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화
쉬이익-
또다시 화살이 날아왔다.
나는 말에 몸을 밀착하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몸에 보호 장치가 있긴 했지만, 화살을 맞는 건 무서웠다.
“헉, 허억!”
화살과의 추격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제니스는 내가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지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역시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말이라도 제대로 탈 줄 알아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고삐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정해 놓은 곳까지 가려면 조금 더 달려야 했다. 그전에 알아서 포기하고 돌아가면 좋긴 한데.
질문이 머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질수록 숨이 턱턱 막혀 왔다.
“아 진짜! 끈질기네! 거참!”
쉭쉭.
화살이 계속해서 날아와 몸을 바짝 말에 붙이고 앞만 보고 달렸다.
뒤돌아 달리기엔 쫓아오는 놈들이 있고,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가면 그들이 위험해진다.
그래서 어디로 달리고 있냐고?
나도 모른다. 그냥 앞만 보고 달리는 중이다.
“엘르 님!”
드디어 때가 된 모양이다.
파사삭 하는 소리와 함께 천사님이 나타났다. 그토록 찾았던 엘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 진짜 죽는 줄 알았잖아! 말 타고 너무 달려서 엉덩이에 감각이 없어!”
나 뒤지는 줄 알았잖아.
그는 내 쪽으로 말이 달리는 속도에 맞춰서 뛰어왔다.
이래서 사람이 능력이 있어야 하는구나. 저 속도가 가능한 거였다니…….
나는 조금 안심했다.
계획이 틀어진 줄 알고 솔직히 조금 의심했었다. 다행히 제대로 온 모양이다.
“말의 속도를 조금만 늦춰 보십시오. 그럼 제가 어떻게든 올라타겠습니다.”
“그, 그런데 어떻게 해요?”
“왜 그러십니까!”
“말이 멈추질 않아요!”
흥분한 탓인지 제어가 불가능했다. 그야말로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잘못 날뛰면 나는 이 높이에서 떨어져 구르겠지.
운이 안 좋으면 말 뒤꿈치에 차일지도 모른다.
“아악!”
쉭쉭.
또다시 화살이 날아들었다.
“고개 들지 마십시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엘은 그 말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그러거나 말거나 화살은 날아들어 왔고, 심지어 다른 인기척마저도 느껴졌다.
미치겠네!
사람이 자꾸만 어디에서 나오는 거야.
심지어 엘 님도 보이지 않아서 나 혼자 싸우는 기분이 들었다.
하는 수 없이 등에 있는 화살을 꺼내 들고 고삐를 내 몸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러곤 속도를 늦춘 뒤 조준을 해서 내 목을 노리는 이들을 하나둘씩 처리했다.
‘아니, 근데 진짜 센 공작 비겁하네.’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여유롭게 사냥이라도 즐기고 있는 거 아니야?
일단 나는 살아야겠으니 날 노리는 녀석들의 목숨까지 걱정해 줄 아량은 없었다.
“진짜 끝이 없네!”
나는 연신 화살을 당겼다.
등에 화살촉을 꺼내다 보니 어느새 동이 났다.
정해진 구역에 멈춰 서자 동시에 자객들이 나를 둘러쌌다.
“자, 이제 연극은 끝났어.”
숲이 우거진 곳에 완벽히 그들을 가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게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이미 흥분한 말이었다.
계획 따위는 동물에겐 중요치 않았다. 말은 곧장 숲을 헤치고 달려 나갔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어, 어! 안 돼!”
눈앞에 나무가 휘어져 말이 넘지 못할 정도로 커다란 장애물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할 수 있는 온갖 욕을 다하며 소리쳤다.
“아아아악!”
이렇게 죽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여기 와서 사람 성격이 다 망가지는 기분이랄까.
안 그래도 더러운 성격이 아주 박살이 날 지경이다.
* * *
그 순간 내 뒤로 누군가가 가뿐히 안착하는 게 느껴졌다.
“이제 괜찮아.”
목소리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나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뒤를 보았다.
내 허리를 단단히 틀어잡고 고삐를 조종하고 있는 리온이 있었다.
아, 살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나 죽는 줄 알았잖아. 왜 이렇게 늦었어!”
“미안, 미안해.”
리온은 이 상황에서도 차분함을 유지했다.
나는 그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리온의 몸이 엉망이었다.
“몸이 왜 이래?!”
피로 엉망이 된 몰골을 보고서야 나는 기겁하며 그의 몸을 살폈다.
“별거 아니야, 괜찮아.”
그는 황급히 손으로 상처를 쓱 쓸었다. 그와 동시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해졌다.
“……별거 아니긴.”
엄청 아팠겠는데.
나는 울컥 눈물이 흘러나왔다. 오히려 멀쩡한 것은 나였다.
“일단은 다시 정해진 장소로 가자. 엘 님이 처리했을 거야.”
“그래, 그게 낫겠다.”
리온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대체 뭘 하고 왔기에 이 모양인 거야?
자객들은 분명 내게만 왔을 텐데.
“아니 미끼가 된 건 난데. 왜 네가 엉망이야. 어디 봐.”
내 말에 리온은 말없이 웃었다. 뭔가 다른 일이 있었던 모양인데.
“정말 괜찮아.”
“아팠으면서…….”
나는 리온의 핏자국이 있는 곳을 손으로 쓸며 훌쩍였다.
아 진짜 나 민폐야.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니.
물론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어릴 적 그를 구해 준 건 맞긴 했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니 편치 않았다.
“센 공작은 직접 움직이지 않았어. 아무래도 증거를 찾아내려면 좀 걸릴 것 같아.”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자객들을 얼마나 사들인 거야.”
나는 으득 이를 갈았다. 직접 나설 용기도 없으면서 뒤 공작만 하다니.
“리온, 앞으론 나서지 마.”
“네 일에만 나설 거야.”
“리온.”
“네 일이니까 나서는 거야.”
리온은 내 손을 잡으며 싱긋 웃었다.
바보 같이 이 상황에 웃긴 왜 웃어.
“……바보 같아.”
“바보면 뭐 어때.”
리온은 내 몸을 살피더니 다친 곳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했다.
“늦게 와서 미안.”
“……진짜 바보 아냐?!”
나는 괜스레 미안해져 버럭 화를 냈다. 리온은 그런 내 모습에도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 * *
“아가씨!”
나는 달려오는 엘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뭐 알아낸 건 있겠죠?”
“아, 그게. 다 자결을 하는 바람에…… 그보다 괜찮아 보이진 않군요.”
숲에서 굴러서 그런지 온몸이 엉망이었다.
“……안 괜찮아 보이니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복잡하게 되었네.”
리온은 가만히 내 등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조용히 처리하는 게 나을 듯합니다.”
“리온, 오는 길에 황녀 안 마주쳤어?”
나는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거 내가 떨어뜨린 리본인데?
“이거 보고 곧장 따라온 모양이네.”
“아……그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론 그래.”
그는 말을 아꼈다.
뭔가 내게 하지 않는 말이 있는 것 같았는데 캐묻진 않았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엘은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기척이 없는 걸로 봐선 오늘은 이걸로 끝인 듯합니다.”
“뒤처리를 좀 부탁하겠습니다.”
엘은 리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일단 백작님께 따로 보고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타이밍을 노리다 입을 열었다.
“……제니스 황녀도 관련 있는 것 같아.”
아니라곤 못할 거야. 내가 이미 제니스 황녀가 내게 한 말을 알고 있으니까.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확실하진 않아.”
“알아, 그것도 아니면 델테르가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니스거나 델테르거나. 혹은 둘이서 도움을 줬거나.
“저, 이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엘과 함께 있었던 에드가의 그림자가 화살을 가져와 바닥에 내려놓았다.
엘은 고개를 갸웃했다.
“화살을 보니, 황실 쪽은 아닌 것 같긴 합니다.”
그럼 센 공작 혼자 계획한 게 맞구나.
제니스도 관련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리온 역시 조금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눈을 도르륵 굴렸다.
“이대로 포기할까?”
“아니, 그러지 않을 거야. 꽤 조급한 것 같으니까.”
내 목을 노리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착실하게 살아온 죄 밖에 없는데. 변방에 있어서 적을 만들 시간조차 없었거늘!
나는 짐짓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소설임을 깨닫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기분이 들자 울적해졌다.
다시금 몸을 웅크리곤 화살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황실에서 사람을 샀을지도 모르잖아요?”
황제가 내게 사냥 대회에 참석해 달라 한 걸 보면 모르고 있진 않을 텐데.
“그럴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외부의 힘을 끌어들이게 된다면 비밀을 아는 자들이 늘어날 테니 위험을 감수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럼 정말로 제니스가 우승 욕심이 났단 말이야?
어쩌면 그녀는 우승해서 뭔가를 요구하려 했던 걸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뭔가 찝찝한데.
화살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자 날카로운 촉이 반짝였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막상 겪어 보니 여간 살 떨리는 게 아니었다.
저 날카로운 촉이 내 목을 뚫고 지나갔을 걸 생각하니 끔찍했다.
“……아무래도 봐주는 건 여기까지 해야겠네.”
리온은 얼굴이 와락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제니스도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황제가 제니스와 함께 다니라고 했는데, 그녀가 저와 따로 사냥하자고 했거든요.”
뭔가 찝찝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이 정도로 날 없애고 싶어 할 줄은 몰랐다.
하긴, 제니스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방해물일 뿐일 테니까.
사냥을 함께 다녀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나는 그녀와 함께 있는 조건으로 참여했다.
그걸 제니스도 모를 리 없었다.
“우승이 욕심난다고 하긴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우승하긴 힘들었다. 그것도 처음 참여하는 사람이.
“일단 저희들은 돌아가 있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엘르는 제가 데리고 있을 테니.”
“……리온, 나하고 있으면 괜한 오해를 사게 될 거야.”
안 그래도 제니스가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났는데 리온과 함께 있다니. 그걸 알면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리온은 내 손목에 난 상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