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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 게임의 공략캐가 되었다-1화 (프롤로그) (1/95)
  • 민연별 - 하렘 게임의 공략캐가 되었다.

    @HAESU 공금/갠소

    프롤로그

    “녹시아, 그대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소.”

    불길했다. 몹시도 불길했다. 카미앙은 그 어느 때보다 눈을 반짝이며 녹시아를 홀리고 있었다.

    저놈은 라우치 왕가의 피가 아니라 서큐버스의 피가 흐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툭하면 요사스러운 눈빛을 뿌려댔다.

    불행히도 카미앙의 저 눈빛이 요망한 수작질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건 나 혼자였다.

    녹시아는 카미앙이 눈을 반짝일 때마다 파르미엔 영지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거울 호수를 떠올렸다.

    ♥어쩜 저리도 아름다울까.♥

    내가 자리 잡은 녹시아의 머릿속 한 귀퉁이에 감탄 어린 문장이 나타났다. 녹시아의 마음속 생각이 이렇게 나타나곤 했다.

    분홍색으로 반짝거리는 글자는 ‘사랑에 빠진 소녀체’라든가 ‘콩깍지체’라는 이름 따위를 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주위에는 늘 연분홍색 꽃잎과 하트가 퐁퐁 돋아났는데 이제는 꽃향기마저 폴폴 풍겨오는 듯했다.

    이 정도의 반응이라면 확실했다. 녹시아의 입에서 내가 우려했던 대답이 흘러나왔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내가, 정확히는 녹시아가 대답하는 순간, 카미앙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난 똑똑히 보았다.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 같은 놈. 녹시아가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는 반응이었다.

    녹시아의 머릿속에 갇혀있는 신세지만 내 눈으로 보는 것처럼 녹시아의 시선이 닿는 곳은 뭐든 볼 수 있었다. 듣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내 의지대로 말을 한다거나 행동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녹시아의 몸 안에 깃들어 있긴 하지만 내 의사를 전달할 순 없는 답답한 상황인 셈이다.

    카미앙은 목소리를 내리깔며 짐짓 심각한 목소리로 운을 띄웠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뇌하는 왕자님 표정을 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늘 전투를 보면 알겠지만 아나드군의 마지막 요새를 정면으로 뚫기엔 우리 군의 피해가 너무나 크오.”

    ♥다정한 사람, 분명 죽은 병사들을 생각하며 가슴 아파하는 것이겠지.♥

    녹시아의 생각이 다시 꽃잎과 하트를 퐁퐁 달고 나타났다.

    말 그대로 머릿속이 꽃밭인 녹시아는 저 녀석의 간교한 술수 따위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내 눈에는 보이는 것이 녹시아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카미앙의 수작을 간파하기는커녕 옆구리에 입은 부상을 들키지 않기 위해 몸을 살짝 비틀기까지 하는 꼴이라니.

    전쟁터에서 옆구리를 베이고 피를 질질 흘리다가 마취도 없이 상처를 꿰매는 건 이전 삶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몇 주 정도는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할 법한 상태임에도 녹시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전투에 나섰다.

    ♥아아 그러니 내가 다친 걸 알면 얼마나 더 가슴 아프실까. 나라도 걱정을 덜어드려야지.♥

    대체 누가 누굴 배려하는 건지….

    카미앙은 녹시아의 뺨을 쓸어내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아름다운 건 가까이서 크게 보면 더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긴 하지. 이런 미남계 공격에 녹시아가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해 버리는 것이다.

    녹시아의 뺨이 부끄러움으로 달아올랐고 나는 다른 이유로 열이 올랐다.

    “내게 아나드의 목을 가져다주시오.”

    뭐? 아나드의 목?

    “당신이 몰래 잠입해 적장의 목을 베어준다면 우리가 승기를 잡을 수 있지 않겠소.”

    “잠입이요?”

    “그렇소. 적장이 잠든 틈을 노리는 거지.”

    아나드의 적장은 인간이라고 믿기 힘든 거구의 사내였다.

    녹시아가 며칠 전에 있었던 백병전을 떠올린 까닭에 머릿속 한 귀퉁이에 적장의 모습이 그려졌다.

    꽤나 버거운 상대였는지 녹시아에게 각인 된 상대는 이미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녹시아, 봐봐. 저 정도면 사람이 아니라 헐크나 오크라고 봐야 한다고. 저런 놈하고 또 싸우고 싶어?

    나는 열심히 녹시아의 두려움에 불을 지폈다. 효과가 있기라도 했는지 녹시아의 어깨가 부르르 떨려왔다. 몸이 적장의 괴력을 기억하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겁을 내고 있으니 어쩌면 이번엔 카미앙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일었다. 드디어 내가 녹시아의 운명을 바꾸게 된 것이다.

    “카미앙, 잘못하면….”

    눈치 빠른 카미앙이 그런 녹시아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건지 말을 보탰다.

    “바렌시드 제일의 검사인 그대라면 분명 할 수 있을 거요. 아니, 그대밖에 할 수 없는 일이요.”

    녹시아는 잘못하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삼켜버렸다.

    ♥그래, 카미앙은 내 실력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어. 내가 상대보다 강하다고 확신하는 거지.♥

    “날쌔고 강한 정예병 열 명을 붙여주겠소. 그리고 이것.”

    카미앙은 작은 주머니 두 개를 내밀었다.

    “바이난 공국에서 몰래 공수해 온 수면 향이요. 이쪽은 엄청나게 두꺼운 연기를 만들어내는 탄약이고. 이 두 개가 이번 작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요.”

    녹시아가 작은 한숨을 내쉰다. 이건 누구 한 명을 암살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대장을 죽인 후에 곧 대규모의 전투를 치러야 했다. 겨우 이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왕궁에서 세상 아름다운 것만 보고 자라신 왕자님이 이런 걸 알 리가 없잖아. 게다가 저 뿌듯해하는 얼굴 좀 봐. 꼭 엄마에게 풀꽃을 선물하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은걸. 이 비약이 있다면 내가 당연히 성공할 수 있으리라 믿고 계신 거야.♥

    난 양팔을 휘두르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녹시아의 망상을 지워버리려 애썼다.

    아니야 녹시아. 저놈은 다 알고 있어. 카미앙은 널 사랑하지도 않고 순수하지도 않아. 그냥 쓸만한 사냥개가 사냥감을 물어오길 기대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내 목소리는 녹시아에게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반갑지 않은 손님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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