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49/120)

제49화

나는 주변을 살짝 둘러보았다.

리온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잠시 안도했다.

‘어? 왜 안심하는 거야.’

아쉬워해도 모자랄 판에. 사실 서신에 대한 답이 오지 않았던 것 때문인지 내심 소심해진 모양이다.

“분위기가 정말 소란스럽긴 하네요.”

“아, 그, 그것이.”

단장은 나와 델테르를 보며 불안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초조해 보이는 것이 영 수상한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델테르의 말에 단장이 ‘히익’하며 기함했다.

“아닙니다!”

바짝 군기가 들어가 보는 내가 다 안쓰러웠다.

“전쟁이 끝난 것 같아요.”

제니스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나와 델테르는 동시에 눈을 게슴츠레 떴다.

‘전쟁이 이렇게 쉽게 종식된다고?’

아직 리온의 힘이 다 개방되지도 않았을 텐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리온이 안 보이네.’

뭐, 어차피 날 알아보지도 못하겠지만. 그래도 괜찮은지 확인은 하고 싶었다.

“저, 혹시 누구 찾으시나요?”

“아뇨! 제가 누굴 찾겠어요.”

나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리온이 나를 알아볼까 싶어 리본까지 빼고 왔지 않은가.

괜스레 민망해진 나는 허전한 손목을 매만지며 웃었다.

“그런데 정말 전쟁이 끝났다고? 어떻게 된 일이지?”

델테르는 제니스 황녀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야, 살살 좀 해.

제니스가 무슨 죄라도 졌니. 그렇게 물으면 무서워서 대답하려다가도 말겠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제니스 황녀의 손을 잡았다.

“전쟁터에서 많이 힘드셨죠? 끝나서 다행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가 전쟁을 종식시켰다는 말인데. 내가 아는 이 세계의 최강자는 리온이었다.

“그걸 모르겠어요. 일어나 보니 정찰병이 적들이 다 전멸되어 있었다고 말했어요.”

“하룻밤 사이에 전멸이라…….”

“사실 마나의 흔적이 발견되긴 했습니다. 엄청난 양이라고 하더군요.”

단장이 한숨을 내쉬며 이실직고했다.

마나? 그 말은 마법이 사용되었다는 건데.

내 고개가 별안간 휙휙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건 리온이 한 게 분명해.’

내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리온의 힘이 생각보다 빨리 개방된 듯했다.

많은 병사와 기사들 사이에서 빠르게 리온을 찾아 헤맸다.

“어……?”

순간 마주한 붉은 눈동자에 당황한 듯 시선이 멈췄다.

‘붉은 눈.’

그건 리온 밖에 없잖아. 어째서 나를 알아보는 것처럼 빤히 응시하고 있는 거지?

리온을 찾아 두리번거린 것은 나였지만, 막상 찾으니 기분이 묘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델테르가 얼빠진 표정을 한 나를 향해 물었다.

문제 아주 많지.

내가 그를 찾아내도 리온은 나를 찾아내선 안 된다.

그게 설정 값이었으니까.

리온은 제니스가 아닌 다른 이들은 알아보지 못하는 게 맞았다.

“아, 저기 저의 진영에서 가장 평가가 좋은 마법사가 있습니다.”

“아니, 부르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일단 막사로 가실까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단장을 만류했다.

그렇게 인사도 안 하고 가고 처음 보는 건데 민망해!

그러나 그런 모습을 본 델테르는 뭐 재밌는 거라도 발견했는지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럼, 막사로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 보지.”

“저는 좀 빼 주시겠어요?”

“왜 그러나. 오랜만에 만나는 가문의 사람인데.”

그러니까 내가 만나는 건데 왜 네가 나서고 지랄이야.

“그래요, 엘르 영애. 보지 못한 지 꽤 되었을 텐데 안부라도 나누세요.”

제니스는 활짝 웃으며 리온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말 친해진 모양이네.’

실제로 둘 사이의 관계가 발전된 것을 보니 심장이 찌르르 아파 왔다.

“하는 수 없죠. 가문을 나갔으니 저와는 상관없지만.”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으며 나는 홀로 리온을 마음속에서 내보내고 있었다.

“리온 님은 늘 그리워하셨어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날 그리워했다고요?”

“네, 항상 편지를 가슴에 품고, 팔찌는 늘 착용하셨어요.”

제니스는 뭔가를 꾹 참는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는 그 모습에 더는 묻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내가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 같았다.

* * *

막사에 모인 네 사람의 주변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오랜만에 마주한 리온은 꽤 힘이 들었는지 얼굴이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았다.

‘왜 저렇게 초췌한 거야. 그래도 얼굴은 잘생겼네.’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는 내 자신이 싫었지만, 인정할 건 해야지.

언제 봐도 참으로 잘생긴 얼굴이다.

리온은 아까부터 아무 말 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이름을 듣고 나서야 날 알아봤을 거야.’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그러니 아까 나를 알아본 것 같은 기분은 착각이었을 터.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 애써 시선을 무시하곤 제니스를 보았다.

“그럼 이제 모두 제국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저희가 괜히 온 셈이군요.”

“어차피 너는 날 따라오게 되어 있었어.”

“그러니까, 왜요?”

“요즘 들어 수상한 게 한 둘이어야지. 갑자기 안 하던 데이트를 하고.”

쯧. 쓸데없이 감은 좋아선. 또 그 이야기는 왜 하는 건데!

나는 속으로 욕을 지껄였다.

그래, 저놈이 하도 나를 밀착 수비하는 바람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스토커도 아니고 그만 좀 따라다니세요. 우리가 사이좋게 하하 호호 할 사이도 아닌데.”

“뭐, 붙어 다니다 보면 정이 들 수도 있지.”

“소름 끼치는 소리는 하지 마시고요. 누가 보면 절 좋아하는지 알겠어요.”

“미쳤나?”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만.”

나는 웩 하는 표정을 지으며 델테르를 보았다.

미안한데 넌 내 스타일 아니야. 리온을 보고 자랐는데 네놈이 눈에 들어오겠니?

“하……. 겁이 없는 건지. 생각이 없는 것인지.”

“둘 다라고 하죠. 제 뇌는 선택적으로 활동해서요.”

너에게 쓸 뇌 에너지는 없다 이 자식아.

델테르와 티격태격거리며 서로 으르렁거리자 제니스가 살며시 말을 걸었다.

“그런데 엘르 영애. 왜 서신 한 통 보내지 않으셨나요?”

“서신을……. 왜 안 보냈냐고요?”

허?

나는 황당함에 입을 떡하고 벌렸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서신을 보냈는데!

그건 그렇고 그걸 왜 리온이 아닌 제니스가 묻는 걸까.

“리온, 나야말로 묻고 싶어. 왜 그동안 서신에 답을 하지 않았어?”

“서신이 오지 않았으니까, 요. 들어 보니 꽤 바쁘셨던 모양입니다.”

리온은 비뚜름하게 태도를 취하며 내게 대답했다.

비꼬는 게 분명한데, 어디 부분에서 화가 난 걸까.

“내가 얼마나 많은 서신을 보냈는데. 나는 네가 답을 하지 않아서 이제 나와는 인연을 끊으려는 건 줄 알았어.”

“내가 너, 아니 엘르 님과 왜 연을 끊을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그건…….”

그러고 보니 매번 내 쪽에서 리온을 밀어냈었다.

하지만 나는 억울했다.

에드가의 일로 리온에게 얼마나 많은 서신을 보냈는데.

“정말 한 통도 받지 못한 거야?”

“애써 거짓말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데이트하시느라 저를 잊은 모양인데.”

“거짓말이라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애타게 너를 찾았는데! 데이트? 그건!”

여기서 말할 순 없지.

네가 에드가를 깨울 수 있을까 봐. 희망을 붙들었는데.

혹시 죽었나 싶어서 마지못해 델테르를 따라온 것도 있었다.

“저를 찾았습니까?”

“그래!”

“그것도 애타게?”

“어, 뭐. 그렇긴 한데.”

나는 슬며시 흥분을 가라앉히곤 목을 가다듬었다.

“이거 연인보다 더 애틋한 관계처럼 보이는데.”

“조용히 해요. 그럴 사정이 있으니까. 그 원인에 전하가 있다는 거 잊지 마시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델테르는 뻔뻔하게 시치미를 뗐다.

만약 에드가가 죽었다면, 나는 당장이라도 반역을 꾀했을 것이다.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곤 턱을 괴었다.

“이렇게 이해력이 부족하니 제니스 황녀님보다 못한 거겠죠.”

“정말 죽고 싶나?”

“이젠 저까지 죽이시려고요?”

그 말에 델테르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자신이 한 짓이 있으니 찔리겠지. 에드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알 테니까.

“잘 알아 둬요. 지금 당장 죽이고 싶은 사람은 전하가 아니라 나라는 것을.”

나는 델테르만 들리게 귓가에 속삭였다.

“엘르 님.”

순간 리온이 내 이름을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신에 쓴 말 직접 듣겠습니다.”

“지, 지금?”

“해명을 들어야 할 것도 있고.”

리온은 고개를 끄덕이곤, 막사를 나갔다.

“나가 봐. 어차피 나도 제니스와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델테르의 말에 힐끔 제니스를 보았다.

그녀의 불안한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있으세요.”

“뭐라고?”

“전하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잘하는 거예요.”

“하!”

“제니스 황녀님,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당근, 아니 소리를 지르세요.”

내 말에 제니스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워낙 괴롭혔어야지.

나는 막사를 나가는 동안에도 델테르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허튼짓하기만 해.’

눈에서 불이 나올 것 같은 집요한 시선에 델테르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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