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8화 (98/120)

제98화

“이게 다라고 했던가?”

“갑자기 이 가문은 왜…….”

“알아볼 게 있어서.”

리온은 서류를 뒤적이며 미간을 좁혔다.

손가락을 꾹 눈썹을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다간 아무것도 찾지 못하겠군.’

리온은 머리가 복잡했다.

저주받은 아이. 가문을 멸한 제가 실종된 지도 오래되었다.

누군가는 저를 쫓고 있을 게 분명했다.

다행히 엘르에게 발견되어 붉은 눈을 가리고 살아가고 있지만.

“은밀하게 알아봐.”

“그러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요즘 왜 이렇게 바쁘십니까?”

카벤은 볼멘소리를 하며 입을 쭉 내밀었다.

“왜 마탑주가 된 겁니까?”

“이유가 필요하나? 내가 돼서 편한 건 너인 것 같은데.”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리온이 마탑주가 된 이후 마법사들은 좀 더 자유로워졌다.

황실을 무시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게 큰 원인이었지만.

그냥 리온은 다른 것들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카벤은 그런 리온이 익숙해지긴 했지만, 다른 곳에서 떠드는 일은 별개의 일이다.

“그래도 조심하십시오. 주변에서 말들이 많습니다.“

“마음대로 떠들라지.”

리온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서류를 뒤적였다.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와서 불평해.”

“……거참 너무하시네. 이게 제 일입니까? 예?”

“네 일이 될 수도 있지. 이게 해결이 되어야 내가 마탑에 붙어 있을 거니까.”

“아! 쓸모 있는 정보가 하나 있긴 합니다!”

리온이 고개를 치켜들고 카벤을 빤히 보았다.

“그 시내에 술집 하나가 있는데 루비온 가문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고 합니다.”

“술집에서?”

“네, 은밀하게 보석을 거래하는 것 같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카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저를 노려보는 리온의 눈빛이 느슨해졌다.

“그보다 황실에서 자꾸만 연락이 오는데 이거 그냥 둬도 되는 겁니까?”

“무시해.”

“……정말 괜찮은 건지.”

카벤은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황실이 마탑을 건드리진 못하고 있지만 이대로 가다간…….

“걱정할 거 없어.”

리온의 그 말 한마디에 안심이 되었다.

“네, 아무렴요.”

카벤은 활짝 웃으며 방을 빠져나갔다.

홀로 방에 남겨진 리온은 서랍을 열어 종이 하나를 꺼냈다.

루비온 가문.

자신에게 저주를 내린, 지우고 싶은 과거이자 치부였다.

신이 사랑했던 남자는 붉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눈동자의 아름다움을 탐했던 인간들은 그를 붙잡아 눈을 파내 손에 넣었다.

그것이 바로 루비온 가문의 숨겨진 악행이었다.

그들은 힘과 아름다움을 손에 넣었지만, 신의 분노를 사 두 눈이 멀었다.

가족조차 구별할 수 없게 되는 저주.

그는 그런 가문의 사생아였고, 힘이 발현하기 전에 죽이려 했던 것이다.

리온은 두려움에 힘을 각성했고, 이내 가족을 알아보지 못해 죽이고 말았다.

“루비온 가문이 살아 있다라.”

그건 나를 말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다른 가족이 살아서 있다는 걸까.

혹시라도 자신의 힘에 대한 이야기가 새어 나갔다면, 그 힘의 소유자가 루비온 가문의 핏줄이란 소문이 돌 법도 했다.

사실 들킬 만한 일들은 많이 있었다. 너무나 쉽게 종식된 전쟁, 그리고 하루 만에 손에 넣은 마탑.

죽이지 않고 살려 보낸 전 마탑주의 입을 통해 자신의 소문이 흘러나왔을 수도 있었다.

그놈을 찾아서……,

잔인한 생각을 이어 나가던 리온은 자신의 문양을 바라보았다.

“이것만 아니었어도…….”

제니스 황녀는 무슨 생각으로 자꾸만 걸리적거리는 건지.

“내일 오라고 했었지.”

지금 보고 싶은데.

당장이라도 달려가 엘르의 얼굴을 보고 끌어안고 싶었다.

일단은 직접 나서서 소문에 대해 조사해 보는 것이 우선이겠지.

카벤을 보아하니 제가 원하는 것을 알아 오긴 어려워 보였다.

몸도 찌뿌둥한데 직접 나서볼까.

리온은 기지개를 켜곤 창밖을 보았다.

“변덕스러운 날씨네.”

비바람과 함께 천둥 번개가 쳤다.

움직이기 좋은 날이었다.

* * *

“엘르 영애도 왔군요.”

“네, 제가 빠져서야 되겠어요?”

나는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여기까지 오게 해서 죄송해요. 이제 몸이 좀 좋아지긴 했는데…….”

“그런 것 같군.”

델테르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나쁘지 않았다.

“며칠 뒤에 황제 폐하께 갈 생각입니다.”

“그래, 이쯤 되었으면 꽤 많이 미뤘지. 몸도 괜찮아 보이고.”

“배려해 주신 덕분이랍니다.”

델테르의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황후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지?

나는 고민하다 입을 달싹였다.

“황제 폐하께선 다른 말은 없으셨습니까?”

그러나 내 입을 가로막은 아버지로 인해 나는 입을 닫았다.

“없으셨습니다. 다만 다음 주 연회가 열릴 겁니다.”

연회란 말에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연회요?”

갑자기 웬 연회야. 나는 연회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사교계에 진출해도 딱히 좋은 교우 관계를 기대할 수도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내가 죽는 장소가 연회장이다 보니 떨떠름했다.

“왠지 자주 여는 것 같네요.”

“수도에는 연회가 잦지. 변방에 있어서 잘 모르나 보군.”

“……네, 뭐.”

말하는 거 봐.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오늘은 웬일로 혼자 오셨는지. 황녀님과 왔다면 엘르와 함께 이야기라도 나눴을 텐데요.”

“뭐, 언제부터 둘이서 친구였다고 둘이서 차를 마시기까지.”

최근에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아니면 제니스와 싸웠나?

왜 저렇게 날을 세워.

나는 콧방귀를 끼며 고개를 저었다.

“황녀님과 제가 친구가 되긴 어렵죠. 라이벌이라면 모를까.”

“……라이벌?”

“전하께선 아시려나.”

모르고 있으니 태평하겠지. 우리 가문에 와서 신경을 긁을 시간에 제니스나 감시하라고!

“뭘 말이지?”

“그런 게 있어요. 그냥 알려 주기엔 정보 값이 꽤 나가서요.”

흥.

내가 말해 주나 봐라.

어차피 곧 있으면 내가 먼저 선수를 칠 생각이었다. 그러니 제니스가 바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터.

에드가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나는 이미 결정했다.

“그럼, 쉬다 가세요.”

“조금 더 있다 가지 그래.”

“두 분이서 긴히 할 이야기가 있지 않나 싶어 자리를 피해 드리려고요.”

“……알았다.”

에드가는 더는 잡지 않았다. 델테르와 함께 있어 봤자 신경전만 더 할 테니 도움도 안 될 테고.

나는 억지로 웃은 뒤 방을 빠져나왔다.

* * *

“갑자기 무슨 변덕이 생긴 거지?”

황제는 황후의 말에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당신이 먼저 벨루아 가문의 복귀를 논할 줄은 몰랐는데.”

“다 예전 일이잖아요. 귀족들이 요즘 많이들 이야기하기도 하고.”

“의외군.”

안 그래도 최근 들어 벨루아 가문이 급부상하고 있어 말이 많았다.

수도로 데려와야 하는 거 아니냐는 귀족들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왔다.

좋지 않은 일로 변방에 가긴 했으나, 그들 역시 알고 있었다.

황실이 자신들의 일을 덮기 위해 내쫓았다는 것을.

“당신이 괜찮을지 모르겠군.”

“뭐, 저야 별일 있겠어요? 저보다는 벨루아 가문이라면 폐하께서 걱정하셔야죠.”

둘은 서로에게 원인이 있다고 탓하고 있었다.

황후는 마음이 급했다.

‘삼일이면 오늘 허가가 나야 서신을 보낼 수 있어.’

그 기간을 어긴다면 엘르는 분명 황제에게 모든 걸 발설할 것이다.

몸도 나았으니 곧 황궁에 올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그럼 허락한 것으로 알아도 될까요?”

“그러도록 하지. 내가 자네의 부탁을 들어줬으니 나도 한 가지 부탁해야겠군.”

“말씀하세요.”

한 번을 넘어가지 않는 노인네였다.

이 와중에 거래를 제안하다니. 분명 제니스에 관한 것이리라.

“곧 연회를 열 생각이네. 황후가 맡아 주었으면 하는데.”

“그거라면 제 전문이니 걱정 마세요.”

황후는 부채로 입을 가리며 눈을 사르륵 접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제게 맡길 리 없다. 분명 숨기는 것이 있을 텐데…….

일단은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연회는 폐하의 마음에 꼭 들 겁니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황후는 뒤돌아 부채를 꽉 쥐었다.

제 손으로 벨루아 가문을 수도로 불러들이는 치욕을 범하게 될 줄이야.

아무래도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될 아이였다.

* * *

“아가씨 서신이 왔어요.”

“서신?”

나는 벌떡 일어나 디리아에게 작은 봉투를 건네받았다.

황실이 문양이 정확히 찍혀 있었다.

“좋아, 수도로 갔으니 하나만 남았네.”

“그게 뭔가요?”

디리아가 호기심에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씩 웃으며 펼쳐 보였다.

“원래 자리로 돌아와도 좋다는 황제의 허가서.”

“네에?”

그녀가 놀라는 것도 이해가 갔다. 나도 정말로 그 기간 안에 해낼 줄은 몰랐으니까.

심지어 황제가 이걸 허가했다고?

‘무슨 생각이지…….’

벨루가 가문이 수도로 가게 되면 곤란해지는 건 황실일 텐데.

나는 웃으며 옷장을 활짝 열었다.

“짐 싸자!”

“네, 아가씨!”

디리아는 시녀들을 불러와 황급히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곳은 별채로 두면 되겠어.

“그런데 백작님은 알고 계시나요?”

“응, 정말로 가게 될 줄은 모르셨겠지만.”

“알릴까요?”

“황태자 전하가 가면 그때 말해 드리자. 일단은 빨리 짐부터 싸는 게 좋겠어.”

디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진두지휘 하에 시녀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자 그럼 나는 집을 알아보러 가 볼까나.”

“혼자 가실 건 아니죠?!”

디리아의 외침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헤센 경이랑 같이 갈 거야. 그러니 걱정 마.”

그제야 안도한 얼굴로 짐 챙기는 것에 열중했다.

나는 곧장 일에 파묻혀 있을 헤센 경을 구하러 방을 나섰다.

간만에 수도에 놀러 가는 기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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