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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 게임의 공략캐가 되었다-61화 (6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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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마에 님. 이미 해결하셨군요!”

    「그러면서 나한테 그렇게 겁을 줘? 아무튼 성질머리 더러운 여자라니까.」

    내가 자신의 연애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니 손바닥 뒤집듯 마룬시에에 대한 평가가 바뀌었다. 참 가벼운 사람이었다.

    “대체 어떻게 기자를 구워삶으신 겁니까?”

    나는 돈 좀 쥐여줬다는 의미로 엄지와 검지를 비벼 보였다.

    “바르하르트 가에서 자체적으로 조사를 나올 계획이라고 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웃음이 가득했던 쇼하트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하아…. 아무리 후작가라고 해도 그렇지. 개인 사업장에 마음대로 들어와도 되는 겁니까? 이쪽도 공작님이 계십니다.”

    “그러니까 더욱 경거망동 말아야지. 네 아버지께 불똥이 튀지 않게 하려면 말이야.”

    바르하르트 후작가와 하마르 공작가는 바렌시드에서 가장 권세 있는 가문이었다. 겉으로는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지만, 은근히 알력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 어떻게….”

    “일단 공장을 폐쇄해. 일꾼들은 그냥 맛단나무 농장의 일꾼들이라고 둘러대고.”

    「그 아까운걸…. 에휴, 난 참 운도 지지리 없지.」

    별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지 쇼하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을 시킬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많이 악화된 자들은….”

    사실 공장의 일을 완전히 비밀로 하려면 일꾼들은 없애버리는 게 최선이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귀족 입장에선 별 볼 일 없는 인간들이었다.

    “없애버려야겠죠?”

    쇼하트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들을 살려두라고 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녹시아가 아닌 마룬시에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내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크로버가 내 쪽을 돌아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자작은 가만히 있어. 내가 처리할 거니까.”

    “마에 님께서 직접 나서시겠단 말씀입니까?”

    쇼하트의 목소리에서 안도감이 느껴졌다.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은 했지만 몰래 처리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나 보다.

    “바르하르트 가에서 주목하고 있으니 비밀리에 처리하기는 어렵지 않겠어? 일단 그 일꾼들은 바이난 공국으로 데려가겠어.”

    “아아, 그렇군요. 이제야 마에님의 뜻을 알겠습니다.”

    난 크로버를 돌아보며 물었다.

    “일꾼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은 충분하겠지?”

    바이난 공국은 무슨 바이난 공국. 난 그들을 적당한 곳으로 데려가 치료를 해줄 생각이었다. 물론 그 정당한 장소를 구하는 것은 크로버의 몫이었다.

    이제야 크로버도 내 뜻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대체 날 뭐로 봤던 거야. 정말 사람들을 죽이기라도 할까 봐 그렇게 놀랐어?’

    돌아가면 장난삼아 물어봐야겠다. 날 그렇게 비정하고 나쁜 사람으로 보고 있었냐고.

    “물론입니다. 모든 일을 비밀리에 처리할 수 있습니다.”

    신전을 통해 행동할 테니 당연히 비밀리에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에 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로써 저와 마에 님의 동맹이 더더욱 공고해지겠군요.”

    「원래 같이 은밀한 일을 하는 관계가 가장 돈독한 법이지.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한배를 탄 셈 아닌가? 후작가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왕세자의 귀에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이니.」

    “그러니 공장이나 잘 처리하자고.”

    쇼하트가 어떻게 생각하든 더는 상관없었다. 진짜 마룬시에를 만나게 되었을 때 이 일에 대해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는 했다.

    ***

    지하에 만들어둔 덕분에 공장을 폐쇄하는 일은 간단했다. 흙으로 모든 출입구를 막으면 끝이었다.

    쇼하트는 내심 아까워하는 기색이었지만 난 바르하르트의 이름을 들먹였다. 이 일을 왕세자님이 알게 되어 나와 카미앙의 사이가 틀어지면 책임질 거냐는 으름장도 적절히 섞었다.

    난 크로버와 함께 마차에 일꾼들을 싣고 나왔다.

    “저분들은 신전에서 치료하겠습니다.”

    기대했던 대답이었다. 하지만 치료를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당분간 이 일꾼들은 바랜시드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가능하다면 최대한 오래 신전에서 데리고 있었으면 좋겠는데….”

    “대 신관님께서 적당한 일거리를 찾아주실 겁니다.”

    “그럼 다행이고.”

    한시름 놓았다. 몸에 힘이 빠지고 피곤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갑자기 머리에 쓴 모자가 머리를 죄는 듯 답답하게 느껴졌기에 벗어버렸다. 이걸로 마룬시에 노릇을 하는 것도 끝이었다.

    “주인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그 주인님 소리를 듣는 것도 끝이네요.”

    “혹시 아쉬우시다면 계속 주인님이라고 불러드릴 수….”

    “절대 아니에요.”

    어느새 마차의 흔들림에도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멀미가 나고 엉덩이가 아파 도저히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렇게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으면 제법 편안하기까지 했다.

    신전까지 사람들을 무사히 데려다주자 드디어 기다리던 메시지가 나타났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상승치였다.

    ‘여러 사람을 구했다 이건가?’

    순식간에 많은 명성을 획득한 덕분에 칭호가 변경되었다.

    파르미엔 백작가의 사람이니 난 당연히 파르미엔 기사였지만 칭호로 얻어낸 ‘파르미엔 기사님’은 어쩐지 특별해 보였다. 나 혼자만의 느낌일진 모르지만, 존경과 인정의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내 칭호보다 더 궁금한 건 카미앙의 변화였다. 공략 대상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시스템 창을 열었다.

    ***

    카미앙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없던 두통이 생긴 것 같았다. 그는 책상 위에 내려놓은 마룬시에의 편지를 쳐다보다가 다시 한번 이마 양옆을 짚었다.

    ‘누군가가 저를 사칭해 쇼하트에게 카피 공장의 문을 닫게 만들었습니다. 쇼하트 말로는 바르하르트 가에서 사람을 보내 공장을 조사하고 기사화를 계획했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보았던 베르만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상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평소와 똑같이 단정하고 예의 깍듯한 모습이었다.

    ‘아니지, 베르만이 태연한 건 당연해. 내가 쇼하트의 공장과 관계가 있다는 것까지는 모를 테니.’

    중독성 있는 카피 제품을 유행시키고 다시 치료제를 팔아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돈을 아까워할 때가 아니었다.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한 사건 뒤에 자신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지금까지 쌓아놓은 인지도는 바닥을 칠 터였다.

    ‘어쩌면 왕세자의 자리에서 내려가야 할지도 모르지.’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났다. 어떻게 올라온 자리인데 이 자리에서 내려간단 말인가.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룬시에를 꼭 붙잡아 두어야만 했다. 그녀가 떠나거나 딴마음이라도 품는다면 왕세자로서의 생명은 끝이었다.

    ‘왕세자가 되면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는데. 매일같이 골치 아픈 일만 생기는군.’

    기분전환 할 만한 일이 없을까 생각하던 중 녹시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녹시아를 못 본 지 꽤 오래되었어.’

    호수에서 어처구니없이 헤어진 후로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무사히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은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았다.

    녹시아의 얼굴을 보고 정말 괜찮은 건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은 녹시아에게 있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었다. 루티시나는 그저 바르하르트 가의 영애로 예의를 지킨 것일 뿐이라고 알려주며 오해를 풀고 싶었다.

    ‘하아, 이상하지. 정말로 이상한 일이야.’

    녹시아가 자신만을 바라보며 쫓아다녔을 때는 지겹기만 했는데 이제 와 자꾸 그녀를 생각하는 제 마음을 카미앙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부정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녹시아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필요하기 때문에 그녀를 잡는 것이라고 핑계를 댔다. 녹시아 때문에 루티시나의 손을 놓아버리기까지 한 지금, 카미앙은 확실히 깨달았다.

    ‘결국, 난 녹시아를 좋아하고 있던 거야.’

    너무 늦은 깨달음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녹시아는 녹시아니까. 다른 남자와 있기도 했지만 그건 다 자신을 잊어보고자 아니면 질투를 유발하고자 한 행동이었다.

    ‘그러고 보니 곧 수확제였지?’

    마침 타이밍이 좋았다. 카미앙은 편지지를 꺼냈다. 그리고는 첫 줄에 녹시아의 이름을 적었다.

    ***

    “일꾼들의 상태를 알려드리러 왔습니다.”

    “제가 찾아가면 되는데, 여기까지 나오셨네요.”

    오늘도 예지의 신관이 아닌 크로버였다. 이러다가는 그가 신관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것 같았다.

    “드릴 말씀도 있고 해서.”

    “그럼 정원이라도 산책하겠어요? 단풍이 예쁘게 들었더라고요.”

    사실 모도루 백작가의 응접실을 마음대로 쓰기는 좀 미안했다. 그렇다고 크로버를 내 방으로 부를 수는 없었다. 결국,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만한 곳은 정원밖에 없었다.

    우리는 나란히 빨간 단풍나무 길을 걸었다. 아기 손바닥 마냥 작은 단풍잎이 때때로 바람에 떨어졌다. 말을 하는 쪽은 크로버였다. 나는 가끔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사실 크로버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질 않았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공략 대상인 카미앙의 상태였다.

    내 상태가 변했으니 크로버의 상태도 변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안 그래도 마룬시에와 카미앙의 관계가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내가 알던 공략 대상이 아닌 무려 ‘흑막’으로 진화한 마룬시에였다. 혹시 이러한 변화가 카미앙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닌가 싶어 초조해졌다.

    잠들기 전까지 손가락을 하트로 만들어 보이며 공략창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확인한 것도 공략창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난 지금도 엄지와 검지를 비스듬히 겹치며 공략창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고마워요. 아무튼, 잘 해결돼서 다행이에요.”

    난 적당히 대답하며 또다시 공략창을 열어보았다.

    “드디어!”

    ‘신경 쓰이는 녹시아’에서 이제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다라. 이 순서대로라면 다음이야말로 ‘후회하는 카미앙’이라든지 ‘녹시아에게 후회하고 있습니다.’가 될 게 분명했다.

    ‘끝이 얼마 남지 않았어.’

    이제 카미앙이 내게 매달리는 모습을 즐기면서 매몰차게 차버리는 일만 남았다. 태연하게 있으려고 했지만, 자꾸만 광대가 솟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문제는 시스템 메시지가 너무 반가운 나머지 크로버가 곁에 있는 것도 깜박했다는 것이었다.

    “대체 뭘 하시는 겁니까? 아까부터 계속 손가락을 꼼지락거리시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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