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공녀님 (67)화 (67/123)

#67.

슬슬, 관중석에서 샬롯이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하는 듯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요제프도 그녀가 걱정되는지 금방이라도 검을 빼 들 기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샬롯만은 평온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나이트메어의 갈기를 쓰다듬어 주었다.

‘좀 더 오래 반항할 줄 알았는데…… 그리고 이 말, 나이트메어라고 했던가. 보기와는 달리 기가 아주 많이 쇠해 있어.’

어딘가를 다친 동물과도 같은 기운이었다.

샬롯은 나이트메어의 갈기를 살살 쓰다듬으며 그 몸을 눈으로 살펴보다가 깜짝 놀라 눈살을 팍 찌푸렸다.

“이거군.”

나이트메어의 발바닥에, 편자가 박혀 있었다.

샬롯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그녀는 과거 화산파에서 마구간의 일도 종종 도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편자를 달아 주는 건 말에게도 좋은 일이었지만, 그것은 계속 지속해서 관리를 받는 말에나 달아 주는 장치였다. 야생의 말에게는 오히려 독이 된다.

오랫동안 녹슨 편자를 단 채로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한 듯한 나이트메어의 발은, 엉망진창으로 발톱이 자라 제대로 땅을 딛지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냥 편자가 아니라, 무슨 마법적인 장치가 되어 있는 편자인지 나이트메어는 발을 제대로 딛는 것도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렇구나.’

절로 이해가 되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황제가 될 후보자들이 이 대회에서 우승할 수도 있는 거고, 그들이 결승전에서 말 위에 오를 수도 있는 건데 나이트메어를 부러 약하게 만들어 안전하게 조처하는 건 당연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렇게나 위풍당당한 모습인데, 이리도 불편한 꼴이어서야 슬라임만도 못한 위력을 가진 걸 테다.

‘……이럴 거면 그냥 안전한 초식동물이라도 갖다 놓으면 되는 거 아냐. 그냥 관중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이겠다고 나이트메어를 소환해서,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샬롯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확 찌푸렸다.

샬롯은 말을 사랑했다.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그럴 거다.

아무리 이건 말이 아니라 마수에 불과하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말도 못 하는 짐승을 함부로 대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이트메어라고 했어? 넌 이상한 기술도 쓸 줄 아는 마수니까, 내 말쯤은 알아듣겠지. 맞아?”

히히힝-!

나이트메어가 구슬프게 울었다. 정말로 말이 통하는 기분이 드는 건, 착각만은 아닐 거다.

샬롯은 나이트메어의 등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곧 돌봐 줄게. 아프지 않게 해 줄게. 그러니까, 나랑 같이 가자.”

히힝-.

나이트메어는 어차피 제 등 뒤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이는 기수에게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는 먹이도 챙겨 주겠다고 말하려던 샬롯은, 나이트메어가 인간을 먹이로 삼을 수도 있겠다 싶어 말을 아꼈다.

그러곤 뒤를 돌아, 옆에서 가만히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요제프에게 손을 내밀었다.

요제프가 당황한 눈치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한 명만 탈 수 있는 거잖아. 난 됐어.”

샬롯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이트메어의 다리가 인위적으로 워낙 허약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고작 한 사람이 탈 수 있게 되어 있는 건 맞았다.

다만 샬롯은 아홉 살, 요제프는 열두 살이었고, 이렇게 어린 두 사람이 우승 후보가 되리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어지간히 호리호리한 두 명의 몸무게를 합쳐 봤자, 장성한 남자의 무게 한 사람분에도 훨씬 미치지 못했다.

“우리 둘 다 탈 수 있어. 확실해.”

요제프는 샬롯이 확정적으로 말하자,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말의 등자를 가볍게 밟고 뛰어오르듯 높다란 등 위로 올라탔다.

나이트메어는 샬롯이 탈 때 워낙 날뛰어서 이미 지쳤는지 더 이상 반항하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샬롯은 제 생각대로 두 명이 올라타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하곤 검을 길게 뽑아 나이트메어를 구속하고 있던 밧줄을 단칼에 끊어 내었다.

몇 번의 날갯짓만으로, 두 명의 아이를 태운 나이트메어가 빛의 구 사이를 아름답게 유영했다.

날개 달린 거대한 말은 허공을 한 바퀴 크게 원을 그리고서야 천천히 본부석 쪽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그 등 뒤에 두 명이 타고 있다는 사실은, 주최 측을 크게 당황하게 했다.

하나 그런 것과 관계없이 관중석은 지금까지 중 가장 큰 함성을 내지르며, 말 위에 올라탄 두 명의 아이들을 향해 열광했다.

와아아아-!

만세-!

만세-!

그럴 만도 했다.

어두운 연기를 닮은, 지독하게 서늘한 마수 위에 당당하게 올라탄 두 아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강림한 꼬마 천사들 같았으니까.

환호에 보답하듯 한 손으로 검을 뽑아 하늘을 향해 쳐들고 있는 샤를로테의 분홍색 머리가 허공에 구불구불 흩날렸다.

말의 고삐와 제 앞에 앉은 샬롯의 허리를 단단히 지지해 잡은 요제프도, 그리고 샬롯도 모두 신화를 형상화한 명화의 주인공 같았다.

샤를로테는 그야말로 태양과도 같았고, 요제프는 마치 그 그림자 같았다.

“밤과 태양-!”

“태양과 그림자-!”

“저 두 아름다운 천사님들이야말로 칼그림자의 날 그대로의 형상 아닙니까-!”

“오오, 신께서 저희 체이커 국의 미래를 위해 보내 주신 천사님들이 틀림없습니다-!”

점점 관중석이 과열되었다.

이미 두 아이의 우승이 확정되기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 대자 사회자는 어쩔 줄을 몰라 하는 표정으로 황제를 올려다봤다.

칼그림자의 날에 두 명의 우승자가 나온 전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황제는 곤란할 것 하나도 없다는 듯 다른 관중들과 함께 들뜬 듯한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을 뿐이었다.

“두 명의 우승으로 하지.”

별것도 아니라는 듯, 황제가 결론을 내려 버렸다.

사회자는 좀 당황하여 황제의 눈치를 살피며 되물었다.

“……그래도 괜찮겠사옵니까? 황제 폐하께서 원하신다면야, 두 사람의 일대일 대진으로 진짜 마지막 결선을 다시 준비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산체스 황제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그러곤 사회자를 보며 여유 있게 웃어 보였다.

“자네는 정치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군.”

“……정, 정치요?”

사실, 이 대회의 사회를 맡은 그는 이 나라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음유시인이었다. 당연히 정치에 대해서 알 턱이 없었다.

사회자가 눈을 느리게 깜박이기만 하자, 황제가 껄껄 웃으며 관중석을 향해 턱짓했다.

“사람들이 저렇게 행복해하고 있는데, 게다가 천사가 강림했다느니 뭐니 하면서 체이커 국에 하늘의 축복과 경사가 생긴 것처럼 기뻐하는데…… 거기다 대고 다시 결선을 해서 한 명을 떨어트리자고 말하면? 그러면 내 인기는 어떻게 되는 건가?”

“……아.”

“보기보다 황제도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이라네. 그리고…….”

“그리고……?”

“저 두 아이가 함께 우승할 수 있었던 건, 두 아이가 아직 어린데도 그만한 재능이 있기 때문인 건데. 그걸 고작 규칙을 핑계로 우리가 멋대로 재단할 수는 없지.”

황제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황제의 말을 귀담아듣고 있던 것은 사회자 한 명뿐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던 다른 귀족들도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자는 황제와 귀족들을 한 번 돌아보고, 본부석에 가뿐히 날개를 접고 내려선 거대한 흑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타 있는 두 명의 귀여운 아이들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사회자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관중석을 향해 기나긴 오늘의 축제가 드디어 막이 내렸음을 선포했다.

- ……오늘, 영광스러운 칼그림자의 날, 최초로 두 명의 우승자가 탄생했음을 알립니다. 우승자는 요제프 베로스 체이커, 그리고 샤를로테 세티야. 이렇게 두 명입니다.

와아아아아아-.

하늘을 울릴 듯한 거대한 함성 소리가 대회장을 가득 메웠다.

- 모두, 목청껏 오늘의 우승자를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와아아아아아아-!

만세-!

요제프 황자님 만세-!

샤를로테 만세!

황제 폐하 만세-!

요란한 함성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떠돌던 빛무리들이 모두 비로 변하여 바닥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샬롯은 말 위에 오른 채로 고개를 꺾고 위를 바라보았다.

몸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 정수리가 요제프의 몸에 닿았고, 몸이 휘청 기울어졌지만, 이제는 중심을 잡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다.

그녀는 요제프에게 한껏 몸을 기댄 채,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빛무리를 바라보았다.

‘별똥별…… 같아.’

화산파에서도, 본관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떨어진 외딴곳에서 보내는 밤은 지독히 컴컴했다.

그땐 그랬다. 도대체 뭘, 얼마나 대단한 무술을 익히겠다고 그랬는지, 남들처럼 외딴곳에 가서 수련도 종종 하곤 했었다.

그러다 보면, 하나의 빛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지는 순간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거다.

그럴 때면 지금 보는 빛무리와 같은 것들이 떨어져 내리는, 아름답고 촘촘한 빛이 새겨진 밤하늘을 볼 수 있었다.

어느새 완전히 어두워진 하늘 때문에, 온 대회장 안에 쏟아지는 빛의 비는 숨 막히게 아름답기만 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