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0/120)

제30화

“디리아, 이상하지 않아?”

“확실히 그러네요.”

나는 디리아를 향해 넌지시 물었다. 며칠 새 리온이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이상하지 않은가.

늘 훈련하는 곳에도 찾으러 가 봤지만, 그는 없었다.

나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게 아니라면 뭘까.

“찾으러 가야겠어.”

넓긴 했지만, 리온의 그림자조차도 발견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혹시, 에드가가 따로 리온을 불러낸 적이 있어?”

“음…… 없다고 장담은 못 할 것 같아요.”

역시 디리아도 에드가를 영 믿진 못하는 듯했다.

“아! 저번에 리온 님이 서류를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서류? 무슨 서류.

“혹시 막 화려한 인장이 있고, 글씨가 좀 많았어?”

디리아는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정말! 진짜 비겁하게.

나는 그제야 리온이 보이지 않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에드가가 손을 썼을 줄이야.

그렇다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공고의 시기도 그리 남지 않았는데…….

설마 넣은 건 아니겠지.

불안감이 몰려왔다.

리온이 갈 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아직 실력이 그리 올라오진 않았을 테니 괜찮을지도 모른다.

“어? 아가씨. 저거 리온 님 아니에요?”

디리아의 손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정말로 리온이 보였다.

“어! 진짜 리온이네. 그런데 왜 저렇게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어?”

나는 황급히 그에게 달려갔다. 또 도망치기 전에 그를 잡아야 했으니까.

“아, 아가씨 뛰지 말아요!”

디리아는 저번 일이 떠올랐는지 황급히 내 뒤를 따랐다.

그러나 나는 빠르게 달려 리온의 앞에 섰다.

숨이 턱 끝까지 차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후우.

“엘르……?”

“왜 요즘 안 보였어? 정말 나 피해 다닌 거야?”

리온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수심 가득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의 두 볼을 잡아 내 쪽으로 향하게 했다.

“리온, 너 설마 공고에 지원한 건 아니지……?”

리온은 당황한 듯 시선을 돌렸다.

뭐야! 정말 지원한 거야? 아직 안 되는데!

“미안해 어쩔 수 없었어…….”

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곤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괜찮아! 어차피…… 음, 아니야.”

이걸 입 밖으로 내뱉으면 기분이 좀 그렇겠지?

나는 리온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훈련은 잘되어 가?”

“그냥, 열심히 하고 있어. 내가 걱정돼서 온 거야?”

그가 해사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럼 왜 왔겠어.

“합격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냥 즐기다 와. 다치지 말고!”

나는 리온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도 참. 아무리 리온이 주인공이라지만, 아직 각성도 안 한 애가 떡하고 붙을 리가 없지 않은가.

“엘르, 내가 만약 합격하면 원하는 거 하나 들어줄래?”

리온의 말에 나는 턱을 매만졌다.

자신이 있는 건가. 붙으면 그것도 곤란하긴 한데.

나는 슬쩍 같이 훈련하고 있는 기사들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음, 잠시만 있어 봐.”

나는 단장에게 다가가 슬쩍 물었다.

“리온의 실력이 어때요? 공고에 합격할 것 같아요?”

“아가씨 솔직히 말씀드려도 됩니까.”

단장은 내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는 건가.

그럼 뭐 다행이고.

“좋아요. 다행이네요.”

“네? 뭐가 다행이란 겁니까? 아가씨께서도 붙길 바라시는 거 아니었나요?”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내가 리온을 그런 무서운 곳에 빨리 보내고 싶겠는가.

나는 리온에게 다시금 다가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 들어줄게.”

리온이 붙을 리는 없을 테니까.

내 말에 리온의 얼굴이 활짝 폈다.

뭐, 조금. 아주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별일이야 있겠는가.

“그런데 뭘 들어줬으면 하는 거야?”

“그건 나중에.”

불안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애써 괜찮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리온은 내 얼굴을 손등으로 가볍게 쓸어내렸다.

“엘르, 걱정 마. 네가 싫어하는 건 해 달라 하지 않아. 그냥 나도 너와 함께 뭔가를 하고 싶을 뿐이야.”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말을 하는 리온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어떻게 거절하겠어.

“그래, 그런 거라면 괜찮을 것 같아.”

그제야 리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검을 잡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건 내 착각이겠지?

왠지 괜한 짓을 한 것만 같았다.

“엘르, 난 널 실망시키진 않아.”

리온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나는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 * *

리온은 엘르의 불 꺼진 방을 보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달빛에 비친 그의 눈동자가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하아. 엘르, 네 앞에서 연기하는 것도 날로 힘이 드는 것 같아.”

리온의 손에 불꽃이 파바박 튀었다.

제대로 마법조차 부리지 못했던 그는 가볍게 제 앞에 있는 짚단을 베었다.

“엘르, 넌 몰라. 그런 네 행동이 날 얼마나 미치게 하는지.”

걱정한답시고 저를 찾아다니는 것부터 헛된 꿈을 꾸게 했다.

자신이 그녀의 곁을 떠나고 싶어 할 리 없지 않은가.

저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에드가가 엘르에게 미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이미 엘르의 예상과는 달리 제 마음껏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리온은 엘르의 뺨을 만졌던 손을 응시했다.

“지금도 이렇게 널 원하고 있는데.”

왜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걸까.

자신은 엘르가 원하는 대로 아무것도 모른 척 행동하고 있었다.

그래, 엘르가 원하는 거라면 그게 뭐든 할 수 있었다.

“그의 비밀만 알아냈어도.”

자신이 패를 가지게 되는 거였을 텐데. 리온은 으득 이를 갈았다.

공고 마감 날짜는 얼마 남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지원을 한 상태.

합격을 하지 못한다면 에드가는 필시 의심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저를 조여 올지도 모르고.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리온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엘르의 곁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갈증은 더더욱 심해지고 있지 않나.

이대로 가다간 저도 모르게 엘르를 삼켜 버릴지도 모른다.

제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에 그녀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면…….

“그래, 그럴 바에 거리를 둔 채 지켜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리온은 두려웠다. 자신이 엘르를 망치게 될까 봐.

그녀가 가지고 있는 행복을 저로 인해 빼앗기게 할 순 없다.

견딜 수 없을지 모른다.

매일 저를 향해 웃던 엘르의 미소도, 제 붉은 눈을 사랑해 주던 그녀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그 무엇도 소용없었다.

그래서 리온은 결정한 것이다.

조금 더 엘르의 곁에 있을 수 있었음에도 그녀를 떠나기로.

자신이 후에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게 되기 전에 말이다.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제가 무슨 마음으로 이런 결정을 했을지.

리온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 모두에게 어쩌면 재앙이 되는 일이었다.

리온은 검을 휘둘러 검기를 내뿜었다.

조금만 더 그래, 시간이 조금 더 있다면 완성될 것이다.

전쟁에 가게 되더라도 살아 돌아와야 했다. 그는 죽을 생각이 없었다.

나라의 무기로,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제 목숨을 바치는 의로운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단지, 엘르를 위해 나가는 것뿐이다.

에드가가 저를 유심히 보고 있으니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는 것이 모두에게 좋으리라.

“대신 난 널 잊지 않을 거야.”

마음에 품은 이상 리온은 엘르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엘르를 향한 마음이 타올랐다.

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수록, 점점 더 원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제 몸에선 반발 작용인지 손목 쪽이 화끈거렸다.

“아…… 너무 무리한 모양이네.”

욱신거리는 통증이 점점 더 심해졌다.

리온은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제 손목을 보았다.

나른하게 가라앉은 붉은 눈동자와 함께 그의 몸에 오라가 확 치솟았다.

제 손목에 어렴풋이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하아.

아직 성인이 되려면 몇 년은 남았건만. 어째서?

리온은 제 몸의 변화가 이해되지 않았다.

너무 급작스럽지 않은가.

저번부터 조금씩 빠르게 진행된다고는 생각했지만…….

리온은 초조함에 자신의 힘을 써서 문양을 지워 보려 했다.

날이 선 오라가 제 손목을 할퀴고 지나가자 피가 흘러나왔다. 손목이 잘려 나갈 정도로 강한 힘에도 문양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다시.

한 번 더. 그리고 또다시.

“제길!”

피가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이런 문양 따위 원한 적도 없어, 그러니 사라져.”

그는 욕을 씹어 뱉었다. 피로 물든 손목에도 더욱 문양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늪처럼 더욱 깊숙이 빠지는 기분에 초조했다.

뚝, 뚝.

손목에서 나온 피가 손가락을 타고 계속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오히려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제 눈에선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나는 엘르가 아니면 안 돼. 내게 다른 반려는 없어.”

자신의 세상이, 저를 둘러싼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릴 것이다.

문양이 생기게 된다면 엘르는 저를 쳐다도 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건 안 돼. 절대로…….”

그는 찬찬히 생각을 되짚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제가 뭘 놓치고 있었는지.

“설마.”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찾았다.

자신이 그토록 궁금해했던 것을.

그 여자. 그래, 그 여자와 마주하고부터 어딘가 이상했다.

연회장에 몰래 갔을 때 잠시 스쳤던 제니스가 떠올랐다.

‘제니스 아벨 보니타라 했던가?’

엘르가 그녀와 델테르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었다.

그래, 어쩌면 엘르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모르고 있던 것을 늘 알고 있었던 그녀였으니까.

이번에도 그녀는 한발 앞서서 뭔가를 알아냈으리라.

“도대체 넌…… 뭘 하고 싶은 거지? 엘르 나타시아.”

리온은 엘르의 방을 쳐다보며 입술을 잘근 씹었다.

어쩌면 그 해답은 그녀만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제게 힘이 있었다면, 엘르를 가질 수 있다면.

제 몸 하나가 잘 못 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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