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120)

제4화

“버려진 걸 주워 왔다지?”

나는 또다시 불려 온 에드가의 앞에서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버려진 거라니! 저놈의 주둥이를 어떻게 순화시킬 순 없을까.

리온이 옆에 없는 것이 다행인 순간이다.

“요즘 왜 이렇게 저에게 관심이 많으세요? 방치할 땐 언제고…….”

나는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피했다.

“어디까지 얌전히 박혀 있었을 때의 이야기지. 자꾸만 귓가에 이야기가 들려오니 어쩔 수 있나?”

에드가는 내 말에도 무신경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고저 없는 목소리는 무뚝뚝하기 짝이 없었다.

감흥도 호기심도 없어 보였다.

“지금처럼 지내요!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어요.”

“바라는 게 있어서도 안 되지.”

에드가의 말이 매정하게 들려 말문이 막혔다.

서러울 것도 없는데 괜스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누가 뭐 바란데?’

그럼에도 그는 할 말이 남았는지 턱을 괴곤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가 입술을 달싹이며 내게 말했다.

“다시 버려. 주인도 없는 걸 주워 와서 말썽이라도 부리면 어쩔 거지?”

“그럴 리 없어요!”

“장담하는 건가. 일면식도 없는 아이를 뭘 믿고.”

그는 내 단호한 말에 픽 하고 웃었다.

에드가는 종종 메마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체 왜 저렇게 무섭게 웃는 거람.

차라리 웃지 않는 게 나을 것이다.

“그냥 잠시 데리고 있다가 나중에 내보낼 거예요.”

“누구 마음대로.”

“제, 제 마음대로…….”

“여긴 내 집이고, 너는 내 돈으로 먹고살고 있다는 걸 잊었나.”

이씨. 치사하게.

에드가는 마치 나를 얹혀사는 하찮고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있는 듯했다.

곱씹어 볼수록 괘씸하지 않은가.

“가, 갚을 거예요!”

커서! 내가 투자한 자금이 어느 정도 모이면! 갚을 생각이었다.

“갚아?”

나는 보았다. 에드가의 조소를.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그의 미소에 나는 피가 거꾸로 솟았다.

“갚을 거라구요!”

에드가는 나의 외침에 조금은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뭐가 그의 마음에 든지는 모르겠지만, 악에 받친 목소리가 싫진 않은 모양이다.

정말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야.

“어떻게.”

“그…….”

“뭘 해서.”

“그러니까.”

“자세하게 이야기해 봐.”

그는 들고 있던 펜을 책상 위에 툭 하고 내려놓았다.

팔짱은 낀 모양새가 내 입에서 기필코 답을 듣고 말겠다는 태도였다.

‘어쩔 수 없나……?’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소설 속 내용을 잠시 사용하기로 했다.

“양피지 사업이요. 그거 정리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에드가는 그 누구에게도 사업 관련 일은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하는 모든 일을 알고 있었다.

닥칠 시련까지도 말이다.

“봐, 봤어요. 지금 쓰고 계시는 것도 양피지잖아요!”

“이건 귀족들이라면 누구나 쓰고 있지.”

“그리 값싼 용품은 아니지 않나요……? 하지만 저희 집에는 여기저기 널려 있으니까요.”

“그거 하나로 유추를 했다?”

나는 에드가의 집요한 질문에 끙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현재 양피지는 귀족들에게 많이 통용되는 물품이었다.

고풍스러움과 함께 촉감도 좋았고, 종이의 수출이 막힌 지금 양피지만큼 사랑받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곧 양피지 사업은 망하게 된다.

남쪽에서부터 알 수 없는 병이 돌아 동물들이 떼거지로 죽음을 당하기 때문이었다.

가죽이야 벗겨서 소독하여 사용하면 되었지만, 귀족들은 그런 것조차 찝찝하게 여겼다. 게다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종이를 수출하는 나라와 갈등이 조만간 해결되어 공급이 원활해진다.

양피지보다 가격도 저렴한 데다가 필기감까지 나쁘지 않았으니 사람들은 다시 종이를 찾게 된다.

“그냥 가문에서 사업을 많이 하니까 찔러본 거예요.”

“웃기는 군.”

에드가의 가소롭다는 표정에도 나는 말을 이어 나갔다.

여기서 멈추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지 않는가.

무슨 일이 있어도 리온은 이곳에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그는 까딱 손가락을 움직였다. 내게 계속해서 말해 보라는 듯했다.

흥미가 생긴 모양이다. 그것도 아니면 겁도 없이 재잘거리는 입이 언제 멈출지 테스트하려는 걸지도 모르지.

“종이를 싸게 선점하여 구입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이유는.”

이쯤에서 나는 머리를 굴려야 했다.

명석하게 대답하면 의심을 살 것이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도 의심을 살 것이다.

적당하게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이유를 대야 했다.

“동물이 불쌍하잖아요!”

“그래, 네 쓸데없는 이야기를 들은 내 시간도 불쌍하지.”

“한 가지 더 있어요! 제가 밖에 요즘 돌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들었어요.”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에드가가 슬며시 벽에 잘 걸려 있는 가문의 검을 보았기 때문이다.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

“시장에서 동물을 파는 상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정말이에요.”

“제대로 말해.”

“동물들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서 시름시름 앓고 있다고 했어요.”

에드가는 제 옆에 서 있던 기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에게 확인이라도 받으려는 모양이다. 이건 사실이었다.

내가 짜깁기하여 말한 거긴 했지만, 상인들이 흘러가는 말로 하는 것을 분명히 들었다.

“아, 그런 말을 얼핏 들은 것 같습니다. 마구간에서도 말이 요즘 죽어 나간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기사의 기억력도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들키지 않게 숨을 골랐다.

‘돼, 됐다!’

제법 신빙성이 있었는지 에드가의 얼굴이 한결 누그러들었다.

“제법 촉이 좋은 모양이군.”

“아버지를 닮았나 보죠. 제 가문이 정보상을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요.”

“눈치도 있고.”

그의 푸른색 눈동자가 이내 내게서 떨어졌다.

“가 봐. 그 아이에게 관심 없으니. 거슬리지 않게 하고.”

“좋아요! 저도, 리온에게도 관심 꼭 끊어 주세요. 없는 사람처럼 지낼 테니까요.”

에드가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휙휙 저었다.

그가 양피지 사업을 접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겐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리온이 여기서 머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 * *

에드가만 잘 구슬리면 한결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는 굳게 닫힌 리온의 방 앞에서 한숨을 푹푹 내뱉었다.

그와 친해지는 것은 꽤나 정성이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그는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톱을 드러낸 고양이와도 같았다.

“들어가도 돼?”

리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문에 기대어 다시금 물었다.

“정말 안 돼?”

“……돌아가.”

“얼굴 보고 싶은데.”

“거짓말 마.”

“정말이야. 네 얼굴을 봐야 힘이 날 것 같아! 나 오늘 허락도 받고 왔는데.”

힘없이 축 처진 어투로 방문에 대고 말했다.

잠시 그가 대답을 하지 않는 듯하더니 끼익하고 문이 열렸다.

후다닥하는 소리와 함께 리온은 모습을 감췄지만.

‘귀엽긴.’

숨은 이불 사이로 발이 꼼지락거리는 게 보였다. 황급히 들어간 탓에 다 숨지는 못했나 보다.

“리온, 계속 침실에서 안 나올 거야?”

“…….”

“여기 맛있는 음식도 가져왔는데.”

“……다른 사람과 함께 왔잖아.”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는 내 옆에 있는 디리아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을 데려올까?”

“……싫어.”

그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럼, 디리아도 내보낼게.”

“정말……?”

“응, 하지만 너 씻어야 해.”

“…….”

리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발가락이 움직임을 멈춘 것을 보니 꽤 당황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꼬질꼬질하게 계속 씻지도 않고 있을 순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두 팔을 걷어붙였다.

“너 자꾸 그렇게 버티면, 내가 확 옷 벗기고 씻겨 버린다?”

화들짝 놀란 리온이 이불 안에서 움찔했다. 더욱 이불을 꽁꽁 부여잡으며 빈틈을 내어 주지 않았다.

나는 결국 기사들을 불러와 이불 채로 리온을 들게 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기회를 줬잖아. 네가 하도 싫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

나의 명령에 기사들이 이불을 들고 욕실로 향했다.

준비된 욕조에 이불을 털어 내자 옷을 입은 채 물에 풍덩 하고 리온이 빠졌다.

“……하아.”

젖은 머리칼과 함께 흰 옷에 몸이 고스란히 비췄다.

나는 두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았다.

“헉! 아가씨!”

디리아가 황급히 내 눈을 가리곤 욕실 밖으로 쫓아냈다.

나는 멍한 얼굴로 뒤돌아 문을 두드렸다.

“치사하게 왜 나만 내보내!”

“아가씨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방에 가 계세요!”

“리온, 내가 씻겨 줄게!”

“돼, 됐어! 디리아가 도와준다고 했어.”

리온이 기겁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터덜터덜 방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디리아와 리온이 꽤 친해질 것 같았다.

“아아! 아쉬워! 내가 더 친해졌어야 하는데!”

나는 침대에 엎드려 버둥거렸다.

그 모습을 디리아만 볼 수 있다니, 아쉬워 미칠 것만 같았다.

홱 하고 몸을 돌려 천장을 보았다.

“역시, 빨리 친해져야겠어. 너무 귀여워.”

얼굴을 붉히고 몸을 움츠렸던 리온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헤벌쭉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정말, 동생이 있다면 저런 느낌일까.

아무래도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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