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공녀님 (104)화 (104/123)

#104.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도 전부터 요제프가 들어서는 줄 알고 있었다.

샬롯은 화장대 앞에서 몸을 돌려, 방의 입구로 들어오는 요제프를 바라보았다.

스물두 살의 요제프는, 미청년이라는 호칭이 절로 연상되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랐다.

그런 데다 공식적인 외교 연회에 참석했다가 돌아온지라 한껏 꾸민 차림인 그는 정말 치명적으로 아름다웠다.

어릴 때는 그냥 요정 같았다면, 이젠 제법 남자로 보였다.

길게 기른 적도 있던 머리카락은 짧게 잘라 단정하게 다듬었다. 그 아래로 어린 시절의 야리야리함이 모두 사라진 남자다운 얼굴이 있었다. 동글동글한 얼굴은 제법 각이 졌다.

흰 튜닉 위에 늘어뜨린 검은 천과 그 위에 검은색과 남색 실로 자수를 넣어 만든 흰 타블리온을 걸친 모습에서 이젠 제법 황족의 태가 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키가 훌쩍 컸다.

샬롯은 다 큰 뒤에도 같은 또래 여자와 비교하면 그리 큰 키는 아니었는데, 요제프는 키가 제법 자라서 샬롯과는 두 뼘 이상 차이가 났다.

요제프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작은 바람에도 사락사락 흔들리는 분홍색 머리카락을 한 줌 집어 들어 거기에 키스했다.

“다녀왔어.”

베티는 얼굴이 붉어져선 재빨리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하지만 요제프가 자주 그런 짓을 하곤 했기 때문에, 샬롯은 별다른 생각 없이 그가 뭘 하든 내버려 두었다.

그런 것보다 그녀는 요제프의 장성한 모습을 바라보는 일을 즐겼다.

‘하지만 여전히 뽀얀 피부와 까만 머리카락의 대비가 제법 요정 같긴 해. 아직 내 눈엔 아기라니까?’

샬롯이 저도 모르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작게 헛기침하며 가리는데, 요제프가 그 잠깐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또, 그 생각 했지?”

“……어?”

“또 이상한 생각 했잖아.”

“아닌데? 이상한 생각? 전혀 아닌데? 그냥 내 새끼, 정말 잘 컸구나. 이런 흐뭇한 생각만 했는데?”

샬롯이 뻔뻔하게 응수하는 말에, 요제프가 인상을 팍 구겼다.

“오랜만에 보는 건데, 꼭 그런 이상한 소리를 해야겠어?”

‘괜히 웃었다가 혼났네.’

샬롯은 혀를 빼꼼 내밀었다. 요제프는 유독 ‘엄마 미소’니, ‘내 마음으로 키운 새끼’니, ‘누님’이니 하는 말을 할 때마다 저렇게 툴툴거리곤 했다.

실질적인 나이로 따지면 요제프가 나이가 더 많았으니까, 그렇게까지 듣기 좋은 이야기가 아니리란 건 알지만 이상하리만큼 민감한 느낌이 있었다. 더한 말도 샬롯이 하는 다른 이야기는 그냥 농담으로 듣고 넘기면서.

샬롯이 어깨를 으쓱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티가 한 시간 내내 매만져 준 머리카락은 한 올, 한 올이 매끄럽게 결이 살아 있었다. 그녀가 살짝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부드러운 실타래 같은 분홍색 머리카락이 어깨를 타고 사르륵 흘러내렸다.

요제프는 샬롯이 입은 어깨가 드러나는 가벼운 드레스며 그녀의 머리카락이며, 부드럽게 볼터치를 한 얼굴을 눈부시다는 듯 바라보았다.

“예쁘네.”

“그래?”

“응.”

“베티가 극성을 부린 보람이 있네. 베티가 네 마음에 들어야 한다면서, 자꾸.”

“자꾸?”

“……아니야.”

요제프는 샬롯이 이 약혼의 끝이 뻔하다는 듯 이야기하는 것도 제법 싫어했다.

샬롯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결말을 아는 거나 다름없었지만, 모처럼 먼 길을 다녀오느라 고생한 요제프의 심기를 이 이상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녀는 작게 고개를 젓곤 뛰어들듯 침대 위에 몸을 던져 누워 버렸다.

넓고 얇은 드레스 자락이 꽃잎처럼 허공에 나부꼈다가 다시 가라앉았고, 늘씬한 샬롯의 다리가 그 사이로 훅 드러났다가 다시 가려졌다.

요제프는 뭔가에 깜짝 놀란 사람처럼 샬롯의 반대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로테!”

그가 또 잔소리를 늘어놓을까 봐, 샬롯은 얼른 침대 위에 쭉 늘어져 있던 책 중 아무거나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집어 들고 보니, 그건 경제 관련 서적이었다.

샬롯은 요즘 줄곧 경제니, 정치니 하는 것들에 대한 수업도 듣고 있었다.

아직, 세티야 가는 그녀가 아홉 살일 때와 똑같이 그대로였다. 가주 후보자를 추리겠다는 10년 전의 선언 이후로는, 이상할 정도로 가주 승계에 관한 이야기가 추가로 나온 게 없었다.

하지만 원작대로라면 머지않아 곧 카밀라가 물러나고 다음 가주에게 자리를 승계하기 위한 시험이 치러진다.

샬롯은 아직도 제가 가주 자리를 노린다고 생각하면 이상한 기분투성이였지만, 일단 시도를 해 보겠다는 마음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제게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지식들을 습득하고 있었다.

물론 그 지식을 토대로 벤을 통해 자산을 불리는 것도 쏠쏠했기 때문에, 원작을 아는 샬롯에게 이 사회를 파악하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샬롯이 대뜸 책을 집어 들어 읽기 시작하자, 요제프가 불만스러운지 고개를 저었다. 부드러운 흑발이 가볍게 공기에 흩날렸다.

“갑자기?”

“어차피, 보고도 하고 와야 하고. 너도 바쁘잖아. 나 잠깐 봤으니까, 부모님께 먼저 인사드리고 와. 너, 또 아렌느 님도 안 뵙고 나한테 제일 먼저 달려왔지?”

다 안다는 듯 샬롯이 누운 채로 중얼거리는 말에, 요제프는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샬롯은 들고 있는 책에서 제가 읽었던 부분을 찾아내며 작게 웃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거짓말은 못 하는 편이었다.

둘이 너무 친한, 없으면 안 될 단짝 사이가 되어서 약혼까지 하고 서로의 가족이 되겠다고 선언했던 건 좋았다. 좋은데…… 워낙 어린 시절의 일이었다. 무려 10년 전의 일이었다.

샬롯은 언제까지나 그 약속이 계속 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요제프에게 정해진 인연이 있기도 했고.

가끔 요제프가 로테 너만 있으면 된다는 듯 굴 때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방어적으로 이런 말들이 나와 버리곤 했다.

나중에, 다시 관계를 정립하는 건 피곤한 일이니까. 그냥 지금부터 거리를 조금 유지해 두면 좋으니까.

‘뭐…… 이미, 다 늦어 버린 것 같기도 하지만.’

샬롯이 그런 생각을 하며 겨우 읽던 곳을 찾아내 손으로 거길 짚으며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요제프는 샬롯의 말대로 방을 떠날 생각은 없는지, 그녀를 뚱하니 바라보았다.

요제프는 샬롯이 뭔가를 하고 있을 때 방해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냥 대형견마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곁에 머물 뿐.

이번에도 요제프는 샬롯이 보고 있는 것을 들여다보고 싶은지, 그녀 옆의 빈자리로 몸을 밀어 넣고 들어왔다. 그러곤 책을 들고 천장을 향해 누운 샬롯의 옆에 그 커다란 몸을 붙이고 옆으로 누웠다.

샬롯의 입장에선, 고개만 돌려도 당장 입술끼리 부딪칠 거리에 요제프의 얼굴이 있는 모양새가 된 거다. 요제프의 청량한 체향이 코끝을 부드럽게 간질였고, 그의 숨결이 볼에 와 닿는 게 간지러웠다.

이렇게 요제프와 나란히 누워 있는 건 솔직히 대형견을 안고 있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 나름대로 기분 좋은 일이었다. 샬롯은 더 이상 요제프에게 빨리 인사하고 오라고 재촉하는 대신, 나른한 기분으로 책장을 넘겼다.

사락.

쪽.

책장을 넘기는데, 요제프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췄다.

탁.

샬롯이 책을 신경질적으로 덮고 요제프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마와 이마가, 코끝과 코끝이, 입술과 입술이 그대로 맞닿을 듯 가까운 거리였다. 새까만 눈동자 속에 그녀의 연두색 눈동자가 비칠 수도 없을 정도로, 서로의 가까운 거리 때문에 눈동자에 그림자가 질 정도로.

“요제프, 내가 분명히 말했지. 이거 나쁜 습관이라고. 나랑 이렇게 뽀뽀하는 거…… 이거……”

샬롯이 마치 강아지 훈련이라도 하듯 단호한 어조로 어릴 때부터 10년 동안 타이르고 있는 말을 다시 반복하는데, 요제프가 까만 눈동자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문득 목을 슬쩍 들어 고개를 더 가까이 기울였다.

대번에 입술과 입술이, 거의 겹쳐지려는 정도로 가까워졌다.

샬롯이 저도 모르게 말을 딱 멈추자, 요제프가 그 상태 그대로 그녀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눈과 눈이 너무 가까웠다. 눈 속에 길게 번져 있는 무지개와 같은 홍채까지 모두 다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지긋한 시선이었다.

그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요제프가 매달리듯 그녀의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깨물어 제 입속으로 빨아들였다 놓았다. 말캉거리는 감촉에 이어, 풀 내음을 닮은 요제프의 체향이 입 안을 맴돌았다.

“왜?”

요제프가 입술을 맞댄 채로 속살거렸다.

“……요제프! 내가 계속 말했지만……”

“계속 말해. 계속 뭘?”

“너……”

샬롯이 다시금 타이르려는데, 요제프의 긴 속눈썹이 아래로 사르르 감겼다. 샬롯은 그다음에 벌어질 일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면서도, 몸을 피하지 못하는 자신도 나쁜 습관에 길든 것만은 틀림없었다.

천천히 다가온 입술이, 샬롯의 입술 위를 깃털처럼 톡, 두드렸다. 그러곤 다시 한번 더 두드리고서야 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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