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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 게임의 공략캐가 되었다-29화 (2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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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좋은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여기까지 카미앙을 인도한 게 나 자신인가 싶어 찜찜하기 그지없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으면 좋았겠지만.’

    마지막 답지만큼은 내주지 않아도 되는 게 어딘가 싶었다.

    “여기까지 오신 분들이니까 이 라라벨에 대해선 뭐든 다 알고 계신 건 같아요. 그래서 마지막 문제는 오늘 자신에게 운이 따르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문제를 드릴까 해요.”

    라라벨이 소매 끝을 흔들었다.

    “지금 라라벨의 이 소매 안쪽에 넣어 둔 손수건의 색깔이 흰색일까요? 아닐까요?”

    ‘아, 하필 이게 마지막 문제로.’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플레이할 때마다 정답이 무작위로 바뀐다는 손수건 문제였다.

    공략도 소용없는 데다 대부분 맨 끝에 등장하기 때문에 여러 플레이어를 짜증 나게 했다.

    난 생각할 것도 없이 다시 한번 스킬을 시전했다.

    “열심히 쳐다보셔도 소매 안쪽이 보이지 않으니까 소용없어요.”

    「이런 문제가 하나쯤 있어야 초보자에게도 공평하지 않겠어?」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하신 거예요. 혹 떨어지시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마시길.”

    「나라도 다 못 맞췄을걸.」

    ‘아니, 라라벨 그런 생각 말고 정답이 뭔지 중얼거려 줘.’

    “결정하셨나요? 이건 마지막 문제이니만큼 카운터를 셀게요. 십, 구….”

    「그러고 보니 이번 가면들은 모양이 다 재미있네.」

    내가 생각을 읽고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라라벨이 정답 대신 다른 생각을 했다. 덕분에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다.

    “칠, 육….”

    마음이 급해졌다.

    ‘손수건은 보통 흰색이긴 하지. 그렇지만 그럼 정답이 너무 당연하잖아. 아니지 역으로 너무 당연해서 아닐 거라고 예상하는 걸 노린 건가?’

    승률이 반반이라지만 떨어질 가능성이 오십 퍼센트였다.

    ‘바렌시드의 신께서 나만 따라 하면 된다고 했다잖아? 에라 모르겠다.’

    나는 동그라미가 그려진 팻말을 높이 치켜올렸다. 이어서 라라벨의 카운터가 끝났다.

    “이야, 이거 정말 놀랍습니다.”

    사회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세 분 다 정답을 맞히셨네요?”

    라라벨의 흰 손수건을 보다 카미앙의 팻말을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동그라미?’

    카미앙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동그라미가 그려진 팻말을 들고 있었다.

    ‘이거야말로 주인공 보정인가. 설마 남은 한 명은?’

    설마 했는데 정말로 크로버였다. 카미앙은 그렇다 쳐도 크로버는 대체 무슨 속셈인지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속셈이 있는 게 아니라 우연에 우연을 거듭해 운 좋게 여기까지 온 건 아닐까?

    “남은 최후의 세 분께서는 무대로 올라와 주시죠. 라라벨 양의 선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난 내심 믿고 있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이 가면이었다.

    난 나와 함께 무대에 나란히 선 카미앙과 크로버를 쳐다보며 여유 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모두 알고 계시죠? 우승자가 여러 명이면 제가 마음에 드는 가면을 선택한다는 거.”

    난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정대로 라라벨이 나를 선택하고 이 지겨운 퀴즈쇼가 끝나길 바랐다.

    “어디 보자, 하나같이 고르기 어려운 가면이네요. 그렇지만 선택은 해야 하니까.”

    라라벨은 뜸을 들이며 우리의 주위를 뱅뱅 맴돌았다. 날 선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긴장되었다.

    몇 차례를 돌던 라라벨이 등 뒤에서 마침내 우승자를 발표했다.

    “제 선택은 바로 이분이십니다!”

    박수 소리가 극장 안에 울려 퍼졌다. 난 자신만만하게 뒤로 돌았다. 내 앞에 있는 라라벨을 확인하고는 승자의 세레모니를 보여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없었다.

    내 앞에 있어야 할 라라벨이 어찌 된 일인지 카미앙의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왜?”

    분명히 이 앙증맞은 고양이 가면은 라라벨이 가장 좋아했던 가면인데.

    ‘지금까지 봤던 가면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거요? 단연 고양이 가면이었죠. 아뇨, 그렇게 색시함을 강조한 거 말고, 정말 순하고 귀여운 고양이 가면이요.’

    카미앙과 이런 대화를 나눴던 걸 내가 똑똑히 기억하는데!

    “그럼 오늘의 승자는 저 황금 가면 씨가 되는 건가요? 라라벨 양, 안타깝게 탈락하신 두 분을 위해서라도 황금 가면 씨를 선택한 이유를 말씀해주시겠어요?”

    “음, 일단, 이 가면이 진짜 금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금으로 이렇게 멋진 모양을 만들어 내다니 감동적이죠. 게다가 이분의 이 빛나는 머리카락도 한몫했네요. 머리 전체가 황금으로 만들어진 사람 같았거든요.”

    “그럼 결국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네, 돈 냄새가 팍팍 풍기는 게 아주 마음에 들었죠. 후후.”

    아픈 어머니와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고 있는 라라벨이 가장 좋아하는 건 돈이었다. 그러니까 라라벨은 귀여운 고양이 대신 앞으로 좋은 고객이 돼 줄 수 있는, 어쩌면 지금까지도 엄청난 돈을 썼을지 모를 황금을 선택한 것이다.

    ‘망했다….’

    고개가 저절로 떨궈졌다. 스킬만 믿고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 내 실수였다. 좀 더 적극적으로 카미앙을 방해해야 했다. 아니면 황금 가면만큼이나 값나가 보이는 걸 걸치고 왔어야 했다.

    ‘어장에 구멍 내기 퀘스트는 이대로 물 건너 가버리는 건가.’

    그때 크로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까지 온 게 너무 아쉬워서 그러는데 최후의 선택에서 떨어진 저와 고양이 씨는 가면 연극에 엑스트라라도 할 수 없을까요?”

    뭐지, 연극까지 참여해서 카미앙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인가? 이제부턴 굳이 크로버가 나서지 않아도 둘이 알아서 잘 될 텐데.

    “글쎄요, 사실 이렇게 동점자가 많이 나온 게 처음이라 말이죠. 이건 라라벨 양의 의견을 들어봐야 할 것 같네요.”

    “흐음, 좋아요. 왕궁의 밤은 출연자가 많은 연극이기도 하니까요.”

    사회자와 소곤거리던 라라벨이 결정을 내렸다.

    ‘이게 나한테 기회가 될 수도 있으려나?’

    머리를 굴려보려던 차에 관람석에서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객의 동의도 없이 마음대로 규칙을 바꿔도 되는 건가?”

    “그렇다면 우리도 그 연극에 좀 끼워주시는 게 어떠한가.”

    “내가 보기엔 저 세 명이 한패가 아닌가 싶은데 말이지.”

    말투는 점잖았지만, 그들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쪽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선생님들, 진정하세요. 아시다시피 가면 극장은 그 어떤 비리나 꼼수도 사용할 수 없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사회자가 나서서 소란을 진정시키고자 했다.

    “지금 우리 눈앞에서 비리와 꼼수가 벌어지고 있지 않소? 그렇다면 우리도 마냥 신사적으로 나올 수만은 없지.”

    단순히 나와 크로버를 연극에 올린다는 이유로 분개한 게 아니었다. 우발적인 행동이 아닌 사전에 계획하고 있던 자들로 보였다.

    일단 무기를 들고 있었다. 어떻게 감추고 있던 건지는 몰라도 단도와 몽둥이까지 있었다.

    카미앙으로 게임을 진행했을 땐 이런 일이 없었는데. 설마 내 개입이 상황을 바꾸기라도 한 건가?

    “목적이 뭐죠?”

    라라벨이 당황하지 않고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당연히 라라벨 그대지, 매일같이 이렇게 멀리서만 보다니, 감질나서 더는 못 참겠다고.”

    “거기 경호원들은 가만히 있는 게 좋아. 지금 내 손에 든 게 뭔지 알려나?”

    크기는 훨씬 작지만 어디서 많이 본 물건이었다.

    ‘저건 아나드 요새 함락 때 사용했던 연막탄?’

    현대의 연막탄과는 원리가 다르겠지만 어쨌든 사람의 시야를 가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저것들 정말로 라라벨을 납치할 생각이었다.

    ‘아니, 이놈의 세상엔 왜 이리 납치범이 많아.’

    연막탄을 던지기 전에 덮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녀석들의 행동은 생각보다 재빨랐다.

    “모르겠으면 뭔지 한번 보라고.”

    상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무대 근처로 연막탄을 던졌다. 그와 동시에 내 가면이 벗겨지고 무언가가 얼굴을 덮었다.

    “아무래도 이건 저보다 녹시아 님이 더 필요하실 것 같아서요. 시야를 밝혀주는 성물입니다.”

    귓가에서 크로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그 악마의 날개 같은 마스크가 성물이었던 건가?’

    뿌연 안개 속에서도 앞이 제대로 보이는 것에 감탄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크기가 작은 만큼 극장 전체를 뒤덮진 못했지만, 주요 인물인 라라벨 주변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경호원들 역시 시야가 가려진 지금 녀석들과 맞설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무기, 무기가 필요해.’

    사회자가 들고 있던 지팡이가 눈에 들어왔다. 소품으로 들고 왔던 물건이었다. 묵직하고 단단한 것이 제대로 무기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지팡이를 검처럼 들고 라라벨 앞을 막아섰다. 이쪽으로 똑바로 걸어오는 게 녀석들도 나와 같은 성물을 쓰고 있는 게 확실했다.

    “이건 뭐야?”

    “라라벨 님을 납치하려면 그 앞에 계신 분을 먼저 쓰러트려야 할 겁니다.”

    어느 틈에 나 대신 크로버가 대답했다.

    “순순히 물러나는 게 좋을걸요. 더 난동을 부렸다간 라라벨 님 앞에서 못난 꼴 보이면서 흠씬 두들겨 맞고 바닥을 기며 돌아가게 될 겁니다. 저라면 경호원들에게 얌전히 잡혀가는 쪽을 선택하겠습니다.”

    어이, 어이. 지금 자기가 싸우는 거 아니라고 상대방을 너무 도발하는 것 같은데.

    “얼마나 실력이 좋길래 그런 소리를 지껄이나 한번 볼까?”

    묵직해 보이는 몽둥이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맞으면 타격이 크겠지만 휘두르는 쪽도 방어가 취약해지는 무기였다.

    나는 침착하게 몸을 뒤로 빼며 몽둥이를 흘려보냈다.

    “히압!”

    그리고는 자신이 휘두른 몽둥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휘청거리는 상대의 급소를 한 번에 내리쳤다.

    “역시, 바렌시드 최고의 기사님! 뒤에 서 계신 분들도 덤벼보려는 겁니까? 그냥 도망가는 게 좋을걸요?”

    “크로버, 그만 떠들고 라라벨 곁에 꼭 붙어있어요!”

    나는 이어서 문 쪽에 서 있는 경비들을 향해 외쳤다.

    “라라벨은 제가 지킬 테니까 범인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문을 잘 지키세요!”

    라라벨을 인질로 잡고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는지 녀석들은 잠시 당황했다. 그리고는 곧 이판사판이라는 듯 라라벨을 향해 달려갔다.

    “어딜!”

    빠르게 달려온 만큼 내가 휘두른 지팡이에 걸려 넘어지는 것도 격렬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동료의 희생을 기회 삼아 라라벨 곁으로 달려간 녀석이 라라벨을 지키고 있는 크로버에게 칼을 휘두른 것이다.

    “크로버 비켜!”

    하지만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크로버가 적의 공격을 피하는 건 무리였다.

    “윽.”

    물론 내 지팡이가 훨씬 더 위력적으로 적을 내리쳤지만 그렇다고 크로버가 다치지 않은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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