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게임의 공략캐가 되었다-6화 (6/95)

6.

“보셨습니까?”

나는 힘차게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심각하게 묻는 걸 보니 본인도 자신의 얼굴이 오징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이건 내 착각이 아니었다.

‘어, 어째서? 왜 신관 얼굴이 오징어인 거야? 오징어로 신관을 모델링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고 플레이할 때도 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 못 보셨습니까?”

난 다시 한번 힘차게 고개를 졌다가 깨달았다. 고개를 흔들 게 아니라 ‘뭘요?’라고 되묻는 게 정말 아무것도 못 본 사람의 반응에 가깝다는 것을.

“제 머리카락이 무슨 색이었죠?”

내가 살면서 오징어 앞에서 가슴 졸일 일이 있을 줄이야. 가까워지는 오징어 머리를 바라보며 난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집중하자 집중, 마트의 해산물 코너와 해양생물 다큐멘터리를 떠올리자. 오징어의 머리카락이 무슨 색이었는지 생각해보자.

머리카락, 머리카락… 오징어의 머리카락이 대체 무슨 색이지? 아니 그 전에 오징어한테 머리카락이 있기는 해?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이전 세계라면 검은색을 답하는 것만으로도 90프로 이상의 정답률을 가져갈 수 있었겠지만, 이곳은 총천연색의 머리카락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바렌시드였다.

“연, 연한 갈색?”

난 마른오징어와 가장 비슷한 색을 말했다.

“정말 아무것도 못 보신 게 맞군요.”

그걸로 확인된 건가? 다음부턴 차라리 어떤 동물이었냐고 묻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좀 전에 제게 뭐라하셨더라… 아, 신관이 어쩐 일로 여기 왔냐고 물으셨죠.”

그다지 궁금해서 물은 건 아니었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실은 신께서 절 이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으니 도우라고 말이죠.”

신께서 인도했다고? 예전이었으면 한 귀로 흘려들을 만한 말이 뇌리에 팍 꽂혔다.

어쩌면 이 사람, 내 기도를 들은 바렌시드의 신께서 보내 준 사람이 아닐까?

“정말인가요?”

“물론입니다. 신전으로 돌아가는 길에 장미 정원으로 향하라는 계시와 함께 이 부근에서 환한 빛이 감도는게 아니겠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제가 굳이 이 연인들의 공간에 발을 들일 이유가 없었겠지요.”

가능성이 있었다. 특히 시스템을 불러내는 방법이 기도라면 말이다. 신관이란 존재는 기도의 전문가가 아니던가!

“하지만 레이디께서는 검술 연습 중이셨던 거고 아무리 찾아봐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없으니 제가 헛걸음을 한 것….”

“아닙니다!”

“네?”

“제가 바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입니다!”

그것이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난 손까지 번쩍 치켜들었다.

“그, 그러신가요?”

다소 미심쩍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상관없었다.

“기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지금 말씀입니까?”

“네, 지금 당장! 여기서요.”

“레이디께서 그러하시다면….”

신관이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옳거니, 저것이 이 세계의 기도 방식이로구나. 나는 그가 도망이라도 갈 것처럼 내민 손을 덥석 잡았다.

“적극적인 분이시군요.”

“네, 안 그래도 신관님께 꼭 기도를 받고 싶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후드 밖으로 삐져나온 오징어 다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버그다 버그. 분명 그래픽 파일에 오류가 생긴 거야.’

잡생각을 하면 신성력의 공급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와 맞잡은 손에 가능한 온 정신을 집중했다.

역시, 효과가 있었다. 충전기가 연결된 핸드폰 화면처럼, 눈송이 같은 빛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더니 곧 글자가 되었다. 시스템 메시지였다.

<신앙심이 깊을수록 신성력이 빠르게 충전됩니다.>

<신앙심 넘치는 기도는 신성력의 충전을 촉진시킵니다.>

신성력이라니, 스테이터스에 신성력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런 수치는 한 개도 없었다.

근본 없는 능력치인 주제에 시스템과의 통신 수단이며 쿨타임까지 있었다.

게임에서도 신성력이 캐릭터나 이벤트에 영향을 미친 적은 없었다. 나는 개발부서가 아니라 마케팅부서였으니, 이 시스템을 어떤 경로로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 게임 한 번 제대로 해보지 않은 녀석이 만든 게 분명했다.

그나저나 신앙심이 깊을수록 쿨 타임이 짧아진다니, 신앙심이 0에 수렴할 게 분명한 내겐 몹시 불리한 조건이었다.

‘기도와 관계가 있던 건 맞았네.’

카미앙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절실한 기도가 신성력을 빠르게 충전시켰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정말 초인적인 힘이 발휘되었던 것이었을 뿐 평소의 내게 그런 신앙심이 있을 리 없었다.

어쨌든 시스템과의 접속 방법을 알게 되어 다행이었다.

와, 그 짧은 시간에 신성력이 전부 회복되었다. 신관이란… 성능이 매우 좋은 충전기로구나.

“감사합니다. 신관님. 그… 몸이 한결 좋아졌어요.”

잠시 이 세계의 예법도 잊고 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역시 몸이 안좋으셨던 거군요.”

그럼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 상관없었다.

“그런가 봐요. 아무튼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봬요!”

신나게 달리는 등 뒤로 나를 부르는 신관의 목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

‘상태창, 상태창.’

장미 정원을 빠져나오며 빠르게 외쳐댔다. 물론 윙크를 하면서 말이다.

「당신의 칭호 : 어장 속 물고기

칭호에 따라 다음과 같은 효과가 발동됩니다.」

으… 어장 속의 물고기라니.

보기 싫은 화면은 빠르게 넘기려는데 마지막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항목들에 비교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 넘겨버렸던 네 번째 항목이었다.

「4. 어장의 주인 이외의 이성은 오징어로 보입니다.」

‘오징어!’

방금 헤어진 신관의 모습이 떠올랐다. 버그나 오류가 아니었다! 내가 어장 속 물고기인 까닭에 내 눈에만 신관의 얼굴이 오징어로 보인 것이었다!

흔히 못생긴 얼굴을 빗대는 것처럼, 다른 이성은 카미앙보다 못나 보이고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여겼지, 진짜 오징어를 보게 될 줄이야!

신관 앞에서 대뜸 오징어를 외치지 않은 나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하마터면 미친 사람 취급받을 뻔했다.

‘앞으로 수많은 오징어를 마주치게 될 텐데 그때마다 놀라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는걸.’

골치 아픈 일이었다. 신관뿐만 아니라 카미앙을 제외한 모든 남자의 얼굴이 오징어로 통일된다니.

역시 빨리 이 난관을 타개할 스킬을 확인해야 했다.

<의미 없는 이사님의 잔소리 흘려듣기: 사용하려면 상대에게 등을 돌리세요.>

<지금이야말로 입을 열 타이밍: 사용을 위해서는 상대를 보며 왼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세요.>

<사람을 분석하는 마케터의 혜안: 사용하려면 상대방을 강하게 째려보세요.>

<스킬의 능력은 칭호가 바뀌면 함께 변화합니다.>

스킬을 읽는 것과 동시에 반짝이는 노란 빛이 내 주위를 둘러쌌다. 단순히 둘러싼 게 아니라 작은 회오리라도 만들 듯 나선형으로 주변의 공기를 휘감아 올린다.

뭔가 뾰로롱 하는 소리가 들린다던가 배경음악이 깔릴 것 같은 그런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초인적인 힘이 솟는다던가 시야가 밝아지고 머릿속이 환해지거나 한 건 아니었다.

잠깐 동안 소녀 만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기분을 누렸을 뿐이다.

그래도 이로써 내가 저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인 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괜스레 스킬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는 효과도 있었다.

“자세한 설명은 없는 건가?”

없었다. 지금까지 이 시스템의 행적을 살펴보면 당연한 일이지 싶었다. 게다가 일관성 있게 이번에도 모션 인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다행인 건 윙크나 하트처럼 눈에 띄는 행동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아니지, 다행이긴 뭐가 다행이야. 스킬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발동이 돼야지.’

벌써 이런 불편한 시스템에 적응해 버리면 이 시스템은 영영 발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난 스킬 이름을 찬찬히 곱씹어 보았다. 전생의 능력치를 분석한 결과라고 하더니 판타지 세계와는 백만 년쯤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름이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녹시아가 아닌 ‘직장인 이시아의 사회생활 스킬’ 정도였다. 이런 게 도움이 되기는 할까.

일단 가장 알기 쉬운 건 ‘의미 없는 이사님의 잔소리 흘려듣기’ 스킬이었다.

‘디테일 살아있는 요 이름 좀 보게나.’

살면서 잔소리 들을 일은 많았지만, 이사님의 잔소리는 조금 특별했다.

엄마의 잔소리는 따지고 보면 대부분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고 선생님이나 다른 상사의 잔소리는 때때로 내게 유익한 것이 있었다.

하지만 이사님의 잔소리는 전혀, 단 일 퍼센트도 도움 된 적이 없었다.

다른 회사의 신작이 잘 나가면 우리도 당장 이런 걸 도입해야 한다든가, 뭐가 좀 유행한다 싶으면 이런 요소를 다 집어넣으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게임을 산으로 가게 만들곤 했다.

덕분에 출시조차 하지 못하고 중간에 어그러진 게임도 많았다.

그런 이사님의 잔소리는 귀담아들을 필요 없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최선이었다.

‘그럼 이 스킬은 나한테 도움이 안 되는 요청들은 무시하게 만들어 준다는 건가.’

튜토리얼 단계에서도 녹시아는 본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손해를 보는 일까지도 열심히 해왔다.

‘카미앙과 관계있는 일’ 범주에서였던 건 알겠는데 그 범위가 굉장히 넓었다. 불행히도 카미앙이 왕세자인 만큼 그의 소유로 되어있는 것들이 많았던 탓이었다.

다른 기사들의 무리한 요구도 그들은 카미앙의 군대니까 오케이. 부관 베르만의 짜증 나는 요청도 카미앙의 신하니까 오케이.

당연히 카미앙의 말은 생각할 것도 없었다. 좀 전처럼 장미 가지나 다듬으라는 비아냥거림조차 진지하게 실행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짐작이었을 뿐, 정확한 효과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마음이야 당장 카미앙을 찾아가 현란하게 스킬을 사용하며 그동안 당했던 것을 갚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성적인 내가 그런 충동적인 행동을 할 순 없었다. 아직 효과가 불분명한 스킬을 들고 카미앙 앞에 나서는 건 내 정신력만 깎아 먹을 위험이 있었다.

카미앙보다는 만만한, 그렇지만 이전의 녹시아가 늘 절절맸던 상대를 시험 삼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카미앙의 부관이자 루티시나의 오빠, 바르하르트 후작가의 차남인 베르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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