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공녀님 (59)화 (59/123)

#59.

스릉-.

란슬롯의 검은 제법 날이 길고 두꺼운, 양손 검이었다.

샬롯도 그에 응수하여 제 검을 뽑아 한 손으로 가볍게 움켜쥐었다.

란슬롯이 그녀를 아무렇지도 않은 상대로만 여길 때 했던 대련과는, 샬롯도 임하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두근. 두근.

샬롯은 기쁨에 심장이 다 뛰었다.

란슬롯과의 대전 따위, 그저 재미없이 지나갈 거라 생각했는데.

‘상대가 나를 진정으로 뛰어넘고 싶은 대상이라 여긴다는 건, 이토록 두근거리고 즐거운 일이구나.’

“흐아아압!”

란슬롯이 양손용 바스타드 소드를 한쪽으로 늘어뜨린 채로 샬롯에게 먼저 달려들었다.

‘전혀 달라, 역시.’

대련 때 란슬롯이 선보였던 검술과는, 기세부터가 달랐다.

어어어어-.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조그마한 여자애를 두 쪽으로 갈라놓을 듯 거세게 내려치는 거대한 검날에, 관중석에서 우려 섞인 나지막한 웅성거림이 수런거렸다.

챙, 챙, 챙!

순식간에 검과 검이 세 번 닿았다.

란슬롯보다 키도 작고 팔의 길이도 짧은데도, 샬롯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검끝을 흔들어 란슬롯이 그녀의 검을 놓치게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깊이 끌어들여서 란슬롯의 동작을 크게 만들어 시간을 벌기도 했다.

챙, 챙, 챙, 챙!

와아아아-.

와아아아-!

처음에는 긴장을 하고 보던 관중들은, 검과 검이 맞닿기를 몇 합에 이르자 점점 열광하는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건 단순히 약자를 응원하고 싶은, 바닥에서부터 시작하여 강자를 맞서는 자를 응원하고 싶은 심리의 발현은 아니었다.

예선전에서 샬롯이 보여 주었던 기사도가 관중들의 마음속에, 작게나마 파문을 그린 거였다.

처음에는 검을 잘 모르는 자의 눈에 얼핏 란슬롯이 압도적으로 샬롯을 몰아붙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샬롯이 부드럽게 란슬롯을 리드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 수 있을 정도로 격차가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란슬롯의 숨이 가빠 오는 것과 달리, 샬롯은 그저 덤덤한 얼굴로 차분하게 대응할 뿐이었으니까.

챙, 챙!

길고 가는 검과, 그 검을 금방이라도 부러뜨려 놓을 듯 거대한 검이 격렬하게 맞부딪기를 몇 합째일까.

샬롯은 다시 한번 검끝을 흔들어 란슬롯의 검을 제 옆구리 쪽으로 깊이 끌어들였다.

“……흐압!”

“기세는 좋은데, 아직 성급해.”

샬롯은 그렇게 속삭이며 단숨에 검의 방향을 직각으로 꺾었다.

검에는 정해진 궤도라는 게 있었다.

팔이 움직이는 방향과 지금까지 검이 향하던 방향에서 추론할 수 있는.

하지만 샬롯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예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대처할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디신속한 움직임이었다.

란슬롯은 그 끝내기 수에 대응할 수조차 없이 제 목을 내어 주어야 했다.

그의 검은, 샬롯의 옆구리에 아직 채 닿지 못한 채였다.

“……졌습니다.”

질끈 눈을 감았다 뜬 란슬롯의 입에서, 선선한 패배 선언이 튀어나왔다.

막 샬롯과 란슬롯 사이에 끼어들려고 준비하던 감독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와 둘을 떼 놓았다.

그러곤 샬롯의 팔을 높이 허공을 향해 치켜들어 주었다.

와아아아아-.

와아아아-.

휘이익-.

샤를로테 세티야 만세!

샤를로테 만세!

경기장이 떠나가라,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허공을 뒤덮었다.

샬롯은 눈을 반짝이며 관중들을 올려다보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황제 폐하는 거의 경기장 바닥에 닿을 듯한 높이의, 아주 낮은 단상까지 내려와서 경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관중들은 각기 제가 응원하는 가문의 깃발을 흔들어 대고 있었는데, 그녀를 응원하는 뜻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황색의 깃발이 물결치고 있는 광경은 제법 장관이었다.

위를 올려다보기만 해도 눈이 부셨기에 금방 다시 고개를 내려야 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좋은, 승부였다.”

란슬롯은 샬롯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예전의 란슬롯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샬롯은 오늘따라 의외의 모습만 보이는 란슬롯의 오른손을, 선선히 쥐었다.

란슬롯은 제 손에 겹쳐진 샬롯의 손을 바라보며 똑똑히 선언했다.

“다음에는 이렇게 쉽지는 않을 거다.”

“언제든지.”

란슬롯은 샬롯의 응수에 별반 기분이 상한 기색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뒤를 돌았다.

샬롯은 대기실을 향해 저벅저벅 걸음을 옮기는 란슬롯의 등을 바라보았다.

『서방환상연애소설전집11-순애보 공주님은 사랑받고 싶어!』의 소설 속과는 전혀 딴판이 될 사람이 여기 또 한 명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마, 크게 변할 거다.

샬롯은 란슬롯의 미래가 기대된다고 생각하며 기분 좋은 미소를 그렸다.

샤를로테 세티야와 란슬롯 세티야의 대전은 퍽 수준 높은 대회 내용뿐만 아니라,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 때문에라도 관중석을 뜨겁게 달궜다.

샤를로테의 이름이 여기저기에서 연호되었다.

그 열기는 1조의 아이작과 1황자의 대전에서도 이어졌다.

아무리 1황자 케이건이 그 누구도 황위 계승자로 점찍지 않을 만큼 몸도 허약하기 짝이 없고 심약하기도 한 인물이라곤 하나, 그래도 황족이었다. 나름대로 피에 계승되는 재능을 이어받았음은 틀림없었는데, 아이작은 그런 케이건을 상대로 고작 다섯 합 만에 항복을 받아 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난 경기는, 강력한 우승 후보인 아이작 세티야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부추겼다.

그렇게 뜨거운 열광 가운데 몇 개의 경기가 흘러갔고, 사회자는 거기에 이어 다음 대진을 발표했다.

- 이번 경기는…… 황자 전하님들 간의 격돌입니다. 2황자 리카르도 베로스 체이커 님과 3황자 요제프 베로스 체이커 님께서는 지금 바로 대회장으로 나와 자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와아아아-.

관중들은 관성적으로 손뼉을 치고 함성을 보냈지만, 지금까지 이어져 온 열기는 어딘지 한풀 꺾여 있었다.

2황자와 3황자의 격돌이라니.

사실, 격돌이라는 말이 아까울 정도로 뻔한 대진이었다.

다른 경기에 비해, 이번 경기는 쉬어 가는 대전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관중석 여기저기에서 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지금까지 열중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대회장을 바라보고 있던 이들은 이렇게 긴장감이 느슨해진 틈을 타 각자 물을 꺼내 들거나, 준비해 온 간단한 간식을 꺼내 먹을 정도였다.

‘결과는 정해진 거나 다름없네. 이거야, 원. 리카르도 황자님께서는 예선에 참가 안 하셨으니, 몸풀기 상대로는 딱 괜찮다 여기시겠군.’

‘좋아, 그럼 나는 요제프 황자 전하께서 그냥 시작하자마자 기권하신다는 것에 30하스론 걸지.’

‘그럼 난 요제프 황자 전하께서 일방적으로 얻어맞다가 10합 안에 끝난다는 것에 30하스론 걸지.’

‘너무들 그렇게 말하지 말게. 그래도 한때는 요제프 황자님도 재능이 있단 말도 돌았는데…… 나름대로 볼만한 장면이 아주 잠깐이라도 나올지 아는가?’

‘어휴, 그래도 좀 안됐긴 했네. 너무 빤하니까 좀 그렇구먼.’

‘됐어, 됐네. 괜히 3황자 전하를 편드는 소리 하다가 경치지 말고, 다들, 이 완두콩 볶음이나 한 입씩 하게.’

수런거리는 소리 사이로, 요제프 황자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들이 쏟아졌다.

요제프 황자의 비참한 삶에 대해 그럴만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마저도, 이런 큰 대회에서 예선 바로 다음에 처음으로 만나는 첫 대진이 우승 후보인 리카르도인 것에 대해서만은 가엾다고 생각했다.

* * *

예선 이후에 한 번 대회를 거친 사람들은 각자 개인실이 준비되었기 때문에, 샬롯은 제 방으로 주어진 공간에서 창을 통해 대회장 상황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주의 깊게 보고 있는 것은 건들건들한 태도로 대회장에 내려서는 리카르도 황자도 아니었고, 그 앞으로 다가서는 날카로운 기세의 요제프 황자도 아니었다.

샬롯의 시선이 꽂혀 있는 건, 관중석이었다.

‘다들 벌써 결과를 단정 지은 얼굴이네.’

그녀는 오히려 이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제 아들 요제프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 황제며 관중들이 손톱만큼도 마음에 안 들긴 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저렇게까지 기대하지 않고 있으니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을 눈앞에 들이밀어 준다면 인식을 폭발적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관중석을 훑던 샬롯의 시선은 줄곧 서 있다가 겨우 좀 자리에 앉아 있는 황제에게 가서 박혔다.

‘정말로, 제법 요제프와 닮았단 말이야.’

산체스 황제의 잿빛 눈동자도, 보석이 반짝이는 왕관 아래로 단정하게 정돈된 잿빛 머리카락도 그랬거니와 인상도 제법 닮아 있었다.

‘뭐…… 절조 없이 정신 빠진 짓을 하고 다닌 점은 전혀 안 닮았지만.’

샬롯은 요제프의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를 떠올리며 혀를 차면서도 황제를 오래도록 응시했다.

산체스 황제는 이 대회를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즐기고 있었다. 관중들이 환호하면 같이 웃고, 관중들이 야유를 보내면 재밌어하며 함께 야유했다.

지금만 해도, 제 두 아들이 붙는 대진인데도 관중들이 다 같이 요기를 한다고 해서 황제도 함께 알이 굵은 포도를 받아먹고 부채질을 받으며 껄껄 웃고 있었다.

‘관중들의 반응을 끌어낼 수만 있다면…… 생각보다 훨씬 큰 반향이 있을지도 몰라. 황제가 단 한 번도 알아본 적 없는 요제프의 재능을 보여 줄 수만 있다면……’

샬롯은 아까 대기실에서 요제프에게 해 주었던 제 조언이 유효하기를 바라며 침을 꼴깍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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