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화 (55/120)

제55화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에드가의 상태를 살폈다.

“오늘은 좀 어때요? 그렇게 누워 있으니 편하죠?”

나한테 일은 다 떠맡기고 말이야.

다행히 리온의 힘을 흡수를 잘 하고 있는 모양인지 안색이 날로 좋아졌다.

“눈 뜨기만 해요, 가만히 안 있을 테니까.”

나는 대답도 하지 못하는 에드가를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아, 나도 예견한 건 아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어쩔 수 없죠.”

센 공작의 저택에 들려 액세서리를 주려 했었다.

연회까지는 시간이 좀 남을 테니 잠시 시내에만 함께 있으려 했는데 상황이 꼬였다.

“센 공작도 그 연회에 참석할 줄이야.”

“정말로 함께 참석하실 겁니까? 그렇게 되면 모두에게 알리는 셈이 될 텐데요.”

“나도 그게 걱정이긴 한데……. 파트너로 참석한다고 해서 모두가 다 연인으로 발전하는 건 아닐 테지.”

델테르만 입을 닫아 준다면 뭐.

게다가 몇몇 가문들은 내가 하는 일이 어떤 건지 알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의뢰를 위함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고.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알아서 쳐낼 테니 걱정 말아요.”

“그런데 그거 아직도 안 지워지시는 겁니까?”

“아…… 티 나요? 큰일이네.”

아무래도 베르뎅 쥬얼리숍에 가서 펜을 지울 수 있는 용액이 있는지 묻는 게 빠를 것 같다.

일반 펜이 아니었나? 왜 이렇게 안 지워지는 걸까.

“좀 더 소매를 가릴 수 있는 걸 입으시는 게…….”

“그렇게 하려 했는데 그러면 액세서리를 못 보여 주니까.”

그렇게 되면 내 홍보는 실패할 것이다.

오늘을 위해 돈을 들여가며 연회까지 투자했는데 아무런 성과가 없으면 쓰나.

“괜찮을 거예요. 어차피 가리개로 가려져서 색도 제대로 안 보이고.”

“사실 어제 또 문양 사냥꾼이 사람을 습격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요?”

다시 활동을 시작한 걸까. 원하는 목표를 찾아서 그만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대체 무슨 이유로 그러는 걸까.’

나는 입술을 잡아 뜯으며 고민했다.

“전 이제 나타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이유가 있습니까?”

“뭔가를 찾는 듯 보였거든요. 그게 반려이든 아니든. 일단 찾게 되면 가만히 둘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래서 갑자기 종적을 감췄을 때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제 들은 바로는 문양의 색과는 상관없이 당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건 전에도 그렇긴 했죠.”

“다만, 수법이 좀 다르긴 합니다.”

수법이 다르다라…….

그렇다면 동일범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애초에 전에 일어났던 일에도 죽은 이들은 많았다.

설마, 찾지 못해서?

만약 찾아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죽었나요?”

뭐 이것도 예전과 다를 건 없었지만.

“네……. 게다가 없어진 물건들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 이상하네요. 이전 범인은 다른 것엔 관심이 없었지 않나요?”

“맞습니다. 무엇보다 저희 영지에서만 만연하게 일어났던 일이 다른 곳에서도 무차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모방이군요.”

확실했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이전의 범인과는 상관없을 것이다.

“저급해졌어.”

“뭐 그런 셈이죠.”

“경비를 늘리고, 영지 내에 순찰대를 운영하세요.”

불안감이 커지면 영주에 대한 반발도 커질 것이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아버지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저는 아가씨가 되도록 밖에 나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헤센 경은 여전히 근심 어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리온과 함께 가잖아요? 백작님 잘 보살피고 계세요.”

전장에 나가 실력까지 인정받았으니 괜찮을 것이라며 설득했다.

헤센 경은 모르지만, 나는 리온이 가진 힘을 알고 있지 않은가.

“다녀올게요.”

나는 힐끔 에드가를 보았다. 그래, 조금만 있으면 일어날 테지.

일어나자마자 잔소리를 안 하면 다행이었다.

애써 괜찮을 거라 나를 다독이며 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 *

“리온, 벌써 준비 다 했어?”

마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리온을 발견한 나는 쪼르르 달려갔다.

리온의 시선이 이내 내 손목에 고정됐다.

“혹시 몰라서 했어.”

“방향이 달라졌네.”

“아, 액세서리 시연 때문에 그래. 어색하지?”

언제나 오른쪽에 매달았던 푸른 리본이 오늘은 왼쪽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리온의 눈빛이 탐탁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알아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러네.”

오늘따라 침울해 보이는데 왜 그러지? 간밤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내 시선을 느낀 리온이 싱긋 웃으며 나를 빤히 보았다.

“오늘 잘 부탁해.”

“응? 아! 나도 잘 부탁해. 헤센 경이 그러더라고, 다시 그 사람이 움직이는 것 같다고.”

“그래?”

리온이 내 손을 잡으며 에스코트해 줬다.

“소매가 펄럭이지 않는 게 더 예쁠 것 같은데, 이대로 가도 괜찮겠어?”

“응? 이상해?”

나는 드레스를 이리저리 보았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비슷한 디자인인데?

의아한 내 눈동자에 리온이 고개를 저었다.

“액세서리가 잘 보이니 괜찮은 것 같네. 그래도 조심해.”

뭘 조심하라는 거지?

나는 리온의 손을 놓으며 눈을 깜빡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맞은편 의자에 앉아 눈을 접어 웃었다.

마차에 올라탄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는 등을 기댔다.

‘뭐야,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액세서리가 탐나나 보다! 리온에게도 선물을 해 줘야 하는데.

“리온 이거 어때?”

소매를 걷어 올리고 액세서리를 보였다.

나는 제법 예쁜 것 같은데 리온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려나.

“네가 뭘 하든 예뻐.”

리온의 말에 나는 얼굴을 붉혔다. 흠흠 재빠르게 목을 가다듬고는 말을 돌렸다.

“나중에 쥬얼리 숍에 들려서 몇 개 받을 건데 리온도 줄게.”

문양이 있다는 걸 들켜서 좋은 건 없으니까.

그들이 리온을 노릴 수도 있는 법이지 않나. 리온 만큼은 안 된다.

내가 어떻게 지켜 냈는데.

“그들이 나를 노릴 것 같아? 불안해 보여.”

리온은 마주 앉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곤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잠은 좀 잤어?”

“나야 늘 잠은 잘 자니까.”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리온의 손을 떼어 냈다.

“엘르, 넌 어때? 이전과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같은 사람의 소행인 것 같아?”

그럴 리가.

조사를 안 했다면 모를까. 조사를 한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아니, 난 다른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왜 그렇게 생각해?”

“목표가 다른 것 같아서.”

내 말에 리온이 눈을 접어 웃었다.

이 일에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리온도 문양이 있으니 그럴 수 있겠다.

“엘르 그자를 찾는 게 의뢰였다고 했지?”

“센 공작 의뢰이긴 하지.”

“뭐 좀 찾았어?”

찾았다고 해야 할지. 아직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고 말하는 게 나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리온이라면 뭔가 알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음, 아니. 아직 이렇다 할 단서는 찾지 못했어. 자신의 흔적은 잘 남기지 않는 눈치였거든.”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빼면.

뭐, 그런 사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리온일 리가 없으니 그는 용의 선상에서 제했다.

“그자를 찾게 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야?”

“글쎄, 내가 받은 의뢰는 누구인지 찾아 주는 거야. 이후의 일에 대해선 관여할 바가 아니지.”

그건 모든 정보상의 규율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구나. 그럼 내가 좀 도와줄까?”

“응? 어떻게?”

나는 리온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홉떴다. 정말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까.

그렇다면 꽤 수월하게 일이 끝날 것 같은데.

“이 의뢰만 끝나면 이런 우스꽝스러운 연기도 하지 않아도 되는 거지?”

연인 행세를 말하는 건가.

센 공작의 의뢰만 끝나면 볼 일이 없긴 했다. 그와 나는 계약으로 잠시 함께 일하는 사이였으니까.

큰손이다 보니 걸린 돈도 컸고, 에드가가 저렇게 누워 있는 이상 자금이 필요하긴 했다.

“정말 알아낼 수 있어?”

“지금 활개 치고 있는 놈들이라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같은 놈들이라 생각해.”

“으음……. 그래?”

나는 리온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놈들 같은데.

“엘르, 센 공작이 네게 문양을 가진 이들을 죽인 자에 대해서 찾아 달라고 했잖아.”

“응, 맞아.”

“그럼 그게 그때와 지금이랑 사람이 같든 다르든 중요한 건 아니지. 지금도 문양을 가진 이들을 죽이고 있다며.”

“그것도 맞지……?”

뭔가 그럴듯한 말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리온의 말대로 센 공작은 문양을 가진 이들을 죽이는 자를 찾아 달라 했으니까.

그게 정확히 이전의 사람인지 이후의 사람인지 정확히 짚은 건 아니지 않나.

“그럼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한 범인을 색출하면 되잖아.”

“으응, 틀린 말은 아니긴 해.”

나는 턱을 매만졌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게 맞는 건가?

“하던 일을 멈췄다면, 더 이상 그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일 거야. 그렇다면, 지금 다른 이가 그자라고 해도 상관없다는 이야기지.”

확실히 리온의 말도 맞긴 했다.

“그럼 됐네. 내가 찾아올게.”

“뭐?”

“그러니까, 이런 연극은 오늘로 그만둬.”

왠지 모르게 이전의 범인은 찾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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