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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425화 (425/437)

425화

차진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동안 엄청난 보강작업을 했나 보다.’

하긴. 이렇게 거창하게 공개식을 준비했는데 보강작업을 하지 않았을 리 없지.

황궁비고에 어마어마한 인력과 예산을 갈아 넣어 완벽한 요새를 만들었겠지.

차진혁은 다소 비장한 표정으로 결연히 말했다.

“실패를 두려워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

그 진중한 모습에 황궁학사 율레트는 조금 감동받았다.

‘저 정도 위치에 오르면 몸을 사리게 마련이건만…….’

저것이 젊음과 패기라는 것인가.

나도 저런 때가 있었나.

율레트는 괜스레 차진혁이 부러워졌지만 크게 내색하지는 않고 길을 터주었다.

한편, 차진혁과 함께 황궁 비고로 향하는 길에 침투하게 된 송하영은 침을 꼴깍 삼켰다.

‘반드시 확인해야 해.’

지난 세 달, 그녀는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이 어느 정도 생긴 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털기 어렵다는, 입구까지 도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황궁비고에 이미 여러 차례 도달했었으니까.

이 정도면 세상에 털지 못할 곳이 거의 없으리라는 자부심에 가득 찬 상태였다.

그러나 그 자부심이 며칠 전 와장창 깨졌다.

[황궁비고 탐사대를 모십니다]

발단은 황궁학사 율레트로부터 온 서신이었다.

전 우주의 도적들을 초빙하여 황궁비고로 가는 길을 뚫어보라는 얘기였다.

공개식을 앞둔 사전 테스트 같은 거였다.

솔직히 송하영은 자신 있었다.

아무리 시시각각 길이 바뀌는 곳이라고는 해도 최근 연거푸 입구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었으니까!

이번에야말로 전 우주적으로 명성을 떨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왜 안 되는 건데!’

차진혁과 함께 들어왔을 때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그녀는 몇 번이나 길을 잃고 경비병들에게 붙잡혔다.

한 번은 환상에 잠식되어 스스로 손을 결박하고 경비병에게 자수하기도 했다.

도적계열 우주랭커들도 송하영과 상황이 딱히 다르지 않았다.

“황궁비고…….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어마어마하군.”

“그러게나 말이야. 살상 결계까지 가동되고 있었다면 세 번은 죽었겠어.”

“나는 여기서 포기.”

송하영도 몇 차례 더 도전했으나 결국 입구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이 왔다.

‘확인해야 해.’

황궁비고 입구까지 뚫을 수 있었던 게 그냥 행운인지, 내 실력인지, 아니면 차진혁 덕분인지.

* * *

지난 세 달.

차진혁의 ‘그만 강해지고 싶다’라는 소박한 소망과는 별개로 레벨은 벌써 550을 돌파했다.

사실 500을 돌파하면서부터 레벨 상승 속도가 많이 느려진 건 일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안락한 현실(?)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구와 5개지옥 서버 플레이어들의 수준과 실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면서 경험치 쌓이는 속도가 또 빨라졌기 때문이었다.

차진혁의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도 많아졌지만 경험치 셔틀의 능력도 일취월장해 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스칸노르비아 서버에서도 ‘제발 우리의 주인이 되어주십시오’라고 간절히 요청하는 바람에 스칸노르비아 서버도 접수해 버린 상황.

조금 느려지는가 싶었던 레벨업 속도는 다시 빨라져 버리고 말았다.

몇몇 미공략 던전에 솔로잉도 도전해보고 미궁에도 들어가 봤지만 생각보다 너무 쉬웠다.

때문에 최근에는 ‘요즘 김철수 방송 좀 밋밋하지 않음?’이라든가 ‘그냥 시원하게 밀어버리는 맛으로 보기는 하는데…….’ 등의 반응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번 황궁비고 공개식은 가뭄에 단비 같은 콘텐츠였다.

“출발할게.”

“그래.”

송하영이 앞장서서 캄캄한 어둠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차진혁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김철수 긴장하는 게 느껴진다 ㅋㅋ

-이거지, 김철수 방송은 이 쫄리는 맛으로 보는 거지 ㅋㅋㅋㅋ

-이게 근본이지

차진혁의 감정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가운데 시청자들도 굉장히 설레했다.

송하영이 몇 발자국 더 옮기다가 멈췄다.

“이상해.”

“뭐가?”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이곳은 그야말로 무규칙과 혼돈의 세계거든. 앞으로 가는 것 같은데 뒤로 가고, 그냥 걷고 있는데 하늘로 솟구치고 있고. 방향감각이 완전히 상실되고 시야도 가려지는 곳이야.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세계지.”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해.”

송하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물론 아직까지 제대로 된 함정이 발동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이동해 볼게.”

어둠이 다가와 송하영과 차진혁의 몸을 덮기 시작했다.

“이 어둠안개에도 속성이 굉장히 다양해. 어떨 때에는 몸을 마비시킬 정도의 벼락속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사람을 현혹시키는 현혹속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더라고.”

차진혁은 자신의 몸을 덮은 어둠을 슬쩍 만져보았다.

어둠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럼 이건 속성이 없는 건가?”

“아니?”

송하영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혹한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안개가 틀림없어.”

“혹한?”

“저 멀리. 이 어둠안개가 생성된 태초의 지점은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거든. 그 주변은 완전히 얼어버렸어.”

“…….”

차진혁은 슬슬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혹한의 설정을 지닌 안개인데 왜 여기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짐작 가는 부분은 있지만 조금만 더 가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구덩이로 떨어져 내렸다.

깊이는 그리 깊지 않았다.

대략 10미터가량.

일반인들에게는 아주 위험한 높이였지만 차진혁과 송하영에게는 별다른 위협이 되지는 못했다.

‘몸개그라도 해야 하나?’

미끄러지면서 넘어질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건 너무 억지스러울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보통 이렇게 10미터 정도로 끝나지 않거든. 체감상 수십 년을 떨어져 내린 기억도 있어. 아마도 시간 왜곡 마법이 걸려 있었겠지. 이대로 떨어져 죽을 거라는 공포를 수십 년 동안 느꼈는데…….”

송하영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건 정말 끔찍했었다.

보통의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미쳐 버렸을 것이다.

솔직히 송하영도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런 마법은 적용되지 않았어.”

송하영은 눈을 감았다가 번쩍 떴다.

“알겠다!!!”

그녀는 새로운 발견에 무척 흥분한 상태였다.

마치 유레카를 외쳤던 아르키메데스처럼 눈을 번쩍 뜨고서 말을 이었다.

“역시 너 때문이었어.”

“……음?”

차진혁은 왠지 모르게 조금 긴장했다.

그만 강해지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 자꾸 도망가 버리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네가 있어서 이 모든 마법들이 무효화되고 있는 거야.”

“네가 잘못 생각했겠지.”

“아니. 맞아. 네가 이 모든 것들을 해금하고 있어.”

차진혁이 진지한 표정으로 정정해주었다.

“나는 해금술을 쓰지 않았어.”

“알아. 그러니까 대단한 거지!”

송하영은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본래대로라면 이렇게 수다를 떨 여유도 없어. 시시때때로 새로운 함정들이 몰려드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영향도 없지. 이건 너 때문이야. 너의 존재가 이 공간을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아. 그렇다면 내가 VIP로 초대받아서 그런 것 같군.”

VIP를 다치게 할 수는 없으니 황궁 측에서 난이도를 조절했겠지.

“아니? 여기는 살아 있는 공간 같은 곳이어서 인위적으로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은 불가능해. 아예 꺼버리면 모를까. 살상력이 지나치게 강한 함정들을 꺼버리는 것 정도만 가능해.”

“…….”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네가 엘튜버라서 그런 것 같아.”

엘튜버라서 그렇다고?

약간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차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너무 억측인 것 같다. 이건 그냥 네가 대단한 거지.”

* * *

송하영과 차진혁은 거대한 석문 앞에 도착했다.

각 문에 하나씩.

두 개의 검집이 양각으로 새겨진 돌문이었다.

“결국 입구에 도착했네!”

“여기가 비고 입구가 맞는 건가?”

“맞을 거야. 문에서 느껴지는 기세가 심상치 않거든.”

송하영이 석문에 손을 대자 돌문에 새겨진 검에서 황금빛 기운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양각으로 조각된 검집 앞에 황금빛 구체가 생성되는가 싶더니 윙윙대며 회전했다.

“저길 봐봐. 구체 안에 사람의 형상이 있어.”

허공에 생성된 구체는 두 개.

각 구체 안에는 사람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감싼 채 태아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이내 두 개의 구체가 땅을 향해 천천히 하강했다.

양각으로 새겨져 있던 두 개의 검집은 사라져 버려 밋밋한 돌문으로 바뀌어 있었다.

“침입자는.”

“죽인다.”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과 소녀였다.

‘쌍둥이?’

머리카락 길이의 차이가 있을 뿐 두 사람은 똑같았다.

송하영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검의 제국 스웨딘의 비고야. 아마도 최후를 지키는 안배들이니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될 것 같아.”

너무 들떠서 실수한 느낌이었다.

‘몰래 잠입해야 하는데…….’

가디언들을 깨워 버리고 말았다.

최후의 안배이니만큼 여태껏 경험해 왔던 함정들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끔찍하겠지.

두 사람은 그야말로 잘 벼려진 명검 같은 기세를 내뿜었다.

날카롭고 예리한 기세가 피부를 난도질하는 기분이었다.

“그럼 잘 부탁해.”

“…….”

송하영은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도둑의 본질은 몰래 잠입해서 물건을 훔치는 것.

가디언은 차진혁에게 맡겨놓고 사라져 버렸다.

‘오히려 좋아.’

차진혁은 저 두 명과 겨룰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가웠다.

심장이 콩닥거렸다.

“정말 강해 보이는군요.”

미리를 꺼내 들고서 자세를 취하자,

“기다렸습니다.”

“옛 주인이시여.”

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내가 왜 너희들의 주인이지?”

“그새 더 강해지셨군요.”

“그새 더 강해지셨군요.”

차진혁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사람이라기보다는 프로그래밍 된 NPC와 비슷했다.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의 잔향 같은 것.

“나는 너희들의 주인이 아니다.”

“저희는 알 수 있습니다.”

“그 우주와도 같은 영혼의 그릇은 분명히 저희의 주인이십니다.”

차진혁은 약간 힘이 빠졌다.

“싸워야 할 텐데? 너희들의 임무는 비고를 지키는 것.”

“저희들의 임무는 비고를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나타날 주인을 위하여 저희를 예비하는 것.”

둘은 차진혁의 말을 들을 생각이 별로 없어 보였다.

“저희를 받아주소서.”

“저희를 받아주소서.”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몸이 빛으로 화했다.

여전히 허공에 떠 있는 황금빛 구체를 향해 돌아갔고, 이내 팟! 빛이 터져 나왔다.

차진혁 앞에는 은은하게 빛나는 검집이 하나 놓여 있었다.

“……검집을 획득했습니다.”

약간 기운이 빠지기는 했지만 그것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프로 방송인답게 검집을 집어 든 뒤 침착하게 방송을 이어갔다.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분명 쓸모가 있을 것 같군요.”

그런데 그때, 으아아악! 비명이 들려왔다.

먼저 잠입한 송하영의 비명이었다.

고개를 번쩍 뜬 차진혁이 문을 향해 달렸다.

산사태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굳건한 기상이 느껴지는 거대한 석문.

“돌파해 보겠습니다.”

차진혁이 석문을 향해 미리를 휘둘렀다.

콰앙!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무식한 방법이 통할 리가 없잖아!!!”

와르르. 석문이 무너져 내렸다.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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