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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 게임의 공략캐가 되었다-60화 (6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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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가 있다고는 하나 언론의 힘은 세지 않았다. 신분제 사회인 바렌시드였기에 여론보다는 신분이나 가문이 우선이었다.

‘공장을 고발한다는 걸 보니 일꾼들의 처우에 관한 문제겠군.’

제노스는 대충 짐작이 갔다. 낯빛이 좋지 못한 채로 주눅 들어 있는 루안의 모습에 더욱 확신이 생겼다.

“저, 일꾼의 노동 환경에 대해 고발을 하실 생각이라면 그다지 효과가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귀족들은 그런 이야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거든요.”

녹시아 역시 귀족이라는 사실이 생각난 제노스는 말을 정정했다.

“일부 귀족들은 다르다는 걸 압니다만 대다수 귀족들은 그렇습니다. 귀족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한 이런 기사를 아무리 많이 내보낸다고 해도 바뀌는 건 없을 겁니다.”

너무 사실 그대로를 말해버렸나 싶어 제노스는 녹시아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이 선량한 건지 세상 물정 모르는 건지 모를 기사는 전혀 기분 나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상에 그 사실을 폭로하는 게 기사의 목적이 아니에요.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약간의 힌트를 드리자면…. 농장주인 쇼하트 자작을 협박하는 용도죠. 그러니 루안군이 말하는 대로 적나라하게 기사를 써주시면 됩니다.”

“저…. 그렇다면 혹시 제가 쇼하트 자작에게 보복당할 일은 없을까요? 한심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제 목숨을 걸고 기사를 쓰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기사로서의 명예를 걸고 약속드리지요.”

기사로서의 명예라니, 제노스는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자신이 어떻게 안전할 수 있는지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었다.

“쇼하트 자작도 제 목숨이 중요할 테니까요.”

녹시아가 빙긋 웃으며 이번에도 시원스레 대답했다.

***

“준비는 다 되셨습니까?”

“그럼요. 이번에는 제 옆에 꼭 붙어있어요. 갑자기 신성력이 떨어져 버리면 곤란하니까.”

나는 다시 한번 마룬시에로 변신을 하고 크로버와 함께 쇼하트를 찾았다. 이번에는 농장이 아니라 쇼하트 자작가의 저택이었다.

“마에 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모도루 백작가에 비하면 작고 소박한 저택이었다. 하긴 자작가는 따로 영지가 없고 쇼하트 자작이 하는 일이라고는 농장을 운영하는 것밖에는 없으니 큰돈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카피 제품에 집착하며 마룬시에에게 잘 보이려 하는 걸지도 모르지.’

응접실에 들어서자 쇼하트의 모습이 보였다. 완벽한 연기를 위해 스킬을 시전했다.

<1. (조롱하듯이) 잘 지냈나 봐요? 난 잘 못 지냈는데.>

<2. (기사를 테이블에 던지며) 읽어봐요.>

쇼하트와 길게 대화를 나누고 싶진 않았다. 나는 제노스의 기사를 테이블 위에 던졌다.

“읽어봐요.”

다짜고짜 종이를 던지는 내 모습에 쇼하트는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지? 마에 님께서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설마, 지난번에 내가 무례한 행동을 해서 그러시는 건가.」

며칠 못 본 사이에 쇼하트에게도 발전이 있었다. 이전에 했던 행동들이 무례했다는 걸 알아차렸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 와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깨달음이기도 했다.

나는 소파에 몸을 파묻으며 다리를 꼬았다. 최대한 위압적으로 보이고 싶었다.

“이게 뭘까요. 어디 보자….”

쇼하트는 내 눈치를 보다가 쪽지로 시선을 옮겼다.

“바렌시드 외곽에 있는 맛단나무 농장에서 일꾼들의 착취가…. 뭐 착취? 착취라니.”

착취라는 단어가 쇼하트의 심기를 건든 모양이었다.

“아직 많이 남았어. 계속 읽어봐.”

“…그런 열악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그 공장은 특정 향수를 불법으로 카피해 판매하는 것으로….”

‘마케터의 혜안’ 스킬을 굳이 사용할 필요도 없었나 보다. 지금 쇼하트는 생각하는 대로 내뱉고 꾸밈없이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에님! 이거 억울하지 않습니까? 카피 제품을 파는 게 저희만은 아니잖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귀족 영애들의 드레스나 신사들의 신발을 똑같이 따라 만든 물건들도 다 불법 아닙니까?”

지금까지 마룬시에 앞이라고 점잖게 있더니만, 쇼하트는 발을 탕탕 구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사기꾼들의 전형적인 항변이었다. 당장이라도 ‘이 나쁜 놈아 입 다물어.’라고 말하며 낯짝을 후려치고 싶었다.

“제일 큰 문제는 마지막 줄이야. 제보에 의하면 이 공장의 카피 제품에서 중독 성분이 발견되었다고 쓰여 있어.”

지금 난 쇼하트에게 이 모든 것을 지시한 마룬시에였다. 나 역시 기분 나쁘고 걱정스럽다는 듯 기사를 가리켰다.

“네? 어디…. 따라서 맛단나무 열매를 특이한 방법으로 가공하는 공장을 자세히 조사해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거 저희 망하라고 쓴 기사 아닙니까? 대체 어떤 놈이!”

“우리까진 아니고 쇼하트 자작이 망할 순 있겠지. 중요한 건 누가 이 기사를 썼는가가 아니라 신문에 발표되었나 아니야?”

“그, 그렇군요. 설마 오늘 조간입니까?”

시뻘건 얼굴로 이쪽을 돌아보며 묻는 쇼하트를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 착실하게 대답해 주고 있는 거 아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진짜 마룬시에라면 이렇게 하나하나 알려주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오늘은 상하가 뒤바뀐 것 같네?”

신문 기사에 정신이 팔려있던 쇼하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감을 잡지 못했다.

“내가 자작의 수하라도 된 것 같잖아? 이게 나한테 일일이 물어볼 일이야?”

“아, 정말 죄송합니다.”

“내부 정보가 유출된 것만으로도 자작은 큰 실수를 범한 거라고.”

쇼하트는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되었는지 내 앞에 냉큼 무릎을 꿇었다.

“마에 님,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요. 대신….”

대신? 지금 쇼하트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이 아니었다. 저건 무언가 협상할 게 있는 사람이나 쓸 법한 단어 아닌가?

그때 정수리가 훤히 보일 정도로 숙이고 있던 쇼하트의 고개가 점점 제 위치로 돌아갔다. 붉어진 얼굴은 여전히 자책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날 바라보는 눈빛에는 왠지 모를 당당함이 있었다.

‘저 반응은 뭐지? 설마 내가 가짜라는 걸 알아낸 건 아니겠지?’

스킬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내가 왕세자님과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걸 아직 모르시나 보군.」

왕세자와의 관계? 순간 녹시아와 카미앙의 관계를 뜻하는 건지 마룬시에와 카미앙의 일을 말하는 건지 헷갈렸다.

“대신 왕세자님께는 이 일에 마에 님께서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절대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왕세자님의 귀에 마에 님의 이름이 이 사건과 함께 들어가지 않도록 입단속을 철저히 시키겠습니다.”

“왕세자님이 여기서 왜 나오지?”

「시치미를 떼시는군. 마에 님, 저도 아버지께 다 들었다 이겁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마에 님이 왕세자님과 친밀한 관계라는 걸 모르고 교제하자며 들이댄 게 부끄럽기 짝이 없었는데…. 상황이 참 재미있지. 이렇게 좋은 패로 쓰게 됐으니 말이야.」

“왕세자님께서도 마에 님이 향료 길드에서 합법적이고 고상한 일만 하시는 줄 아시겠지요? 바렌시드의 사람들에게 그다지 좋지 못한 물건을 파는 일에 동참하고 있으시단 건 꿈에도 모르시지 않겠습니까?”

지금 쇼하트는 마룬시에를 협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쇼하트에 협박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마룬시에와 카미앙이 이미 친분을 쌓은 사이라는 점이었다.

‘대체 언제? 마룬시에와 카미앙은 왕실 파티에서 처음 만나는데?’

이번엔 크로버의 등장에 카미앙이 내게 정신이 팔려 마룬시에를 찾지 못했다. 난 그렇게 두 사람의 만남이 무산되었거나 뒤로 미뤄졌다고만 여겼다.

‘마룬시에가 흑막으로 변했을 뿐만 아니라 카미앙과도 이미 알고 있는 사이라니.’

헤슬루가 말했던 앙루민 향수에 얽힌 왕세자의 이야기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마룬시에는 카미앙과 이미 알고 있던 사이였기에 그 왕실의 전설 같은 스토리를 마케팅으로 이용할 수 있던 것이었다.

‘잠깐만. 그럼 카피 향수는? 쇼하트 공장의 일은? 그것까지 카미앙이 알고 있는 건가?’

난 곧 고개를 저었다. 카미앙이 이런 엄청난 비밀까지 알고 있을 리 없었다. 내겐 비록 천하의 못된 놈이라고 해도 그는 바렌시드의 왕세자였다. 이번 일을 알고 있었다면 이렇게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좋아. 이번 일은 눈감아주지. 하지만 자작도 크게 걱정할 건 없어. 이건 발표되기 전의 기사를 내가 먼저 가져온 거니까.”

쇼하트와의 일은 빨리 끝내버리고 마룬시에에 대해 알아봐야겠다.

“역시, 마에 님! 그럼 이 일은 아직 외부로 새 나간 게 아니군요. 가만있어보자. 기자가 누구며 대체 어떤 놈한테 이 사실을 알아낸 건지….”

“저번에 그 일꾼. 내가 데려간 그자가 스파이였어.”

고맙게도 루안이 자신을 기꺼이 빌려주었다. 은혜를 갚으려는 마음인 것 같은데 안정을 추구하는 그의 성격으로는 꽤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그놈이 스파이였단 말입니까? 설마 그 별 볼 일 없는 놈이 단독으로 행동했을 리는 없고. 대체 어떤 놈이 제 공장에 스파이를 보냈을까요?”

“내가 준 기사의 기자 이름을 봐. 바르트 신문사의 제노스야.”

“바르트 신문사라면…. 바르하르트 후작가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그제야 쇼하트도 감이 온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후작가에서 뭔가 냄새를 맡은 모양이군요.”

탐정이라도 된 듯한 쇼하트의 추리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속으로는 웃음이 나왔다.

‘냄새를 맡긴커녕 바르하르트 가에서는 쇼하트가 뭘 하는지 관심도 없을 텐데.’

하지만 지금 바르하르트 후작가 만큼 좋은 핑곗거리도 없었다.

그동안 베르만이 날 업신여기고 무시한 게 참으로 다행이었다. 다리스처럼 내게 호의적이고 좋은 사람이었다면 서슴없이 바르하르트 가를 입에 올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바르하르트 이름으로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딱히 베르만에게 해가 될 것도 없고 말이지.’

“혹시 후작가와 안 좋은 인연이라도 있어?”

내 질문에 쇼하트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눈동자를 굴리며 뭔가를 떠올렸다.

「설마…. 바르하르트 영애에게 대시했던 일 때문인가? 하지만 그땐 왕세자님도 아나드에 계셨고, 무엇보다 바르하르트 영애도 내게 호감을 표했었는데 말이지. 게다가 이미 뺨까지 때리지 않았나. 인제 와서 그 일로 보복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게임이 시작되기 이전의 일이었다. 귀족 영애의 품위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루티시나가 손을 휘둘렀다니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알만했다. 지난번 내게도 무턱대고 사귀자고 한 사람이었으니 분명 무례한 발언을 했을 것이다.

“바르하르트가와 척져서 좋을 것 없어.”

난 잠시 뜸을 들였다가 쇼하트가 가장 반가울 법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일단 기사는 발표하지 않는 것으로 나와 약속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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