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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 게임의 공략캐가 되었다-49화 (4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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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님은 딸기 맛이 좋다고 하셨으니 그걸로 하고….”

“전 바닐라 맛으로 하죠.”

“그래서 난 뭘 먹으면 되지?”

카미앙이 멀찍이서 뒷짐을 진 채 물었다. 루티시나만 해도 별 위화감 없이 젤라또를 골랐는데. 사뭇 어색해 보이는 카미앙이었다.

저래 봬도 왕세자는 왕세자라 이건가. 하긴 앉을 자리 하나 없는 노점상이었다. 귀한 왕세자이시니 이런 곳은 처음일지 몰랐다.

“초콜릿 맛 어떠세요? 쿠키가 같이 씹힌다네요.”

루티시나의 제안에 나도 모르게 정답을 말해버렸다.

“너무 단 건 안 좋아하시니 민트 맛이 좋을 것 같아요.”

일 년간 카미앙을 곁에서 보필했던 습관이 튀어나와 버린 것 같았다. 루티시나가 카미앙을 돌아보며 정말이냐고 묻자 카미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녹시아로군. 내가 좋아하는 걸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

아니, 카미앙. 나는 답답한 이사님과 끔찍한 거래처 사장님의 커피 취향까지도 외우고 다니던 사람이야.

「역시 내 질투심을 유발하려고 모리아리티 백작을 이용한 거야. 얼마나 애가 탔으면 녹시아답지 않은 작전을 사용하는군.」

손바닥보다 조금 클 뿐인 아이스크림이 이렇게 엄청난 오해를 불러올 줄은 미처 몰랐다.

“아이스크림이 맛있군.”

저 흐뭇한 표정이 그저 민트 맛 젤라또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이길 바랐다.

“덕분에 복잡했던 게 정리되었소.”

카미앙이 말한 ‘정리된 복잡한 것’이 날 말하는 건 아니겠지. 부디 그러길 바랐지만 날 보는 눈빛이 예전으로 돌아온 게 아무래도 나인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이라면 계속해서 데이트를 이어가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결국, 급히 돌아가야 했던 중요한 일은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아무도 카미앙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다들 각자의 이유로 카미앙이 남아있는 게 이득이라 여겼나 보다.

***

그래서 우리가 찾은 곳은 바렌시드 외곽에 있는 호수였다. 이후 시간을 자신에게 맡겨 달라며 루티시나가 끌고 온 곳이었다.

“어때요? 경치가 정말 좋죠? 여기가 바로 뱃놀이 명소랍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호수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넓은 데다가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미리 준비해 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루터에는 배가 묶여 있었다.

“명소라고 하기엔 참 한적하네요.”

“그래서 명소인 거죠. 몇몇 귀족들 사이에서만 공유되는 정보랍니다. 이 세상에서 벗어나 작은 배 한 척에 의지해 오롯이 둘만이 존재하는 기분이라니. 얼마나 운치 있어요. 안 그런가요. 왕세자님?”

카미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두 번째로 아름다운 호수로군.”

“어머, 그렇게 말씀하시면 첫 번째는 어디였는지 궁금하잖아요.”

“그런 곳이 있소. 여기서 머나먼, 춥지만 따듯한 그런 곳에 있는 호수지.”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예전에 나와 갔었던 거울 호수는 그래도 용케 기억하고 있었다. 카미앙의 말에 반응을 보이는 대신 나는 크로버 옆에 바짝 붙었다.

“이렇게 타면 되는 거죠?”

루티시나가 당연한 일 아니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쪽은 누가 노를 저으실지 모르겠네요.”

나들이용 드레스 차림의 루티시나가 노를 저을 리 만무했다. 물론 그 전에 노 젓는 법을 모를 확률이 컸다. 그렇다고 카미앙이 뱃사공을 자처할 정도로 루티시나에 대한 애정이 넘쳐 보이진 않았다.

“왜 녹시아 님께서 노를 잡으십니까?”

“모리아리티 백작님을 안내하는 역할이니 당연히 제가 해야죠.”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크로버는 가당치도 않다며 노를 뺏어가려 했다.

“드레스 차림도 아니고, 아마 당신보다 제가 훨씬 능숙할걸요?”

크로버가 적인지 아군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에게 요만큼의 배려도 받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정말 이 작은 보트를 능숙하게 몰았다.

우리는 금세 호수 한가운데에 떠 있게 되었다.

“저기, 크로버.”

“교대할까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루티시나와 무슨 계약이라도 했느냐는 질문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눈치 빠르고 말 돌리기 좋아하고 거짓말에 능숙한 크로버였다. 어설프게 물어봤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게 뻔했다.

“기도 좀 해줘요.”

“여기서 말입니까?”

“뭐 어때요? 잡화점에서 기도한 적도 있잖아요?”

“하긴, 이렇게 멋진 곳에서 기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오늘은 기도 제목도 있어요. 사람들이 제게 진실만을 말하게 해주시라는 제목이죠.”

나름대로 크로버를 떠본다고 한 말이었다.

“설마…. 누군가가 거짓말로 녹시아 님의 심기를 어지럽힌 겁니까?”

그래, 바로 너잖아 크로버. 나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내 손을 잡는 크로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충전이 끝나자마자 나는 재빨리 스킬을 시전했다.

이렇게 떨면서 스킬을 시전 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카미앙에게 처음 사용할 때 만큼이나 떨렸다. 긴장한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먼 산을 바라보는 척했다.

“근데 오늘 바르하르트 영애 어딘지 이상하지 않았어요? 분명 파티에서의 일로 잔뜩 화가 났을 텐데…. 당신은 잘 모르겠시지만 평소보다 훨씬 친절했다고요.”

“듣고 보니 그렇네요. 왕세자님이 루티시나 님을 제쳐두고 녹시아 님께 춤을 신청하셨었죠.”

「그렇지. 녹시아 님께 춤을 신청하셨었어.」

“오늘 우연이라기엔 너무 자주 마주치기도 했고….”

“바렌시드 시가지가 별로 크지 않아서요. 원래 아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긴 합니다. 더군다나 데이트 코스라면 말이죠.”

‘지금 루티시나와 동선이 겹쳤던 걸 변명 하는 거 맞지?’

예상치 못한 내 날카로운 질문에 속으론 크게 당황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바렌시드 시가지가 별로 크지는 않지.」

‘…뭔가 이상한데.’

크로버의 속마음은 내 예상과는 한참 벗어나 있었다. 난 다시 한번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우리는 데이트 중이 아니었잖아요?”

“녹시아 님께서 아까 데이트 중이라고….”

“에이. 그건 카미앙에게 괜히 해 본 말인 거 알면서 왜 그래요.”

“거짓말이었나요? 전 진짜로 우리가 진짜로 데이트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막 두근거렸는데 실망이네요.”

「하아, 이번에도 나 혼자 들뜬거군.」

‘아니,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겉과 속이 똑같은 사람이란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인가? 크로버 이 남자, 생각하는 것과 내뱉는 말이 똑같았다.

‘사람이 이럴 수가 있나? 설마 신관이라 그런 건가? 수련을 오래 해서? 신성력이 높아서? 바렌시드 신께서 내뱉는 말과 생각을 똑같이 하라고 말씀하셨나?’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 고지식하고 성실한 다리스조차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곤 했었다.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 스킬을 사용하면 이런 결과가 나오려나?

그럴 리 없었다. 내 주변에서 베르만 못지않게 꿍꿍이속이 있는 사람이 바로 이 크로버라고 생각해왔다.

신관이면서 외국의 귀족 행세를 하고, 신관일 때의 얼굴을 자꾸만 감추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신전에서 허락한 변장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능수능란하게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사람이 겉과 속이 똑같다고?’

그때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뭐? 이제 와서?’

이런 게 있으면 진작 말을 해줬어야지! 응당 내가 스킬을 시전하자마자 나왔어야 하는 경고였다. 아니면 크로버의 속마음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을 때라도 알려줬어야 했다.

‘이 망할 시스템. 요즘 일을 잘한다 했더니만…. 아니 그보다.’

대체 뭐 때문에 크로버에게는 ‘사람을 분석하는 마케터의 혜안’ 스킬이 통하지 않는 거지?

혹시 신관이어서 그런 건가 생각해봤지만 이전에 다른 신관에게는 이 스킬을 분명 사용한 적이 있었다.

‘아니면. 신성력이 높아서?’

신성력이 높다고 해야 할지, 많다고 해야 할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크로버는 다른 신관들보다 확실히 기도 효과가 좋았기에 든 생각이었다.

“하늘에 뭐가 있습니까? 꼭 허공에다가 삿대질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된 거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 수밖에. 난 오후의 햇살 아래서 웃고 있는 크로버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크로버,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거짓 없이 대답해 줄 수 있어요?”

“하하. 갑자기 그렇게 정색을 하시고….”

“나 지금 장난하는 거 아녜요.”

그제야 크로버는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했다.

“바르하르트 영애와 무슨 계약을 했죠?”

나룻배가 흔들렸다. 크로버가 깜짝 놀라며 한쪽 난간을 짚었기 때문이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계약을 한 게 맞긴 한 것 같았다.

“녹시아 님, 어떻게 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뭘 오해하지 말라는 거죠? 오늘 일정을 루티시나와 사전에 맞춰놓고 모르는 척 날 이리저리 데리고 다닌 거요?”

“그렇긴 한데 그게….”

내가 예상했던 게 맞지 싶었다. 크로버는 날 거짓 약속으로 끌어내 카미앙 앞에서 나와 꽤 데이트하는 척 연기를 했다. 루티시나와 계약한 대로 말이다.

‘이거 다시 생각해보니 괘씸하네.’

괘씸할 뿐만 아니라 은근히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퀘스트의 상당 부분을 함께 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 그를 신뢰하고 있었나 보다.

“왜 그런 짓을 했죠? 루티시나야 날 카미앙에서 떼어 놓고 싶어서 그랬다 해도 당신이 굳이 그 일에 협조할 필요가 있었나요?”

“동 아그니안 제국에서는 숙녀가 노를 젓는 게 예법인가 봅니다.”

크로버의 대답 대신 저 멀리서 카미앙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아, 이 중요한 순간에 왜 또 카미앙이야.’

우리의 나룻배가 먼저 출발한 후 카미앙은 내 생각과 달리 열심히 노를 저으며 우리를 따라왔다. 물론 요령이 없는 탓에 제자리에서 빙빙 돌다가 물결을 따라 실려가 버리거나 했지만 말이다.

“우리 바렌시드에선 숙녀에게 노를 젓게 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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