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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 게임의 공략캐가 되었다-19화 (19/95)
  • 19

    카를루는 내가 미행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듯했다. 덕분에 맘 편히 뒤를 쫓을 수 있었다.

    골목이 어찌나 복잡한지 녀석이 도망이라도 갔다면 분명 놓쳤을 것 같았다.

    ‘저긴가?’

    어떤 집 앞에서 선 카를루가 두리번거리더니 문을 두드렸다.

    난 다시 한번 마케터의 혜안 스킬을 시전했다.

    “얼른 나와!”

    「뭐지, 벌써 마에 님의 사람들이 다녀간 건가.」

    확실했다. 바로 저기가 크로버를 숨긴 아지트였다.

    ‘좋아, 네 역할은 여기까지다.’

    난 소리를 숨기고 카를루의 뒤로 다가가 검집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카를루가 비명조차 내지 못하고 쓰려졌다.

    쓰러진 오징어를 건물 옆쪽으로 옮기자마자 문이 열렸다.

    “누구야?”

    깡패가 따로 없지 싶을 정도로 불량스럽고 위압적인 목소리였다. 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발랄하게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맡긴 목걸이를 찾으러 왔는데요.”

    “… 이 밤에?”

    “네, 한시라도 빨리 목걸이를 가져가고 싶어서요. 소중한 물건이거든요.”

    팔에 길게 그어진 상처 덕분에 가게 주인으로 만났던 오징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게 주인은 주위를 둘러보는 것 같았다. 카를루의 목소리를 들었겠지. 게다가 이 밤에 물건을 가지러 오다니, 내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을 것이다.

    “기억하오. 들어오시오.”

    그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문을 걸어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감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잠시만 저쪽으로 비켜주겠소? 여기서 물건을 꺼내야 해서.”

    난 주인 오징어가 가리키는 쪽을 살펴보았다. 벽돌로 된 건물이지만 그 부분은 나무로 되어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주인이 말한 곳으로 걸어갔다. 벽을 등지는 순간 끼기긱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벽이 아니라 문이었군.’

    내가 휘청거리며 넘어지길 바랐겠지만 예상하던 터라 자세에 흐트러짐은 없었다.

    “잡아!”

    어떤 오징어가 소리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문 쪽으로 몸을 틀며 자세를 낮췄다. 동시에 검을 꺼내며 크게 휘둘렀다.

    “으악.”

    날 뒤에서 덮칠 요량이었던 오징어 두 마리가 소리를 질렀다. 그 사이 바닥을 구르며 적들과의 간격을 벌렸다.

    “엄살이 심하네, 살짝 베었을 뿐인데.”

    괜한 말은 아니었다. 이 정도로는 발목 인대가 잘리지도 않았을 테니 그저 피가 좀 나는 정도일 것이다.

    “내가 가운데로 공격할 테니 너네는 양쪽을 맡아.”

    주인 오징어가 전략이라고 소리치자 나머지 두 마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설마 세 명이 하나를 못 당하겠느냐는 생각인 듯했다.

    나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출입문은 적이 있는 방향에 있어 밖으로 유인해 한 명씩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공간이 좁은 것도 여럿을 상대하기에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그나마 활용할 수 있는 건 이 상자와 짐들뿐이로군.’

    “으야아앗!”

    열 걸음도 안 되는 짧은 거리에서 맹렬히 달려오는 대장의 움직임에 맞춰 오크통을 굴렸다. 동시에 왼쪽에 있는 상자 더미를 계단처럼 밟고 올라가 높게 뛰었다.

    “머리~!”

    진짜 녹시아였다면 이런 방정맞은 기합 따윈 내지 않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기합이라도 넣으면 좀 나을 것 같았다.

    내가 직접 치루는 첫 전투인 만큼 조금 긴장이 되었으니까.

    내 검은 왼쪽에 있던 오징어의 머리 위에 그대로 떨어졌다.

    빡!

    정말 수박 통 깨지는 소리가 났다. 검 등으로 때렸으니 죽지는 않았겠지.

    상대가 죽었나 살았나 살펴볼 겨를 따윈 없었다.

    바닥에 안전히 착지하자마자 두 시 방향으로 파고들며 검을 포물선으로 올려 베었다.

    반대쪽에 있던 오징어가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이거… 내가 센 거야, 얘네가 너무 약한 거야?’

    긴장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머릿속으로 될까 싶었던 것이 생각보다 훨씬 강하고 빠르게 이뤄졌다.

    휙. 한 발 뒤로 물러나며 왼쪽 어깨로 들어오는 검을 피했다.

    “맞다. 주인아저씨도 있었지.”

    힘으로 밀어붙일 모양인지 정직한 검이 내 앞으로 날아들었다. 상대의 검과 내 검이 맞부딪쳤다.

    ‘와, 이런 덩치를 상대하는 데도 버겁지가 않네.’

    볼 때와 직접 싸울 때는 역시 차원이 달랐다. 어쩌면 기사로서 녹시아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엄청날지도….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대의 검을 날려버렸다. 쇠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자, 이제 아저씨가 뭘 해야 하는지 알겠죠?”

    난 검 끝으로 그의 오른쪽 어깨를 꾸욱 눌렀다. 안 그래도 물기 없는 오징어가 더더욱 쪼그라들었다.

    아프겠지만 별수 없었다. 상대가 신관을 인질로 잡고 있으니 나도 적당한 인질이 필요했다.

    허튼짓하면 곤란하니 일단 검은 쥘 수 없게 만들어야 했다.

    “크로버는 어디 있죠?”

    “크로버라니, 모르는 사람이오.”

    스킬을 시전해 볼까 했지만 그만뒀다. 이 정도로 우세한 상황이라면, 그냥 입을 열게 만들 수 있으니까.

    난 검을 비틀며 좀 더 어깨 깊숙이 찔러넣었다.

    “아악-!”

    “저도 당해봤는데 이게 제법 아프더라고요.”

    그래도 녹시아는 잘 참았지만, 다행히도 이 사내는 그 정도의 참을성은 없었다.

    “으으으. 저 상자, 상자를 치우면 지하로 가는 통로가 있어!”

    “지금 저 혼자 가라는 거예요? 아저씨가 당연히 안내를 해 줘야죠.”

    어깨에서 검을 빼 그의 등 뒤에 겨누었다. 허튼짓하면 그대로 찔러버리겠다는 의사표시였다.

    그의 말대로 상자를 치우자 작은 계단이 나타났다. 난 주인을 앞세워 계단을 내려갔다.

    등불로 주변을 밝히고 있는 탓에 주위가 어둡기는 했지만, 가게보다 훨씬 큰 공간이 나타났다.

    ‘저 창살은 뭐야? 완전 감옥 아니야?’

    그때 안쪽에서 이쪽을 향해 물어왔다.

    “어이, 어떻게 됐어? 꽤나 시끄럽던데”

    난 주인을 쿡쿡 찔렀다. 제대로 대답하란 뜻이었다.

    “다 해, 해치웠지.”

    “대체 이 밤에. 누구였어?”

    “카를루. 웬 잔챙이가 따라붙었더라고.”

    카를루가 문을 두드렸던 게 나름 자기들 사이의 신호였나보다.

    “칠칠치 못하게. 그런 거나 달고 오다니.”

    “어떻게 한 거야? 설마 죽인 건 아니지?”

    “그 골방에다 처박아 놨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어.”

    자세히 들으면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지만, 저들에게 그런 예민함 따윈 없는 듯했다.

    “잘했네. 밤에 눈치 봐서 성 밖에 버리고 오자고.”

    완전 강도들이었다. 설마 크로버를 벌써 죽인 건 아니겠지. 여기까지 와서 크로버의 시체나 들고 가야 한다면 그건 너무 분할 것 같았다.

    “크로버는 어디 있는 거야?”

    “분명 저쪽에 있었는데….”

    “모르겠으면 물어봐야 할 거 아냐?”

    주인이 내 지시에 따랐다.

    “크로버는 어, 어디 갔지?”

    “네에, 저 여기 있습니다!”

    내 생각과는 정반대로 아주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귀를 쫑긋 세웠다.

    “이거이거, 완전 꾼 아니야?”

    “에이,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나지막하면서도 리듬감이 느껴지는 나긋나긋한 목소리. 인상적인 목소리였기에 헷갈릴 수가 없었다.

    ‘저, 저 신관이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이러다가 이번 게임도 제가 이기겠네요. 아니지, 제가 아니라 우리 대장님이 이기시겠네요.”

    “하하, 그래 다들 분발해봐.”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주인을 윽박질렀다.

    “네놈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하마터면 신관님께 무슨 짓을 한 거냐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무슨 짓을 하다니. 보면 모르나? 저자가 먼저 나서서 저러는 거다.”

    “로열 플러쉬!”

    그렇다.

    납치당했다던 예지의 신관님께서는 카드 게임에 한창이셨다. 그것도 자신을 잡아 온 강도들과 함께, 지하 교도소에서.

    그동안에도 조금 특이한 신관이라고는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신관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그렇지. 이런 상황에서 카드 게임이라니.’

    ‘신관님은 무슨, 앞으로는 신전에서 그럴싸하게 앉아있어도 그냥 크로버라고 불러야겠어.’

    “어이, 왜 거기 그러고 서 있어. 너도 얼른 와서 한 게임 해.”

    그나저나 크로버가 납치범들과 저렇게 붙어있으면 무사히 빼 오기가 까다로웠다.

    내가 등장하는 순간 저들 중 하나가 크로버의 목에 칼을 들이댈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몰래 저 속에 섞여들 만큼 주변이 어둡지도 않았다.

    그때였다. 의자 끄는 소리가 들리며 크로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그만 가서 눈 좀 붙여야겠습니다.”

    “좀 더 해야지. 무슨 소리야.”

    “여기 침대가 너무 불편해서 제대로 잠을 못 잔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이렇게 중간중간 낮잠을 자 주지 않으면 카드 게임이고 뭐고 할 수가 없다니까요.”

    납치범이 듣기엔 기가 막힐만한 소리였지만 내겐 잘된 일이었다. 크로버가 저 무리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빠져나오게 되었다.

    나와 가게 주인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던 크로버는 오른쪽에 있는 철장을 열었다.

    ‘세상에, 자기 발로 철장에 들어가는 인질이라니.’

    문을 닫고 제대로 잠겼나 흔들어 보기까지 하는 게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가 안전한, 그러니까 싸움에 방해되지 않는 곳으로 들어간 덕분에 나는 맘 놓고 싸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주인의 목덜미를 잡고 적들을 향해 걸어갔다. 카드게임에 정신이 팔렸던 녀석들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지도 못했다.

    난 그중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있는 녀석을 향해 주인을 내동댕이치다시피 걷어찼다.

    “뭐, 뭐야!”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비명이 지하실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들이 당황한 틈에 난 대장이라고 불리던 사내를 향해 그대로 검을 뻗었다. 그가 쓰러지는 것을 확인하기도 전에 검을 빼내 계단 쪽으로 달려갔다.

    “도, 도망간다! 잡아!”

    물론 도망가는 것은 아니었다. 계단을 이용하려던 것뿐이었다. 이쪽은 길이 좁아 한 명씩만 상대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일 층에서 싸웠던 놈들보다 나을 것도 없는 싸우는 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뒤에, 바로 뒤에 한 놈 더 있어요.”

    “앗, 저놈 아직 안 쓰러졌어요!”

    “조심해요! 오른쪽, 왼쪽, 그렇지!”

    다만 신경 쓰이는 게 있었는데 바로 크로버의 추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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