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430화 (430/437)

430화

스킬이 무한히 작동할 리는 없었다.

저 조명이 꺼지고 다시금 암흑이 밀려들 때, 놈의 습격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았다.

……라고 생각했으나 한세린은 곧 자책했다.

‘나는 아직도 멀었어.’

군주는 동료들의 능력을 잘 파악해야만 한다.

그래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고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차진혁과 관련해서는 그게 잘 안 됐다.

‘설마 이게 되나 싶은 것들은 대부분 된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여전히 그게 잘 안 됐다.

설마 저 스킬이 무한히 사용이 되는 건가? 라고 생각했다면 응당 무한히 사용이 되겠거니라고 판단해야 뛰어난 군주인 것이다.

“물론 네가 끄지 않으면 꺼지지 않겠지만.”

“…….”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 한세린에게 차진혁은 괜스레 고마워졌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야 김철수.”

“방심?”

“너는 글씨를 쓰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해?”

이건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였다.

“나는 이 숲의 제왕이 우릴 습격할 거라 확신하고 있어.”

만약 다가오지 않는다면 다가오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게 디버프 길잡이로 선택된 한세린 자신의 역할이었으므로.

“중계용 조명을 켠 상태로 전투를 하는 건 글씨를 쓰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아.”

“하지만…….”

“군주로서의 내 판단이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차진혁은 한세린에게 조금 더 고마워졌다.

군주로서 저렇게 말하면 들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걸 꺼야 긴장감이 더 살겠지!’

“일단 이쯤에서 자리 잡고 아영하자. 너는 괜찮을지 몰라도 내가 체력적으로 좀 힘들어서. 중계용 조명은 끄도록 해.”

“그래.”

다시금 암흑속성의 안개가 밀려들었다.

시각적으로는 낮과 밤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한세린은 능숙하게 야영지를 구축했다.

마법횃불을 사용하여 불을 켰다.

마법횃불은 안개에 잡아먹혀 금방 사그라들고 말았다.

몇 차례 불을 피우려 노력해서 겨우겨우 아주 희미한 불빛을 만들어냈다.

바로 앞에서 서로의 얼굴이 겨우 보일 정도로 미약한 불빛이었다.

그때, 한세린의 예민한 감각이 무언가의 접근을 포착했다.

‘온다!’

빠르고 날랜 움직임이었다.

마법횃불의 빛을 순식간에 잡아먹는 이 안개의 어둠을 몰아낼 정도의 환한 빛 덩어리가 보였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곰.

신비종으로 분류되는 마법생물, ‘황금웅’이었다.

‘어?’

황금웅의 습격이 뭔가 이상했다.

* * *

황금웅은 이 숲의 지배자였다.

그 어떤 기이한 마법생명체도, 식인나무도, 모험가도 황금웅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 [안개의 숲]은 황금웅에게 최고의 서식처였다.

이 숲의 안개 중에서는 ‘금(金)’의 성질을 가진 안개도 있었다.

일반적인 생명체들이 그 안개를 들이키면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어떤 모험가들은 이걸 일컬어 급성 중금속 중독이라 표현하곤 했지만 황금웅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숨만 쉬어도 배가 부르고 체격이 커졌다.

체내에는 강대한 마력이 깃들었다.

황금웅의 몸은 점점 더 단단해졌다.

모험가들의 창칼과 마법은 황금웅의 가죽을 뚫지 못했고, 그 어떤 생명체들도 감히 황금웅에게 반기를 들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황금웅은 자신보다 훨씬 더 거대한 덩치를 가진 맹수를 느낄 수 있었다.

강하다.

모험가들이 말하는 용일까?

그는 숲의 제왕으로서 이 숲의 침입자를 처리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황금웅은 침입자를 공격할 수 없었다.

안개에 내재된 마력을 섭취하여 자란 만큼, 황금웅은 마력에 아주 민감한 생명체였다.

마력의 크기가 곧 생명체의 크기로 인식했다.

이 숲에 자신보다 더 큰 생명체는 없는 줄 알았건만, 자신보다 수천 배는 더 큰 괴물이 눈 앞에 있었던 것이다.

황금웅은 생각했다.

저 존재를 왕으로 인정해야겠다고.

그래서 황금웅은 그가 제일 좋아하는 먹거리인 칠색연어를 사냥했다.

황금웅이 한세린 앞에 펄떡거리는 연어 한 마리를 떨어뜨렸다.

“이건…… 칠색연어?”

일곱 색깔의 빛을 지닌 연어.

몸 길이 약 5미터쯤 되는 성체로서, 아르비스 내에서도 보물 중의 보물로 불리는 생명체였다.

“뭐가 있어?”

차진혁이 텐트를 걷고 밖으로 나왔다.

황금웅은 차진혁을 보자마자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황금웅은 배를 까고 누웠다.

완전한 복종이었다.

* * *

‘억지 긴장감 연출은 글러먹었다.’

이 숲에 실망이었다.

천혜의 자연 미궁이니 뭐니 했지만 생각보다 별거 없었던 것이다.

괜히 키옌 가문의 가주 사라 키옌이 ‘그냥 동쪽으로 걸으면 될 듯’ 하고 말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녹화를 포기할 수는 없는 법.

그래도 아주 신비로운 생명체인 황금웅이 나타났으니 이것 나름대로 좋은 소재였다.

“우리 먹으라고 가져온 거냐?”

황금웅은 다시 바닥에 넙죽 엎드리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 사람 말을 알아듣는 건가?”

끄덕끄덕.

“제법이군.”

차진혁이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황금웅은 움찔 놀랐기는 했지만 얌전히 차진혁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털이 정말 황금색으로 빛납니다. 그런데 약간 잘못 알려진 사실이 있네요.”

세상에 알려지기로, ‘살아 있는 황금웅’의 털은 마치 철갑처럼 단단하고 창처럼 날카롭다고 되어 있었다.

“아주 부드럽습니다. 극세사로 만든 이불같이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지는 털이군요.”

“진짜?”

한세린도 흥미가 돋았는지 황금웅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황금빛 자태에 홀린 그녀는 황금웅의 옆구리에 손을 댔고,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손을 감싸쥐었다.

그녀의 손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주가 스며들고 있어!’

아까 저주에 저항하는 포션을 먹어놔서 다행이지, 아니었더라면 몸의 피가 모조리 쇳물로 변해 버렸을 것이었다.

슬쩍 느끼기에도 굉장히 지독한 저주였다.

한세린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차진혁이 품 속에서 얼른 ‘김철수 포션’을 꺼내 주었다.

“효과가 있을 거야.”

“고마워.”

벌컥벌컥.

김철수 포션을 마시자 정신이 맑아지고 고통이 사라졌다.

몸 속을 파고들던 저주는 완벽히 정화되어 없어져 버렸다.

* * *

‘여기서 이렇게 진귀한 생명체를 만날 줄은 몰랐네.’

털 한 올, 한 올이 마법사들의 보물이라 여겨질 정도.

금속 속성을 연구하는 마법사들은 황금웅과 만나는 걸 평생의 소원으로 꼽을 정도였고, 테이머 계열 플레이어들의 이상향이기도 했다.

어떤 의미로는 용보다 더 희소한 존재여서 용을 테이밍하는 것보다 황금웅을 테이밍하는 것을 더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테이머들도 있었다.

‘얘로 콘텐츠를 좀 더 뽑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럴 때에는 역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차진혁은 즉시 왕유미를 통해 테르서박에게 연락을 넣었다.

연락을 받은 테르서박은 신발을 신는 것도 잊고서 밖으로 달려나왔다.

“어, 어떡하지? 거기 아르비스 서버 아닌가?”

아르비스 서버는 입장이 굉장히 까다로운 곳.

김철수쯤 되니까 자유자재로 왔다갔다하는 것이지, 일반적인 지구 플레이어들이라면 입장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시간을 지체하면 안 돼. 황금웅이 사라져 버린다!’

황금웅은 온갖 마법에도 능통한 신비로운 생물.

투명마법을 쓴 다음 워프마법으로 멀리 떠나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1분 1초가 귀했다.

워프 게이트를 관리하는 관리자들에게 어떻게든 얘기를 잘 하고, 필요하다면 뇌물을 찔러줘서라도 입장하기로 마음 먹었다.

“저는 지구 출신의 테르…….”

“아, 연락받았습니다. 지구 출신의 테이머 테르서박 경 맞으시지요?”

“맞습니다만…….”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르비스로 향하는 워프포탈의 관리자들은 깐깐하기로 소문이 나있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모두가 테르서박에게 아주 깍듯했던 것이다.

이것은 스웨딘 제국의 황제 카일과 머렌의 시장 뮈엔느의 도움이 있었다.

아르비스 서버에 입장했다.

황금웅에 눈이 뒤집혀 일단 오기는 했는데 약간 막막하기는 했다.

‘여기서 안개의 숲까지는 어떻게 가지?’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가자, 테르서 박.”

“당신은…….”

아르비스의 유명 랭커.

길잡이 르세핌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르세핌이 직접 길을 안내해 준다니.

‘이게…… 이럴 수가 있는 건가? 아니, 이래도 되나?’

모든 것이 다 꿈 같았다.

* * *

테르서박은 몹시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황금웅은, 황금웅은?!”

“아, 여기 있다.”

과연 신비로운 생물다웠다.

대충 전해 듣기로는 집채만큼 커다란 곰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조금 큰 개 정도 크기에 불과했다.

테르서박이 나타나자 황금웅은 입술을 말아올리고 으르렁거렸다.

자격이 없는 자가 이 숲에 나타난 것이었으니까.

르세핌은 약간 아쉬운 표정을 짓고서 말했다.

“나는 돌아간다?”

“고맙다, 르세핌.”

“그…… 진짜 돌아가?”

“괜히 바쁜 사람 붙잡고 도와달라고 할 수는 없지.”

“응, 알겠어.”

도와달라고 해도 되는데.

철수랜드인 르세핌은 무척 아쉬웠지만, 오히려 철수랜드이기에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자신의 존재가 오히려 김철수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으니까.

르세핌이 돌아가든 말든 테르서박의 시선은 오로지 황금웅에만 꽂혀 있었다.

“테르서박. 너 코에서 피 난다.”

검은 물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르세핌의 안내를 받아 오기는 했지만 멀쩡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그래도 일단 이거 마셔라. 그대로면 3분 이내에 죽을걸?”

테르서박은 김철수 포션을 마신 뒤 황급히 말했다.

“이 황금웅과 교감해 봐도 되는 건가?”

“물론이지.”

차진혁은 녹화 준비를 끝마쳤다.

‘이건 실시간 방송으로 하면 안 되나?’

라방에 대한 욕심이 뭉클뭉클 피어올랐지만 아직은 어쩔 수 없었다.

괜히 이곳의 기운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었다가 저주가 퍼지면 큰 일이니까.

할 수 없이 녹화방송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황금웅. 내 이름은 테르서박이란다. 너와 친구가 되기 위해 찾아왔어.”

황금웅은 귀찮다는 듯한 눈으로 테르서박을 바라보았다.

한 번 더 으르릉거렸다.

더 이상 가까오면 앞발을 휘두르겠다는 경고였다.

황금웅의 앞발은 금속의 저주를 품고 있어서 사람의 피를 쇳물로 바꿔버릴 수 있었다.

저렇게 연약한 인간쯤은 발톱 하나로도 죽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때, 차진혁이 아주 작게 속삭였다.

“얌전히 있어라.”

황금웅은 으르렁거리기를 멈췄다.

테르서박이 황금웅 바로 앞에 섰다.

황금웅이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직감하고 있던 테르서박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일단은 작은 스킨십부터 시작해야겠어.’

그것이 그가 교감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황금웅의 털에 닿으면 큰 부상을 면치 못하겠지만, 어쩌면 급성 중금속 중독으로 인하여 사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테이머라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었다.

“네게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너와 친구가 되고 싶단다.”

테르서박이 아주 조심스레 황금웅의 턱에 손을 얹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손에서 팍! 하고 피가 튀었다.

순간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의 고통이 밀려들어 왔지만 버틸 만했다.

그것은 테르서박이 아주 강해서라기보다는 아까 마셨던 ‘김철수 포션’의 효과였다.

금속의 저주.

그것은 실로 무서운 저주였다.

테르서박의 눈과 귀와 코에서 쇳물이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괜찮나, 테르서박?”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

“그래?”

“테이머라면 이정도는 보통이지.”

“그게 보통인 건가?”

“그렇다.”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다들 저 정도는 치열하겠지.

지구 최초의 황금웅 테이밍을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