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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51/120)

제51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람. 집으로 돌아갈 때는 따로 가도 되지 않나?

하필이면 네 명에서 같은 마차를 타다니.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진짜, 이런 상황 너무 싫다.’

옆에서 느껴지는 리온의 시선에 모른 척 앞만 봤다.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델테르를 가만히 응시했다.

‘저런다고 모를 것 같나?’

제 옆에 앉아 있는 제니스를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그런 제니스는 앞에 앉은 리온을 빤히 보았지만.

“도대체 왜 같이 마차에 올라타야 하죠?”

내 말에 각자 다른 곳에 향해 있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폐하께서 명하신 일이야.”

“그러니 더더욱 이해가 안 되네요. 왜 저까지?”

전장에서 공을 세운 리온이야 그렇다 치고, 나는 왜.

“리온이 벨루아 가문의 사람이니, 주인인 너 또한 받을 권리가 있지.”

개소리.

아무래도 내 손과 발을 묶어 둘 생각인 것 같았다.

‘한시가 급한데 도와주질 않네.’

으득 이가 갈렸다.

아버지가 계속해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문제가 될 터.

“황실에서도 제 가문에 일어난 일이 밝혀지면 좋을 게 없을 텐데요.”

“글쎄.”

“자신만만하시네요.”

나는 비뚜름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저 오만한 눈을 보니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가.

“제니스 황녀님. 황실로 돌아가시게 된 걸 축하드려요. 아마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좋은 일이요?”

전장에 나가 있었으니 명분은 만들어진 셈이다.

델테르 황태자에게 필적한 힘을 줄 수 있는 명분.

연회가 열리게 되면 다른 귀족들이 움직이게 될 터. 황제는 그 점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반역자를 색출하는 것일지도.

“그런데 어디 안 좋으신가요?”

아까부터 얼굴이 좋지 않았다. 전쟁이 끝났으니 기뻐해야 하는데 왜 저리도 침울한 걸까.

“아, 아직 믿기지 않아서 그런가 봐요.”

제니스는 어색하게 미소를 그려 넣었다.

“그럼…… 리온 님께선 그럼 다시 벨루아 가문으로 가시는 건가요?”

“네.”

“아니요.”

나와 리온은 동시에 대답했다. 그러나 둘의 대답은 달랐다.

“크크크크. 전쟁이 끝났으니 집으로 돌아가는 게 맞지 않나?”

뭐가 웃긴지 델테르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

나는 애써 표정을 피며 말했다.

“리온은 더는 우리 가문의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 어딜 가든 그건 리온 마음이죠.”

내 말에 리온이 주먹을 쥐었다.

“……제 마음이 맞긴 합니까?”

리온의 슬픔이 묻어난 목소리에 나는 입을 달싹였다.

“리온 마음이지, 그대는 마법에 능통하니 마탑으로 가도 될 거야.”

그게 리온에게 날개를 달게 해 줄 테니까.

무엇보다 마탑으로 가게 되면 황실의 간섭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독립적인 곳이니 안전도 보장되어 있고.

“마탑이라. 정말 제가 그곳에 가길 원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게 나을 거야.”

뭐, 그래도 며칠 동안은 집에 잠시 들러도 되지 않을까.

나는 힐끔 리온을 보았다.

한시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당분간은 지내도 좋아. 마탑에 입학 신청도 내야 하고 시일이 걸릴 테니까.”

“감사합니다.”

리온이 눈을 접어 웃었다.

“저, 저기! 저도 벨루아 가문에 놀러 가도 될까요?”

제니스가 황급히 나와 리온 사이에 끼어들었다.

뭔가 초조해 보이는 것은 왜 그럴까.

황실과 사이가 좋지 않지만, 델테르와 대적할 수 있는 제니스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무엇보다 그녀는 리온의 반려였으니 멀리 두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럼요, 언제든 편할 때 놀러 오세요. 단, 황녀님만요.”

“그 말은 나는 오지 말란 소리로 들리는군.”

“네, 맞아요. 정확히 들으셨네요.”

이렇게까지 말하면 제니스도 오지 않은 확률이 크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리온도 잠시 있다 갈 것이니까.

“알겠어요. 그 부분은 걱정 마세요. 황실과 벨루아 가문의 사이를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제니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아무래도 굉장히 미움을 받고 있나 보네.’

어쩐지 통쾌했다. 사랑하는 누이에게 배척당하는 기분은 어떤 느낌일까.

나는 픽 하고 웃었다.

“황실까지 가야 하는 건 아니죠?”

“뭐, 그렇지.”

델테르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가 가문의 앞까지 다다르자 나는 리온을 보았다.

“자, 그럼 오랜만에 집으로 가 볼까?”

리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의 문이 열리고 리온이 내려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런 것도 다 배우나?’

가르친 적이 없었건만, 정확하게 에스코트하는 리온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리온은 그런 나를 보더니 이내 가뿐하게 나를 안아 들었다.

“리, 리온?”

화들짝 놀란 나는 리온의 품에 안긴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많이 피곤해 보이셔서요.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리온은 제니스와 델테르를 향해 인사하고는 뒤돌아 저택으로 향했다.

마주한 제니스의 얼굴을 본 나는 불안감에 시선이 흔들렸다.

‘왜 저런 표정을 하고 있는 거야?’

나와 리온을 응시하고 있던 제니스의 눈동자엔 눈물이 차올랐다.

억울함, 그리고 분노가 느껴져 몸에 소름이 돋았다.

* * *

리온은 제 눈앞에 잠들어 있는 에드가를 내려다보았다.

‘쫓아내더니 이런 꼴이나 당하고.’

에드가가 아니었다면, 엘르가 위험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않은가.

“얼마나 됐어?”

“꽤 오래. 델테르가 한 짓 같아.”

“흐음.”

리온은 침대에 걸터앉아 에드가를 살폈다.

‘마나의 흐름도 안 좋고, 뭔가 방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제 옆에 불안한 눈빛으로 보고 있는 엘르를 보자니 빨리 해결해 줘야 할 것 같았다.

“어떠한 약도 안 듣는다고 했지?”

“응. 하지만 에드가의 능력을 생각하면…….”

리온의 힘을 흡수하게 될 테니 어쩌면 차도가 있을지도 몰라.

엘르는 말끝을 흐렸다.

“한 번 해 볼게. 하지만 좀 걸릴지도 몰라.”

“고마워.”

제법 고생을 했는지 얼굴이 초췌했다.

리온은 엘르의 얼굴을 쓰다듬으려다 이내 손을 거뒀다.

“이만 가서 좀 쉬어.”

“아…… 나 약속이 있어서 가 봐야 해.”

“무슨 약속?”

“요즘 사업을 좀 진행하고 있어. 조만간 연회장에서 선보여야 할 제품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엘르는 잠시 리온의 팔을 응시했다.

‘리온도 가리기엔 좋겠다.’

남녀 상관없이 쓸 수 있는 액세서리니 괜찮을 것이다.

자신이 준 팔찌를 차고 있었지만, 가리기엔 충분하지 않았으니까.

“다녀올게, 리온.”

“……오는 거지?”

“그럼, 내 집인데 안 오고 어딜 가겠어.”

엘르의 말에 리온의 표정이 풀렸다. 왠지 모르게 그녀가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늘 저를 밀어내곤 했으니까.

자신의 집까지 찾아온 저로 인해 다른 곳으로 도망쳐 버릴 것만 같았다.

리온은 잠들어 있는 에드가를 응시했다.

‘내가 당신을 고치는 순간 엘르는 다시 날 버릴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그는 에드가를 고쳐야만 했다.

엘르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것을 보고 있을 순 없었으니까.

“걱정 말고 다녀와.”

리온은 엘르를 향해 활짝 웃었다.

“당장 하지 않아도 돼. 리온 너도 많이 지쳤잖아.”

엘르의 다정한 목소리에 리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정말로 내가 돌아왔구나.

엘르가 나가고 리온은 에드가의 몸에 손을 올렸다.

“하아,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리온은 알고 있었다. 엘르가 제게 말하지 않았어도, 에드가가 가진 힘에 대해서.

과연 에드가가 제힘을 버텨 낼지는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요즘 나를 찾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쉽지는 않을 것이다.

흔적이라곤 남기지도 추정될 증거도 없었으니까.

“반려라…….”

그러고 보니 엘르의 손목은 본 적이 없었다.

엘르는 제게 문양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 했지만, 그건 모를 일이지 않은가.

리온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아무래도 확인을 해 봐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 필요해.”

그러니 천천히 흡수하라고, 에드가.

이게 나에게 했던 일에 대한 소심한 복수니까.

리온은 에드가의 몸에 제힘을 밀어 넣었다.

자가 치유까지 가능했기에 제힘을 다 흡수하게 된다면 에드가도 의식이 돌아올 터.

꿈틀 에드가의 눈썹이 들썩였다.

“반응은 있나 보네. 다행인 건가.”

엘르에게 말해 준다면 기뻐할 것이다.

리온은 제 할 일을 다하고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래도 집이라고…….”

그동안 자지 못했던 졸음이 몰려왔다.

리온은 침대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조금 쉬다 가도 괜찮겠지.

스르륵 졸음이 몰려왔다. 일단은 엘르가 저를 반겨 주었으니, 당분간은 마음을 놓아도 될 것이다.

엘르가 무슨 마음으로 저를 밀어내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도움을 받고 있는 입장이었으니까.

“그러니 엘르, 날 버리지 마.”

네가 원하는 대로 갈 테니. 지켜는 볼 수 있게 해 줘.

리온은 숨소리가 방 안에 천천히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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