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공녀님 (78)화 (78/123)

#78.

“두 작은 거인의 모습을 담은 그림입니다!”

“1하스론만 내시면 두 작은 거인의 이야기를 불러 드려요!”

샬롯과 요제프는, 소란의 중심에서 멍하니 멈춰 섰다.

“……이게 다 뭐야?”

샬롯이 얼빠진 목소리로 물었고, 요제프도 뭐라 대답하면 좋을지 모르겠는지 한참이 지나서야 중얼거리듯 답했다.

“평소에도 퍼레이드에 사람이 많이 오긴 하지만…… 올해는…… 상식적인 선이 아닌데.”

세티야 가의 표식이 자수 놓인 망토를 안감과 겉감을 뒤집어서 머리에 뒤집어쓴 샬롯과, 마찬가지로 황실의 표식이 자수 놓인 망토를 뒤집어서 두른 요제프는 아슬란 위에서 아연한 신음을 흘렸다.

허기를 참다 참다 못한 샬롯이 요제프를 데리고 아슬란을 타고 나온 것까진 분명 완벽했다.

모처럼 요제프의 호위 기사 둘까지 따돌린 마당에, 오붓하게 둘이서 맛있는 것을 사 먹으며 시간을 보내자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비브로슈의 중심 상점가가 가까워져 오면 올수록 인파가 많아진다 싶더니 어느 시점에서부턴 아슬란이 도저히 앞으로 나아가질 못할 정도가 되었다.

“……아니. 내 방에 정말 맛있는 디저트가 많은데…….”

샬롯이 기가 막혀서 불평을 토로했다.

퍼레이드가 대체 뭐라고 요제프도 당황해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 있다니.

사실 샬롯과 요제프는 상세한 의미를 몰랐기에 다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 둘이 몰고 온 이번 대회의 파장은 대단했다.

사실, 통상적으로 이만한 인파는 없는 게 맞았다.

체이커 국의 수도 비브로슈까지 몰려들었던 인파들은 보통 당일에 각자의 거주지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 관중들이 다음 날의 퍼레이드까지 꼭 봐야겠다며 갑자기 일정을 바꿔 숙박업소로 몰려든 게 오늘의 이 광경을 만든 거였다.

갑작스러운 성황에 숙박업소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지만, 없는 방까지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샬롯과 요제프 커플을 응원하는 이들이 선술집마다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들끼리 의기투합하여 모르는 사람끼리 방을 함께 쓰는 경우까지 생겨나는 기이한 현상 덕에, 오늘 아침 거리에는 굉장한 인파가 몰려 있게 된 거다.

당연히, 퍼레이드가 시작되는 비브로슈의 가장 중심 대로변의 인파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만세!”

멍하니 샬롯이 넋을 빼고 바글바글한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어디에선가 난데없이 만세 소리가 튀어나왔다.

“샤를로테 님, 만세!”

“만세! 작은 거인들 만세!”

“칼그림자의 날 만세!”

“만세! 요제프 황자님, 만세!”

별것 아닌 작은 함성이, 순식간에 불을 지피듯 사람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군중들이 손을 위로 들어 흔들자, 지금까진 통일된 특성이 하나도 없는 하나의 군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들의 손에 모두 같은 깃발이 보였다.

‘……저건.’

샬롯은 수십, 수백 개의 동시에 흔들리는 깃발을 보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둘의 눈이 닿는 곳곳에 샬롯과 요제프를 상징하는 붉은색과 검은색이 섞인 깃발이 여기저기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그제야 식당이고 옷 가게고 민가고 할 것 없이, 붉은색과 검은색의 깃발을 나란히 꽂아 뒀다는 사실도 눈에 들어왔다.

샬롯은 길게 숨을 내쉬었지만, 눈가에 고이는 눈물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사람 수가 많으니까, 그리고 그 사람들이 동시에 저렇게까지 기대와 응원을 담아 하나의 목소리를 내주니까…….

그게 이상하리만큼 심금을 울렸다.

샬롯은 손부채질을 하며 망토를 더 꼭 눌러쓰곤 작게 요제프를 불렀다.

“……요제프.”

“응.”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해 오며, 요제프는 그녀를 위로하듯 등 위에 손을 올려 주었다.

그녀는 눈물을 말리려 애쓰면서, 그에게 말했다.

“있잖아, 요제프.”

“응.”

“돌아가자.”

“응.”

샬롯은 언제나처럼 담담한 대답이 돌아오는 것에, 작게 웃으며 속삭였다.

“이번엔 왜냐고 물어봐 줘.”

요제프는 순순히 그녀의 주문을 들어주었다.

“왜? 왜 돌아갈 생각이 들었는데?”

“네 이름을 이렇게 듣는 게, 너무 꿈같고 좋아서.”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너무 좋았다.

그냥 남자 주인공으로서의 요제프가 아니라, 이제 그냥 요제프와 너무 많이 친해져 버린 샬롯은 그가 행복했으면 했다.

어쩌다 이미 나라가 다 망한 상태에서 황제로 추대되어 제 복수를 하는 건, 너무 삶이 퍽퍽하고 불행하니까.

복수를 해야 할 만큼, 지독한 일을 당하지도 않았으면 좋겠고…… 어차피 황제가 되어서 나라를 평온하게 만드는 역할이라면, 애초에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사랑도 받았으면 하는 거였다.

그런 것들을 생각으로만 하는 것과, 요제프의 이름을 열광하듯 외치는 사람들을 보는 건 또 달랐다.

“저 사람들한테, 얼굴을 제대로 보여 주러 가자. 네가 해낸 걸 축하하는 사람들에게, 네가 축하를 받는 걸 보고 싶어.”

샬롯은 제가 말하면서도, 베티가 그녀를 꾸며 주면서 왜 그렇게 기뻐했는지 조금쯤 알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요제프는 고개를 끄덕이곤 아슬란을 부드럽게 돌려세웠다.

샬롯과 요제프가 아슬란을 타고 다시 세티야 가 본관 앞으로 돌아갔을 때는, 창문에서 내려다봤던 식솔들이 아직 다 함께 모여 있었다.

거기다 어찌할 줄 모르는 얼굴의 베티며 요제프의 두 호위 기사들도 거기 함께 서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아슬란이 말발굽 소리를 울리며 본관으로 다가서자 베티가 제일 먼저 샬롯을 발견하고 반색하며 양손을 번쩍 들었다.

“샬롯 아가씨? 샬롯 아가씨!”

샬롯은 한 시간 만에 제법 핼쑥해진 것 같은 베티를 보며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생각하며 말에서 훌쩍 뛰어내려 베티를 안아 주었다.

말이 안아 주는 거지 키 때문에 결국 베티에게 쏙 안겨 있는 모양새가 된 샬롯의 귀로, 요제프의 호위 기사들이 불만스레 말을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 두 분이 오늘 행사 문제로 볼일이 있어서 함께 나간 것 같다고 하더니, 왜 이렇게 반가워하는 거지? 아까 거짓말을 했던 건가?”

‘베티가 아무래도 나와 요제프의 변호를 해 줬던 모양이네…….’

샬롯은 베티에게 안긴 채로 두 호위 기사를 노려봤다.

정말이지, 저 두 기사는 단 한 번도 마음에 든 적이 없었는데, 저들이 뭐라고 베티를 윽박지르는 꼴이 정말 보기 싫었다.

“요제프가 사라진 걸 몰랐던 건, 두 기사님 잘못 아닌가 싶은데…… 왜 베티한테 뭐라고 해요?”

“지금…… 저희에게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아, 아가씨!”

황실의 기사에게 뭐라고 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는지, 베티가 재빨리 샬롯의 팔을 쥐며 만류했다. 하지만 샬롯은 저 요제프의 두 호위 기사에게 그간 쌓인 감정이 제법 있었다.

“그럼요. 제가 틀린 말 했어요?”

샬롯이 당돌하게 받아치자, 두 호위 기사 중 하나가 이를 갈며 샬롯에게 다가섰다.

아무래도 요제프를 놓친 이후로 한 시간 동안 어지간히 약이 올라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 아무리 샬롯 아가씨께서 대단하신 신분이시라고는 하나, 저희는 황실 소속 기사입니다. 이렇게 함부로 말씀하시면, 큰 봉변을…….”

“황실 소속 기사가, 우리 가문 사람에게 큰 봉변을 치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왜 그걸 몰랐지?”

그때, 칼 같은 목소리가 불쑥 기사의 말을 잘랐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세티야 가 가주의 목소리였다.

“가주님!”

“가주님을 뵙습니다.”

세티야 가 안에서 카밀라의 존재는, 그야말로 그 존재 자체로 법이었고 신이었다.

그녀가 등장하자, 모든 식솔이 일제히 자세를 낮춰 그녀를 맞았다.

두 명의 호위 기사는 그 분위기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사실, 황실 소속의 기사였으니 카밀라에게 굳이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맞았지만, 보통은 의례적으로 연장자와 공작에 대한 예를 다하곤 했다.

하지만 카밀라는 그런 점을 굳이 지적하지 않고 두 기사를 눈으로 한 번 쓱 훑었다.

“소속은?”

두 명의 황실 기사는 바짝 굳어서 허리를 펴곤 차례로 대답했다.

“황실 기사단, 오른 날개, 2부대 소속입니다!”

“황실 기사단, 오른 날개, 3부대 소속입니다!”

카밀라가 고개를 끄덕이곤 황실 기사들의 어깨를 차례로 두드려 주었다.

“둘 다 그런 고귀한 자리까지 가느라 고생이 많았을 텐데, 그 자리를 유지하려면 여러 가지로 또 노고가 많겠어.”

앞뒤 사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격려처럼 들리는 좋은 말이었지만, 두 황실 기사의 귀에는 은근한 협박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카밀라는 물론 둘의 직속 상관은 아니었지만, 이 나라에서 그녀는 그야말로 영웅이었다.

카밀라를 동경하지 않는 기사는 없었고, 그녀의 말은 아주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자신들이 동경해 마지않는 카밀라에게 반협박성 말을 들은 두 기사는 어딘가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어 차례로 대답했다.

“바로잡겠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카밀라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아니, 사과의 대상은 내가 아닌 것 같은데.”

두 기사는 고작해야 아홉 살밖에 되지 않는 세티야 가의 막내딸에게 사과하는 게 썩 내키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다시 한번 차례로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결례가 많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샬롯은 묘하게 쉽게 받아 내 버린 사과에, 기사들에게 더 쏘아붙이려던 말을 그냥 삼켜 버렸다.

그러곤 어딘가 간지러운 기분이 되어 제 할머니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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