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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 게임의 공략캐가 되었다-28화 (2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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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크로버와 우연히 마주치는 게 놀랍지도 않았다. 바렌시드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크로버와는 왜 이리 자주 마주치는지 모를 일이었다.

우리는 손가락으로 상대를 가리키며 마주 보았다.

“아니, 그 악마의 날개 같은 가면은 대체 어디서 구하신 거죠?”

나도 모르게 상대를 보자마자 지적해버렸다. 하지만 크로버가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는 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눈 주변을 가리는 크로버의 가면은 검은 깃털이 붙어있었다. 악마나 마왕 따위에 감명이라도 받은 애들이 고를 법한 디자인이었다.

그나마 좋게 봐줄 만한 것은 사방으로 힘껏 뻗친 날개에 시선을 뺏겨 얼굴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 정도였다.

“그런 쪽이 취향이셨다면 차라리 천사의 날개 쪽이 좋지 않았을까요?”

“그 고양이 가면보다야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꼭 어린이용 무대 소품을 빌려온 것 같군요.”

나도 고양이 가면이 그다지 멋져 보이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라라벨이 가장 좋아하는 고양이였다.

“이건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요.”

만에 하나 우승자가 두 명이 나오면 라라벨이 마음에 들어 하는 가면을 뽑는 게 규칙이었다.

“근데 카미앙과 같이 오신 거 아니었어요? 왜 저쪽에서….”

“왕세자님은 제가 여기 온 것을 모르십니다. 아, 녹시아 님도 모르는 척해주십시오. 크로버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거든요.”

이걸 참, 충신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쓸데없는 오지랖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설마 예지의 신관이 이렇게 돌아다니는 걸 알면 예언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것 같다든지 신관으로서의 신비감이 사라진다든지 할까 봐 카미앙에겐 비밀로 하는 건가요?”

크로버는 헛기침할 뿐 딱히 내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 짐작이 맞는 것 같았다.

“그러면 여기는 어떻게 들어오신 거죠?”

“제 재능을 좀 발휘했습니다.”

턱 아래 손을 가져다 대는 걸 보니 그 잘난 얼굴을 활용한 게 분명했다.

“그런데…. 녹시아 님 복장이.”

“신사복이라는 걸 지적하고 싶은 거면 그만둬요. 이것도 다 깊은 뜻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당연히 그런 건 없었다. 혼자 드레스를 입으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굳이 남장을 한 건 아닐지라도 녹시아는 늘 기사 차림으로 다녔으니 말이다.

“라라벨의 팬 미팅 같은 자리인데 드레스를 입고 오면 너무 눈에 띌 거 아니겠어요.”

“그게 아니라, 녹시아 님의 복장이 똑같습니다.”

“똑같다니요?”

“제가 왕세자님께 말씀드린 오늘 따라 해야 할 사람과 말입니다.”

오늘 따라 해야 할 사람이라니, 그건 또 뭐지?

“푸른빛이 감도는 검정 바지에 흰색 재킷을 입고 노란 장미 부토니에를 달고 온 사람, 바로 그 사람만 따라 한다면 왕세자님은 오늘의 승자가 되실 것이다. 라는 예언이 있었거든요.”

정말? 신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구체적으로 예언을 한다고?

“제가 알고 있는 신께서는 보통 굉장히 추상적이고 애매하게 예언을 하시던데요.”

신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던가?

“저희 신께서는 확실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좋아하시죠. 불분명한 예언으로 인간들에게 분란을 조장하는 건 원치 않으십니다.”

“그것참, 훌륭하신 신이로군요.”

크로버가 설명을 했다 한들 반쯤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신기합니다. 딱 녹시아 님의 복장이 아닙니까.”

“글쎄요. 검정 바지에 흰색 재킷은 워낙 흔해서. 이렇게 입은 사람이 또 있지 않을까요?”

반쯤만 의심하는 이유는 신의 예언이 아니고서야 저 정확한 촉을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나보다 라라벨의 질문을 잘 맞출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건 확실했다. 날 따라 하는 게 승자로 가는 지름길이긴 했다.

‘그럼 카미앙이 아까 날 쳐다보던 게 녹시아인 걸 알아채서가 아니라 따라 해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었나 보군.’

“녹시아 님이 찍기를 잘하시나…. 그럼 두 분이 동점이 되셨을 땐 어떻게….”

“당신 말대로 제가 운이 좋아 카미앙 님과 최후의 승자가 된다고 해도 라라벨이 왕세자님의 운명의 사람이니 우승을 양보하라는 둥 그런 소리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마세요. 저도 이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싶진 않거든요.”

“예? 아니 왕세자님은 그런 일로 오신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극장에서 비밀리에 이뤄지는 행사를 알아보시려고….”

크로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가면 극장의 승자까지 운운한 마당에 극장 감시 차원에서 방문했다는 건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핑계였다.

“클로버 씨도 그럼 제 활약을 구경해 보세요. 예언이 맞는다면 제가 우승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

나는 관람석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해답지나 마찬가지인 내 뒷모습을 카미앙에게 그대로 노출하고 싶진 않단 말이지.’

대부분 라라벨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뒷자리를 차지하기는 수월한 일이었다.

곧 깔끔한 복장에 입담 좋게 생긴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왔다.

“먼저 이 자리까지 와주신 라라벨의 후원자 여러분께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여기 모이신 귀족들께서는 팬이라는 단어보다는 후원자라는 말을 더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의례적인 행사용 멘트가 몇 번 더 오간 후에 드디어 라라벨이 등장했다.

“박수로 맞아 주시죠. 오늘의 주인공, 바렌시드의 프리마돈나 라라벨-! 입장합니다.”

사회자가 분위기를 띄울 때는 싸늘한 시선만을 보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라라벨을 보자마자 180도 돌변해 휘파람을 불고 손뼉을 쳐댔다.

‘이러려고 가면을 쓴 거네.’

물론 내 옆 옆, 자리를 선택하신 카미앙은 팔짱을 낀 채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은 이 쇼를 즐기러 온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공적인 차원에서 방문했다는 듯 말이다.

‘하지만 굳이 이 뒷자리에 온 걸 보면 크로버의 말대로 날 따라 할 심산이겠지.’

“가면 극장의 규칙을 설명해 드리죠. 지금부터 오엑스 퀴즈를 진행할 거랍니다. 당연하게도 질문은 전부 저에 관한 내용이죠.”

의자의 왼쪽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팻말을 돌려보았다. 한 개는 동그라미, 한 개는 엑스 표가 그려져 있었다.

“여기 정답이 적힌 보드 보이시죠? 질문 한 개가 끝날 때마다 가려진 종이를 뜯어서 정답을 공개할 거예요.”

탈락자는 다음 문제에 참가할 수는 없지만 가면 극장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 앉아있을 수는 있었다.

“아무래도 가면 극장에 자주 오신 분이 더 유리하시겠죠? 겹치는 문제도 있으니. 하지만 오늘은 새로운 문제도 많이 준비했으니까 처음 오시는 분도 분발해 주시길….”

라라벨이 관객석을 향해 진한 미소를 날렸다.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거 내가 우승하기 미안해지는걸.’

수 많은 팬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내가 아니면 우승은 카미앙이었으니까.

카미앙은 가면 극장에서의 우승을 계기로 라라벨과 안면을 튼다. 오늘 이벤트만 잘 막는다면 왕세자와 평민이 만나는 일은 없을 터였다.

다른 공략 캐릭터와는 달리 라라벨이 왕실 파티나 행사에 참석하는 일이 없으니 말이다.

“자, 첫 번째 문제는 간단히 몸풀기 정도로 시작하죠. 라라벨의 휴일은……. 한 달에 네 번이다!”

이건 딱히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간단한 문제였다. 답은 엑스. 내가 엑스 표가 그려진 팻말을 들어 올리자 카미앙 역시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정답은 엑스입니다. 믿기 힘들겠지만 전 한 달에 두 번 쉰답니다 여러분. 공연이 없는 날이라고 쉴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피곤하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라라벨이 한 손으로 살짝 머리를 짚었다. 여기저기서 탄식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을 너무 혹사하는 거 아니냐. 저러다가 라라벨이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 거냐와 같은 말이었다.

‘역시 라라벨.’

카미앙이 왕세자라는 걸 알았을 때도 주눅 들지 않고 할 말은 했던 라라벨이었다. 무대 한쪽에 서 있던 사회자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다음 문제들은 라라벨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꽃 등을 맞추는 문제로 어렵지 않게 넘어갔다.

“벌써 여덟 번째 문제네요. 이번에 상연한 연극 ‘왕궁의 밤’에서 많은 분이 가장 싫은 장면으로 꼽아주셨는데요. 저와 남자주인공인 히커스는 포옹을 열 번 했다. 과연 맞을까요?”

여기서부터 문제 난이도가 올라가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고인 물 플레이어인 나라 해도 이 백 개에 달하는 라라벨 문제를 다 외우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스킬이 아주 유용하게 쓰인단 말이지.’

“문제가 좀 어려웠나요? 그래도 연극을 여러 번 보신 분들은 이런 것도 다 세어보고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디 보자, 나도 헷갈리네. 그래도 분명 열 번은 아니었지. 여섯 번 정도려나.」

좋아, 답은 엑스다. 이번에는 팻말을 들기 전에 휙 고개를 돌려 카미앙을 쳐다보았다. 카미앙의 시선이 내 손에 고정된 걸 볼 수 있었다.

어찌나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는지 내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도 알지 못했다. 내가 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그제야 내 시선을 알아챘다.

‘커닝 그만하라고.’

나는 손가락으로 카미앙 쪽을 쿡쿡 찌르며 이쪽을 보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왕세자가 어디서 커닝이야, 커닝은.’

부끄러운 줄은 알았는지 카미앙은 바로 고개를 돌려 정면을 응시했다. 물론 이번에도 어떻게든 커닝하긴 하겠지.

“이번 정답은 엑스! 입니다. 포옹 신은 총 일곱 번이었다고 하네요. 사실 저도 헷갈렸는데 맞추신 분들 정말 대단하네요. 물론 찍어서 맞추신 분도 있겠지만요.”

문제는 생각보다 빨리빨리 진행되었다.

“흐응, 이걸로 마지막 문제네요. 그럼 그전에 여기까지 오신 분들을 한 번 살펴볼까요? 오늘은 문제가 좀 쉬웠는지 다른 때 보다 남은 분들이 많으시네요. 네 분, 자리에서 일어나 주세요.”

‘나, 카미앙, 모르는 사람, 그리고 저 사람은…. 크로버잖아.’

카미앙만 신경 썼지 크로버가 지금까지 남아있을 줄 몰랐다.

‘뭐지, 무슨 생각이지? 크로버도 지금까지 날 열심히 따라 한 건가?’

크로버의 행동에 대해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라라벨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지금 막 떠오른 생각인데 마지막 문제는 정말 공평하게 진행하기 위해 눈을 감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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