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화
차진혁은 자신보다 경험이 훨씬 많은 마시멜로를 찾아 앞으로의 콘텐츠 진행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시멜로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불로초라. 아주 오래전부터 심심치 않게 등장했던 떡밥이긴 한데.”
마시멜로는 차진혁의 마음을 이해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우주급 시나리오의 콘텐츠 고갈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을 그 또한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좀 장기 프로젝트로 갈 수 있겠다.”
“네가 보기에도 그런가?”
“물론이지. 아르비스 서버 초창기부터 이미 수많은 권력자들이 불로초를 찾아왔거든. 그렇지만 그 누구도 찾지 못했어. 야사에 의하면 가르비누가 그걸 얻었다는 얘기가 있기는 하지만…… 가르비누가 정말 그걸 얻었다면 자기가 먹었겠지?”
“흐음.”
차진혁은 간만에 기분이 좋아졌다.
불로초는 척 봐도 장기 프로젝트가 될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당분간은 콘텐츠 고갈을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너도 참 힘들겠다.”
말투는 투박했으나 차진혁을 바라보는 마시멜로의 눈에는 염려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 순간에도 본인은 인정하지 않았다.)
“엘튜버의 길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군.”
“이참에 전향 생각해 보는 건 어때?”
“전향?”
“어. 소통 방송 쪽으로 가닥 잡으면 되지 않겠냐?”
“난 소통에는 별로 소질이 없어.”
그가 유달리 소통 능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으나 그의 비교 대상은 봉킹이나 왕유미였다.
그 둘과 비교해서 소통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어쨌든 차진혁의 기준은 그랬다.
‘네 얼굴이 소질 아닌가?’
마시멜로는 확신했다.
차진혁이 소통 전문 엘튜버로 전향해도 대성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을 좀 못하면 어떻단 말인가, 저 얼굴인데.
세상은 무척 불공평한 법이었다.
저 얼굴로 말을 더듬으며 어버버거려도 사람들은 최고의 달변가이자 소통 대왕이라고 치켜세워 줄 것이었다.
‘그게 자기 기준에는 맞지 않는 거겠지.’
마시멜로는 더 이상 강권하지는 않았다.
방송 컨셉을 전향한다는 건 여태까지 해왔던 모든 걸 버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채널의 근간이 흔들리는 결정.
성공 여부와는 관계없이, 마시멜로는 자신에게 그 정도의 권한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위로차 말을 건넸다.
“그래도 불로초는 찾기 정말 어려울 것 같다. 그 과정에 필연적으로 숨 막히게 재미있는 콘텐츠들이 튀어나오겠지.”
“고맙군.”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마시멜로의 말에 차진혁은 빙그레 웃었다.
“이제 대화 끝난 건가?”
책장 속에 숨어 있던 백과사전이 파닥거리며 날아왔다.
그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도였다.
촤르륵- 촤르륵- 책장을 빠르게 펼쳤다.
무척 흥분한 모양새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황궁비고에서 있었던 일들 말인데.”
차진혁과 함께하니 비궁의 온갖 함정들을 뚫을 수 있었던 것.
바위를 내리쳤으니 분명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았었던 것.
백과사전은 그에 대한 원인을 분석했다.
“아무래도 네가 너무 강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런 게 이유가 된다고?”
촤르륵- 촤르륵-!
어쩌면 우주 최강의 플레이어일지도 모를 차진혁 앞에서 백과사전은 크게 흥분했다.
“네가 너무 강한 나머지 함정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어.”
“에이 설마.”
“나도 설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황궁 비고로 향하는 길은 마법 생물이나 다름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변화하고 대처하지!”
백과사전은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표정이 없으나 보는 사람들은 그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잘 들어, 네가 얼마나 강한지! 뿌듯해해도 된다고!’라고 외치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네게 쫄아버린 것이다.”
“그게 말이 되나?”
“여태까지는 말이 안 됐지.”
촤르륵! 촤르륵!
“하지만 이제부터는 말이 된다. 역사는 김철수 이전과 김철수 이후로 나뉘게 되는 것이지!”
“……….”
“레벨 500이 넘어가면서부터 특이점이 온 것이 틀림없다!”
촤르륵! 촤르륵!
“어떠냐? 생각만 해도 흥분되고 가슴이 뛰지 않나? 사나이의 가슴이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지 않나?! 더 이상 강해질 수 없을 만큼 강해진다는 것! 그것은 온 우주 사내들의 로망이다!!!”
차진혁은 무성의한 표정으로 백과사전을 집어 책장을 향해 집어던졌다.
* * *
차진혁은 꿈을 꿨다.
고검이 대나무 숲에 들어가서 대나무를 모조리 베어버리는 꿈이었다.
한 번 꾼 것도 아니고 여러 번 꾸었다.
심지어 잠을 자고 있지 않을 때도!
“……그냥 말해라.”
차진혁은 소파에 앉아 고검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무엇을 말이지? 요?
“너랑 나랑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잖아.”
백과사전이 말한 ‘인류의 특이점’에 대해서 동의하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요즘 정말 많이 강해진 것을 느끼기는 했다.
아티팩트들과의 연결과 결속도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해진 탓에 그들과의 교감도 훨씬 깊어졌다.
지금 고검은 대나무 숲에 들어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를 무한정 외치고 있었다.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의식 세계 속에서 그러고 있다는 말이다.
“뭘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냐?”
-끄응…… 아무것도 아니다.
차진혁이 고검을 느끼는 만큼, 고검도 차진혁을 느꼈다.
저 이상한 주인은 너무 중요한 정보들을 풀지 않는 것을 원했다.
하지만 고검은 그것을 발설하도록 만들어진 존재.
존재 이유와 역행하는 생활을 하려니 온몸이 가려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말해 그냥. 나도 답답해 죽겠으니.”
-이건 주인이 말해서 어쩔 수 없는 거다요?
미리의 눈치를 슬쩍 살핀 고검은 크게 외쳤다.
-사실 불로초는 키옌 가문에 숨겨져 있다!!!
이제야 살 것 같았다.
그에 반해 차진혁의 표정은 조금 어두워졌다.
* * *
키옌 가문에 대해서 알아본 차진혁은 약간의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아르비스 7대 가문 중 하나.’
그러나 다른 가문들과는 달리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는 신비로운 가문.
정말 실존하는지조차 의문인 전설적인 가문이었다.
수많은 탐험가들과 모험가들이 키옌 가문을 찾아 헤맸으나 그 누구도 키옌 가문을 찾지 못했다.
“……라는 것은 키옌 가문이 자신을 찾은 모험가들을 모두 죽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기는 해요.”
MK재단 소속, 역사학도 육성 프로젝트의 책임자 욜린은 안경을 고쳐 썼다.
“사실 키옌 가문으로 가는 길이라 짐작되는 곳은 꽤 잘 알려져 있거든요. [안개의 숲] 동쪽 어딘가에 키옌 가문이 위치하고 있을 거라고 하긴 해요. ”
길은 있었다.
탐험을 떠난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다.
돌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실종된 건가?”
“그럴 거라고 판단하고 있어요.”
탐험가 모두가 실종되는 안개의 숲이라.
벌써부터 대박 냄새가 솔솔 풍겨졌다.
1인칭으로 녹화한 다음, 사고가 나지 않도록 적당히 손을 봐서 송출하면 꽤 쫄깃한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군!”
차진혁은 살짝 들뜬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야말로 채널의 근간. 살 떨리는 콘텐츠를 진행할 수 있으리라.
“대표님. 키옌 가문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어. 우주급 시나리오와 관련이 있을 것 같아서.”
“음. 이제 와서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
“뭔데?”
“사실 제가 평소에 잠을 재워놓은 자아가 하나 있거든요. 혹시 알고 계셨어요?”
차진혁도 그 사실을 대충 느끼고는 있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캐묻지 않았을 뿐.
“대충은?”
“근데 지금은 그 자아가 제멋대로 막 깨어나려고 해서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답답해했던 고검처럼, 욜린의 또 다른 자아도 그런 거겠지.
답답해 미칠 것 같아서 본인이 직접 등판하고 싶은 것 같았다.
순간, 말투와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
“직접 인사를 나누는 건 처음이네, 김철수 경.”
“이중인격?”
“그래.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소망이 강력한 의념이 되어 하나의 또다른 인격체를 형성한…….”
차진혁은 참을성 있게 욜린의 말을 들어주었다.
‘설명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인가 보다.’
이런 점은 욜린과 비슷했다.
설명이 길어지다 보니 루즈해졌다.
‘여긴 편집해야지.’
“그래서? 네 이름이 뭐지?”
“내 이름은 사라. 사라 키옌.”
그리고서 빙긋 웃었다.
둘은 한동안 눈을 마주쳤다.
“사라 키옌? 예쁜 이름이네.”
무의식이 현실을 거부했다.
그 키옌이 이 키옌이라는 것을 순간적으로나마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사라는 친절하게 또박또박 다시 말해주었다.
“응, 키옌 가문의 가주, 사라 키옌.”
* * *
사라 키옌의 말을 다 듣고 난 차진혁은 사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너도 힘들었겠군.”
사라 키옌은 가문을 잇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암살자로서 살고 싶지도 않았고 선조들의 사명을 지키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역사를 공부하며 평화롭게 살고 싶었다.
남들은 그게 무슨 배부른 소리냐 싶겠지만 사라에게는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넘치는 돈과 권력. 그리고 명예는 필요 없었다.
“나를 이해해 주는 거야?”
“누구에게나 고충은 있는 법이니까.”
“기뻐.”
사라는 은은하게 웃었다. 이렇게 쉽게 공감받는 건 처음이었다.
그녀 주변의 인물들이라고는 다른 6대 가문의 수장들 정도.
그들은 사라를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키옌 가문으로 오겠네?”
“길을 찾을 예정이다.”
“길은 이미 시중에 많이 알려져 있잖아. 안개의 숲 동쪽 어딘가. 잘 구해보면 비교적 상세한 지도도 공개되어 있을 거야.”
“모두가 실종되었다고 하던데?”
“실종되기는 했지.”
“모두 죽였나?”
“권속들은 그러라고 하긴 하던데…….”
사라는 고개를 저었다.
실종된 탐험가들은 모두 돌려보냈다.
기억을 지우거나 세뇌를 해서 말이다.
“혹시 나도 그렇게 할 건가?”
꽤 흥미로운 콘텐츠가 될 거 같은데.
“되겠어?”
“……응?”
“황궁비고의 환상들과 세뇌들도 모두 튕겨냈잖아.”
“황궁비고에는 그런 게 없었는데?”
“아냐, 있었어.”
“?”
“김철수 경이 그냥 튕겨냈을 뿐이지.”
“…….”
차진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비록 불로초의 위치를 알게 되었지만, 키옌 가문의 가주를 만났지만, 키옌가의 위치를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희망의 불씨는 남아 있었다.
침입자를 용납하지 않는 천혜의 미궁, ‘안개의 숲.’
수많은 탐험가와 모험가들을 실종시켜버린 위대한 자연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차진혁은 긴장감을 끌어올리기 위한 대사를 던졌다.
“키옌 가문까지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혹시 조언해 줄 것이 있나?”
여기에는 쫄깃한 BGM을 넣어달라고 해야지.
사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걸어오면 되잖아?”
“천혜의 자연 미궁. [안개의 숲]이 버티고 있잖나?”
“아무리 그래도 황궁비고보다는 낫지.”
“…….”
사라는 아무 걱정 말라는 듯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냥 동쪽으로 대충 걸으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