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공녀님 (45)화 (45/123)

#45.

투박하고, 장식이 없어도 좋았다.

다만 딱 하나.

검이 주인의 기에 얼마나 잘 공명하는가. 얼마나 충실하게 팔과 다리가 되어 주는가. 사람을 베는 무기라는 본연의 잔인한 기능만이 남아서, 기를 보내는 만큼 날카로워지는가.

그냥 딱 보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샬롯이 하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자, 란슬롯이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주인장을 불렀다.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여인이 주인장인 모양이었다. 양쪽으로 머리를 땋은 키가 작은 그녀는 머리가 희끗희끗 세었음에도 제법 정정해 보였다. 팔에는 탄탄한 근육이 솟아 있었다.

그 주인장은 장사할 마음도 별로 없는지 썩 내키지 않는 얼굴로 나와서는 란슬롯과 샬롯의 앞에 섰다.

“어쩐 일이십니까요, 나으리들.”

“여기서 검을 제작하고 싶은데, 가능한가?”

“……그야 가능은 합니다만. 값이 좀 나갈 겁니다.”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는가?”

“저희 대장간에서는 검 한 자루를 만드는 데 90하스론을 받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란슬롯이 기가 막힌다는 얼굴을 했다.

제롬에게서 샬롯의 쇼핑을 도와주라는 명을 들었을 때 지었던 것과 꼭 같은 표정이었다.

“얘가 어리다고 해서, 나까지 바보인 줄 아나? 그 돈이면 어지간한 귀족의 검 열 자루도 넘게 만드는 값 아닌가?”

사실, 샬롯의 검에 돈이 얼마가 나가도 상관없었다. 제롬이 돈을 많이 쓰건 적게 쓰건, 그게 뭐, 제가 알 바일까.

실제로 말도 안 되는 가격임은 맞았지만, 란슬롯은 이렇게 샬롯의 앞에서 보란 듯이 아는 척을 하게 되는 자신을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런 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언성을 높였다.

“순 사기꾼 아냐? 네가 한번 귀족 능멸죄로 본때를 봐야 정신을 차리겠나?”

란슬롯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옆에 따라와서 선 시종들도, 호위 기사도 모두 검을 잘 아는 이들이었음에도 그의 말이 옳다는 얼굴로 주인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란슬롯은 으쓱한 기분으로 흘끗, 뒤를 돌아봤다.

샬롯은 그가 뭐라고 화를 내고 있는지조차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저 묵묵히 바구니에 놓인 농기구들 사이에서 발견한 단단한 고철 덩어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속 어딘가에서 욱,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 기분은 마치, 억울함과도 닮아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의,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아이작 형님과의 거리가 조금도 좁혀지지 않을 때의 억울함과도 닮아 있었다.

란슬롯이 샬롯을 조용히 노려보고 멈춰 선 순간이었다.

“이거, 귀족 능멸이니 뭐니 시끄럽게 떠드는 귀족이 누구인가 했더니. 우리 가문 사람이었군.”

가게 안쪽 어둑어둑한 그늘 쪽에서 백금발의 사내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종 한 명조차 데리고 있지 않은 그 귀족은, 아이작 세티야였다.

란슬롯은 이 허름한 가게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형님의 모습을 발견하곤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형님……?”

아이작은 란슬롯을 흘끗 쳐다보곤,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한 일이라는 듯 샬롯에게 다가가 그녀를 한 팔로 안아 들었다.

샬롯은 제가 정신없이 들여다보고 있던 쇳덩어리와 몸이 멀어지고서야 뒤늦게 아이작을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작 오라버니?”

“그래. 여긴 무슨 일로 왔지? 나를 찾아온 것 같진 않던데, 그렇게 장사를 방해해 대는 걸 보면.”

아이작이 서늘한 눈으로 한심하다는 듯 란슬롯을 바라보며 말했다.

란슬롯은 어떻게 돌아가는 정황인지도 다 파악하지 못한 채 얼떨떨하게 이 상황을 설명했다.

“아니, 저는 작은 주인님의 명으로 샬롯에게 검을 사 주러 동행하고 있었습니다만……. 샬롯이 워낙 아직 이런 쪽으로 경험이 없어서 자꾸 이상한 것만 보는 바람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소란스럽게 해 드린 점은 죄송합니다. 샬롯과 저는 다른 곳으로 가 보겠…….”

란슬롯이 후다닥 말을 쏟아 내다가, 그의 말을 듣던 아이작이 아주 흐뭇하다는 듯 양쪽 입꼬리를 올려 깊게 미소를 짓는 걸 보곤 저도 모르게 말꼬리를 흐렸다.

만년설한도 아이작보다는 따뜻할 거라는 게 기사단 사람들의 중론이었다.

아이작은 정말 지독한 사람이었다.

세티야 가 후계자 후보라면 누구나 열세 살이 넘으면 기사단에서 작은 보직이라도 맡아 제 성과를 입증할 수 있게 되는데, 아이작은 성과를 입증하는 것을 넘어 남들을 아주 몰아붙이는 데 능했다.

어찌나 심하게 모두를 몰아세우는지, 이미 기사로 발탁된 자라도 뒤처지는 경우가 생기면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내보내 버리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 타인을 수련시키면서 저 자신에 대한 수련도 조금도 느슨히 하지 않는 점도 지독했다.

그래서 아이작에 대해서는 뒷말이 돌더라도 그의 철저함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아이작이, 샬롯에게 잘해 주는 것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렇더라도 매번 샬롯이 당황해하며 피하기만 했었는데…….

이번엔 샬롯과 아이작이 제법 친해진 듯 보였다.

“이곳의 검이 마음에 들었나?”

“아주 괜찮은 것 같아서요.”

“보는 눈이 나쁘지 않군.”

“오라버니도, 여기 검을 써요?”

“그래. 대신, 제작 기간이 좀 오래 걸리는 편인데…… 뭐, 내가 맡긴 검은 당장 필요한 건 아니니, 내 걸 미뤄서라도 기간을 맞춰 보지. 칼그림자의 날에 쓸 검을 맞추러 온 거 맞나?”

“……그렇게까지 해 줘도 괜찮아요?”

“그럼. 내가 얼마나 그날을 고대하고 있는데. 네가 제대로 된 무기도 들지 못하면 섭섭하지.”

같은 눈높이에서 시선을 교환하며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둘을 보는데, 정말이지 배알이 뒤틀렸다.

란슬롯은 아이작 형님에 대해서만은 그간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동경의 대상이었을 뿐.

‘……내가 왜 이러지. 미쳤나.’

그는 입술을 짓씹으며 보잘것없어 보이는 농기구들을 쏘아 보았다.

저게 뭐 그렇게 잘난 것이기에.

정말 우습기 짝이 없었다.

샬롯 때문이다.

샬롯이 워낙에 안 하던 짓을 해 대니까. 그래서 제 꼴이 매일 우스워지는 거다.

란슬롯은 어쩐지 이 자리에 더 이상 남아 있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홱 돌렸다.

그때, 샬롯이 부드럽게 말을 걸어왔다.

“란슬롯, 갈 거야? 같이 나와 줘서 고마운데. 나랑 밥이나 먹고 들어가. 괜찮은 식당을 아는데.”

‘웃기고 있네. 밥은 무슨. 내가 그깟 것도 못 먹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란슬롯은 이 모든 짜증 나는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발을 떼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보잘것없는 샬롯의 말이 뭐라고, 이상하리만큼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 * *

샬롯의 주문은 독특했다.

보통 여자들이 드는 검치고도 꽤 검날이 얇고 길었으며, 거기 있는 주인장을 비롯하여 누구도 본 적 없는 꽃무늬를 직접 그려서 검집에 새겨 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그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다고, 주인장에게 모두 맡긴다고 한 게 전부였다.

‘마치, 검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의 것 같기도 하고, 전혀 모르는 미숙한 이가 아무렇게나 청한 것 같기도 하단 말이야.’

란슬롯은 샬롯의 주문을 곱씹으며, 그녀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아이작은 샬롯을 품에서 놓지 않을 것 같았지만, 마차에 오르기 직전 흐뭇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 주곤 기사단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런데 거기가 아이작 형님이 검을 주문하는 곳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아이작 형님이 직접 주문하는 곳이라면, 정말로 괜찮은 대장간이라는 거 아냐? 우리에게도 알려 준 적이 없는데…….’

짚이는 거야 많았다.

누군가가 언질을 해 주었다거나, 아니면 그냥 단순히 우연과 변덕 때문에 거기까지 간 거라거나…….

란슬롯은 머리를 털었다.

샬롯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릴 것 같았다.

너무 이상해서.

도대체 납득할 수 있는 게 뭐 하나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이쯤 되면, 제가 아는 샬롯과 다른 사람이라고 해야 할 판이었다.

아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심지어 내 또래라고 해도 말이 안 돼. 오러를…… 갑자기 그렇게 쓴다고. 말이 되는 게 하나도 없어.’

그렇게 머릿속이 뒤죽박죽인 채로 멍하니 샬롯을 쳐다보고 있는데, 마차가 출발하는 것과 동시에 샬롯이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뜻밖에 시선이 딱 맞닥뜨린 것에, 란슬롯은 제가 도둑질이라도 하다 들킨 듯이 놀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샬롯을 상대로.

그래도 시선을 피하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의 관성과 자존심이 맞물린 덕분이었다.

“란슬롯.”

“……왜.”

“그런데, 사과는 안 해?”

샬롯이 싱그럽게 웃으며 분홍색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란슬롯은 샬롯이 당당하게 제게 건넨 말을 한 박자 늦게 이해했다.

가문에 도움도 안 되는 쭉정이가 제게 하는 말치곤 너무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 이제 더 이상 쭉정이라고 할 수 없을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샬롯 주제에 감히 그런 말을 입에 담았다는 사실이 낯설었기 때문에.

“미쳤어? 내가 누구한테, 왜 사과를 해?”

“사과할 필요 없다, 이거야?”

“……요제프 황자 이야기야? 하, 당연하지. 네가 끼어든 거잖아.”

“그래? 그럼 됐어.”

샬롯은 굳이 이야기를 꺼낸 것치고는 싱겁게 어깨를 으쓱했다.

란슬롯은 이를 악물었다.

샬롯이 정말로 저를 우습게 보는 것 같아서.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샬롯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야, 너 이런 식으로 자꾸 사람을 무시…….”

쿵!

시야가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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