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423화
봉킹은 그의 파트너인 강미나와 함께 방송을 이끌어 나갔다.
“아마 첫 등장의 환호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할 겁니다, 형님들.”
와아아아!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 ㅋㅋㅋ 소리 미쳤네 ㅋㅋ
-봉킹 함성 소리는 ㅈ밥이었다고 한다.
-클라스 차이 지림 ㅋㅋ
봉킹은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첫 시작의 함성은 당연히 이럴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상대는 실시간 방송만 수십억 명이 챙겨보는 우주 거물급 엘튜버였다.
“하지만 이건 방송이 아니라 연설입니다.”
이 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되었고 일종의 축제이기도 했다.
정치적 연설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와 관련이 없는 만담을 늘어놓는 만담꾼들도 있었다.
가수들은 노래를 하고 춤꾼들은 춤을 췄다.
이 모든 순서가 지난 후 각자의 영역에서 시상을 진행했다.
‘오늘 [최고의 연설가 상]은 내가 받겠지!’
무대 앞편에서 김철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또다시 쏟아지는 엄청난 환호성.
거짓말 조금 보태서 땅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김철수가 말을 한마디 할 때마다 태양이 터지는 것 같았다.
무대 뒤편에 있어도 현장의 열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뭐랄까, 말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고, 그냥 숨을 내쉬는 것만으로도 열광하는 느낌이랄까.
김철수가 한 말이라고는 간단한 인사와 ‘오늘 이 자리에’가 끝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리고 이어진 ‘감사합니다’가 연설의 끝이었다.
연설이라고 볼 수도 없는 내용.
왜 올라갔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허무한 내용이었다.
와아아아아!!!
수많은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왜 안 끊어지지?’
자신이 웅장한 연설을 마치고 내려왔을 때보다 훨씬 거대하고 오래 지속되는 함성이었다.
* * *
차진혁이 정치적 발언을 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던 건 아니었다.
많은 철수랜드들에게 자신이 무사하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이번에 스킵하여 넘어가게 된 (18)번 우주급 시나리오에 대해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가수가 노래하고, 만담꾼이 농담을 건네고, 엘튜버가 방송과 관련된 얘기를 하는 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어……?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닌가?’
수많은 이들이 서로를 얼싸안고 눈물을 터뜨리고 있었다.
거기까지만 했어도 괜찮았을 텐데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과호흡이 온 몇몇이 병원에 실려 간 게 시작이었다.
“오늘…….”
열기가 너무 뜨거워서 도무지 연설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너무 많은 철수랜드들이 혼절하는 바람에 상황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차진혁은 더 이상의 연설을 이어갈 수 없어 끝낼 수밖에 없었다.
저번에도 수많은 철수랜드들이 고통에 시달렸는데, 이번에도 사고를 일으킬 수는 없었으니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또다시 와아아아!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철수의 연설은 수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저 표정 봐.
-우수에 가득 찬 눈빛에 내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다.
└난 이미 흐물흐물해졌음
└난 오늘부터 액괴다
마치 마음속에 만 가지의 말을 품고 있으나 결국 하지 못한 비운의 영웅 같은 모양새였다.
해당 영상은 쇼츠영상으로 제작되어 전 우주에 퍼져 나갔다.
제목은 다양했다.
[SSS급 미남자의 초대박 역대급 연설]
[우주 랭커급 엘튜버의 충격적인 연설]
[아르비스가 놀라 뒤집히고 지옥이 고개를 조아리는 지구 출신 엘튜버의 초초역대급 연설]
[김철수 연설]
기타 등등, 정말 많은 버전의 영상이 제작되어 퍼져 나갔으나 키워드를 조합해 보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봉킹은 눈을 질끈 감았다.
“더러운 세상!”
김철수는 단 몇 마디로 그날의 ‘최고의 연설가 상’을 수여 받았다.
가슴 속에 응어리진 말을 결국 내뱉지 못했던 그의 침묵이야말로 최고의 연설이었다나 뭐라나.
“그냥 잘생겨서 그런 거잖아!”
봉킹은 연설로도 김철수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우울했었으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현실에 절망하기만 해서는 발전이 없는 법.
그는 나름대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김철수와 자신의 연설을 비교해 보았다.
1. 수많은 대중들에게 압도적 지지를 받았는가?
김철수 (O)/ 봉킹 (△)
2. 대중들에게 확실한 영향을 끼쳤는가?
김철수 (O)/봉킹(O)(△)
만약 비슷한 영향을 끼쳤다면, 조금 더 짧은 연설을 한 사람이 더 고수라고 할 수 있었다.
3. 연설 시간은 짧았는가?
김철수(O)/봉킹(X)
4. 전 우주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김철수(O)/봉킹(X)
봉킹은 펜을 집어 던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완벽한 패배였다.
안녕하세요. 오늘. 감사합니다.
거의 한 문장이나 다름없는 저 짧은 연설에 패배할 줄은 몰랐지만.
연설로도 김철수를 넘을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였다.
‘연설 말고 뭘로 이기지……?’
봉킹은 진지한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 *
“형님. 연설 실력도 엄청나십니다.”
“농담이지?”
사실 차진혁도 자신의 연설이 이렇게 ‘심금을 울리는 대영웅의 연설’이 될 줄은 몰랐다.
철수랜드들이 또 크게 다치거나 위험해질 것 같아서 중단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할 말을 제대로 못 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아주 큰 상태.
이 상황에서 봉킹의 말은 반쯤 자신을 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절대 농담이 아닙니다. 연설 분야마저 강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과연 한국맵 1위다웠습니다.”
차진혁에게 진 것은 쓰라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만큼 속 좁은 남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 경험을 토대로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훨씬 더 큰 사람이었다.
“안 강해.”
“아닙니다. 형님은 강하십니다!”
“…….”
차진혁이 노려보자 봉킹은 움찔 놀랐다.
‘왜 저러시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떤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고 만 것 같았다.
‘감히 내가 1위를 넘봐서 그런 건가?’
하지만 그 정도 포부와 야심 정도는 용납해 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었는데?
봉킹은 차진혁에게 미움 받고 싶지 않았다.
‘내가 뭘 실수했지?’
혹시 한국맵 1위라고 해서 빈정이 상하신 건가?
“아, 제가 실수했군요.”
1등더러 2등이라고 하면 기분이 무척 나쁘다는 사실을, 봉킹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봉킹은 후후 웃었다.
“제가 말실수를 좀 했습니다. 우주에서 제일 강하시죠.”
* * *
차진혁은 녹화를 시작했다.
그만 강해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과는 별개였다.
“본래는 무대에서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조금 아쉽게 됐습니다. 저번에 공개는 안 했는데 우주급 시나리오가 해금되었거든요. 직전 시나리오가 12번이었는데 몇 번이 열렸을까요?”
일부러 시간을 조금 끌어서 편집점을 잡아준 뒤 말을 이었다.
“18번 시나리오가 열렸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좀 아쉬운 부분이네요.”
시간이 지날수록 시나리오의 내용과 스케일에 비해서 보상이 턱없이 부족해지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어느 한 퀘스트에 큰 보상이 몰려 있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예를 들어 ‘(12), (13), (14)에서 보잘것없는 보상을 주지만 결국 이 모든 건 (15)의 확실한 보상을 위한 디딤돌이었다!’와 같은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는 것.
“13부터 17까지의 보상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겠죠.”
일단 18번 퀘스트의 내용을 공개했다.
───────
(18) 옛 시대의 망령은 순리대로 사라졌고,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리.
───────
그나마 다행인 건 밑줄이 있어서 좀 더 자세한 내용을 풀어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이게 끝이었더라면 너무 싱겁다고 욕먹었을지도 모를 일.
───────
-스웨딘 황궁 비고에 잠든 옛 시대의 검을 찾으라
-옛 시대의 검을 뽑는 자에게 무궁한 영광이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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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다시피 퀘스트 클리어 요건이 이렇게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요?”
보통 이렇게 친절하게 퀘스트 클리어 요건을 알려주는 경우는 난이도 자체가 매우 높은 경우였다.
차진혁이 씨익 웃었다.
드디어 이 우주급 시나리오가 자신을 도와주는 듯했다.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 같군요.”
스웨딘의 황궁 비고라니!
제국이 건립된 이래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비밀의 공간이었다.
회귀 전 차진혁을 그렇게 괴롭혔던 천사소녀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던 금단의 성역.
오죽하면 황제조차도 비고에 자유로이 드나들 수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너무 강해진 것 같아 고민이 많던 찰나에 좋은 콘텐츠 소재였다.
“수많은 가능성들을 열어두고 진행해 보겠습니다.”
언젠가 적절한 타이밍에 이 녹화본을 공개할 생각에 싱글벙글 웃었다.
‘이번에야말로 많이 어렵겠지?’
* * *
새로이 스웨딘의 황제가 된 델리악크는 기자회견을 열어 순순히 하야를 인정했다.
제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끔찍한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비극!
-황가의 비참한 몰락!
황궁 안에 머물던 모든 황가의 직계가족들이 독살당했다.
누구의 소행인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사실상 델리악크가 가장 유력했다.
그들 모두가 백사왕의 독에 당했기 때문이었다.
현시점에서 백사왕의 독에 접근 가능한 사람은 델리악크밖에 없었고, 따라서 델리악크가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리라 짐작되었다.
다만, 이 사달을 일으킨 델리악크는 행방이 묘연해졌다.
제국이 통째로 흔들렸으나 다행히 제국에는 황제보다도 더 존경받는 검의 현인 그리들이 있었다.
그와 피사트 가문이 건재하기에 스웨딘 제국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를 구심점으로 하여 수많은 이들이 뜻을 모았다.
“나는 이미 너무 늙었소. 황제와 같은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도 아니지.”
검의 현인 그리들은 황제의 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그리들은 다른 사람을 지목했다.
“검황대장 카일이 제격이지 않겠소?”
김철수의 방송으로 인해 카일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는 하늘을 찌르고 있는 상태.
그가 보여준 희생정신과 검객으로서의 훌륭한 모습은 스웨딘 제국민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결국 제국민들의 뜻에 따라야겠지만. 나는 투표를 제안하는 바요.”
……라는 의견은 결국 받아들여졌고 순식간에 투표가 진행되었다.
여러 쟁쟁한 후보들이 나타났지만 결국 검황대장 카일이 새로운 황제로 선출되었다.
사실은 황제가 아니라 총리로 불러야 한다 어쩐다 이야기가 오가기는 했지만, 혼선을 방지하고자 황제로 부르기로 합의했다.
이 모든 것들이 불과 세 달 만에 벌어진 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