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공녀님 (40)화 (40/123)

#40.

“하지만 위험해. 무척. 잘못될 가능성도 커. 그러면 지금보다 더 나빠질 거야.”

샬롯은 진지하게 충고를 덧붙였다.

요제프 황자는 샬롯의 연두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별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이론에, 새로운 길. 뭐, 어쩔 수 없이 위험하겠지. 하지만 좋아. 그렇게 하지.”

샬롯은 옆으로 길게 고개를 기울였다.

요즘 궁금한 게 생길 때마다 습관적으로 하게 된 몸짓이었다.

분홍색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90도 꺾어진 요제프 황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분명히 제가 생각할 때는 이게 최선의 방안이었다.

그래서 줄곧 요제프 황자의 혈맥을 대신 타동해 주는 이른바 벌모세수를 해 주기 위해서 지금껏 그렇게 열심히 내공을 쌓고, 제 몸의 혈맥을 뚫으며 노력해 왔다.

하지만 요제프 황자 입장에서는 내공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조차 처음 듣는 것일 텐데…….

‘난 솔직히 일주일은 설득할 각오가 되어 있었는데…… 뭐야, 이렇게 싱겁게.’

너무 쉽게 설득이 되니까, 오히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

“음?”

“왜 이렇게 내 말을 믿어 주는 거야? 난 너로선 고작 아홉 살짜리 말썽꾸러기 여자애잖아. 아냐?”

샬롯이 고개를 모로 하고 물어 온 질문에, 요제프는 또 그 눈을 했다.

의미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상대를 의심하고 있는 건지 믿고 있는 건지도 모를 정도로 지그시 눈을 맞춰 오는 그 눈.

샬롯은 그 새카만 눈동자 속에서 의중을 알아내려고 오래 시선을 맞닥뜨렸지만, 요제프의 생각을 읽어 내기엔 무리였다.

요제프는 오랜 침묵 끝에 툭 던지듯 말했다.

“내가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거 기억나나?”

“……어? 어…… 대충?”

“내가 더 이상, 샤를로테, 네가 왜 내게 잘해 주는지 묻지 않겠다고 했지.”

“그랬지……?”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이야기겠지.”

‘……무슨 말을 저렇게 꼬아서 해? 하나도 모르겠는데.’

샬롯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가, 다시 반대쪽으로 기울였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뇌가 좀 더 활성화되는 것도 아니라서, 마찬가지로 요제프가 한 말은 제대로 이해되질 않았다.

‘……뭐, 됐나. 아무튼, 빨리 이해해 주면 좋은 거지.’

샬롯은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고 몸을 똑바로 세웠다.

애초에 천상 무림인인 그녀는 오래 생각하는 것 자체가 체질에 안 맞았다.

“음…… 그래. 뭐, 대충 그렇다고 하자. 준비는 다 끝나긴 했는데……”

샬롯은 말꼬리를 늘리며 요제프의 두 호위를 슬쩍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요제프의 몸 상태 변화에 대해 두 명의 호위에게 알려 주는 건 달가운 일이 아닐 거다. 전혀 도움도 안 될 거고.

“차라리, 내 방으로 와. 거기서 하자.”

요제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샬롯은 그가 저를 보는 눈빛이 묘하게 유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도 마주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무튼, 주변에 무림인이 한 명도 없는 게 어떻게 보면 다행이기도 한데, 아쉽기도 하네.’

무림인들이 이 계획을 들었으면 이게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알기에 뜯어말렸을 테니 없는 게 나았고, 만약 있었으면 도움을 받았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아쉬웠다.

일단 요제프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 샬롯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도시락을 풀었다.

구운 양고기에, 키슈, 두툼한 베이컨과 치즈, 채소가 들어간 샌드위치며 아이들도 먹을 수 있는 논알코올 포도주까지.

“와……”

샬롯은 눈으로 보기만 해도 벌써 배가 부른, 화려하고 예쁘게 장식된 음식들에 절로 감탄사를 흘렸다.

처음에는 단출하고 먹기 편하기만 하던 도시락은 나날이 화려해졌다.

매일같이 주방을 찾아가 키친 메이드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름 그녀들과도 조금쯤 친해진 것 같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잘 해 주시다니……’

전생의 그녀가 매일 먹던 보잘것없는 반찬 한두 개만 놓인 밥상에 비하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정말이지 황제가 받아 보는 상이 부럽지 않았다.

그냥 메뉴 구성이 화려한 것보다, 저를 위해서 일부러 도시락 메뉴를 따로 마련해 준 게 너무 감동적이었다.

세티야 가에서 그리 중요한 인물도 아닌데.

한참 정신없이 감동하기 바쁘던 샬롯은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예상대로 새카만 눈동자가 그녀를 지그시 들여다보고 있었다.

“왜?”

“매번 잘도 그런 얼굴을 하는군.”

“……뭘 그렇게 관찰했어? 얼른 먹기나 하자.”

요제프는 어깨를 으쓱하곤 손을 뻗어 우유를 집었다.

요즘 들어, 요제프가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게 된 덕분에 그는 제법 살이 올랐다.

뼈가 다 드러나 보일 것 같던 얇은 팔다리도 이제 제법 소년답게 튼튼해 보였다. 게다가 란슬롯과 그 무리가 줄곧 보이지 않았던 덕분에 멍도 꽤 가셔서 보기 좋은 탄탄한 몸이 되었다.

샬롯은 그런 그를 보는 게 그저 흐뭇해서 빙긋 웃어 보였다.

“많이 먹고 쑥쑥 자라, 요제프 황자님.”

“……그것참, 고맙군.”

“잘 먹겠습니다.”

샬롯이 신나서 샌드위치를 집어 들고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어딘가 불만이 있는 듯한 얼굴로 생각에 잠긴 얼굴의 요제프는 줄곧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 * *

식사 후 요제프와 샬롯이 그녀의 방으로 함께 갔을 때, 요제프의 호위 기사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 방문 앞에 도열해 섰다.

샬롯은 굳이 안으로 따라 들어오지 않는 기사들을 흘끗 바라보며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그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 아이작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방심해 주진 않았을 거다.

지금까지 의외의 모습을 자주 보였음에도, 기사들은 아직 자신을 경계해야 할 인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잘된 일이지.’

샬롯은 베티에게 혹시라도 방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절해 달라고 미리 당부하고 방문을 걸어 잠갔다.

요제프는 저번에도 샬롯의 방에 온 적이 있으면서도,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멀뚱히 서 있었다.

방 안을 둘러보는 그의 시선을 보며, 그녀는 작게 웃었다.

“많이 바뀌었지?”

요제프가 놀랍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그 작은 주억거림과 작디작은 속삭임이, 요제프로서는 최대한의 놀라움을 표현한 거라는 걸 이제 알고 있었다.

샬롯은 웃으며 요제프를 끌어다가 침대 위에 앉혔지만, 이내 진지하게 표정을 굳혔다.

“지금부터,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 줘야 해. 네 호위 기사들이 얼마나 인내심이 길지 모르니까, 최대한 빨리 끝마칠 생각이야.”

요제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흑단의 까만 머리카락이 살랑, 움직였다.

그녀는 길게 숨을 뱉고, 요제프의 상의를 벗게 했다.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까, 긴장되네.”

이론적으로야 완벽히 알고 있었고,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 보기도 했지만…… 실제로 다른 사람의 혈을 뚫어 주는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그래도 화산파에 외부인들이 진료를 목적으로 방문하면, 그 귀찮은 뒤치다꺼리도 도화의 몫이었다 보니 뜸과 침에는 아주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샬롯의 몸을 새로 얻으면서, 무공을 익히지 않은 몸에 혈을 뚫어 준다는 게 어떤 일인지 다시 한번 새로이 이해했다.

할 수 있다.

이건 무모한 자신감이 아니라,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에서 나오는 확신이었다.

샬롯은 시키는 대로 제 앞에 단정히 앉은 요제프에게 다가가 마주 보고 나란히 앉았다. 그러곤 그의 양손을 살짝 움켜쥐고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

“긴장 풀어. 다 잘 될 거야. 그냥, 아무런 말도 하지 말고 내가 이끄는 대로 흐름을 따라오면 돼.”

“그래. 긴장 안 해.”

요제프의 말은 사실이었다. 요제프의 올린 손으로도, 그 손 안으로 느껴지는 내력의 흐름으로도 그가 아주 편안한 상태로 있음이 느껴졌다.

이렇게 오롯이 다른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쉬운 게 아닌데.

샬롯은 조금 놀랐지만, 다른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녀는 내력을 운용하여 요제프의 몸속으로 제 기운을 천천히 흘려보냈다. 요제프의 몸은 조금의 거부도 없이 그녀의 기운을 받아들였다.

샬롯도, 그리고 그 기운을 받아들이는 요제프에게서도 은은한 붉은색 오라가 흘렀다.

요제프의 혈도는 엉망진창으로 막혀 있었다.

주화입마도 머지않았다고 생각했었을 정도로, 기의 흐름도 방향도 제멋대로였다. 몸속으로 타고 들어온 강력한 기운들이 제대로 된 운용법을 찾지 못한 탓이다.

샬롯은 요제프의 혈도를 최대한 빨리 뚫으려 신경 쓰면서도, 내력을 지나치게 많이 모아 흘려보내는 대신 천천히 하나의 혈을 뚫고, 달래듯 다음 혈로 이동하는 것을 반복했다.

혈을 뚫는 것에는 강하고 막대한 양의 기가 필요하지만, 이미 임독양맥을 개통한 샬롯에게 이렇게 기의 밀도가 높은 세계의 기를 제 몸으로 받아들여 요제프에게 전달해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요제프의 기운들은, 정신없이 들끓으며 방향을 잃고 있다가도 샬롯의 인도를 전혀 거부하지 않고 부드럽게 따랐다.

그녀는 대추를 지나 백회까지 올라온 기운을 다시 순조롭게 내려 천천히 단전으로 밀어 넣었다.

‘……됐다.’

샬롯은 온몸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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