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딸랑-
베르뎅 쥬얼리 숍에는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드나들었다.
‘흐음, 역시 미리 일러두길 잘했어.’
주변의 상황이 궁금했던 터라 몰래 나와서 봤더니 문전성시였다.
나는 제법 흡족한 얼굴로 쥬얼리 숍을 보다가 몸을 돌렸다.
숨어 지내라곤 했지만, 나인 걸 들키지만 않으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그 안에서만 있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힐끔 액세서리로 가려진 손목을 보니 저번보다 확연히 선명해진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아…….”
머리 색과도 같은 붉은 색이 더욱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끊임없이 자라나는 기생충 같았다.
마치 제 존재를 보이고자 하는 것처럼.
나는 애써 시선을 외면하곤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눈에 들어온 신문이 발걸음을 사로잡았다.
“신문 하나 주세요.”
목소리를 최대한 깔고는 신문 하나를 구입해 읽어 내려갔다.
[벨루아 가문의 엘르 나타시아. 현재 실종, 황실과 모든 곳에서 수색을 나섰다.]
황실에서 수색이라…….
이거 아무래도 내 목을 노리는 것 같은데?
나는 서늘한 느낌에 목을 매만졌다. 어쩐지 확인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실종이라니, 에드가 백작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네요.”
“그러게요……. 황실에서도 같이 수색을 할 줄은 몰랐는데. 둘 사이는 원수지간이지 않나요?”
“흐음, 요즘 들어 흉흉한 일이 많은 것 같아요. 문양 사냥꾼도 그렇고, 실종자들도 늘어나고.”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에 나는 망토를 더욱 깊게 눌러썼다.
변장을 한 터라 들킬 일은 없었지만, 괜스레 겁이 났다.
순간 황실 경비들의 모습이 보였다. 수색을 한다는 게 거짓이 아니었는지 행인들을 검문하고 있었다.
수상해 보이는…….
“와, 나 지금 진짜 수상해 보여.”
그 생각을 끝낸 나는 곧바로 뒤돌아 빠르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봐, 거기.”
나는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렇게 생각을 하며 좀 더 빠르게 앞만 보고 전진했다.
“거기 망토 뒤집어쓴 너 말이야.”
“…….”
우뚝 잠시 발걸음을 멈춘 나는 힐끔 그들을 보며 나를 가리켰다.
“그래, 수상해 보이는 너 말이다. 잠시 검문에 응해 줘야겠어.”
망토를 써서 그런지 귀족처럼은 안 보인 모양이다.
하긴 살짝 허름한 천을 두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곧바로 하대할 줄은 몰랐는데.
경비들은 멈춰 선 내게로 재빠르게 걸어왔다.
그들을 잠시 멍하니 보던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곤 치마를 움켜쥐었다.
“후우, 나 맞구나.”
제기랄.
그냥 얌전히 돌아다니지 말고 있을걸.
변장을 했으니, 바로 정체가 탄로 나진 않겠지만. 이렇게 수상해 보이는 자를 아무 질문도 없이 보내진 않겠지.
분명 막히는 구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잡히지 않고 죽어라 뛰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저 수상한 사람 아닙니다!”
라는 말을 남기곤 미친 듯이 전력 질주를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저 미친 사람들 왜 이렇게 빠른 거야?
“자, 잡아라! 저 망토 쓴 여자를 잡아!”
또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나를 따라오는 것이 경비뿐만이 아닌 느낌이란 말이지.
“따, 따라오지 마세요!”
“거기 서라! 수상한 사람!”
“아니라니까요!”
아 정말 미치겠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온 힘을 다해 뛰었다.
“악!”
훽 하고 누군가 낚아채는 느낌에 이제 죽었다고 생각하며 몸을 잔뜩 움츠렸다.
“사, 살려 주세요.”
“……엘르?”
이 목소리는.
스르륵 눈을 떠서 보니 리온이 나를 품에 안은 채 날고 있었다.
……날고 있어?
“으아아아!”
“쉿, 남들이 들으면 곤란해.”
“리온이 여기 왜 있어? 아니 그보다 나인 걸 어떻게 안 거야?”
“수상한 사람이 쫓기고 있어서 도와주려 한 건데 도와주고 보니 너였어.”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나는 토끼 눈이 된 채 입을 뻐끔거리며 리온을 보았다.
“곤란한 상황인 것 같아서, 아니야?”
“그건 맞는데…….”
리온에게 들켜도 곤란한 건 매한가지이지 않나?
“리온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은-”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지금은 좀 급해서.”
“헙!”
리온은 나를 거뜬하게 한 팔로 안아 들고는 좀 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넓은 품에 안긴 채 뒤를 보니 검은 복면을 쓴 이들이 무서운 속도로 따라오고 있었다.
* * *
“어떻게 된 건지 말해.”
“그게……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가씨가 사라져 있습니다.”
“미치겠군.”
에드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겉옷을 입었다.
“백작님! 여기 급한 서신이 왔습니다.”
“……서신?”
에드가는 미간을 좁히곤 황실 인장이 박힌 서신을 받아들였다.
천천히 열자 낯선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천천히 글을 읽어 내려가더니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아 내려 노력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남아 있던 이성의 끈은 결국 뚝 하고 끊어졌다.
“당장 그림자 풀어.”
“하지만…….”
“내 딸이 죽은 뒤에도 그런 말이 나올지 궁금한데.”
에드가의 말에 기사의 입이 굳게 다물렸다.
헤센 경은 손을 들어 그림자를 불러냈다. 그러자 붉은 안대로 눈을 가린 그림자들이 나타나 고개를 숙였다.
“지금 당장 엘르의 신변을 보호해. 상대는 델테르 카베제르의 기사들이다.”
“존명.”
“내 딸을 위협하는 놈들은 죽여도 상관없다.”
그림자들은 가슴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끄덕이곤 사라졌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죽이는 건…….”
헤센 경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 화난 마음을 알겠지만, 황실의 기사를 건드리는 것은 좋지 않았다.
“어차피 죽여도 이름 하나 남지 않을 놈들일 테니 상관없어.”
“뭐, 그건 그렇지만.”
그들 역시 숨어서 움직이는 존재들이었으니 알려진 이들은 없을 것이다.
“우린 황실로 이동한다.”
“예? 지금 말입니까?”
“그래, 초대를 받았으니 응해야겠지.”
에드가는 헤센 경에게 제가 받은 서신을 보여 주었다.
[에드가 드 벨루아 백작님.
지금 보내는 서신은 한 장은 읽는 즉시 태워 버리셨으면 합니다.
현재 델테르 카베제르 황태자가 엘르 나타시아 영애를 찾고 있습니다. 그녀의 목숨이 위급하니 급히 서신을 보냅니다.]
[에드가 드 벨루아 백작님.
지난 번 초대가 너무도 감사하여 보답을 위해 차 한 잔 대접하고자 합니다.
오늘 낮 시간이 되신다면 제 별궁으로 오시면 기쁘게 맞이하겠습니다.]
헤센 경을 두 장의 서신을 읽고는 곧장 활활 타오르는 초에 첫 장을 태워 버렸다.
“제니스 황녀가 저희를 도울 줄은 몰랐습니다.”
“글쎄, 정말 도우려 했다면 내가 아니라 리온에게 곧장 알렸을 테지.”
에드가는 제니스의 행동이 영 께름칙했다.
“마차를 곧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림자들이 돌아오면 알려 드릴 테니 편히 볼일 보십시오.”
헤센의 말에 에드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따돌린 걸까?
나는 리온의 품에서 불안하게 몸을 떨었다.
그는 부드럽게 내 등을 쓸어내리며 나를 진정시켰다.
“괜찮아. 잠시만 눈 감고 있어.”
“응?”
“잠시면 돼.”
리온은 내 손을 잡아 귀를 막고는 싱긋 웃었다. 그러곤 제 손으로 눈을 가리며 귓가에 속삭였다.
“이렇게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해로운 건, 보지 않는 게 좋아.”
해로운 거라니?
나는 그에게 묻고 싶었지만, 앞에 있던 온기가 사라진 걸 느끼곤 입을 닫았다.
내 곁을 떠나 뭔가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무슨-!”
“흐아아아악!”
먹먹한 귓가에 짧은 비명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보이지도 않으니 두려움이 배가 되었다.
애써 침착하며 몸을 웅크린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괜찮아, 괜찮아. 별거 아니야.”
리온이 잠시면 된다고 했잖아.
“일…… 이…… 삼…… 사…… 오…….”
근데 그게 얼마나 일까. 1분? 10분? 그것도 아니면 한 시간?
온갖 잡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귀를 막고 있는 손에 힘을 잔뜩 주었다.
“삼십…… 삼십일…….”
나는 계속해서 입으로 숫자를 뱉어 냈다. 그러면 조금은 불안함이 가시지 않을까하고.
“아,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그리고 일 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리온이 내 앞으로 왔다. 따스한 체온이 그대로 느껴지는 손이 내 손을 잡아 귓가에서 떼어 냈다.
“찾았네.”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네가 어딜 가든 찾아내겠다고.”
리온의 붉은 눈동자가 호선을 그리며 접혔다.
스윽-
내 뺨을 손가락으로 훔치더니 미간을 좁히곤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뭔가가 얼굴에 흘러내렸다.
리온은 아무렇지 않게 슥슥 닦아 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숨어도 소용없어.”
“어?”
“네 얼굴 네 목소리, 네 체향, 네 모든 것을 다 외워 버렸거든.”
나는 내게 내밀어진 손을 빤히 응시했다.
이걸 잡아도 되는 걸까? 내가…… 그래도 돼?
흔들리는 시선이 리온의 손에 닿았다 이내 천천히 위로 향했다.
“거절해도 소용없어, 내 가슴 깊이 이미 네가 각인되어 버렸으니까.”
리온은 내 허리를 감싸며 가볍게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밀착된 몸에 숨이 헉 하고 멎었다.
“도망가고 싶거든 도망가.”
한 뼘 정도 되는 거리까지 다가온 리온의 얼굴에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그런데 이래도 날 밀어낼 거야?”
리온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어지더니 숨결이 훅 하고 와 닿았다.
“……사실 나에게 입 맞춰 주길 바라던 상대는 너였어.”
리온이 눈을 내리깔며 내 입술을 빤히 응시했다.
노골적이면서도 야릇한 시선에 입안이 바싹 타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