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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74/120)

제74화

“……반려가 있는 게 확실합니까?”

“그럼요.”

센 공작은 입을 달싹였다.

놀랄 법도 하지. 내가 느끼는 것을 그도 같이 느끼고 있을 테니까.

“문양을 봐도 될까요?”

“아니요, 함부로 보여 주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건 맞습니다만…… 반려를 만나고도 괜찮은 겁니까?”

“저희는 서로 죽이지 않을 거예요. 많이 사랑하거든요.”

나는 턱을 괴며 해사하게 웃었다.

“사실 이 망토를 쓰는 것도 그를 위해서예요.”

“그게 무슨 말인지.”

“제가 그의 반려인걸 알게 되면 사고로 인해 죽게 되더라도 그가 지목이 될 확률이 크잖아요.”

“……보호하기 위함입니까?”

“그래요, 사랑하니까요.”

나도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내뱉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그럴싸했다.

반려로 각인이 되면 서로에게 미칠 듯이 끌리게 된다. 이성이 남아 있지 않게 될 확률이 높다.

모든 것이 상대를 위해서 돌아가기 때문에 붉은 문양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건 비슷할 터.

센 공작은 고개를 나지막하게 끄덕였다.

“이상하군요. 나는 지금 당신을 보면서 심장이 세차게 뛰고 있어서 말입니다.”

그가 홱 내 손을 낚아채 제 심장에 가져다 댔다.

쿵, 쿵.

정말로 심장이 세차게 뛰고 있었다. 물론, 나 역시도 그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이상하게 저는 엘로체 영애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리 없겠지만.”

당연하겠지. 자백제의 효능은 이미 봤을 테니 의심하기엔 찝찝할 것이다.

나는 싱긋 웃으며 손을 빼어 냈다.

“제게 반했나 보군요. 이를 어쩌나, 안타깝지만 저는 공작님을 보면서 어떠한 반응도 없는걸요.”

“……확실합니까?”

“그럼요. 못 믿겠으면 제 심장 소리라도 들어 보시겠어요?”

나는 가슴을 내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슴이 드러난 넥클라이스 드레스 덕분에 손을 얹기 곤란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더 당당하게 행동했던 것.

역시나 센 공작은 퍽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그대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으니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휴…….

진짜 들어 본다고 했으면 어쩔 뻔했어.

내가 기계도 아니고 세차게 뛰고 있는 심장을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정말 큰일 날 뻔했어.

“그럼, 저는 이만 가 봐도 될까요?”

“아…… 혹 벨루아 가문의 엘르 나타시아 영애를 아십니까.”

“어머, 알다마다요.”

나는 자리에 다시금 앉으며 눈을 반짝였다.

“그분에 대해선 왜 물으시는 건가요? 혹시 반려라도 되시는 건……!”

“아닙니다. 그저 그분의 행방이 묘연하다길래 도움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네가 우리 가문에?

정말 거짓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잘하잖아.

아마도 그는 자백제를 이용해 나를 찾으려 했나 보다.

안타깝지만 나는 다른 이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었다.

영애들을 아무리 닦달하고 자백제를 먹여도 소용없다는 말.

그것도 아니면, 나와 관련이 있는 이들에게 접근해 정보를 캐내려 할지도 모른다.

“상냥하시네요. 부디 엘르 나타시아 영애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저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센 공작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 * *

제니스는 마탑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그를 찾아왔다고 해도 저를 만나 줄 리 만무했기에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황궁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저,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

“헉! 화, 황녀님?”

“리온 님을 만나러 왔어요.”

“마탑주님은 지금은 만나 뵐 수 없습니다.”

마탑주?

제니스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리온이 언제 마탑주가 된 거지?

그의 출중한 능력은 알고 있었으나 이 정도로…….

역시 리온을 잡아야 해.

제니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개인적인 일로 왔으니 안내해 주세요.”

“그게…… 지금은…….”

마법사는 곤란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무슨 일이지?”

“아, 카벤 님. 그게 마탑주님을 찾아오셨는데.”

“……황녀님께서 어쩐 일로 오셨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곤란합니다.”

“왜죠?”

“그걸 저희가 알려 드릴 의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카벤의 말에 제니스는 고개를 떨궜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죠? 저는 알 수 있어요.”

가슴이 아팠다. 이건 리온과 통하고 있었기에 알 수 있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카벤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돌아가 주세요.”

그는 현재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 마나의 폭주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고, 최근 들어 무리한 탓인지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제가 그의 반려예요.”

“……네?”

“리온의 반려가 저이니 들여보내 주세요.”

“죄송합니다.”

그는 제니스를 남겨 둔 채 마탑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카벤은 이미 제니스가 왔다고 리온에게 알렸다.

그러나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절대로 들여보내지 마. 벨루아 가문의 길드로 가 대리자를 불러 줘.”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괜, 찮아 보이나 보군.”

리온은 힘겹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당장 꺼져. 죽고 싶지 않으면.”

안 그래도 넘실거리는 마나에 온몸이 오싹거려 버티기도 힘들었다.

곧장 방으로 나와 제니스에게 의사를 알린 후 포털을 이용해 벨루아 가문으로 향했다.

* * *

“길드 운영을 안 하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헌데 보아하니 마법사 같은데…….”

헤센 경은 갑작스레 대리자를 찾는 이로 인해 잔뜩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는 대체 밖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다니시는 거야.’

안 그래도 오자마자 엘르가 있는 곳으로 갔더니, 엘이 잠들어 있었다.

에드가가 오기 전에 발견해서 다행이지.

헤센은 눈앞에 서 있는 카벤을 보며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급합니다.”

“……누가 찾는 건지 알아도 됩니까?”

“마탑주님께서 찾으십니다.”

“……마탑주가 왜?”

아가씨를 찾을 일이 있나?

그는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접점이 없었다.

“일단, 기다리세요. 아직 오지 않아서.”

“혹 저분이십니까?”

“……휴.”

헤센은 저 뒤를 가리키는 카벤의 손가락에 고개를 돌렸다.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안으로 들어가려던 엘르가 동작을 멈추곤 손을 흔들었다.

“네, 맞습니다.”

“하하, 하하하하…….”

“대리자님, 마탑주께서 급히 찾으십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엘르는 다급히 다가와 카벤의 손을 잡아끌었다.

“빨리 가요.”

“어딜 간다는 거지?”

“……아, 아버…, 아니 백작님.”

셋의 고개가 동시에 에드가에게 향했다.

“나도 같이 가지.”

“……백작님께서도요?”

“그래, 아무래도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거든.”

엘르는 에드가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이젠 더는 숨길 수 없을 것 같다.

“카벤 님, 안내해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 * *

카벤을 따라 마탑에 들어선 엘르는 주먹을 꽉 쥐었다.

‘마나가 폭주하기 시작한 게 틀림없어.’

반려로 각인을 하면서 제니스의 힘을 받아 억눌러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으니까.

머리가 복잡해져 왔다.

아마도 날이 갈수록 리온은 더 고통스러워 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머릿속에는 자꾸만 의문이 맴돌았다.

“괜찮아. 넌 할 수 있을 게다.”

툭 하고 머리 위에 올려진 에드가의 손에 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두 분 잠시 물러서 계세요.”

“……네?”

카벤의 말에 두어 걸음 물러선 지금, 방문이 열림과 동시에 엄청난 양의 마나가 문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꺄악!”

엘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꼴이 말이 아니군.”

에드가는 손을 뻗어 흘러나오는 마력을 흡수했다. 그는 방대한 양의 마나를 빨아들였음에도 끄떡없었다.

크윽.

타격이 없는 건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살기에 온몸이 찢겨 죽었을 것이다.

“우리 걱정은 됐으니 들어가도 되겠는가?”

“네, 네! 물론입니다.”

카벤은 처음 보는 목격에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엘르는 에드가의 힘에 의해 하나도 다치지 않고 방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엘르.”

축 늘어져 힘겹게 호흡을 뱉어내는 리온의 목소리에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엘르는 황급히 리온에게 다가갔다.

“괜찮은 거야?”

“네가, 와서…… 다행이야.”

“뭐가 다행이야.”

이렇게 힘들어하면서. 엘르는 리온의 이마에 손을 댔다.

“세상에, 열이 펄펄 끓어.”

“마나의 저항으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이구나. 아까 본 그 힘은…….”

에드가는 역시 제가 생각했던 것이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 녀석이 그 아이가 맞구나.”

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주를 받은 아이. 붉은 눈동자를 가지고,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

마력을 흡수하고 그걸 내뱉어 내는 괴물.

그게 바로 리온이었다.

에드가는 그제야 엘르가 그를 집에 데려온 이유를 깨달았다.

엘르는 이미 그를 데려올 때부터 그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이든지.

그건 저에게 필요했기 때문일 테고.

“엘르, 이 이야기는 나중에 둘이서 하자. 그리고 넌.”

에드가는 엘르의 품에 있는 리온에게로 다가와 툭툭 발로 찼다.

“누군데, 건방지게 발로…….”

“빚을 갚는 거니 입 닫는 게 좋을 거다.”

그제야 리온은 저를 발로 건드린 사람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갚으라고 베푼 게 아니니 필요 없습니다.”

“아직 덜 아픈 모양이군.”

에드가는 말을 길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여 손날로 뒤통수를 쳐 리온을 기절시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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