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벌써 1년이 지났어.’
사방팔방으로 그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지만 실패였다.
나는 의자에 늘어진 채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아직 일이 일어나지 않은 건가?
똑똑.
“아가씨, 백작님께서 부르십니다.”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는 내 아버지란 작자는 인정하기 싫지만 나와 똑 닮았다.
그의 피가 섞였으니 당연하겠지만, 나와 비슷한 얼굴로 무섭게 내려다보는 것은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갑자기 나는 왜? 하긴 그러고 보니 제대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한 적은 없었던 것 같네.’
나는 폴짝 의자에 내려와 옷을 툭툭 털었다.
뭐든 꼬투리 잡을 만한 것은 없애야 했다.
우연히 마주칠 때면 느릿하게 움직이는 눈동자가 나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에드가의 눈빛은 볼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안 가면 안 돼?”
빼꼼 문을 열고 디리아를 보았다.
영락없는 꼬마가 투정 부리는 걸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 인간을 아침부터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게다가 더욱이 나를 따로 불러낸 적이 없었던 인간이 부른다면 당연히 수상쩍지 않은가.
“아가씨, 백작님께서 부르신 건 이유가 있을 거예요. 처음이잖아요! 관심이라도 생겼을지도 몰라요.”
“내 말이 그 말이야. 관심도 없더니 왜 갑자기 찾고 그런데?”
툴툴거리는 내 모습에 디리아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애정을 받지 못해 삐뚤어진 아이처럼 보이려나……?
“그냥 단지 안 하던 행동을 해서 의아한 것뿐이야.”
“으음……. 아마도 최근 들어 자주 밖에 나가는 것 때문이지 않을까요?”
“일러바쳤어?”
“그럴 리가요.”
디리아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녀가 아니라면, 기사들이 분명하다.
나는 억울한 표정으로 기사들을 보았다.
시선을 피하는 것을 보니 그들이 맞나 보다.
‘치사하게 일러바치고.’
리온을 찾기 위해 매주 한 번, 많으면 두 번 시내에 나갔다.
원하는 것을 사기 위해서였지만, 그는 딱히 제재를 가하지 않으셨다.
원체 나에게 관심조차 없었으니까. 내가 뭘 하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비밀로 해 준다고 해서 마음 편히 돌아다녔는데!
잦은 외출에 찔린 건지 기사들이 넌지시 말을 한 게 분명하다.
“백작님께 허락을 받아서 좀 더 편하게 외출하시는 건 어떠세요?”
“관심도 없을 텐데.”
나는 휘적휘적 걸으며 문 앞에 섰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란 사람이 제니스와 리온의 사이를 들쑤시지만 않았어도 나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겐 반려도 없을뿐더러 꽃다운 나이에 죽게 된다.
델테르 카베제르의 손에 무참히 연회장 테라스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벌 받은 거지 뭐.
그런데 왜 내가 아버지의 벌을 받아야 하지? 이건 좀 억울한데!
델데르 카베제르, 이 나라의 황태자. 그는 자신의 배다른 누이인 제니스 아벨 보티나를 사랑했다.
처음부터 누이인 것을 알고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밖에서 만난 제니스에게 반해 버린 델테르는 몰래 짝사랑을 키워 갔다. 그러던 중 제니스가 황녀로 오게 되자 그는 크게 분노했다.
사랑이 이뤄질 수 없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다정한 서브 남주였던 모양이다.
여주인공을 사랑해 두 사람의 행복을 응원해 주기로 한 것이다. 그 길엔 내가 존재해선 안 되었다.
언제든 둘의 꽃길을 막을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한 짓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각종 마약을 몰래 수입하여 팔고, 노예 시장을 개척하였고, 황실에 대적할 만한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었다.
물론, 이러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이었다.
아버지는 정보상을 차리곤 겉으로는 멀쩡하게 보이는 일들을 해 왔다.
정보상의 규모도 컸고, 황실에 세금이나 꼬투리 잡을 만한 빈틈도 주지 않았기에 지금껏 살아올 수 있었다.
만약 이 모든 것이 들키게 된다면…… 지금 당장 목이 떨어져 나가도 이상할 게 없을 것이다.
‘핏줄이 웬수지. 웬수야.’
그렇다고 도망을 가자니, 내가 갈 곳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작은 내 손을 보며 꼼지락거렸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할 생각을 하니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이렇게 된 이상 당당하게 요구하고 말겠어.
천천히 열리는 문과 함께 나는 비장하게 집무실로 들어섰다.
나와 같은 붉은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남자가 보였다.
‘저 망할 웬수.’
그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보며 가소로운 듯이 미소 지었다.
“도둑고양이가 온 모양이군.”
도둑고양이? 도둑고양이이?!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하는 나를 보며 내뱉은 단어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나의 얼빠진 표정에 그가 픽 하고 웃으며 말했다.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오늘도 어김없이 나를 빠르게 훑었다.
“내게 할 말이 있나 보군.”
많지, 많고말고. 나는 앙다물었던 입을 떼어 내곤 소리쳤다.
“이, 이 웬수야!”
나의 우렁찬 외침에 모두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의 미간이 꿈틀거리며 일그러졌다.
“아…… 이게 아닌데.”
나는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이미 입 밖으로 나간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디리아의 창백해진 얼굴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래, 나도 알아.’
아버지란 작자는 손에 들은 펜을 내려놓았다. 제법 재밌는 얼굴을 하고선 나를 응시했다.
“그게 아니라.”
“웬수라…… 내게도 네가 그런 존재지.”
그는 딱히 뭐라 하지 않았다.
자기도 지지 않고 웬수라고 말해 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서로 웬수니 퉁 쳐요!”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야 싫어도 핏줄이니까요? 저도 제가 태어나고 싶어서 이 세상에 눈뜬 건 아니거든요.”
내가 그렇게 싫었으면 씨를 뿌리지 말았어야지.
내가 태어난 것엔 당신의 책임도 있다고.
방치하는 거야 뭐라 안 할 테니 이대로 날 좀 내버려 뒀으면 하는데.
나의 당찬 말에 아버지의 표정이 미묘하게 뒤틀렸다.
“아, 아가씨.”
디리아가 황급히 나를 말렸지만 터진 입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제 외출을 막을 거라면!”
“위험하니 기사를 더 붙여 주지. 네가 어디 가서 죽기라도 하면 곤란해서 말이야.”
죽는다니. 거참 말 예쁘게 하시네.
나는 에드가의 말에 씩씩거리며 허리에 손을 올리곤 노려보았다.
내가 죽기라도 바라는 것처럼 귀찮아하는 모양새에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제가 죽으면 편한 거 아닌가요?”
“그건 내 손에 다른 이들 몰래 죽었을 때 말이지.”
저, 저!
나는 황급히 내 목을 감싸며 뒤로 물러섰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혈육인데 말하는 투 좀 보게!
이건 마치 비뚤어진 집착과도 같지 않은가. 나만 널 죽일 수 있어. 이런 건가?
에드가는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시선을 떼어 냈다. 그럼에도 빤히 응시하며 나가지 않는 나를 보며 그가 덧붙였다.
“일주일에 한 번. 그 이상은 안 돼.”
“……정말요?”
나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다른 곳에서 사기를 치고 다닐지도 모르는 사람을 한 번에 믿어서야 되겠는가.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게슴츠레 뜬 나를 빤히 보며 펜으로 툭툭 책상을 쳤다.
“왜? 허락해 준다고 해도 싫은 모양이지?”
“아니요! 그것 때문에 부르신 건가요?”
“그래, 몰래 도둑고양이처럼 다니는 모양새가 썩 좋아 보이진 않아서 말이지. 그것도 고작 여섯 살밖에 안 된 아이가. 백작가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행동은 해선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
오, 내 나이도 알고 있었네? 이건 의외였다.
“나이도 알고 계셨네요. 그 정도의 관심이면 되었어요. 저희 평소대로 지내요. 이런 행동 낯설게 느껴지네요.”
“그러도록 하지. 하지만 거슬리는 짓을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내 눈과 귀가 되어 주고 있으니.”
“치사하게 뒤에서 이야기 듣고 하지 마세요. 그것도 꽤 위상이 떨어지는 행동 같으니까요.”
나는 한마디도 지지 않고 맞섰다. 뭐, 죽일 테면 죽여 봐라.
‘지, 진짜 죽이진 않겠지.’
당당하게 치켜든 내 턱에 에드가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황급히 디리아가 나를 들쳐 엎고는 인사를 올리고 문을 나섰다.
나는 에드가를 바라보며 손을 뻗어 귀를 막으며 씨익 웃어 보였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기사들의 표정이 싸악 굳은 채 에드가를 쳐다보았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디리아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 이 자리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