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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 게임의 공략캐가 되었다-59화 (5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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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이 있을 겁니다. 일단은 돌아가서 생각해보죠. 쇼하트 자작이 저쪽에서 우릴 찾고 있습니다.”

크로버는 내게 다시 한번 손을 뻗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크로버의 눈에는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존경과 감동이 서려 있었다. 내 이타적이고 정의로운 발언에 감격한 게 분명했다.

“마에님, 여기 계셨군요.”

“시종이 저쪽에 넘어져 있길래. 거울은?”

“여기 있습니다만…… 어라? 다시 머리색이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그래?”

난 괜히 거울을 들고 이쪽저쪽을 살펴보았다.

“연기 때문에 그랬던 거 아냐?”

“그, 그런 줄 모르고 제가 괜히 호들갑을 떨어 마에 님의 심기를 어지럽혔습니다.”

“됐어. 쇼하트 자작이 다 잘해보려고 한 거니까 이해해.”

호들갑을 떤 덕분에 시간을 벌었고 루안도 발견했으니 대단한 공을 세운 셈이었다.

“그것보다….”

난 크로버를 돌아보며 말했다. 쇼하트의 시선이 자연스레 크로버에게로 향했다.

“저 사람은 누굽니까? 일꾼 같은데요?”

“맞아. 공장 근처에 쓰러져 있던 걸 발견했어.”

“이쪽으로 주십시오. 저희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치료도 아니고 처리라니. 역시 루안은 우리가 데려가야 했다.

“아니. 저자 아무래도 수상해.”

크로버는 루안을 쇼하트 앞에 내려놓았다. 난 루안이 걸고 있는 목걸이를 가리켰다.

“이게 뭔지 알겠어? 신의 방패라는 성물이야. 한낱 일꾼이 성물을 몸에 지니고 있다니, 말이 된다고 생각해?”

“성물이라니…….”

난 크로버에게 들었던 설명을 그대로 전했다. 신의 방패라는 이름을 듣자 쇼하트는 자신도 들어본 적이 있다며 목걸이를 다시 한번 살폈다.

“확실히 평범한 일꾼이 가지고 있을 만한 물건은 아니로군요.”

기대했던 대로 모조품이라는 건 알아채지 못했다.

“조사가 필요하겠어. 위장하고 공장에 들어온 걸지도 몰라.”

“마에 님, 제게 맡겨주십시오.”

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직접 하겠어.”

그렇게 난 루안을 빼내 바렌시드로 돌아갔다.

***

“라라벨, 오늘 쉬는 날이라고 들었어.”

라라벨을 찾은 건 쇼하트의 농장에서 돌아오고 이틀 후였다. 루안은 일단 크로버가 보호하고 있었다. 치유의 성소도 있으니 그쪽에 있는 편이 루안에게도 도움이 될 터였다.

“너무 오랜만에 얼굴 비추는 거 아닌가요? 이러시면 서운하다고요.”

라라벨은 양손을 허리에 짚으며 토라진 시늉을 했다. 다짜고짜 루안의 일을 알릴 수는 없었다. 일단은 라라벨의 장난에 말을 맞춰주었다.

“뭐지? 오늘은 무슨 컨셉인 거야?”

“음…… 멋진 기사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숨겨진 애인?”

“이런 애인이 있다면 온 세상에 자랑하고 다니겠지 뭐하러 숨기겠어?”

“질투하는 사람이 너무 많을까 봐 그러지.”

라라벨은 귀 뒤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나지막이 웃었다. 라라벨은 새로 시작한 연극의 반응이나 극단에서 있었던 소소한 사건을 전해주었다. 나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꺼내기 적당한 타이밍을 기다렸다.

“이런, 나만 너무 떠들어댔나? 우리 기사님은 뭐 재미있는 이야기 없어?”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지만 중요한 이야기는 있지.”

“목적이 있는 만남이었구나? 뜸 들이지 말고 털어놔 봐.”

라라벨은 눈웃음을 지으며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누구라도 마음 갈 법한 매력적인 자태였다. 불우한 가정환경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동생 말이야.”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라라벨의 낯빛에 수심이 어렸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있어?”

“왜…? 설마 내 동생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라라벨이 들고 있던 찻잔이 큰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홍차가 손등 위로 흘러넘쳤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주 안전한 데서 잘 쉬고 있으니까.”

“대체 무슨 일인데?”

하지만 라라벨은 농장에서 일하고 있어야 할 루안이 안전한 곳에 있다는 소식만으로도 충격을 받은 듯했다. 미안하지만 라라벨을 상냥하게 위로해줄 수는 없었다. 긴장감이 고조된 지금 거래를 해야 했다.

“비밀 지켜줄 수 있어?”

“당연하지. 동생 이름이 나왔는데 내가 딴생각할 여유가 있겠어?”

“동생은 당분간 바렌시드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 할지도 몰라.”

“죽는 것보다야 멀리서라도 잘 살아 있는 게 낫지.”

라라벨에게 쇼하트의 공장이 어떤 곳인지 내가 본 그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물론 지난번 동굴에서 빠져나올 때 우연히 봤던 곳이 수상해서 가보았다고 했다. 동생에게 온통 정신이 팔린 라라벨은 내가 그곳에 왜 갔는지 같은 것 관심 밖이었다.

마지막으로 거기서 일하던 루안이 어떤 꼴로 쓰러져 있었는지를 말했다. 라라벨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막둥이가 그렇게 험한 일을 하는 줄도 모르고 난….”

넘칠 듯 말 듯 찰랑이던 눈물이 결국 뺨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라라벨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조금 순화시켜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라라벨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좀 더 적극적인 협조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

“동생은 지금 어디에 있어? 안전한 곳이 어딘데?”

눈물을 닦던 라라벨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내 팔을 잡아당기며 물어왔다.

“신전이야. 치유의 성소에서 쉬고 있어.”

생각지도 못한 곳이었다는 듯 라라벨의 눈이 커졌다가 곧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치유의 성소는 보통 귀족이나 돈 많은 상인이 이용했다. 신분을 차별하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헌금이란 이름으로 비싼 비용을 내야 했다.

“얼마나 있어야 하는데?”

“다른 안전한 곳을 찾을 때까지. 너무 걱정하지 마. 나도 귀족이라고. 파르미엔 백작가에 그만한 돈은 있어.”

물론 카미앙에게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한 나는 빈털터리였다. 하지만 이 일에 대 신관이나 예지의 신관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릴 수는 없었다. 크로버의 정체는 더더군다나 비밀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믿을만한 기자를 알고 있을까?”

“기자?”

라라벨은 눈물을 닦으며 의외라는 듯 반문했다.

“기자의 이름과 기사가 필요해.”

가짜로 만들면 당장은 쇼하트를 속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터진 댐을 손으로 막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설마…. 이 일을 공론화시키려고?”

“공론화까지 하고 뒷감당할 자신은 없어. 그저 쇼하트의 공장을 멈추는 데 사용하려고 하는 것뿐이야. 거긴 루안과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많이 있거든.”

“아… 녹시아 너는….”

뒷말을 삼키긴 했지만 라라벨이 어떤 말을 하려 했는지는 잘 알 것 같았다. 나를 바라보는 눈에는 감동과 존경이 서려 있었다.

‘아니야. 라라벨. 난 그렇게 이타적인 사람이 아냐. 오히려 지독히 이기적인 사람이지.’

이 모든 게 오로지 내 목표를 위한 일이었다. 그걸 위해 난 여러 사람을 이용하고 있었다. 결국,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했지만, 지금과 같은 반응에는 가슴이 따끔거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극장 기사를 잘 써주는 기자님이 계셔. 나와 거의 십 년을 알고 지낸 분이야.”

라라벨은 바르트 신문사의 제노스라는 사람을 소개했다.

***

제노스는 라라벨에게서 녹시아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몹시 놀랐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설마…. 내가 미행했던 일을 알아차린 건가?’

라라벨이 만나자고 했을 땐 여느 때와 같이 새로운 연극에서 맡은 역할이나 극장의 흥행에 관한 기사 따위를 부탁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파르미엔에서 온 그 여기사라니. 자세한 내용은 녹시아에게 직접 들으라는 말에 더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바르하르트의 소후작에게서 녹시아와 모리아리티 백작을 미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바르트 신문사는 바르하르트 후작가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기자들은 종종 사교계의 유명인사나 스캔들을 취재하기 위해 미행을 해왔다.

그래서 온종일 두 사람, 아니지 바르하르트 영애와 왕세자님까지 합류했으니 네 사람이었다. 온종일 네 사람의 기묘한 데이트를 쫓아다녔다.

마지막엔 녹시아와 백작이 물속에서 사라지는 바람에 끝까지 쫓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다. ‘왕세자의 약혼녀라 주장하던 파르미엔 영애. 외국의 미남 귀족 모리아리티 백작과는 무슨 관계?’라는 제목으로 기사까지 뽑아놓았다.

‘필요 없어. 그렇게 됐으니까 기사는 없던 일로 하게.’

바르하르트 소후작의 말에 기사는 빛을 보지 못하고 책상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따지고 보면 제노스가 녹시아에게 해를 끼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난 꿀릴 게 아무것도 없는 게 맞지. 맞지? 맞겠지.’

라라벨 역시 기분 내키는 대로 상대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바렌시드 극장과는 오랜 시간 좋은 관계를 맺어왔을 뿐만 아니라 프리마돈나인 라라벨은 그에게 독점 기사를 제공해 주곤 했다. 앞으로도 도움을 받을 사이었기에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본인만의 이런저런 계산 끝에 제노스는 녹시아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반갑습니다. 파르미엔 백작가의 녹시아라고 합니다. 라라벨양의 추천이 있었어요. 제노스씨께서는 신의가 있고 믿을 만한 기자라고요.”

멀찍이서 미행했을 때는 알아채지 못한 녹시아만의 매력이 눈에 들어왔다. 기사라고 하더니만 시원스러운 성격에 귀족 영애답지 않은 소탈함과 겸손함이 느껴졌다.

“무슨 일로 절 찾으셨는지 궁금하군요.”

“기사를 하나 써 주셨으면 해요. 기자님의 이름으로요.”

“허위 기사라면 곤란합니다. 저도 기자로서의 명예가 있거든요.”

녹시아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연둣빛 머리카락만큼이나 싱그러운 미소였다.

“저도 허위 기사 따위를 부탁할 생각은 없어요. 단지 직접 취재하기는 어려운 곳이라 다른 방법으로 기사를 부탁드리고 싶네요.”

“다른 방법이라면….”

“인터뷰에요. 라라벨양의 동생인 루안군을 인터뷰해 주시죠. 아, 물론 루안군의 신원은 비밀이어야 합니다.”

노크 소리와 함께 루안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라라벨의 동생이라는 말에 혹 극장의 새로운 얼굴인가 싶었지만 라라벨 같은 매력은 없었다.

‘신인 배우 홍보는 아닌 게 확실하군.’

루안은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쭈뼛거리다 자리에 앉더니 한참이나 입을 다문 채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저는…. 바렌시드 외곽에 있는 맛단나무 농장에서 일했어요.”

“아, 거기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꽤 규모가 큰 농장이죠. 쇼하트 자작님께서 운영하시는 곳 맞죠?”

루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또다시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곳에는 농장 말고 비밀 공장이 있습니다.”

“공장이라…. 공장 같아 보이는 건물은 없던 거로 기억합니다만.”

“공장은 지하에 있어요. 남들 눈에는 띄지 않게 맛단나무 껍질을 쌓아두기까지 했죠.”

이번엔 녹시아가 설명을 했다.

“제노스 씨께서는 그 공장에 관해 기사를 써주시면 됩니다. 여기 루안의 이야기를 토대로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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