 청구하면 됩니다. 거래가 끝나면 바로 오라고 하셔서 이만.”

보석이 담긴 상자를 들고 일어났다.

“좋은 거래 감사합니다. 아시겠지만 비밀 유지 각서를 쓰셔야 나가실 수 있습니다.”

진행자는 능글맞게 웃으며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리온은 고개를 숙이고 그와 눈을 맞췄다.

그 순간 흑색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어 갔다.

“그럼 이만 가도록 하지.”

“네, 네. 들어가십시오.”

“그보다 이 보석은 어떻게 얻었지?”

“저도 모릅니다.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고 팔아 달라는 것만…….”

진행자는 홀린 듯 말을 뱉어 냈다.

그 말을 들은 리온은 더는 말을 잇고 싶지 않았다.

이미 사고를 쳤기 때문에 또다시 일을 벌인다면 엘르에게 혼이 날 터.

어쩌면 괴물이 되어 간다고 밀어낼지도 모른다.

그래서 리온은 얌전히 진행자를 재웠다.

“……이걸 손에 넣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쩐지 감회가 남달랐다. 리온은 고개를 들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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