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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 게임의 공략캐가 되었다-69화 (6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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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네요?”

신문이었다. 마룬시에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제노스에게 쇼하트 농장의 기사화를 요청했었다.

“여기 바르트 신문사의 조간에 기사가 났더라고요. ‘그 농장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가짜 향수가 있다’라는 제목으로 말이죠.”

신변 보호를 위해 일단 기자 이름은 기재하지 않았다. 신문사 입장에선 엄청난 특종을 잡아 온 셈이니 신문사에서도 그 정도 배려는 해주겠다고 했다.

“기사라고?”

“네, 이렇게 엄청난 범죄가 발생했는데 입 꾹 다물고 있으면 언론이라고 할 수가 없죠. 특히나 저희 바르하르트 가문에서 운영하는 신문사라면 말이죠”

냉큼 신문을 집어 든 헤슬루가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정말이네요. 이걸 한 번 보세요. 수거된 카피 제품에는 중독성 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이런 끔찍한 일이….”

기사를 발표하는 일은 없을 거라 호언장담을 한 터라 제노스에게는 미안했다. 대신 그럴싸한 기삿거리를 알려주며 파르미엔 영지로 취재 떠나라고 조언했다. 내 서신과 함께 떠났으니 북부지역에만 들어서면 파르미엔 가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마룬시에의 분노를 피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래서 공녀님이 여기까지 오신 거로군요. 감히 공녀님의 농장을 운영하면서 뒤로는 카피 제품을 만들어 판 녀석들을 응징하기 위해!”

헤슬루가 흥분하며 신문을 옆으로 넘겼다.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이렇게 기사까지 나왔으니 농장 주인도 발뺌하진 못할 거랍니다.”

모두의 손을 거쳐 간 신문을 마지막으로 마룬시에가 집어 들었다. 그러는 동안 영애들이 제각기 한마디씩 떠들어댔다.

“거기가 누구의 소유였죠? 쇼하트 자작? 뻔뻔스럽기도 해라.”

“저희 아버지께서 쇼하트 자작의 아버지인 공작님과 잘 아는 사이세요. 이 일에 대해 말씀을 드려볼게요.”

이제 마룬시에는 대외적으로는 쇼하트 공장의 피해자가 되어야 했다. 일을 맡겼던 동업자가 뒤통수를 친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거칠 것 없는 그녀라 할지라도 여기서 가짜 향수 역시 내가 만들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이제 그녀가 날을 세울 쪽은 ‘공장을 못 쓰게 만든 정체불명의 사기꾼’이 아니라 쇼하트로 보여야 마땅하다는 뜻이었다.

이 사실을 발표함으로 공장에 숨어든 사기꾼의 정체가 밝혀져도 할 말이 있었다. 카피 제품을 유통했을 뿐만 아니라 독성 물질을 만드는 자들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말이다.

‘마룬시에가 내게 고마워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이거지.’

한가지 모를게 있다면 루티시나였다. 어떤 이유로 신문을 직접 들고 나타났는지 말이다. 사실 이런 극적인 연출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 모도루 백작가로 배달된 바르트 신문을 미리 챙겨왔다. 적당한 타이밍에 이걸 꺼낼 생각이었는데 루티시나가 그 일을 대신에 해주었다.

신문을 확인하는 마룬시에를 사이에 두고 난 루티시나와 눈이 마주쳤다. 호수에서의 더블데이트 이후 첫 만남이었다.

나는 스킬을 시전하며 씽끗 웃어 보였다.

「저 여자는 왜 아는 척이죠? 공녀보다야 조금 나을지 몰라도 나와 웃으며 인사할 사이는 아닐 텐데요.」

루티시나가 날 싫어하는 건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휙 소리가 날 정도로 내게서 고개를 돌린 루티시나의 머리 위에 다시 속마음이 떠올랐다.

「저 음흉한 공국 여자가 감히 바르하르트 후작가를 우습게 봤다 이거죠? 그런 음모를 꾸며놓고 우리 후작가를 농장 침입법으로 지목하다뇨.」

내가 흘린 헛소리가 모두에게 효과가 있었나 보다. 쇼하트에게 정황을 들은 마룬시에는 바르하르트 후작가를 의심하게 되었을 것이다. 왕세자 보좌관인 베르만이 그 사실을 알아챈 듯했다.

「어불성설이네요. 이참에 공국의 민낯을 만천하에 알려 다시는 우리 바렌시드에 얼씬도 못 하게 해주겠어요.」

가문에 대한 자부심과 바렌시드에 대한 사랑이 루티시나를 행동하게 만든 것 같았다. 귀족주의가 이런 식으로 발현한다면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여러분, 한가지 간과하고 계신 사실이 있는 것 같은데요. 진짜 앙루민 향수를 파는 샵도 공녀님의 관리하에 있는 곳이고 카피 제품을 만든 곳 역시 공녀님과 계약을 맺는 곳인 거 알고 계시죠?”

루티시나가 웅성거리는 무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루티시나가 이렇게나 협조적으로 나오는데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그것참 재미있는 일이네요. 가짜 향수를 만드는 곳과 진짜 향수를 만드는 곳이 전부 공녀님의 휘하라니.”

“그렇죠?”

“아마 아랫놈이 공녀님을 배신했나 봅니다. 제멋대로 카피 향수를 만들어 팔다니.”

“그렇겠죠? 역시 아랫것의 욕심이 지나쳤던 거겠죠?”

「파르미엔 영애와 말이 통한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은데요? 험하게 살아와서 그런지 이런 쪽으로는 이해가 빠르네요.」

그래, 루티시나에겐 귀족이라고는 해도 변방에 있는 데다 전쟁터까지 다녀온 내가 잡초로 보일 수도 있겠다.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나요?”

우리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헤슬루가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저도 모도루 영애와 같은 생각인데요 한쪽에선 이런 이야기도 나도는 모양이에요. 공녀님께서 가짜 향수를 만드는데 협력하셨다고 말이죠. 귀족들 사이에서 향수를 유행시키고 평민들이 따라 사기 쉬운 카페 제품을 만든다. 하지만 그 카피 제품에는 해독이 필요한 물질을 넣어 차후에 이 사실이 밝혀지면 카피 제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척 해독제를 판매한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헤슬루를 대신해 내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손바닥을 마주쳤다.

“병 주고 약 주고를 몸소 실천하려고 했단 뜻이군요. 그것도 문제가 생기기 쉬운 귀족층은 피해서 말이죠.”

“어머, 설마 그렇게 끔찍한 일을….”

헤슬루가 입가에 두 손을 모으고 마룬시에를 힐끗거렸다. 마룬시에에 대한 경외심은 사라지고 의심과 경멸만이 남은 눈빛이었다. 다른 영애들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일부 음모론자들의 의견이지요.”

“언제 음모론자들의 의견까지 듣고 오신 건지. 참으로 부지런하기도 하네.”

마룬시에가 비꼬듯 말을 던졌지만 이미 승기를 잡은 루티시나에겐 쓸모없는 허세였다. 루티시나는 붉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도도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바르하르트 후작가의 여식으로 국가의 보건과 치안을 위협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부지런히 알아봄이 마땅하죠.”

티파티에 늦은 게 다 이유가 있었다.

“오늘은 이만 가봐야겠어. 바르하르트 영애의 말대로 내가 바쁜 일이 많아서.”

오늘의 설전은 완벽히 이쪽의 승리였다.

‘루티시나와 날 한편으로 묶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번만큼은 적이 같으니 말이야.’

멀어져가는 마룬시에의 마차를 바라보는데 루티시나가 다가왔다.

“파르미엔 영애. 당신은 알고 있었죠?”

“무슨 말씀이시죠?”

“시치미 떼도 소용없어요. 당신이 엊그제 신문사에 들렸다는 정보를 입수했거든요. 이전에도 연락한 적이 있던 기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죠?”

“바르하르트 영애께서 신문사의 일을 이토록이나 소상히 알고 계실 줄 몰랐네요.”

이렇게 나온다면 ‘사람을 분석하는 마케터의 혜안’을 다시 한번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나랏일로 바쁘시니, 그쪽엔 내가 관여를 하는 것뿐이에요.”

「왕세자에게 미쳐있는 줄 만 알았더니 가짜 향수에 대한 건 대체 언제 조사를 한 거지?」

“아무튼, 전 아닙니다. 신문사에는 파르미엔 영지에 대한 기삿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들른 거예요. 제 이야기를 들은 기자가 북쪽으로 떠났다는 이야기도 들으셨죠?”

「흥, 끝까지 시치미를 떼겠다 이건가? 뭐 상관없어. 이번 일을 해결하는 건 우리 바르하르트 가문일 테니. 공녀가 바르하르트를 범인으로 지목한 걸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어 줘야겠어.」

듣던 중 반가운 말이었다.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도 이런 열정을 보이다니.

나라를 대표하는 귀족 가문 정도가 되면 이런 오지랖과 자부심 정도는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루티시나, 부디 나한테 불똥이 튀기 전에 향수 사건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달라고.’

그렇게만 해준다면 지난날 바르하르트 남매에게 당했던 수모는 깨끗이 잊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다들 각자의 마차로 돌아가는 중 누군가가 날 불러세웠다. 복장으로 보아하니 마룬시에의 시녀였다. 급하게 달려온 듯 숨을 몰아쉬며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기사님께 드리는 편지입니다.”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편지를 보내?

“공녀님께서 급히 전해야 할 말이 있다며 기차에서 적으셨습니다.”

그렇게 급했다면 다시 되돌아오는 쪽이 더 빨랐을 것 같은데. 어떤지 불길했다.

편지는 자주라도 내릴 수 있을 것 같은 붉은 잉크로 쓰여 있었다.

「방해꾼이 있어서 미처 대화를 다 나누지 못했네.

설마 우리가 나눠야 할 이야기가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지?

내가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야.

아나드 토벌전의 영웅이자 왕세자님과 귀족 영애, 극장의 프리마돈나까지 구했던 우리의 기사님은 과연 정체불명의 한 사내를 구할 수 있을까?

아, 정체불명이라고는 해도 기사님은 그가 누군지 알고 있겠지.

과연 기사님이 그자를 구할 수 있을까?

활약을 기대할게.」

하마터면 마룬시에의 시녀 앞에서 편지지를 한 줌도 안 되게 구겨버릴 뻔했다.

‘역시 크로버를 알고 있어. 나와 그가 제법 가까운 사이라는 것도.’

크로버가 예지의 신관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러면 나에게 이런 유치한 예고장 따위는 보낼 필요도 없이 곧장 신전으로 쳐들어갔을 터였다.

그러니까 지금 이 편지는 크로버를 낚기 위한 미끼였다. 내가 폭탄을 물고 집으로 돌아가는 생쥐처럼 크로버에게 쪼르르 달려가길 바라고 있었다.

“공녀님께는 잘 알겠다고 전해주세요.”

‘침착하자. 난 이성적인 인간이잖아? 침착하게 생각을 해보자고.’

난 흔들거리는 마차 안에서 머릿속을 정리했다.

마룬시에가 바렌시드에 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때 바로 크로버를 만날 수는 있었다. 그랬다면 크로버를 만나 이 상황에 대해 의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건 날 지켜보고 있을 마룬시에의 ‘감시자’ 때문이었다.

“모도루 영애. 제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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