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120)

제10화

‘귀찮군.’

신경 쓰이게 하는 것도, 계속해서 앞에 알짱거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로 관심 갖지 말고 살자길래 그렇게 했더니 무슨 변덕이라도 생긴 걸까.

“거래하던 곳에 슬쩍 정보를 흘려 봐. 어떻게 나오는지 잘 보고.”

“……네?”

“못 들었나? 떠보란 이야기야.”

쓸모없는 아이라 생각했는데 꽤 이런 곳엔 촉이 좋은 모양이다.

“그런데 저 아이가 우리가 하는 사업을 어떻게 다 알고 있지?”

“그건 저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진행해 온 일들인데 어떻게 다 꿰뚫어 보고 있는 걸까.

리온 데이비스.

혹시 그 아이가 황실 쪽이나 다른 곳에서 보낸 스파이가 아닐까.

“요 근래 둘이 꽤 친해졌다고?”

“친해진 것뿐만 아니라 거의 매일 붙어 다니십니다.”

“잘 지켜봐.”

일곱 살 때면 모를까. 벌써 열 살이었다.

조금 있으면 성장기가 도래하지 않는가.

지금도 리온은 엘르보다 컸다. 후에는 얼마나 더 차이가 날지 모를 일이었다.

“엘르만 알아본다고 했던가?”

“예, 아무래도 특징으로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웃긴 놈이군. 별다른 특이점도 없는데 말이야.”

“뭐,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성인 되면 곧 나갈 아이인 걸요. 후원이라 생각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후원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다른 생각을 품고 있을까 그게 걱정이 된 것이다.

지금은 어려서 둘 다 모르겠지만, 문양이 생기기 시작하면, 원치 않아도 서로가 멀어지게 된다.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문양 앞에선 소용없었다. 그러니 그런 감정 따위 모르는 것이 나았다.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죽여도 좋아.”

“예? 하지만.”

“우리 가문에 위협이 되는 거라면 무엇이든 제거해도 좋다.”

“만약 그렇다 해도 사실을 알게 되면 아가씨께서 슬퍼하실 텐데요.”

에드가는 시종장의 말에 낮게 웃었다.

어차피 저를 웬수라 생각하는 딸이지 않나.

조금 더 나쁜 사람이 된다고 해서 다를 것도 없었다.

“상관없어. 죽여.”

“…….”

“뭘 망설이는 거지? 지금껏 우리가 해 온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인데. 이제 와 양심이라도 찾는 건가?”

에드가의 날 선 목소리에 시종 장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린아이 중에도 잘 훈련 받은 이들이 존재했으니, 그것도 합당한 의심이긴 했다.

어쩌면 또다시 백작가에 피 바람이 불지도 모르겠다.

* * *

“분명 이렇게 하면 된다고 했는데.”

리온은 펼쳐진 책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레이디의 마음을 훔치는 10가지 방법>이라 적힌 책을 덮으며 신음했다.

“순 거짓말이네.”

그는 백작가의 서고에 있는 책 중에 우연히 발견하게 되어 몰래 방에 들고 왔었다.

믿음은 안 갔지만, 그래도 한번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시도했었다.

“그랬더니 손등을 맞았지만.”

리온은 얼얼했던 제 손등을 떠올리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섹시하게 보이기는커녕, 엘르는 어린 동생이 건방진 것을 말리는 듯 행동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울을 보았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검은 머리카락과 커다란 눈망울, 그녀에게만 드러낸 붉은 눈동자. 새하얀 얼굴과 도톰한 입술.

저는 모르겠지만, 늘 엘르는 저를 보며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는 제 얼굴조차 볼 때마다 간혹 낯설게 느껴졌다.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습관을 외우고 다른 정보를 이용하여 구별해 왔다.

“이게 나인가? 하지만 내가 아닌 것 같아.”

리온은 제 얼굴을 가리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자신의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이 상황이 지옥 같았다.

“지치네.”

백작저의 몇 명 안 되는 시종들을 외우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엘르에게 붙은 사람들이 많이 없었기에 그마저도 가능한 일이었다.

대충 알아보는 정도에 끝나긴 했지만 조금이라도 외형이 달라졌다 싶으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리온은 거울을 보며 침음했다.

“이상하네, 분명 아름다운 남자가 하면 백발백중 통한다고 했는데.”

엘르의 말만 믿고 자신이 아름답게 생겼다고 단언하는 게 아니었다.

어쩌면 그녀는 제 기분을 위해 좋은 말만 늘어놓았던 걸지도 모른다.

역시 책을 믿는 게 아니었다.

리온은 고개를 숙이곤 엘르의 말을 되새겼다.

“성인이 되면…….”

그녀와 떨어지게 된다.

그는 그녀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평생 함께 곁에 있고 싶었다.

그녀가 어떻게 커 갈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선 어떤 표정을 지을지 나이 들어가는 엘르의 모습은 어떠할지 궁금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자꾸만 저를 몰아세웠다.

“성인이 되지 않는다면, 떠나지 않아도 되는 건가?”

아니, 그렇게 되면 백작이 저를 어디론가 입양 보낼지도 모른다.

다 큰 아이가 다시 갓난아기가 된다면 그야말로 저주받은 아이라 다들 놀랄 테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리온은 한 가지 잊고 있었던 엘르의 말이 떠올랐다.

결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결혼뿐이라고 했던가.

‘성인이 되면 문양이 나타날 텐데.’

엘르는 문양이 나타나지 않는 체질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 제가 문양이 나타나게 되면, 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말 거다.

누구인지 알아볼 수나 있을까?

아니,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조차 모를 것이다.

리온은 엘르를 알아봤지만, 연기를 하고 있었다. 자신의 치명적인 단점이 사라지게 되면 엘르가 내쫓을지도 모르니까.

“그럴 순 없어.”

리온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

그것은 제 의지가 아니었고, 제 진심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결심을 하고 만다.

누구든 제 반려의 문양이 나타나게 된다면, 발현되기 전에 죽여야겠다고.

* * *

훈련을 끝낸 리온이 정원에서 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피곤했나 보네.’

나는 나무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는 리온에게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예쁘다.”

눈을 감고 있음에도 완벽한 외모란.

하루 종일 그를 보고만 있어도 시간이 잘 흘러갈 것이 분명하다.

“엘르?”

“나 때문에 깼어?”

너무 빤히 쳐다본 탓인지 리온이 내 이름을 불렀다.

“어떻게 알았어?”

“날 이렇게 빤히 쳐다보는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까.”

리온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맞아, 그건 그러네.”

기다란 속눈썹에 그늘이 졌다. 스르륵 떠진 눈동자에 시선이 얽혔다.

오랜만에 보네, 붉은 눈동자.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어 내며 리온의 얼굴을 쳐다봤다.

“리온, 네 눈동자는 참 예뻐.”

“…… 그런 말을 해 주는 건 엘르뿐인걸.”

사람들은 말했다. 그의 붉은 눈동자 때문에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한다고 말이다.

실제로 그는 그 누구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 점 때문에 맘 편히 그를 주워 온 나였다.

그가 나를 기억하면 곤란할 테니까.

“그래서 내가 방법을 알려 줬잖아. 특징을 기억해서 외워.”

나는 리온의 하얀 뺨을 쓸었다.

잡티 하나 없이 고운 피부였지만, 상처가 여기저기에 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특징이 없는 사람들은 기억하기 힘든걸. 게다가 검은 머리는 숨길 수도 없잖아.”

“어둠보다 더 아름다운 네 머리카락을 놀리는 애들이 바보 같은 거지. 그건 이렇게 아름다운 너를 질투하는 거야.”

밤하늘을 빼다 박은 리온의 검은 머리카락에 나무 사이로 비추는 빛이 꼭 별들처럼 보였다.

“질투라…… 엘르, 넌 언제나 내가 생각할 수 없는 말을 내게 하곤 해.”

리온의 눈동자가 아득해졌다.

“…… 엘르, 난 괴물이야.”

나는 리온의 말에 입술을 꾹 닫았다. 그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종종 저를 괴롭히는 과거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죽음까지 내몰린 가족.

물론, 리온은 그들에게 가족의 일원이 아니었다. 그저 없애지 못하는 골칫덩이, 저주를 받은 아이. 가문의 수치.

차마 죽이지 못하는 무서운 존재.

리온을 쳐다봤을 시선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되었다.

“리온, 내게 넌 그냥 소중한 가족일 뿐이야.”

다른 이들은 몰라도, 나는 안다. 가족의 품을 그리워했던 어린아이였을 뿐이란 것을.

“넌 몰라…… 내가, 내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리온이 고통스러워하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 역시 모를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건 리온의 의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제 가족을 스스로 죽일 수 있는 이가 있겠는가?

리온은 그조차도 후에 알게 되었다. 그게 그에게 지우고 싶은 기억의 조각일지도 모른다.

그는 사람을 구별할 수 없었으니까.

심지어 그는 죽어가는 눈앞의 가족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었을 터.

그때 그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아마도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리라.

그날부터였다. 리온에게 저주받은 힘이 생겨난 것은.

불행의 서막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 그의 몸에 나타난 문양으로 인해 정해진 사랑에 빠지게 된다.

저주는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순간 풀린다.

동화 속 마법처럼 말이다.

“정말 내가 아름다워?”

리온이 내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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