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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28/120)

제28화

“얼굴에 상처가 많아 남들이 볼 때 흉할 것 같아 가린 것뿐입니다. 그러니 이만.”

“저, 저는! 제니스 아벨 보니타예요.”

제니스 아벨 보니타라면, 아까 황제가 말한 황녀인가 보군.

“그렇군요.”

리온은 무신경하게 대답했다. 궁금하지도 않는데 왜 자신의 이름을 알려 주는 걸까.

그는 제 이름을 여자에게 밝힐 생각이 없었다.

“그럼 이만.”

지금 여기서 계속 이야기를 나눈다면 사람들의 시선이 쏠릴지도 모른다.

황녀라면 몰래 온 자신에게 달가운 손님은 아니었으니까.

리온은 제니스가 저를 붙잡기도 전에 재빨리 모습을 감췄다.

결국 엘르를 얼마 보지도 못한 것이다.

“하아. 아직, 아직 멀었어.”

엘르라면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한눈에 들어오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리온의 오만이었다.

백작가에선 엘르를 한 번에 알아봤지만, 표식이 없으니 쉽게 찾기 어려웠다.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 보냈지만, 자신은 그럴 수 없다는 걸 또다시 깨닫게 되었을 뿐이었다.

어디에서든 엘르만큼은 알아보고 싶었다.

그것이 제 욕심이라 해도 리온은 그렇게 자신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신은 제 편이 아닌 모양인지 그런 기적은 주어지지 않았다.

백작가로 돌아가려는 그때 에드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엘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황급히 다시금 연회장으로 향했다.

누군가 엘르의 손을 잡고 있었다. 으득 이가 갈리고 피가 거꾸로 솟았다.

엘르의 표정은 당혹스러움과 동시에 두려움이 함께 공존했다.

‘델테르 카베제르’

리온은 그의 이름을 되뇌이며 주먹을 쥐었다.

자신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손을 덥석 잡은 그놈의 손목을 잘라 버리고 싶었다.

에드가만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폭주했을지도 모른다.

리온은 다시금 떠오르는 잔상에 두 눈을 꾹 감았다.

일렁이는 마나에 가슴이 또다시 타오를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재빨리 백작가로 돌아왔으니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엘르에게 들키고 말았을 것이다.

자신이 연회장에 갔었다고 말이다.

* * *

똑똑똑.

“아가씨 준비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정말 안 그래도 복잡한데 에드가도 마주 봐야 하다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집무실보다는 정원이 낫겠지만 영 찝찝했다.

“진짜, 그 인간은 잊을 만하면 찾네.”

한동안 조용하다 싶었더니. 미리 통보까지 하고…….

나는 미적거리던 행동을 멈추곤 방을 나섰다.

그래, 내가 차라도 마시자고 했으니 제시간에 가야지. 조금이라도 늦으면 또 지랄할 거야.

티타임을 굉장히 좋아했던 나지만 오늘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천천히 발걸음을 떼어 준비된 곳으로 향하자 에드가의 모습이 보였다.

이미 먼저 마시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직 약속한 시간도 안 되었는데 좀 기다려 주시지 혼자서 마시고 계시네요.”

뭐, 그게 그거긴 하지만 사람이 정이 있지. 어휴 뭘 바라겠는가.

나는 자리에 앉아 찻잔에 담긴 향을 음미했다.

역시 디리아는 내 취향을 잘 안단 말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과 함께 짜증이 누그러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미리 보자고 통보한 이유가 뭔가요?”

나는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꺼냈다.

에드가와 함께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티타임을 즐길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그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내 물음에 곧장 대답했으니까.

“공고가 떴다. 그놈에게 지원하라고 해.”

“…… 벌써요?”

아니 이렇게 빠르게?

아직 리온의 능력이 제대로 발현되지도 않았을 텐데.

나는 입맛이 뚝 떨어져 찻잔을 내려놓았다.

생각보다 시기가 너무 빨랐다. 그것 때문에 에드가가 연회에 참석한 건가?

정보상이라면 충분히 그러지 않아도 그에 대한 것을 알아냈을 것이다.

“……아직, 성인이 되지도 않았어요. 잊은 건 아니겠죠?”

나는 에드가와 정당하게 거래를 했다. 그 결과 리온은 성인이 될 때까지 이곳에 머물 수 있었다.

그걸 잊고 내게 이런 말도 안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 터.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말해요, 다른 이유가 있는 거죠? 계약을 지키는 것. 이건 정보상의 기본적이고 당연한 규칙이에요.”

신뢰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걸 깨면서까지 리온을 빨리 내보내려는 이유가 뭘까.

“단지, 좀 더 빨리 내보낼 기회가 생겼으니 말했을 뿐이다.”

“왜 그렇게 리온을 싫어하세요?”

리온은 에드가에게 밉보일 짓을 한 적도 없었다.

게다가 얌전히 잘 있는데 왜 못 쫓아내서 안달인 걸까.

나는 팔짱을 끼고 단호하게 말했다.

“백작님이 저에게 말한 제안은 못 들은 것으로 할게요.”

“내 말을 거역하겠다는 건가?”

“애초에 말이 되지도 않는데 제가 왜 받아들여야 하나요. 전 정당한 계약으로 얻어 낸 조건이었어요.”

인제 와서 받을 거 다 받아먹고 팽하겠다는 건가.

정말 양아치가 따로 없었다. 사람이 말이야 그렇게까지 보진 않았는데!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곤 에드가를 노려보았다.

“그러니 리온에게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세요. 때가 되면 알아서 나갈 거니 괴롭히지 마요.”

훗날 나에게 고마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리온이 대마법사가 될 것이라고 감히 상상이나 하겠는가.

나는 턱을 괴곤 에드가를 빤히 보았다.

“리온이 제 옆에 없다고 해도 저는 백작님 사업은 안 물려받을 거예요.”

“웃기는 군. 누가 네게 넘겨주기라도 하나?”

“다행이네요, 온갖 범죄는 다 저지르는 가업은 관심도 없거든요.”

깨끗하게 청산한다면 모를까. 따로 정보상을 차려도 상관없었다.

나는 에드가가 알지 못하는 정보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내가 최고의 정보상이 될지도.

스무 살. 그때까지만 있게 해 달라는 것이 그토록 어려웠던 일인가?

넘쳐 나는 것이 방이었고, 먹을 것 역시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니 제게 이러는 것은 에드가의 나쁜 성격 말고는 답이 없었다.

“그럼, 본채로 들어와.”

“……본채요?”

별채에 계속해서 놔둘 땐 언제고 갑자기 웬 본채란 말인가.

나는 더욱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에드가를 노려보았다.

“……무슨 꿍꿍이세요? 갑자기 절 왜 본채로 들이시는 건데요.”

어릴 때나 거두지 다 컸는데 이제 와 품에 끼고 돌겠다는 건가?

역시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그럼, 별채에서 다 큰 성인이 언제까지 함께 있을 생각이었지?”

뭐야, 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거야?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온 나와 리온한테 그런 걱정이라니.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휙휙 저었다.

“푸흡, 난 또 뭐라고. 백작님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정말 안 해도 될 걱정을 다 하고 있었지 않은가.

“걱정 마세요. 리온과 저는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리온에겐 반려가 따로 있었다. 나와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고 해도 잠시뿐이다.

그러니 에드가가 걱정할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일시적일 거란 말이다.

“어떻게 장담하지?”

“제가 리온을 모르겠어요? 옆에서 계속 지켜봐 왔는데. 무엇보다 리온에게는 따로…… 아.”

이건 말하지 않는 게 좋겠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차를 들이켰다.

“어쨌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이에요.”

나는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에드가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리온에게 1차 공고는 말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지금 만약 리온이 1차 공고에 붙어 가게 된다면 시기가 너무도 앞당겨진다.

이건 너무 빨라. 그럼 제니스를 만나지 못할 거야.

그러니 다음 공고가 뜰 때까진 좀 더 버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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