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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 게임의 공략캐가 되었다-14화 (1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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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이 카미앙에게 이 목걸이를 돌려줄 필요는 없지 않나? 어차피 카미앙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물건이었다.

    카미앙에게 돌려주는 것보다는 내가 유용하게 사용하는 게 훨씬 현명한 방법 아닐까.

    카미앙에게 되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접은 채 나는 목걸이를 햇빛 아래서 요리조리 뜯어보았다.

    푸른빛이 도는 걸 보니 절대 순금은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도금인가? 아니지, 아무리 허접해 보여도 명색이 왕세잔데 도금한 목걸이를 줬을 리 없잖아? 녹시아도 어쨌거나 백작 영애였고 말이지.’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이 세계의 값나가는 물질일지도 몰랐다. 네오 티타늄이라든지 세인트 골드라든지, 아무튼 그럴싸한 이름이 붙어있는 무언가 말이다.

    알이 굵은 이 붉은 색 보석도 그랬다. 비록 보석에 무지한 내 눈에는 큐빅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루비 정도는 될지 누가 알겠는가.

    근데 지금 보니 이 목걸이, 녹시아에겐 참 어울리지 않는 장신구였다. 붉은색 펜던트는 다른 공략 캐릭터인 루티시나의 붉은 머리와 잘 어울릴 듯했다.

    펜던트를 중심으로 촘촘히 박혀있는 작은 보석들은 전쟁터를 누비는 녹시아가 걸기엔 지나치게 화려했다.

    ‘애초에 녹시아에게 선물하려고 준비한 게 아니었다면 그럴 수도 있지.’

    차라리 그편이 나았다. 처음부터 녹시아 거라고 정해두었다면 분명히 별 값어치가 없는 물건일 테니 말이다.

    ‘그 성물은 천 골드라고 했었지. 이걸 팔고 얘기를 잘하면 혹시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깨끗하게 빌려 쓴다고 하면…. 아니지 그래도 가격 차이가 너무 나나? 이걸 시작으로 차근차근 돈을 모아간다면…….’

    이 목걸이를 받은 날은 아나드 특수부대와의 첫 전투가 있었던 날이었다. 녹시아가 처음으로 카미앙을 위해 목숨을 건 날이기도 했다.

    곰을 부리는 아나드군의 특수부대는 일단 시각적으로 병사들을 위축시키는 존재였다.

    사람보다 열 배 이상 큰 덩치가 앞발을 휘두르며 다가오면 사람뿐만 아니라, 말이 먼저 놀라 대열이 엉망이 되곤 했다.

    이상한 약을 먹여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둥, 목을 자르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는 둥 괴소문까지 돌았다. 여러모로 위협적인 부대였다.

    “녹시아, 파르미엔가는 아나드와의 국경 지대에 있었으니 저 곰을 자주 본 적이 있겠지?”

    “그게, 평소에는 저 곰이 돌아다니지를 않아서….”

    “병사들이 너무 겁을 먹고 있어. 그대가 나서서 특수부대가 별것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면 병사들도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거요.”

    녹시아의 의사는 가볍게 무시당했다. 카미앙은 녹시아라면 특수부대를 이길 수 있을 거라 몰아붙였고 녹시아는 그것을 거절하지 못했다.

    귀하디귀한 왕세자님께서는 작전상 베이스캠프에서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바로 그 전투에 나가기 전 카미앙이 걸어주었던 목걸이가 이것이었다. 신의 가호가 있는 성물이나 수호석을 세공한 물건이 아닌 파티에나 어울릴 법한 화려한 장신구였다.

    그래도 녹시아는 기뻐했지만….

    “말 잘 듣는 사냥개에게 이름표를 달아준 거지 뭐.”

    목걸이를 받던 때를 회상하며 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간판도 달지 않은 가게답게 안은 허름하고 지저분했다. 가게라기보단 마치 창고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아니지, 겉만 보고 판단하긴 이르다. 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상자들 속에 값나가는 귀중품들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카운터는 있었기에 나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물건을 좀 맡기고 싶은데요.”

    바깥쪽에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전당포 주인이 할아버지 아니었나.

    ‘엑스트라 중의 엑스트라라 다른 게임에서 썼던 리소스를 재활용 했던 것 같은데. 전형적인 전당포 주인 모습으로. 안경 쓰고, 나이 지긋하고 구부정하고….’

    그렇다면 이쪽에서는 안 보일만 했다. 하지만 카운터 안쪽에도 사람은 없었다.

    ‘그럼 이쪽인가.’

    나는 카운터 옆쪽에 있는 문 쪽에 대고 큰소리로 다시 한번 외쳤다.

    “안녕하세요! 주인….”

    말을 채 끝내기도 전이었다.

    “무슨 일이오.”

    불쑥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이야. 문 여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대체 어디서 사람이 나타난 거지.

    뒤를 돌아보았다. 기골이 장대한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길게 베인 상처가 있는 팔뚝 하며 굵은 다리 하며, 전당포 주인보다는 힘쓰는 일에 어울릴 법한 모습이었다.

    “주인… 이신가요?”

    “용건이 뭐요.”

    내 기억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신원조사라도 하는 것처럼 물어보자,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원래 할아버지 같은 얼굴에 저런 건장한 몸의 소유자였을까?

    무엇보다 저 사람 역시 오징어로 보이는 덕에 내가 기억하는 얼굴이 맞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물건을 맡기러 왔는데요. 주인아저씨 맞으시죠?”

    “… 그래, 나도 주인이지.”

    두 명이서 운영하는 가게였나? 하긴 혼자 가게를 운영하기엔 그 할아버지 나이가 좀 많아 보였다.

    “물건이라면.”

    그의 시선이 내 허리춤에 있는 검집을 향했다. 비록 오징어였지만 어쩐지 그쪽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검이 아니고요, 이거예요.”

    나는 주인에게 목걸이를 내밀었다.

    “흠….”

    목걸이를 살피던 주인은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다시 목걸이를 살펴보았다.

    ‘원래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건가.’

    전당포는 전생에서도 가 본 적 없었기에 알 수가 없었다. 제법 긴 시간이 흐른 게 아닌가 싶었을 때 주인이 입을 뗐다.

    “삼 골드.”

    “네? 삼십 골드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삼! 골드.”

    전당포 주인의 목소리가 커졌다.

    삼 골드라니. 카미앙이 녹시아에게 좋은 물건을 주었을 리 없다고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싼 게 아닌가 싶었다.

    카미앙으로 게임을 플레이할 때 공략 캐릭터들에게 주었던 선물의 가격이 떠올랐다. 루티시나에게 주었던 귀걸이가 백십 골드, 헤슬루에게 주었던 머리핀이 백오십 골드.

    ‘혹시 전당포여서!’

    보통 원가의 삼 분의 일도 받지 못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다.

    “다시 한번 잘 봐보세요. 이게 그렇게 싼 물건은 아니거든요.”

    이제 보니, 그가 안경도, 돋보기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맨눈으로만 보시지 말고 돋보기 같은 게 있으면 한번 자세히 보세요. 눈 크게 뜨시고요.”

    내가 큰 소리로 이것저것 요구하자 주인은 당황한 듯했다.

    “흠흠, 혹시 아가씨 귀족이신가?”

    “그래요.”

    “그 검은 아가씨가 사용하는 거요?”

    귀족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말씨가 조금 공손해졌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괜한 잡담 말고 빨리 목걸이 가격이나 다시 책정해줬으면 싶었다.

    “그런데요.”

    “귀족은 여자들도 검을 쓰는구먼. 거참. 그럼 혹시 위병대라든지 뭐 그런 소속이시오?”

    어쩐지 여자 기사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결코, 입단할 일은 없겠지만 지금만 잠시 근위대의 이름을 빌리기로 했다.

    “위병대는 아니고 근위대와 관계가 좀 있죠.”

    “근위대면 그 국왕 폐하 일가를 모시는 군대가 아니오? 그런 분이 어째 이런 누추한 곳까지 납시었소.”

    더는 주인의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기에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감정은 끝났나요?”

    주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예상외의 가격을 불렀다.

    “삼십 골드요.”

    “삼십 골드? 아까는 삼 골드라고 하지 않았나요?”

    “크흐음, 내가 최근 눈이 안 좋아진 모양인지 돋보기를 쓰고 보니 이제야 값어치를 제대로 알겠소.”

    난 돋보기 걸친 오징어를 쓱 훑어본 후 목걸이 줄을 가리켰다.

    “혹시 이 굵은 줄이 진짜 금은 아니더라도 네오 골드라던지….”

    “그래, 맞아. 네오 골드! 네오 골드요. 그래서 가격이 확 뛰었소.”

    주인은 그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던 참이라는 듯 무릎을 쳤다.

    거참 신기한 일이었다. 네오 골드라는 게 진짜 있었다니. 아무리 얻어걸린다는 말이 있어도 이렇게 맞추기는 힘든 일인데 말이다.

    게다가 주인의 들어보니 금보다도 비싼 금속인 것 같았다.

    “그럼 이 앞에 박힌 불그스름한 보석은….”

    “아가씨도 잘 아시겠지만, 루비요 루비. 빛이 사방으로 균일하게 퍼지는 것이 아주 정교한 세공을 거친 상품이지.”

    정말일까? 이게 정말 루비라고? 나야 나쁠 게 없었지만, 이 주인 어째 수상쩍은 구석이 있었다.

    …스킬을 사용해 볼까? 난 눈에 힘을 주고 오징어 머리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요 옆에 붙어있는 작고 투명한 보석들 보이시지? 이게 모두 다이아몬드요. 알이 너무 작아서 값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다이아몬드니 감정가가 높아진 게지.”

    「아무리 봐도 다이아는 아닌데. 젠장 어쩔 수 없지.」

    ‘응? 뭐야 이 사람 지금 아무것도 모르면서 감정하는 흉내를 내는 거야?’

    수상하긴 했는데 정말 엉터리 감정이었다. 그리고 가장 수상한 건 엉터리로 하는 주제에 가격을 높게 부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감정가를 확인했다.

    “그래서 삼십 골드라는 거죠?”

    “그렇소, 삼십 골드. 어디 가서는 절대로 이 가격 못 받을 거요.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라 설령 되판다고 할지라도 절대! 이 가격 안 나온다오. 이 목걸이를 가지고 있는 것 보다 여기 맡겨두는 게 훨씬 더 이익이라 이 말이지.”

    「보아하니 돈이 궁한 귀족인 모양인데 이 정도 부르면 물건을 가지러 오진 않겠지? 아예 이곳에 다시 찾아올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만들어야지. 암 그렇고말고. 삼십 골드가 좀 아깝긴 해도 그게 남는 장사야.」

    밑지고 파는 거라든지 원가만 받고 넘기는 거라든지, 장사꾼들이 의례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전당포 주인은 정말로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절대로 이 목걸이를 찾으러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원가보다도 더 높을지 모를 삼십 골드라는 가격을 부른 것이었다.

    ‘뭐지 이 사람. 귀족하고는 거래하기 싫다는 건가.’

    혹시 이 목걸이가 주인만이 가치를 알아보는 엄청난 물건이라 빼돌리려고 하는 게 아닌가 기다려 보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넘길 거요, 말 거요?”

    「이 정도 부르면 냉큼 맡기고 갈 줄 알았는데 왜 이리 뜸을 들여」

    “맡길게요.”

    모르겠다. 왜 이런 장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가 손해를 보는 게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카미앙이 내게 준 선물은 전당포의 서랍 귀퉁이에 봉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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