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20)

제11화

“응, 누구나 가지고 싶을 만큼.”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망설임 없이 곧장 튀어나온 답에 리온의 눈매가 절로 휘어졌다.

하지만 리온의 마음을 얻게 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내가 이렇게 말해도 그저 소망일 뿐이었다.

“그런데 왜 엘르는 가지고 싶어 하지 않는 걸까.”

리온의 말에 나는 씁쓸한 미소를 얼굴에 띠었다.

‘그거야, 가지고 싶어 해도 가질 수 없으니까.’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을 내어 봤자 뭘 하겠는가.

그의 반려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을.

“리온, 다른 사람이 오기 전에 어서 숨겨.”

“너만 보고 싶어서?”

리온이 내 말을 받아치며 웃었다.

붉음을 머금고 있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어둠으로 물들었다.

‘지금 네가 이래도 넌 정해진 운명이 있는걸. 그녀만이 널 구원해 줄 수 있어.’

나는 리온의 옆에 앉아 바람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자신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했던 리온의 단 한 사람.

그게 풀린 것이라 말을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던 그에게 있어 여주인공의 존재는 빛이나 다름없었다.

리온은 제니스 아벨 보니타, 제 반려이자 여주인공만큼은 알아볼 수 있었으니까.

“정말…… 엘르 넌 내가 무섭지 않아?”

“그럼, 전혀.”

나는 리온을 향해 활짝 웃었다.

다들 그를 내심 두려워하며 괴롭히고 피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기에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었다.

왜냐면 나는 그가 남자 주인공인 소설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그 소설 속 세계이고, 나는 그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도 그를 두려워하며 피했을 터.

나는 소설 속 그의 반려도, 끝까지 함께 있을 운명도 아니었다.

그러니 내가 리온에게 하는 말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셈이다.

“리온 널 데려온 것도 나잖아.”

내 말에 리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손이 나를 놓지 않으려는 듯 더욱 옷깃을 붙잡았다.

리온은 날카로운 눈매와 달리 처연한 눈동자는 사람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또래보단 작은 키에 작은 체구.

물론, 그렇다 해도 나보단 컸지만.

성장기가 도래한 후에 그는 지금보다 더 훌쩍 내 키를 넘어서서 어엿한 남자가 될 것이다.

상상해 봐도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안 되긴 하지만.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던 그는 여주인공의 얼굴만큼은 잊지 않았다.

단단히 각인이라도 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여주인공의 힘에 이끌린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특이하게도 이 세계 사람들은 모두 문양을 지니고 있고, 반려끼리 같은 문양을 공유한다.

서로가 원하지 않아도 정해진 반려에게 마음이 이끌려, 사랑하게 된다.

제국 사람들은 달의 문양을 지니고 있다. 금색, 은색, 붉은색, 푸른색 등 다양한 색이 존재한다.

이 중 붉은색은 사람들에겐 죽음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서로를 향해 끝내 핏빛으로 물든 사랑. 그것이 붉은 문양을 가진 이들의 결말이었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인 리온과 제니스에게 생기는 것은 아주 드문 금빛이었다.

대부분 은색이나 푸른색의 계통의 달의 문양을 지니고 있었다.

반려가 맺어지게 되면 달은 온전한 외형을 갖추게 되어 그들만의 표식으로 바뀐다.

문양으로 인해 정해진 운명이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건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나는 리온의 평범하고도 스쳐 지나가는 잠깐의 보호자이자 친구였으니까.

그를 챙겨 주는 것 또한 내가 살기 위해 취하는 행동일 뿐이었다.

음, 위선자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누구나 자신이 살길은 모색하는 법이니까.

리온이 제대로 마법을 각성하기까진 꽤 시간이 남았다.

문양은 무조건 한 쌍만 존재했다. 반려가 겹치는 일은 없다는 소리다.

단 하나, 예외가 있다면 여주인공에게 나타난 문양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2명의 반려가 나타난다.

한 명은 리온 데이비스이고. 또 한 명은 장차 황제가 될 델테르 카베제르였다.

여기서 누가 남자 주인공이냐고 묻는다면, 뻔하지 않은가.

내가 누굴 주워 와서 보살피고 있는지 보면, 답은 나와 있었다. 여주인공은 마지막에 리온을 선택하게 된다.

금발과 흑발, 모든 남주인공의 외모를 대표하는 묘사이지 않은가.

하도 많이 나와서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어떤 소설을 읽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무엇보다 이곳이 소설 속이란 걸 깨닫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엘르.”

내 이름을 부르며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리온의 모습에 나는 숨을 삼켰다.

‘비현실적이야.’

이런 데 내가 어떻게 여기가 현실이라고 믿을 수 있겠어?

내 앞에 있는 이 말도 안 되는 외모를 가진 남자가 현실에선 존재할 리 없을 테니 말이다.

“너로 인해 내 세상이 달라졌어.”

“응?”

리온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니 난 내 작은 세상을 지킬 거야.”

“리온, 네 세상은 작지 않아.”

너는 지켜야 할 이들이 많아질 테니까.

지금은 잠시 내가 그를 사람들의 눈에서 숨긴 상태였다.

내가 그를 지켜 주고 있다지만, 나중에 우린 각자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맞아, 결코 작지 않아.”

리온은 금세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보,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나의 꾹 다문 입술로 리온의 시선이 옮겨졌다.

“엘르, 너도 나를…… 버릴 거야?”

그가 불현듯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버리는 게 아니야.”

“그럼……?”

“성인이 되면 누구나 자신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하는걸?”

“엘르도 그럼 성인이 되는 거야?”

“물론이지. 너도, 나도 성인이 되면 이곳을 떠나야 해.”

나 같은 경우는 리온과 다르게 떠나게 되겠지만.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게 된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적당히 맞는 가문과 결혼을 하게 되지 않을까?

딱히 결혼에 대해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어차피 그때쯤이면 리온은 여주인공을 만나게 될 테고 그들이 어떻게 되든 나는 내 삶을 살아가면 되니까.

그저 후에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남주인공의 덕을 좀 보고 싶은 것뿐이었다.

“엘르 그럼 성인이 되면, 우린 못 보는 거야?”

“음, 글쎄. 어쩌면 볼 수도 있겠지.”

어떤 사이로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주인공으로, 나는 주변에 너의 행복을 지지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 남게 될 확률이 높겠지.

“엘르는 나와 떨어지고 싶은 거야?”

“그렇기보단…….”

“나는 엘르가 없으면 안 돼.”

리온의 말을 꽤나 절박했다.

필사적인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럴 리 없어. 리온, 너는 내가 없어도 잘 살 거야.”

나는 의연하게 대처하려 했으나 찌르르 가슴이 아팠다.

그가 여주인공과 만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수반해야 할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온은 체념하듯 눈을 내리깔았다.

몇 번을 말해도 내 대답은 똑같았다.

“나중에 너도 크면 알게 될 거야.”

나는 해결되지 않은 대화 주제를 돌렸다.

오늘 준비된 간식은 리온이 꽤 좋아하는 것이었다.

“인제 그만 들어가자. 나 추워.”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할 수 없었다.

나를 쳐다보고 있는 리온이 금방이라도 상처받을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으니까.

‘너도 나중엔 내 말을 이해하게 되겠지.’

이 세상은 넓고, 나 말고도 너를 사랑해 줄 사람은 많다는 것을. 그리고 네 앞에 나타날 여주인공은 그 누구보다 널 잘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겠지.

‘미안함을 느끼는 건가. 이제 와 죄책감이라니.’

나는 두 손으로 내 두 뼘을 찰싹 때렸다.

“엘르, 왜 그래?”

리온이 깜짝 놀라 붉어진 내 뺨을 부여잡았다.

가까워진 그의 얼굴에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아무것도 아니야.”

“뺨이 붉어졌어.”

그의 이런 다정함도 나중엔 내 것이 아니겠지.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엘르,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는 내게 거절당했음에도 또다시 나를 붙잡았다.

나는 나직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넌 잘 살 거야.”

리온의 길게 내려온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불안해하는 모습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나로 인해 감정이 곤두박질쳐지는 그를 보면 충족감이 퍼졌다.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내가 네 곁에 있으면 정말로 널 가지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지 모르니까.

그의 곁에 언제까지 있을 수는 없다.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지금 내게 이래도, 내가 붙잡는다고 해도 떠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마음은 주지 않을 것이다.

상처를 받기는 싫었으니까.

결국 리온은 더는 나를 붙잡을 수 없었다.

툭 하고 내 옷깃을 잡아당겼던 그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엘르 님, 리온 님! 백작님께서 부르세요!”

때마침 우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놈의 인간은 왜 이렇게 요즘 들어 불러 대는 건지. 나는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손을 흔들었다.

“리온, 어서 가자. 늦으면 화낼지도 몰라.”

나는 이때다 싶어 리온의 손을 잡아당겼다.

리온의 입술이 달싹거렸지만 이내 그는 내 손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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