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공녀님 (51)화 (51/123)

#51.

지금 제게 필요한 것. 그리고 리카르도가 미래에 발뺌하지 않도록 당장 내놓을 수 있는 것.

샬롯의 시선이, 문득 리카르도의 목에 걸린 목걸이에서 멈췄다. 붉은빛이 도는 아름다운 펜던트가 일품이었다.

리카르도의 맹한 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영롱한 빛깔의 그것은 작중에서 분명, 이 바로 다음에 있을 사냥제에서 큰 역할을 하는 목걸이라고 했다.

그 안에 어떤 존재가 깃들어 있다고 했던가.

사냥제 또한, 황자들끼리 경합하여 자신의 위치를 뽐내는 대회다.

다시 말해, 황제의 후계자가 누가 될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회라는 거다.

샬롯은 그 목걸이가 좀 더 잘 쓰일 곳을 알고 있었다.

“그 목걸이를 제게 주세요.”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얼굴로 샬롯이 목걸이를 가리키자, 리카르도가 비죽이 웃었다.

“이걸? 이게 예뻐 보였나? 하하, 그래, 그래. 그러지.”

리카르도는 두 번 생각해 보지도 않고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이야기를 마친 뒤에도, 샬롯이 물러나도록 두질 않았다.

오히려 또 샬롯을 묘하게 들여다보며 가까이 고개를 숙였다.

“……향수인가? 맡아 본 적 없는 달콤한 향기가 나는군. 정말로 꽃향기야.”

그녀는 리카르도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가까워지는 게 싫어서, 다시 한번 옆으로 피하는데 똑 부러지는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지금 대체 뭐 하는 겁니까, 형님.”

샬롯은 보라색 망토가 제 앞을 가로막고 서는 것을 두 번째로 보았다.

놀란 리카르도의 신경질적인 시선이 요제프를 노려보았다.

“네까짓 놈이, 나를 우습게 만들어? 왜? 네 여자 친구가 소중해서 왔어? 그러다 형님이고 뭐고 상관없이 다 쥐어패겠다?”

말과는 달리, 정말로 폭력을 먼저 쓴 건 리카르도 본인이었다.

리카르도가 지난번에 요제프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다시 한번 요제프의 배 쪽을 향해 오른발의 뒤꿈치를 찔러 넣었다.

휙.

지난번과 다른 것은, 실 끊어진 인형처럼 가만히 맞고만 있었던 요제프가 그걸 피한 거였다.

목표를 잃어버리고 허공을 걷어찬 리카르도의 몸이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휘청였다.

“……무슨 짓이지?”

그 분노가 섞인 음성에 샬롯은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지금껏, 요제프가 몸을 피한 게 처음이구나.’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되었다.

리카르도가 얼마나 욱하는 성질인지 알고 보자니, 조금이라도 그를 덜 자극하는 게 최선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가 덜 나는 건 아니었다.

분노에 돌아 버릴 것 같아서, 시선을 옆으로 돌려 버리는 샬롯의 눈에, 순간적으로 요제프의 주먹이 보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가볍게 쥐고 있는 손이었지만, 지금까지 줄곧 그와 대련을 해 오던 샬롯만은 알 수 있었다. 요제프는 승부를 내기 직전에는 오히려 몸에 힘을 더 풀어서 상대를 방심시키는 습관이 있었다.

가만히 두면, 당장이라도 리카르도의 면상에 저 주먹이 꽂힐 판이었다.

샬롯은 얼른 요제프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요제프가 놀랐는지 움찔 손을 떨었지만, 그녀는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손가락 사이사이에 제 손을 밀어 넣어 손깍지를 꽉 꼈다.

“……뭐 하냐, 너네. 지금 내 앞에서, 쇼하냐?”

그 모습에 리카르도가 기가 막힌다는 듯 중얼거렸다.

샬롯은 그런 그를 보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리카르도 황자를 향한 게 아니었다. 요제프를 향한 거였다.

짧은 반바지 안쪽으로 보이는 허벅지까지 깊게 번져 있던 멍 자국이 생기도록, 요제프는 단 한 번도 반항한 적이 없었다. 그것들을 선물해 준 건 리카르도였다.

그런데, 지금 와서 반항하는 이유는…….

‘……나 때문이잖아.’

샬롯은 그런 생각을 하니까 속이 더 울컥하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치받쳐 올라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 때문에 요제프가 대회에서 실격되게 둘 순 없어.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저 간사한 리카르도를 때리는 척만 해도 큰일이 날걸.’

때마침 바깥에서 커다랗게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예선전의 참가자들은, 지금 즉시 대회장으로 모여 주십시오. 곧 예선이 시작됩니다. 곧입니다.

손깍지를 낀 손에 땀이 나도록 힘을 꽉 주며 샬롯은 이를 악물고 웃어 보였다.

권토중래(捲土重來)라고 했다. 큰 승리 전에 작은 패배는 있을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황자님의 심기를 거슬렸네요.”

그녀의 예의 바른 사과에, 요제프가 울컥한 듯 손을 잘게 떨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황자 전하께서 제게 아량을 베풀어 제의해 주신 내기에 대해서는 가슴에 품고 물러가겠습니다. 예선전의 결과에 따라 황자 전하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리카르도는 당장이라도 요제프를 어떻게 하고 싶은 듯 뱀같이 사이하게 눈을 홉뜨고 있었지만, 샬롯이 나붓하게 사과하자 김이 샜다는 듯 혀를 찼다.

“알겠다. 어차피 조금만 기다리면 결과가 나올 텐데. 그 잠깐이라도 사이좋게 지내고 있든가.”

“영민하신 전하께서 이리 너그러우시니, 저희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샬롯은 움직이지 않으려는 요제프를 억지로 잡아끌며 그 방을 나왔다.

요제프는 몇 번이고 발을 멈추려 했지만, 샬롯이 그때마다 깍지 낀 손에 가볍게 힘을 주며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샬롯의 연둣빛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칠 때마다 마치 주인을 마주하는 강아지처럼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마지못해 발을 떼 놓았다.

* * *

대회장 입구에 도착한 샬롯은 그렇게 유하게 웃으며 나온 게 거짓말이라는 듯이, 대기실 옆방에서 나온 뒤로는 줄곧 말이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사과하고 나왔다고 해서 화가 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분노에 머리가 하얘질 것 같았다.

샬롯은 머릿속으로 오늘 아침에 보았던 대진표를 다시 떠올렸다.

‘2황자와 3황자는 모두 2조. 결승 전까지는 나와 붙을 일이 없겠네…… 칫.’

자신이 직접 리카르도를 상대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속이 풀릴 때까지 두드려 패 주고 싶었는데.

“……속도 좋군.”

그때, 언제 들어도 청량한 요제프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샬롯이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자, 언제나처럼 그녀보다 먼저 시선을 돌려 그녀 쪽을 바라보고 있던 검은색 눈동자와 시선이 맞닥뜨렸다.

“속이 좋긴. 아무튼, 대회에서 이기면 되잖아.”

요제프가 샬롯을 빤히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그러면 되겠지. 그나마 대진 하나는 마음에 드는군.”

샬롯은 요제프가 낮게 중얼거리는 말에, 저도 모르게 속내의 바닥까지 화로 가득 차 있던 것조차 잊고 웃음을 터뜨렸다.

“까르륵.”

‘뭐야, 요제프도 지금 머릿속으로 대진에서 두드려 패는 상상을 하고 있었구나.’

“아하하. 하하하. 너도 그 생각 했어?”

요제프는 샬롯이 이 상황에서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웃고 있는 것 자체가 마뜩잖다는 얼굴로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놈이 뭐라고 했는데?”

이젠 형님이라는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샬롯은 요제프가 나직하게 화내는 게 이상할 정도로 웃기다고 생각하며 눈물을 닦으려 손을 들다가, 요제프와 제 손이 꽉 얽혀 있는 것을 알아챘다.

평소에도 요제프는 건드리기만 해도 제법 질색을 하면서, 또 일단 확 손을 낚아채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버리면 그 뒤로는 어쩔 도리 없다는 듯 샬롯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는지라 새삼 그 모습이 귀엽고 웃겼다.

그녀는 길게 미소 지으며 양손으로 아이답지만, 손가락이 긴 요제프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아직 말랑하기만 한 제 손과는 전혀 달랐다.

돌덩어리를 만지는 것 같았다.

몇 번이고 만져 본 손이었지만, 새삼스럽게 그 감촉이 와닿았다.

‘……그래.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는 해도, 요제프도 고작 열두 살인걸. 몸 상태가 지독하게 망가질 정도로 수련을 했던 거야.’

샬롯은 그의 손을 몇 번 더 쓰다듬고서야 놓아주었다.

그러곤 아직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요제프의 양 볼을 양손으로 쥐었다.

“이 누님이 알아서 할게.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지 마.”

“……너, 솔직히 말해. 누님이 뭔지 모르지.”

샬롯이 겨우 그쳤던 웃음을 다시 터뜨렸고, 요제프가 다시 한번 그녀를 다그치려는 순간이었다.

- 예선전이 시작됩니다. 참가자 외에는 모두 경기장 외곽의 붉은 선 밖으로 물러나 주십시오. 경고합니다. 참가자 외에는 모두…….

반복되는 안내 멘트와 함께 경기장 테두리를 따라, 바닥에서 철창이 올라왔다.

5년마다 예선전의 내용은 매번 달라졌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섣불리 행동하지 않고 각자의 무기를 움켜쥔 채로 사회자와 황제 폐하가 있는 곳만 바라보았다.

“올해의 예선전 시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황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올해의 예선전은, 슬라임 사냥이다.”

황제가 선언하자마자, 관중석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대회장을 가득 메웠다.

휘이익-!

황제 폐하 만세-!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몬스터의 소환을 알리는 말에 관중석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