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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426화 (426/437)

426화

차진혁을 몰래 미행한 사람은 다름 아닌 르세핌이었다.

최근 차진혁에게 크게 자극받았던 그녀는 초심을 되찾고 열심히 플레이하여 랭킹 3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르세핌 또한 황궁비고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도적이나 개척 전문가는 아니지만 추적의 달인.

혼자서 길을 뚫는 것은 어려워도 누군가를 쫓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황궁비고의 보안은 과장이 좀 있는 편이었다.

송하영과 차진혁이 저렇게 쉽게 뚫고 가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안심했을 때가 비로소 가장 큰 위험이 닥치는 법.

‘여태껏 잘해놓고서는 왜!’

과장이 좀 심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곳은 황궁비고.

마지막까지 방심을 늦추어서는 안 될 일이다.

어쩌면 이곳은 보물을 일부러 내주어서 긴장을 풀게 한 뒤 기습할지도 모를 공간이었다.

그런데 입구를 향해 저렇게 대놓고 공격을 할 줄이야.

하책 중에서도 저런 하책이 없었다.

그녀는 아주 잠깐 고민했다.

‘내가 여기서 모습을 드러내도 되나?’

르세핌은 아르비스의 시민이었고 랭커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허락 없이 황궁비고까지 진입할 권한은 없었다.

지금 르세핌은 엄연히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중.

‘송하영이 사라진 지금 김철수를 말릴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라고 생각하던 그 짧은 찰나.

이미 차진혁은 문을 향해 미리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동안 더 빨라졌어!’

“그런 무식한 방법이 통할 리가 없잖아!!!”

그 짧았던 고민의 순간을 비웃듯 차진혁은 이미 문을 부숴 버렸다.

차진혁은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휙 돌아보았다.

마치 미행자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는 듯.

“방금 분명 목소리가 들렸는데…….”

충격을 버티지 못한 황궁비고의 문은 활짝 열린 상태.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참고로 차진혁은 이미 르세핌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추적 전문가치고는 생각보다 힘겹게 쫓아오네?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차진혁은 르세핌이 은신하고 있는 벽면의 공간을 슬쩍 훔쳐보았다.

순간 눈이 마주친 르세핌은 자신의 은신이 들켰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은신을 어떻게 이렇게 빨리 알아낸 거지?’

요 몇 달 사이 부쩍 성장한 것 같았다.

르세핌은 약간 허탈해졌다.

‘근데 저게 왜 열린 거야?’

분명히 위험한 함정이 발동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황궁비고가 이렇게 허술해도 되나?’

* * *

황궁학사 율레트는 약간 초조한 마음으로 시계를 살펴보았다.

눈치를 살피던 그는 황제 카일에게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복귀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어지간한 도적들도 이 시간쯤 지나면 경비병에게 붙들리거나 제발 살려달라며 –환상에 사로잡힌 상태-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녔는데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위험한 함정과 마주치게 됩니다. 아무리 살상력이 강한 함정들은 꺼놓았다고는 해도…….”

“5분만 더 기다려 보지.”

“이곳에서의 5분이, 저쪽에서의 5년일지도 모릅니다.”

‘낙하하는 구덩이’에 빠지면 시간의 흐름이 왜곡되어 수년의 시간 동안 낙사의 공포에 떨게 된다.

직접적인 살상력은 없어도 수많은 이들을 미치게 만드는 지독한 함정이었다.

“슬슬 황제 폐하께서 직접 구출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정도인가?”

“운이 좋아서 모든 함정들을 통과한다고 해도……. 끝에는 가디언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도록 설계된 가디언입니다. 최소 수백 년의 마나가 응집되어 있으니 한두 사람의 몸으로는 절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가디언들은 결코 침입자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황제 폐하뿐이십니다.”

그때, 카일의 손목에 걸려 있던 금실의 색깔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황궁비고의 입구가 열렸네.”

“……예?”

황궁비고에 직접 진입할 수 있는 사람은 황제 한 명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마저도 몇몇 절차와 관리들의 인장이 필요했다.

미리 준비를 끝마쳤던 카일은 곧장 황궁비고로 향했고, 입구 앞에 서 있는 차진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도착했군.”

“운이 좋았…… 아니, 운이 좋았습니다, 황제 폐하.”

“가디언을 보지 못했나?”

“봤습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들이 저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습니다. 이유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렇군.”

보면 볼수록 신기한 사람이었다.

가디언마저 뚫고 결국 입구를 열다니.

“송하영은?”

“잘 모르겠습니다. 안에 잠입한 것 같습니다. 비명이 들려서 얼른 들어가 보려던 참입니다.”

“그렇군.”

황궁학사 율레트가 보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일이었다.

두 명이 황궁비고를 뚫은 거니까.

“내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지. 안쪽에서 모든 결계와 함정들의 가동을 잠시 멈출 수 있네. 그러면 자네도, 천사소녀도 안전할 수 있을 거야.”

“……그렇습니까?”

안전해진다는 말에 차진혁은 왠지 모르게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 * *

율레트를 필두로 하여 공개식에 참여한 VIP들이 황궁비고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율레트는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으나 겉으로는 침착하게 말했다.

“역시 뚫어내는 데 성공했군. 그럴 줄 알았네.”

몇십 분 전만 해도 ‘절대 뚫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그의 태세전환은 무척이나 신속하고 정확했다.

“학사님께서는 예상하셨던 겁니까?”

“물론.”

율레트는 빙그레 미소지었다.

“황제 폐하의 뜻에 따라 옛 시대의 잔재는 청산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네. 신생서버의 떠오르는 신성인 김철수 경, 그대가 그 역할을 맡아주었으면 했고.”

신성인 김철수가 옛것을 부수고 결국 새로운 시대로 나아간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행사라고 얘기했다.

“과연. 그런 뜻이 있었군요.”

그 말에 VIP들이 짝짝 박수 쳤다.

이번 공개식의 취지와 정말 잘 어우러지는 이벤트였던 것이다.

차진혁도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당황 #당혹 #이게 왜 뚫린 거지?]

저 속마음은 보지 않기로 했다.

계속 보고 있노라면 티 날 것 같아 얼른 카일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정말로 제게 선물을 주실 겁니까?”

“물론이지.”

카일은 빙그레 웃었다.

그는 지금 굉장히 만족스러운 상태였다.

‘과연 황궁학사답군.’

황제마저도 속이고 진짜로 위기감을 연출할 줄이야.

아주 좋은 타이밍에 김철수에 도착할 수 있도록 시간 계산까지 완벽하게 해주었다.

율레트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무엇이든. 자네가 원하는 것을 하나 내어주도록 하지.”

“일전에 말씀드렸던 [옛 시대의 검]을 원합니다.”

“그게 [옛 시대의 검]인지는 모르겠지만, 안내는 해주지. 이 안에서도 길을 잃을 수 있으니 나를 따라오게.”

황궁비고는 살아 숨 쉬는 공간.

몇 걸음 걷자 광활한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카일의 몸이 반 이상 잠기자 VIP들은 ‘괜찮은 거 맞나?’ 싶어 걱정했지만 이내 카일의 몸이 번쩍! 빛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차진혁을 비롯한 VIP들도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순식간에 몸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바다를 횡단했다.

커다란 해골 하나가 둥둥 떠 있는 섬에 도착했다.

“스웨딘의 황제, 카일이다. 길을 열어라.”

그러자 해골이 더욱 커지는가 싶더니 입을 크게 벌렸다.

입 안쪽으로 동굴 같은 통로가 펼쳐져 있었고 입구에 보라색 마법진이 빙빙 돌고 있었다.

“이 안쪽에 그대가 찾는 것이 있는 것 같더군.”

해골의 입안으로 걸어가는 와중, 카일은 묘하게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본래는 압박감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황제라고 해도 이 위대한 공간이 주는 압박감이 있었다.

가끔은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압박감.

네가 아무리 황제라도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 들여보내 주지 않겠다라는 의지마저 엿보이는 그 압박감이 있었건만, 지금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왜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김철수랑 같이 있어서?’

에이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건 아니겠지.

주변의 기운을 없애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한참을 걷자 커다란 바위가 하나 모습을 드러냈다.

얼핏 보면 절벽처럼 보일 만큼 거대한 바위.

“이 바위 꼭대기에 그대가 말한 검이 꽂혀 있지.”

이 바위는 특별한 바위였다.

바위를 향해 부딪칠 듯 걸어가야 꼭대기에 닿을 수 있는 바위.

“먼저 시범을 보여주지.”

카일도 여러 차례 시도 끝에 성공한 것이었다.

황궁의 비고는 황제에게도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중간에 몇 차례나 떨어져서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었다.

“확실한 건 아니나 굳건한 정신을 가졌을수록 쉽게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네.”

카일은 바위를 향해 걸었다.

그의 몸이 바위에 부딪혔다.

이 공간에 익숙해진 만큼 그는 뒤따라올 차진혁을 신경 썼다.

‘김철수가 창피를 당하지 않도록 잘 이끌어야 한다.’

한편, 바깥의 차진혁은 꽤 설레기 시작했다.

‘오, 신기하다.’

밖에서 보았을 때에는 바위 안으로 파고드는 것처럼 보였다.

저 단단한 바위가 마치 물이 된 것 같았다.

“마치 물속을 걷고 있는 것 같군요.”

저렇게 걷다 보면 언젠가 꼭대기에 도달한다는 것이겠지.

저런 신비한 경험은 흔치 않은 법.

차진혁이 침을 꼴깍 삼키고 걷기 시작했다.

바위가 점점 크게 다가왔다.

‘안을 향해 걷는다!’

부딪친다는 압박감 같은 건 없었다.

이 1인칭 영상이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전달될까, 꽤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 신났을 뿐.

‘부딪친다.’

카일 또한 차진혁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좋아. 어서 와라, 김철수.’

순간, 휘익- 무언가가 지나갔다.

‘뭐지?’

너무 찰나여서 제대로 느낄 새조차 없었다.

조금 이상한 일이기는 했지만 모든 감각이 왜곡되고 있는 공간이니만큼 그렇게까지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왜 김철수는 오지 않지?’

혹시 벌써 실패한 건가?

VIP들 앞에서 수치를 주고 싶지는 않은데…… 라고 생각할 무렵, 그는 바위 꼭대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파란 하늘의 풍광.

밑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상쾌한 공기.

그리고,

‘김철수?’

김철수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 * *

차진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상부로 올라오는 루트가 여러 가지가 있나 보군요.”

“……그런 것 같군.”

정말 그런가?

여기에 여러 번 와본 카일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저기. 검이 꽂혀 있다.”

“정말 제가 가져도 됩니까? 황,제,폐,하?”

약간의 시련 같은 건 없나요? 이제 와서 마음이 바뀌었다거나?

우주급 시나리오가 이렇게 스무스 하게 진행이 되면 좀 그렇지 않나?

라는 눈빛을 보내봤지만 카일은 눈치가 별로 없었다.

“물론. 약속은 지켜야지.”

“……감,사,합,니,다.”

차진혁은 검 앞에 섰다.

“나는 그 검을 뽑지 못했네.”

“제가 한 번 뽑아보겠습니다.”

슬쩍 검 손잡이를 쥐어보니 느낌이 왔다.

‘이건 안 뽑히겠다.’

솔직히 말해서 느낌이 왔다기보다는 그걸 원했다.

그래야 더 그림이 살 것 같았다.

‘어?’

진짜 뽑히지 않았다.

있는 힘껏 힘을 줘봤지만 검은 요지부동이었다.

“검이 뽑히지 않습니다!”

“……그래. 그래 보이는군.”

카일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지만 어떻게 도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같이 뽑아보겠나?”

“좋습니다.”

차진혁은 어쩐지 약간 기쁜 모양새였다.

검을 사이에 두고 카일과 마주 보고 섰다.

“하나, 둘, 셋!”

영차!

힘을 내보았지만 검은 뽑히지 않았다.

어쩐지 차진혁은 약간 기뻐 보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시련을 마주한 엘튜버답게 다른 해법을 보여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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