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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69/120)

  

제69화

센 공작은 집에 와서도 그 길드원이 잊히지 않았다.

이름도 알려 주지 않은 걸로 봐선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이처럼 보였다.

하긴, 뭐 좋은 길드라고.

“좀 알아봤어?”

“네, 하지만 딱히 수상한 건 없었습니다.”

“엘르 영애는 아직이겠지.”

공작의 말에 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들 그렇게 다들 벨루아 가문의 딸을 찾아 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난 그렇다 쳐도 다른 사람들은 왜 찾는 거지?’

자신은 그녀가 반려라고 의심, 아니 반쯤 확신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이들의 이유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공작님 자백제가 마련되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 정도의 양이 구해진다면, 다 떠봐야겠지.”

저를 숨길 용도로 손목에 액세서리를 착용한 것이었지만,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착용을 하는 바람에 문제가 더러 있었다.

숨은 엘르를 찾기 어려워졌다는 것.

그 누구보다 먼저 찾아야 했다. 혼자 있으면 방해가 덜할 테니까.

실종된 김에 변이라도 당해서 죽었다고 쳐도 이상할 게 없지 않은가.

저 역시 붉은 문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밝힌 적이 없으니 용의 선상에선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반려가 죽게 되면 제 문양 역시 사라지게 된다.

어쩌면 새로운 문양이 나타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녀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했던 것도 잠시, 그녀가 살아 있는 한 찾아내야 했다.

여전히 느껴지는 그녀가 센 공작을 불안하게 했다.

실종된 상태에서 죽었다면 모를까. 사라진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그는 불안했다.

혹시나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건 아닐지.

“엘르를 찾아야 하는데.”

그는 초조했다.

붉은 문양을 가진 제 반려가 저를 죽이기 위해 공작저로 오게 된다면 뭘 해야 할까.

아름다운 적발이 흩날리는 걸 상상하니 제법 어울렸다.

“그냥 어디 가서 죽은 거였으면 좋겠군.”

하지만 그럴 확률은 낮았다. 암만 생각해도 에드가가 숨긴 것 같았다.

“왜 하필 붉은색이 나타나선.”

다행히 액세서리가 나온 후 문양을 가릴 수 있게 되어 좋긴 했지만…….

이젠 저를 죽이러 올 이가 더 늘어났으니 신경 쓸 것이 두 배였다.

에드가 역시 제가 엘르의 반려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저를 가만히 두지 않을 터.

“하, 그나저나 이 상처는 기분 나쁘게 사라지질 않네.”

왜 생겼는지 모를 다른 팔에 똑같이 그려진 문양에 소름이 돋았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그날 이후 센 공작의 저택에는 경비 병력도 두 배가 늘었다.

그는 불안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붉은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같은 문양을 가진 게 중요했다. 색은 일치할 수 있지만 문양은 단 한 쌍만 존재한다.

센 공작은 제 문양을 빤히 보았다. 서서히 선명해진 문양은 어느새 형체가 완연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마름모 모양이 선명하게 보이게 되면 힘이 발동하게 될 것이다.

엘르의 손목에 있는 문양만 확인만 할 수 있다면…….

“그 전에 찾아내서 죽여야 하는데.”

그런데 그 대리자였던가. 왜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걸까.

마치 엘르를 보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 나도 정말 미쳐 가는 게 분명하군.”

실종되었다고 제국이 난리가 난 상황에 길드에서 활동하기는 어려울 터.

망토로 얼굴을 가리긴 했지만, 적발은 아니었다. 푸른 눈동자도 아닌 것 같았고.

“좀 쉬어야겠군.”

센 공작은 아릿해져 오는 가슴을 손으로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 * *

그런데 그 다른 팔에 있던 흉터는 뭐지?

센 공작을 한참이나 생각하던 나는 그의 팔에 있던 상처가 떠올랐다. 문양 모양 같기도 했는데…….

“문양의 부작용으로 미치는 것도 있는 건가?”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저었다.

붉은 문양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으아, 미치는 건 곤란한데.

그건 죽어도 싫었다. 사람이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도 이렇게 힘든데, 아니지 미쳐 버리면 좀 나으려나.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많이 지치긴 한 모양이다.

나는 축 늘어진 채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똑똑똑.

나를 찾는 이가 없는 은밀한 공간이었기에 방문하는 이가 누구일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들자, 에드가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침음했다.

“상태를 보니 괜찮지 않은 것 같고.”

“오셨어요?”

그래도 아버지가 오자 한결 마음이 놓였다.

‘방안을 강구해 봐야지.’

사실 복잡하게 생각해 봤자, 해결 방안이 있는 건 아니긴 했다.

에드가는 내게 성큼 다가와 나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러곤 얼굴부터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그자는 만나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렇다고 거물을 놓칠 순 없잖아요? 변장해서 알아보지도 못했는걸요.”

“다친 곳은 없는 것 같군.”

에드가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나를 의자에 앉혔다.

그러나 여전히 표정은 좋지 않았다. 제 말을 듣지 않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반려를 찾았다고 들었다.”

“네, 찾은 것 같아요. 심증이긴 하지만…….”

나는 머뭇거리며 말을 하지 못하고 손을 꼼지락거렸다.

‘이거 진짜 말해도 괜찮을까.’

그의 두 눈에 서린 불안감과 함께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센 공작인 것 같아요.”

순간 아버지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멍한 눈동자와 함께 가만히 내 손목을 응시했다.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과 함께 그의 손이 잘게 떨려왔다.

“……아직 완벽하게 선명하지 않아서 확실하진 않아요.”

나는 힐끔 에드가의 눈치를 살폈다. 액세서리를 벗자 문양이 저번보다 선명해져 있었다.

“마름모 모양이라…… 이걸 아는 사람이 또 누가 있지?”

에드가는 눈썹을 긁어 올렸다.

“모양이 이렇게 선명해진 건 아버지가 처음 본 거예요. 리온은 그날 이후 보지 못했어요.”

죄송해요, 아버지.

사실 만나긴 했지만 말했다간 난리가 날 것이다.

숨어 있으라 했는데 밖에 나가서 사고까지 쳤으니 오죽하겠는가.

그러고 보니 그날 이후 리온을 보지 못하긴 했다.

‘……에이, 설마.’

갑자기 센 공작의 다른 팔에 있었던 상처가 떠올랐다. 그 정도로 흉이 남을 거라면 꽤 깊게…….

나도 참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센 공작의 손목에 있는 문양은 보지 못했나?”

“네, 액세서리로 꽁꽁 감싸고 있어서 못 봤어요.”

“그런데 어떻게 알고.”

“오늘 의뢰를 하러 왔었어요. 그리고 그를 마주하자 몸이 이상하게…….”

아버지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더더욱 밖에 나가지 말아야겠네.”

“……그, 그렇겠죠?”

나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아버지를 보니 그를 죽일 생각은 아닌 듯했다.

‘그런데 반대로 그가 날 죽이려 한다면?’

생각만 해도 오싹했다.

내가 실종이 된 상태니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지금쯤 그의 손에 목이 댕강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다가 내 신세가 이렇게 된 걸까.

나는 우울해져 침대에 기댄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가 의뢰한 건 뭐지?”

“아, 자백제를 많이 구해 달라고 했어요.”

“자백제?”

“둘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자신의 반려를 찾기 위해 모두에게 먹여 볼 생각이거나, 실종된 저를 찾기 위함이거나.”

“……센 공작과 의뢰를 진행했으니 그 역시 너와 비슷한 걸 느꼈겠지.”

“네, 그래서 두 가지로 추려 본 거예요.”

나 같아도 반려를 찾기 위해 그처럼 모든 걸 다 동원했을 것이다.

“황실에 가신 일은 잘 해결되었어요?”

에드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많아진 건지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걱정 마세요. 별일 없을 거예요.”

“그래, 네가 나 몰래 어디 나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진짜 얌전히 있을게요. 불안하시면 그림자를 붙이시면 되잖아요.”

“안 그래도 그렇게 해 뒀으니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에드가는 내 머리에 손을 얹고는 몇 번 툭툭 쓰다듬었다. 그러곤 문 쪽으로 향했다.

“너는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러니 편히 자거라.”

“……네?”

웬일로 따뜻한 말도 해 주고. 요즘 들어 에드가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리온 그 녀석은 찾았나?”

에드가의 손짓에 엘이 나타났다. 이리저리 찾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지만 머리털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 오면 꼭 말하고. 당분간 센 공작을 잘 주시하도록 해.”

“존명.”

엘이 사라지자 에드가는 하늘을 보았다.

이상하게 정말 정이라도 든 건지 잠잠한 게 마음에 걸렸다.

마탑에서 이름도 꽤나 날리는 놈이 아직도 엘르를 찾지 못했다라…….

이거 은폐를 잘하고 있어서 좋아해야 하나.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쩐지 리온이 나타나면 이상하게 반가울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 역시 엘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놈이었으므로.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들긴 했다. 하지만, 저처럼 앞뒤 분간 없이 달려드는 놈이었기에 제어가 안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 새끼는 거두는 게 아닌데.”

은혜를 갚지 않을 거면 부려 먹기라도 할걸.

에드가는 엘르가 있는 곳을 한 번 쳐다보곤 저택으로 향했다.

저 역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으므로 시간을 헛으로 보낼 순 없었다.

‘나타나면 그땐 정말 엉덩이라도 걷어차 줘야겠군.’

건방진 놈이 비싸게 굴기까지 하니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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