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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 게임의 공략캐가 되었다-17화 (1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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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시가지 입구에 있는 지도를 몇 번이나 살펴본 후 길을 나섰다.

‘맹세하긴 했는데 생각할수록 이상하단 말이지.’

처음 나타나는 오거리에서 4시 방향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체 뭘 하고 돌아다녔길래. 게다가 근위대 및 왕세자와 관계있는 조직은 왜 의심을 해야 하는 건데?’

비록 카미앙이 속 좁고 의리 없고 치사하긴 했어도 어쨌든 한 나라의 왕세자였다.

왕세자를 조심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뒤가 구린 일을 하고 다녔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었다.

‘설마 나 엄청난 악당에게 협조하게 되는 건 아니겠지.’

이 세상에 게임 설정 이외의 다른 비밀이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그 비밀에 아주 조금도 관여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예지의 신관이 엑스트라에 불과했다는 것에 희망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난 향료 길드의 문을 두드렸다. 게임에서는 마룬시에와의 이벤트 때문에 한두 번 들렸던 곳이었다.

“실례합니… 다리스 대장?”

연구회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것은 붉은 제복의 다리스 대장이었다. 그의 속마음을 알고 있는 터라 오전에 만났을 때와는 달리 난 아주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다리스 대장이 여긴 어쩐 일로.”

“업무 수행 차 들렸습니다. 그나저나 파르미엔 기사님께서는 왕세자님을 만나셨습니까?”

그렇네, 카미앙이 날 찾았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 그게 카미앙님께서 중요한 회의가 있으시다고 해서 못 만났어요.”

난 대충 둘러댔다.

그보다는 다리스 대장이 말하는 업무라는 게 신경 쓰였다. 혹 예지의 신관을 찾는 중 아닐까?

스킬을 쓰면 단번에 알아낼 수 있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신관을 찾는 일이 어떻게 될지 몰랐기에 일단은 신성력을 아껴야 했다.

‘그래, 이 정도는 대화로 알아봐야지.’

그가 내게 호의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난 길드 밖으로 그를 끌고 나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업무이시길래 이렇게 혼자 돌아다니시나요?”

“카미앙 님 곁에는 실력 좋은 근위병을 붙여 놓았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정도 병이라더니. 내가 카미앙이 걱정되는데 직접 물어보진 못하고 돌려 말하는 것으로 이해했나 보다.

“그렇군요. 그럼 대장님은 사람이라도 찾으러 나오신 걸까요?”

“…. 그렇습니다.”

대답하기 전에 망설이는 것이 보였다. 다리스 역시 비밀리에 예지의 신관을 찾아 나선 걸까?

“대장님이 직접 찾는 걸 보면 중요한 사람인가 봐요.”

딱히 대답이 없었다. 말하기 곤란해하는 걸 보니 확신이 생겼다. 나는 팔을 걷어붙이는 시늉을 하며 다리스 옆에 나란히 섰다.

“그럼 저도 같이 찾아볼까요?”

“아닙니다.”

“사양 마세요.”

“아닙니다.”

“혼자 찾는 것보단 둘이 낫지 않겠어요?”

“아닙니다. 이건 근위대장인 저 혼자 해야 하는 일입니다.”

거절 삼 연타를 맞았다. 이 정도면 상처받은 척해도 될 만한 숫자였다.

“아, 그러네요. 근위대의 일인데 제가 나서는 건 좀 주제넘었죠. 예전에 근위대는 들어가기 싫다고 말하기까지 했으면서….”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런 게 아니고.”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있자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세자님께 필요한 분입니다. 비밀리에 찾으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이젠 확신할 수 있었다. 다리스도 예지의 신관을 찾고 있었다.

‘분명 크로버는 왕실 사람에게도 자기 일을 비밀로 해달라고 했었는데. 카미앙은 크로버가 납치당한 걸 아는 건가?’

정확한 사정은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성물을 얻기 위해선 내가 다리스보다 크로버를 먼저 찾아야 했다.

“카미앙 님께 비밀리에 찾아야 할 사람이 있다는 거군요. 그럼….”

이제 그만 헤어질 요량으로 꺼낸 말이었는데 다리스에게는 또 의미심장하게 들렸나 보다. 오징어로 된 얼굴이 붉어지더니만 주춤거렸다.

“그 사람이 여자는 절대!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리스는 몇 번이나 여자는 절대 아니라는 말을 하며 뒷걸음질 쳤다. 난 멀어져 가는 다리스에게 손을 흔들며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한의원이 떠오르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향료 길드라고 해서 향수 정도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길드가 취급하는 물건은 다양했다.

음식에 넣는 향신료부터 화장품으로 분류되는 향수, 신전에서 사용하는 향까지 이곳을 거쳤다.

내부는 제법 넓었기에 안내대까지 한참을 걸어간 기분이었다.

“찾으시는 물건이 있나요?”

일단은 필요한 물건부터 사놓기로 했다.

“델피니움 씨앗 가루와 말린 탈리스 꽃, 등나무 기름이 필요한데요.”

게임 속에서 향 전문가인 마룬시에가 적어두었던 레시피를 그대로 읊었다.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지만, 전당포에서 받은 30골드가 있어 든든했다.

“또 필요하신 게 있나요?”

겉보기엔 평범한 직원이었다. 아직 옛 돼 보이는 아가씨가 신관 납치에 연루되어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만일 관계가 있다면 내가 크로버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날 경계할 테지.’

아무리 스킬을 사용했다 할지라도 단번에 크로버에 관해 물어볼 순 없었다.

“좀 전에 왔다 가신 분께서 실례가 많았다고 꼭 좀 전해달라고 하시네요. 자기가 너무 집요하게 캐묻고 간 것 같다고.”

대충 넘겨짚었는데 정말로 다리스에게 시달림을 당한 듯했다. 직원은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아예. 군인이신가 봐요. 사람을 찾으시는 것 같았어요.”

「신관이 여기까지 직접 올 일이 뭐가 있다고 여기서 신관을 찾는담.」

“네, 안 좋은 사건이 있었다네요. 그래서 그런 거니 이해해 주세요.”

“어머나, 근데 저희 길드와 그게 무슨 상관이….”

「안 좋은 사건이 뭔지 몰라도 그런데 연루되었을 린 없잖아? 없겠지? 취업한 지 한 달 만에 직장이 날아가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고.」

확실했다. 직원은 납치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역시 그런 구린 일은 조직 내 몇 명이 맡아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취업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신입이라 이거지.’

뻔뻔스럽게 나가면 몇 가지 정보를 더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럴 것 같긴 한데 자신이 없었다.

난 선의든 악의든 거짓말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좀 전에 다리스에게 보여 준 것이 내 인생 최고의 연기였다.

‘별수 없지. 일단 시도해 보는 수밖에.’

머릿속으로 길드의 관계자를 떠올려보았다. 대뜸 길드 장을 찾는 건 여러 가지로 무리수지.

길드 장 정도면 아무나 만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보통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지시만 할 뿐 일의 진행 상황은 잘 알지 못했다.

‘부 길드 장? 그런 게 있으려나? 여기에 부장이나 차장 같은 직책이 있을 리 없고.’

순간 생각난 건 총무였다. 딱 좋은 포지션이었다. 어느 조직에나 있으니 물어보기도 좋고, 크고 작은 일에 다 관여하는 직책이니 납치 건에 대해서도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총무님은…….”

물론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이 흘러나오진 못했다.

“총무님이요?”

하지만 상대도 어설펐다. 내 눈치를 살피는 듯한 모습을 보며 나는 좀 더 뻔뻔스럽게 말을 꺼냈다.

“네, 총무님을 만나려고 하는데.”

“자리를 비우셨는데…. 혹시 약속하신 건가요?”

「갑자기 총무님을 찾아? 아는 사인가? 총무님은 자주 안 나오시는데.」

“당연하죠.”

직원은 당황한 듯 일정표를 뒤적거렸다.

“어머, 잠시만요.”

「난 전달을 못 받았는데…. 혹시 내가 실수한 건 아니겠지?」

“지난주에 총무님께 말씀드렸는데 말이죠. 바이난 공국에서 들어온 향료 건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요.”

그럴싸한 내용까지 덧붙이자 직원은 더욱 허둥지둥거렸다.

“그, 그러신가요.”

「혹시 내가 이름을 헷갈렸나? 조직도가 어디 갔지? 어디 보자, 분명 총무님 성함이 페더 카를루…. 맞는데?」

페더 카를루, 향료 길드의 총무는 페더 카를루라는 사람이었다. 물론 게임에선 등장조차 한 적 없는 인물이었다.

“카를루 씨께서 헷갈리신 모양이네요. 그래도 오늘은 꼭 만났으면 하는데. 혹시 카를루 씨가 어디 계신지 알 수 있을까요?”

“그게, 공식 일정은 없으시지만…. 그, 오후의 수다 카페에 자주 가신다고 들었어요!”

「그럼 내 잘못은 아니라는 거지? 총무님이 말씀 안 해 주신 거니까.」

“감사합니다. 덕분에 카를루 씨와는 만날 수 있겠네요. 두 번이나 바람맞으면 아무래도 꼴이 우스워지니까요.”

나는 크로버를 떠올리며 화제를 돌렸다. 대체 향료 길드와 어떤 사이길래 납치까지 당했는지 궁금했다.

“아…. 다른 약속도 파투나셨나 봐요.”

“네, 사실 그 사람도 여기 연구회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말이죠.”

“어머나, 또 연구회 일원인가요?”

“글쎄요, 아마 아니지 않을까 싶은데….”

“제가 성함을 물어봐도 될까요?”

직원은 자신이 또 실수한 건 아닌가 조바심이 나는 듯했다.

‘그런데 저 직원이 크로버를 알까?’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크로버라고….”

“어머! 크로버 님!?”

깜짝이야. 저런 비명을 지를 만큼 크로버와 사이가 안 좋은가?

“크로버 님과 아는 사이신가요?”

직원이 계산대 밖으로 뛰쳐나올 것처럼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아니면 혹시 애인?!”

아니다. 이건 크로버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흡사 그의 팬클럽이라도 되는 듯한 반응이었다.

“친구랍니다. 바렌시드에 있다고 들어서 여기까지 온 김에 만나려고 했는데.”

“아, 그럼 크로버 님과 동향 사람이신가요? 저 멀리 동쪽에서 오셨겠군요.”

‘저 멀리 동쪽은 또 어디람.’

꽤 두루뭉술한 설명임에도 안내원은 크로버나 나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동안 크로버가 제법 신뢰를 쌓아 온 모양이었다.

“그렇죠. 멀리서 온 친구를 이렇게 내팽개치다니, 정말 의리 없는 녀석이라니까요.”

“크로버 님이, 워낙 자유로운 영혼이시라….”

“그 책임감 없는 녀석을 그렇게 포장하시는 걸 보니 녀석이 제법 좋은 인상을 심어줬나 보네요.”

“좋은 인상 정도가 아니죠. 그리고 저뿐만이 아니라 크로버 님을 아는 사람들은 다 그럴 텐데요.”

“왜죠?”

“어머,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아니다, 녹시아 님은 어려서부터 봐와서 오히려 느껴질 못하시는 건가.”

어느새 나와 크로버가 어릴 적부터 친구라는 설정까지 더해졌다. 직원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중대한 발표라도 하듯 말했다.

“잘생기셨잖아요! 크로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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