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공녀님 (36)화 (36/123)

#36.

팅!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간 금속 조각이 바닥에 박혔다.

부러진 검을 나뭇가지 하나로 쳐낸 분홍색 머리의 여자아이는 샬롯이었다.

“……어?”

너무 놀란 나머지, 란슬롯은 순간적으로 입에서 말이 튀어나오질 않았다.

샬롯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뭇가지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러곤 똑같이 황당해하고 있는 란슬롯을 향해 바로 섰다.

“요제프 황자를 교육한다는 명목으로, 죽일 생각이었나? 내가 막지 않았으면, 요제프 황자님의 심장에 꽂혔을 거다, 그 검 조각.”

그 목소리는, 서슬이 퍼렜다.

지독하게 상대방을 몰아세우는 목소리.

고작 아홉 살이 누군가를 혼내는 목소리라곤 상상조차 되지 않는, 절로 제 행동을 되짚어 보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란슬롯……!”

지금까지 란슬롯을 두둔하던 아이들이 바닥에 떨어진 진검 조각을 보고서 그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듯 발을 동동거리며 다가왔다.

아이들도, 샬롯이 물에 빠졌을 때보다 훨씬 더 공황 상태였다.

첫째로, 검 조각이 너무 위협적으로 날아갔기 때문이었고, 둘째로, 샬롯이 오러가 서린 검 조각을 막아 냈다는 것 때문이었다.

정말로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상황이라는 것을 뒤늦게 인지한 거다.

란슬롯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는 제가 잘못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요제프 황자가 오러를 안 쓴 건 황자의 판단인 거지 내 잘못이 아니지 않나?’

그래서 당당할 수 있었다.

그와 별개로, 그의 가라앉은 녹색 눈동자에는 제 앞을 가로막고 선 분홍색 머리카락의 여자아이를 향한 의문만이 가득 섞여 있었다.

‘……도대체 내가 지금 뭘 본 건지 이해가 안 되는데.’

제 오러가 주입되어 있던 검날을 쳐낸 게, 샬롯이라는 것부터가 일단 이상한 이야기였다.

연회장에서부터 혹시 재능을 발현한 건 아닌지 줄곧 의심하는 아이들을 비웃었던 란슬롯이었다.

그런데 심지어…….

‘나뭇가지로……?’

너무 황당한 이야기투성이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이상하다고 말해야 좋을지 모를 지경이었다.

직접 앞에서 샬롯을 대면하지 않은 아이들은 그녀가 오러를 썼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그는 똑똑히 보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붉고 아름다운 오러가 나뭇가지를 감싸는 것을.

그렇게 란슬롯이 멍하니 서 있기만 한 동안, 샬롯의 뒤에 서 있던 요제프 황자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요제프 황자의 검은 눈동자에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다채로운 감정이 서려 있었다.

한눈에 알아보기 힘든 감정들이었다.

“샤를로테.”

요제프는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말조차 잘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아이들도, 란슬롯도 어쩐지 요제프 황자의 목소리조차 낯설다고 생각했다.

“샤를로테, 네가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요제프는 뭐라 더 말을 이으려다가 샬롯을 바라보고는, 다시 말문이 막힌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물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치 뭔가를 자책하듯, 손이 아파 보일 정도로 세게 주먹을 움켜쥔 요제프가 한참을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그녀에게 다가섰다.

“다친 건가?”

샬롯이 그 말을 듣고서야 제 손바닥을 펼쳐 내려다보았다. 나뭇가지를 받쳐 쥐고 있던 양손에 실금이 가듯 피가 살짝 맺혀 있었다.

그녀는 혀를 차곤 창피하다는 듯 손을 숨겼다.

“아…… 이건, 아직 수련이 부족해서 그래.”

“다시 봐.”

“아니야, 괜찮아.”

“샤를로테.”

란슬롯은 묘하게 저와 다른 아이들의 존재를 신경도 안 쓰는 듯한 요제프와 샬롯의 모습에, 속이 몹시 끓었다.

서로 본 척도 안 하던 샬롯과 요제프가 무슨 아주 대단한 사이라도 된 것처럼 친밀하게 구는 걸 봐서 그럴 거다.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고 우스운 꼴이 된 느낌이 드는 건.

‘……아니, 샬롯이 도대체 왜 그런 걸 할 수 있느냔 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못 박힌 듯 움직이지도 못하고 샬롯과 요제프의 대화를 구경하고만 있는 건, 아직도 그 황당한 의문이 해소되지 않아서였다.

무리의 대장인 란슬롯이 마치 주문에라도 걸린 듯 멍하니 서 있기만 하자, 다른 아이들도 그 자리를 지키며 이 사태를 두고 각자의 의견을 수군거려 대기만 했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소란스럽지?”

그때, 풀잎을 밟는 소리 하나 없이 멀쑥한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침의 햇빛 속에서 그 날카롭고 고고한 얼굴이 더욱 빛을 발하는…….

“……아이작 형님?”

란슬롯은 저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로 아이작을 불렀다.

그도 그럴 게, 아이작은 요제프 황자를 교육하는 일에는 정말 요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그 일에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제가 검을 수련하는 일과 기사단의 운영을 제외한 그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었다. 마치, 다른 이들과 어울려 줄 시간 따위는 없다는 듯.

아이작이 세티야 가의 다음 후계자로 거의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이 상황에, 그의 그 고고한 태도에 대해 시비를 거는 이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여긴 어쩐 일로……”

아이작은 황자가 있는 것을 보고서는 그쪽으로 성의 없는 묵례를 보내고서, 샬롯 쪽을 턱짓했다.

“숙부께서 기묘한 일을 허락하셨다 해서, 무슨 일인가 구경하러 왔을 뿐인데…… 다 같이 수련하는, 그런 아름다운 사이가 된 건가?”

아이작의 서늘한 눈이 란슬롯과 우르르 몰려 서 있는 세티야 가 방계 소속의 아이들과 중소 귀족가 출신의 아이들을 훑었다. 그리고 샬롯의 바로 앞에 서 있는 요제프 황자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그중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다는 듯, 인파를 뚫고 성큼성큼 걸어 샬롯을 번쩍 안아 올렸다.

샬롯은 지난번에 아이작이 그녀를 안고 있을 때 탈출한 이후로 이런 상황이 처음이었지만, 이젠 누군가에게 안기는 것에도 제법 익숙해져서 반항하지도 않았다.

샬롯을 안아 올리는 순간, 아이작의 그 얼음 같던 얼굴에 사르르 미소가 떠올랐다.

이미 웅성거리고 있던 아이들 사이에 다시 한번 말도 안 된다는 듯한 낮은 소란이 지나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요즘 소란을 몰고 다니는 게 일이군, 막냇동생님.”

“……아마 큰 오라버니보단 제 소란 쪽이 규모가 작지 않을까요.”

그가 몰고 올 풍파를 예고한 나름의 뜻깊은 대꾸였지만, 아이작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 샬롯을 관찰하느라 그녀의 말을 한 귀로 흘렸다.

아이작은 제가 입은 것과 비슷한 디자인의, 세티야 가 문양이 자수로 박힌 무복을 입은 샬롯을 한참 바라보다가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렸다.

“……음? 다쳤는데?”

샬롯은 뜨끔해서 작게 웃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피 냄새가 나는군.”

‘……아니, 짐승이야? 피를 냄새로 어떻게 알아? 하긴, 아이작 이 오라버니도 재능 괴물이었지.’

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이작의 재능이 불러올 미래를 속으로 떠올렸다.

아이작은 샬롯의 조그마한 두 손을 앞으로 놓고 상처를 훑어보았다. 척 봐도, 검을 쥔 사람이라곤 볼 수 없는 보드랍디보드라운 피부의 한가운데에 이리저리 피가 번져 있었다.

“방금 막 다친 상처군. 뭐지?”

“오라버니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에요.”

“음,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라.”

아이작은 그녀를 추궁하는 대신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바닥에 팽개치듯 놓여 있는 부러진 검과 란슬롯의 손에 들려 있는 진검을 차례로 훑었다.

아이작의 서늘한 눈이 란슬롯을 쏘아보듯 바라보았다.

정황이 너무나도 명백했다.

란슬롯은 뭐라 변명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당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형님, 그게.”

“시안 가의 장자. 어떻게 된 거지?”

“……아, 형님. 전 그냥, 리카르도 황자님께서 교육을 부탁하신 대로 이행했을 뿐입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아이작의 얼굴에는 샬롯을 안아 올릴 때의 그 미소 같은 것은 남아 있지도 않았다.

자신을 엄히 추궁하는 눈빛 앞에, 란슬롯은 아이작의 품에 폭 안겨 있는 샬롯을 쏘아보았다.

‘……도대체 언제부터 아이작 형님이 샬롯을 예뻐했다고, 내가 이런 처지에 놓여야 하는 거야? 내가 잘못한 게 대체 뭐가 있는데?’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제 사촌 동생을 소중하다는 듯 안고 있는 아이작의 앞에서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란슬롯은 아이작의 서늘한 추궁 앞에서 억지로 입을 열었다.

“……제가 다치게 한 것은 맞지만……”

아이작의 눈이 다시 한번 가늘어졌다.

“샬롯과 대련 중이었나?”

‘……언제부터 친했다고 샬롯이라고 하시는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샬롯이 끼어든 거라니까요?”

란슬롯의 해명에 아이작이 가볍게 혀를 찼다.

“길게 들을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군. 대련 상대도 아닌 자를 다치게 하다니. 세티야의 검이 울겠어.”

“……형님!”

아이작이 눈을 서늘하게 뜨고 더 할 말이 있냐는 듯 란슬롯을 오만하게 내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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