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120)

제9화

“아가씨, 혹시 중간에 다른 거 하셨나요?”

“……아니. 나야말로 묻고 싶은 말이야. 어째서 내 것만 이 모양이지?”

분명 리온과 같은 틀로 찍어 냈는데, 하나같이 내 것만 모양이 이상했다.

귀여운 동물 모양을 열심히 찍어 냈는데, 어째서 마물들만 가득한 걸까.

“……맛은 똑같을 거야.”

“그, 그렇겠죠?”

디리아가 선뜻 쿠키를 잡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리온은 가만히 내 쿠키를 보더니 하나 집어 들어 와삭하고 베어 물었다.

“맛있어.”

“……정말?”

먹어도 안 죽겠지?

내가 만들었지만 먹기가 좀 그랬다.

뭐 어떻게 했기에 모양이 이런 거야?

“아무래도 아가씨, 후에 제과점 차릴 생각은 안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응, 나도 확실히 깨달았어.”

찻집이듯 제과점이든 나는 아니란 걸.

“우선 여기서 쉬고 계세요. 이것 좀 버리고 올게요.”

디리아는 엉망이 된 주방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리하면서 했지만 역시나 치울 게 산더미였다.

나는 디리아가 주방을 나서자 조심스럽게 리온에게 물었다.

“그런데 리온 정말 맛있어?”

“응, 모양은 이래도 맛은 있어. 내 것보다 더 맛있는데?”

“거짓말.”

기분은 좋았지만, 리온이 나를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는 리온의 쿠키를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사르르 녹아내리는 게 기분이 좋았다.

“와, 정말 리온 너는 못 하는 게 없는 것 같아.”

“엘르 네게 더 맛있어.”

리온은 초콜릿이 흘러내려 절규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동물 쿠키를 아무렇지 않게 입안에 넣었다.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 있던 나는 뭔가에 홀린 듯 그에게 다가갔다.

“여기 묻었어.”

입가에 묻은 초콜릿을 가리키자 리온이 눈을 깜빡였다.

붉은 혀가 입술을 가볍게 쓸더니 이내 손가락에 묻은 초콜릿을 핥았다.

“그러네, 여기도 묻었네.”

리온의 시선은 내게서 떨어질 기미가 없었다.

“그럼 씻…… 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제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손가락을 핥는 리온의 모습에 나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이건 아무래도.’

찰싹!

“뭐 하는 거야! 손에 세균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리온의 손을 쳐 내곤 미간을 좁혔다.

이렇게 위생 개념이 없어서야.

아무래도 예절 교육을 다시 해야 할 것 같다.

리온은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빤히 보았다.

얼얼한 제 손등과 함께 내게 이끌려 손을 씻는 내내 그는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나를 찾는다고 하여 열심히 피했는데,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쿠키로 화해라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왔다.

“이거 드세요.”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해라 했을 텐데. 그렇게 불러도 무시할 땐 언제고 이제야 고개를 내미는군.”

에드가는 내가 내민 쿠키를 보며 말했다.

사람이 주는데 면전에 대고 너무하시네.

나는 내밀었던 상자를 다시금 내 품으로 가져갔다.

“직접 만든 건데 싫으면 마세요. 그리고 왜 안 하던 행동을 하세요? 요즘 왜 이렇게 저를 찾으시나요? 정이라도 들었나 봐요.”

그는 내 뒤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쿠키로 시선을 고정한 그의 눈매가 누그러졌다.

“……직접?”

아니, 조금 더 의심스러워졌다는 게 맞으려나?

물론, 살가운 딸은 아니었지만, 독살을 한다든지 뭐 나쁜 생각이 있어 쿠키를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조금 친해지자는 의미에서 특별히 괜찮은 것들을 골라 왔는데.

불쑥 에드가가 내 품에 안긴 상자를 빼 들었다.

그는 제 손에 들린 상자를 보더니 쿠키 하나를 와삭 베어 물었다.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되는 걸까.

분명 리온이 맛있다고 했는데…….

“……정말 재주라곤 없군.”

“이리 줘요!”

그럼 그렇지.

에드가는 일그러지는 미간을 감추지도 않은 채 쿠키를 내려다보았다.

휴지를 뽑아 들더니 그대로 뱉어 냈다.

“줬다 뺏는 건 어디서 배운 거지?”

“아니 금방 제 앞에서 뱉었잖아요.”

“먹을 수 없는 음식을 주다니, 화해가 아니라 싸우자는 의미 아닌가?”

“그러니까 다시 주세요!”

“내게 줬으니 버리는 것도 내 마음이지.”

이익! 정말이지 대화를 나눌수록 비호감만 쌓였다.

나는 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걸 가져온 건지.

“리온은 맛있다고 잘만 먹었는데!”

“그놈은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는 모양이네.”

말하는 것도 어쩜 저리 인정머리가 없는지.

나는 얼굴을 와락 구기곤 에드가를 보았다.

지금도 보아라. 쿠키 하나에 저렇게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하고 있는 것을.

그러게 적을 적당히 만들었으면 걱정할 일도 없지 않은가.

“아무리 웬수라고 생각해도, 아버지를 독살할 생각은 없거든요?”

“이것 참 고맙군.”

영혼이라도 담아 주세요.

나는 턱하고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무효다. 절대로 나는 저 인간과 친해질 수 없을 것이다.

“됐어요, 됐어! 그렇게 맛이 없으면 버리세요.”

“내 생각까지 읽나 보군.”

에드가의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나를 비웃는 것이 분명했다.

내가 뒤도는 순간 쿠키는 휴지통으로 직행할 것이다.

“쓸데없는 이런 거나 하지 말고 정보상에서 일을 배워 보는 건 어때?”

“……제가 왜요?”

“그때 내게 준 정보 어떻게 알아냈을까. 이곳에 갇혀서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아이라 생각했는데.”

“저 잘 돌아다녔거든요? 그러는 백작님이야말로 왜 저한테 관심 가지세요?’

아버지라고 불러 대던 내가 백작이라고 하니 이상한 모양이다.

‘뭐야, 듣기 싫어하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보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말을 보니 내가 가진 정보가 꽤 도움이 된 모양이다. 하지만 암흑 길드와 같은 곳에 딸을 밀어 넣으려 하다니.

미친 인간이 틀림없다.

“보수는 10배로 쳐 주지.”

“됐거든요? 하고 있는 약 사업이나 접으세요. 카지노가 더 나을 테니까.”

나는 툭 하고 말을 던지곤 씩씩대며 방을 나왔다.

저놈의 인간 쿠키 먹다가 체해라.

리온이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이 분명하다.

맛있다고 해서 당당히 가져왔더니 속은 것이다. 아마도 에드가 역시 이번 일로 나를 더 안 좋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당분간은 근처도 가지 말아야지.”

나는 굳게 닫힌 문을 한 번 쳐다보곤 빠르게 방으로 향했다.

* * *

에드가는 가만히 쿠키 상자를 빤히 보았다.

씩씩거리며 잔뜩 화난 꼬마 아가씨는 오늘 일로 꽤 마음이 상해 보였다.

“그냥 맛있다고 하지 그러셨습니까.”

“먹어 봐.”

그는 쿠키 하나를 헤링턴에게 건넸다.

살짝 탔긴 했지만 제법 맛있는 향이 났다.

아무런 의심 없이 베어 물었던 그의 얼굴이 굳었다.

“……저도 휴지를 좀.”

“먹어. 누가 먹으라고 권했었나?”

헤링턴은 하는 수 없이 입안에 있던 쿠키를 꿀꺽 삼켰다.

설탕 대신 소금을 들이부은 것인지 짠맛 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어떻게 할까요?”

“버려, 그럼 내가 이걸 먹을 거라고 생각했나?”

“……그건 아니지만. 요즘 따라 꽤 유해지신 것 같았습니다.”

그럴 리 없었다.

제 어미를 쏙 빼닮은 엘르 나타시아를 한 번도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애를 보기만 해도 제가 사랑했던 여인이 생각났으니까.

남들이 뭐라 하던 둘은 사랑했다.

몸에 나타난 문양 때문에 이루어진 결혼이었을지라도, 둘은 후회하지 않았다.

“그럴 리가.”

“백작님…….”

에드가는 툭 하고 쿠키 상자를 휴지통으로 밀어 넣었다.

무슨 일로 저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는지 모르겠으나 정을 줘서 좋을 게 없을 것이다.

그녀도 역시 반려가 생기면 떠날 가족이었으니까.

“미약을 포기하라니. 어떻게 생각하지?”

“아가씨의 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럼 저번의 일은 어떻게 보지?”

“우연의 일치이지 않을까요? 아가씨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에드가는 문밖으로 씩씩거리며 나가던 엘르가 신경 쓰였다.

슬쩍 옆을 쳐다보니 휴지통으로 떨어져 깨져 버린 쿠키들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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