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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418화 (418/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418화

가르비누 시대는 현대보다 신비가 훨씬 익숙한 시대였다.

스킬과 특성보다 오히려 신비 의존도가 높았고 신비에 대한 연구가 훨씬 더 활발했다.

‘흘리는 바람이라고?’

‘흘리는 바람’은 아주 흔하고 효과가 약한 신비였다.

가르비누는 얼른 정신을 차렸다.

저건 틀림없이 거짓이었다.

‘놈의 진짜 신비를 알아내야 한다.’

약간의 힘을 소모하더라도 말이다.

“악령의 군주가 질문한다.”

진실을 부르는 언령을 사용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언령의 기운이 상대를 포박하여 진실만을 토해내게 만드는 가르비누의 고위급 언령.

단점이 있다면 상대가 ‘예’ 혹은 ‘아니오’로만 대답한다는 것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거면 충분했다.

“네 회피신비가 [흘리는 바람]이 맞느냐?”

“맞다니까.”

가르비누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 혹은 아니오로 대답이 나와야 하는데 영 이상한 형식으로 표현되었으니까.

‘언령은 정확히 작동했다.’

아마 시대가 바뀌면서 언령에 대처하는 새로운 방식이 등장한 것 같았다.

표현 형태는 달라졌지만 어쨌든 ‘흘리는 바람’이 맞다는 건 확인했다.

‘회피 신비가 겨우 흘리는 바람 수준이라면…… 데이몬의 행운 부르기 정도로는 어림 없지.’

각인 신비보다 더 상위 등급의 신비.

최소 ‘행운의 신’ 정도는 되어야 신비를 결합했을 때 저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 터.

“그렇다면 네가 가진 행운 신비는 [행운의 신]이겠지.”

모든 신비를 통틀어서 [ㅇㅇ의 신]은 해당 계열의 최상위 신비였다.

이를 일컬어 초월신비라고 불렀다.

차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행운의 신을 가지고 있다.”

“역시.”

가르비누가 씨익 웃었다.

“흘리는 바람과 행운의 신의 조합이라.”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조합이었다.

흔해 빠진 보편신비와 초월신비의 결합이라니.

저렇게 격 차이가 많이 나는 신비를 결합했다면 분명 이음새가 매끄럽지 못할 터.

그 부분을 공략하면 삐걱거릴 것이다.

그다음 저 몸을 차지하면 될 터.

‘시간이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차진혁이 먼저 말했다.

“잠깐.”

“뭐지?”

“나는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았다.”

“?”

“신비. 안 썼다니까?”

차진혁은 차진혁 나름대로 급박했다.

‘너무 헛다리 짚었는데?’

왜 저러는지는 알 것 같았다.

이쪽의 약점을 공략하려는 속셈인 것 같기는 한데, 그럴 거면 약점을 제대로 공략해 줘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끝판왕급 이미지를 가진 가르비누가 등장했는데 너무 시시하게 흘러가면 시청자들이 크게 실망할 것이 분명했다.

적절한 상대에게는 적절한 위기감과 긴장감이 있어야 하는 법.

하지만 가르비누는 차진혁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 안 썼겠지.”

차진혁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보니까 또 내 몸을 차지하겠답시고 덤벼들 거 같은데…….’

그런 의미없는 행동으로 분량을 채울 수는 없었다.

차진혁은 힐끗 옆을 바라보았다.

공손히 서있는 포식의 드라건을 향해 말했다.

“차라리 네가 가르비누를 포식해 보는 건?”

“충분히 해볼 수 있습니다만…… 그게 가르비누가 원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 비열한 놈의 목표는 아마도 4명의 군주를 모두 잡아먹는 것이겠죠.”

지금 카디바의 육체를 차지한 사람이 결국 가르비누라는 사실이 그걸 증명했다.

“오히려 제 몸이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그럼 가르비누의 힘을 좀 약화시키면?”

“그러면 시도해 봄 직합니다.”

드라건의 입가에서 침이 뚝뚝 흘러내렸다.

3명의 군주를 잡아먹은 가르비누를 또 잡아먹는다?

너무나 황홀할 것 같았다.

“좋네.”

방송제목을 수정했다.

[가르비누 먹기]

한때 우주에서 제일 섹시한 마왕이라 불렸던 가르비누를 포식해 보기로 했다.

* * *

거대한 두꺼비 형상의 악마 카디바.

카디바의 배를 뚫고서 잘생긴 미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 하얗고 오똑한 코.

매끄러운 턱선과 조각 같은 몸.

미남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을 갖춘 그자는 마치 어느 조각의 신이 정성 들여 창조해 낸 피조물 같았다.

“각오해라, 김철수.”

그는 천천히 걸어와 차진혁 앞에 섰다.

그의 오른손에는 검은색 마력으로 이루어진 채찍이 들려 있었다.

그가 채찍을 휘두르자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여 차진혁을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방어신비, 환상검희.”

환상검희가 나타나 망치를 휘둘렀다.

마치 타자가 투수의 공을 쳐내듯 채찍을 쳐냈다.

망치에 얻어맞은 채찍이 기묘한 각도로 휘어지는가 싶더니 환상검희의 온 몸을 꽁꽁 묶어버렸다.

“공격계 환상검희라. 제법 잘 성장한 신비군.”

가르비누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와 동시에 환상검희의 몸을 결박한 채찍이 환상검희의 피부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환상검희는 괴로운듯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김철수. 너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3개의 신비를 조합하여 사용하려고 들다니.

그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3개부터는 그 효율이 지나치게 떨어지니까.

오히려 조합하지 않느니만 못했다.

심지어 본래 조합하던 신비가 ‘흘리는 바람’과 ‘행운의 신’처럼 격차가 큰 신비라면 더더욱 그랬다.

무리한 신비남용으로 인하여 신비끼리의 결합이 약해지고, 분명 부작용이 발생할 터.

“전혀. 나는 실수하지 않았다.”

“그렇게 주장하고 싶겠지.”

두더지우먼을 보며 깨달았다.

미인계는 시청자들을 끌어모으는 데에도 아주 유용한 전략.

환상검희는 미인계를 사용하기에 아주 적절한 신비였고, 채찍으로 결박된 환상검희는 묘하게 퇴폐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실제로 시청자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고.

‘……아, 실수인가.’

생각해 보니 저 채찍에 직접 당했더라면?

그래서 운 좋게 옷이 찢어지고 어쩔 수 없이 노출이 좀 된다면?

그러면 어그로가 잘 끌릴 것 같은데.

차진혁은 이를 악물었다.

“환상검희. 돌아가라.”

환상검희를 역소환 시킨 뒤 가르비누를 향해 달려들었다.

채찍이 날아들 것을 기대하면서.

‘자. 내 몸을 결박해라!’

그러나 가르비누는 오랜 경험과 노하우로 표현하기 어려운 위기감을 느낀 상태였다.

‘저렇게 대놓고 무방비하게 들어온다?’

이건 함정일 확률이 높았다.

채찍을 휘두르는 대신, 검은색 구체 수십 개를 쏘아냈다.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오염의 기운이 농축된 구체였다.

차진혁은 일단 아쉬운 대로 구체를 맞아보기로 했다.

숫자가 워낙 많아서 얼추 피하는 척하다가 맞으면 꽤 그럴듯할 것 같았다.

‘믿는다, 오염된 사제복!’

아주 쉽게 망가지는 특수 능력을 가진 이 방어구를 믿어보기로 했다.

찢어져다오!

‘젠장!’

하지만 방어구는 차진혁의 믿음을 배신했다.

오염구가 차진혁의 몸에 닿는 순간 차진혁의 몸 속으로 흡수되어버린 것이다.

“하하하하!”

가르비누는 크게 웃었다.

오염구를 빨아들이다니.

저건 최악의 수였다.

이제 영혼 깊은데서부터 놈은 오염에 잠식될 것이 분명했다.

생기를 잃고 시들시들 메말라가겠지.

“미리. 부탁한다.”

차진혁이 미리를 휘둘렀다.

미리로부터 황금빛 빛줄기가 뿜어져 나와 가르비누의 가슴팍을 향해 쏘아졌다.

[특성, ‘집요하고 끈적한 욕망’을 사용합니다.]

가르비누는 피식 웃으며 팔을 X자로 교차했다.

아주 쉽게 막을 수 있는 각도의 공격.

사각을 점하지 않고 이토록 정직하게 날아드는 공격은 파괴력과 상관없이 막기 아주 수월했다.

‘아니?’

순간, 모든 물리법칙을 무시할 만큼 기묘한 각도로 빛줄기가 꺾였다.

두 갈래로 갈라진 빛줄기가 가르비누의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가르비누는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작은 건 내준다.’

결국 중요한 건 차진혁의 몸을 차지하는 것.

두 개의 결합된 신비 사이의 틈을 찾아 비집고 들어가서 신비를 파괴하고, 결국 차진혁을 먹어치워야 했다.

그게 가르비누의 목표였다.

* * *

포식의 드라건은 가르비누가 쏘아낸 오염구가 차진혁에게 소용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경험했던 것은 순수한 오염 그 자체.

오염은 더 심오한 오염에 잡아먹힐 뿐이었다.

이후, 차진혁의 공격이 가르비누의 양쪽 관자놀이를 관통한 순간 그는 직감했다.

‘곧 기회가 온다!’

가르비누가 약화된 순간을 노려서 포식해야 했다.

그것이 곧 새로운 드라건이 탄생하는 순간일 터.

악마계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찰나일 것이 분명했다.

‘음?’

그런데 가르비누가 무릎을 꿇고 털썩 쓰러졌다.

‘함정?’

가르비누가 어떤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니, 이건 분명 속임수가 맞았다.

저런 식으로 상대를 끌어들여서 중요한 순간 적의 목덜미를 물어뜯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영 이상했다.

이상함을 느낀 사람은 차진혁도 마찬가지였다.

‘왜 미동도 없지?’

혹시 몰라 중계자의 통찰을 계속 활성화하여 살펴보고 있는데, 중계자의 통찰로도 잡히는 게 없었다.

하다못해 [#가소로운놈]이라든지 [#아프다] 정도의 상태는 보이기 마련인데.

마치 죽은 사람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접근해 보자.’

가르비누에게 가까이 다가가 다시금 미리를 휘둘렀다.

빠각!

뒤통수를 내준 가르비누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내, 검은색 파편이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

“…….”

어색한 침묵이 주변을 휩쓸었다.

차진혁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가르비누를 바라보았다.

-맛있다. 헤헤헤.

차진혁의 약간의 위기감을 느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용두사미가 될 것 같은 이 불안감.

‘드라건이 배신 안 해주나?’

차라리 참교육 콘텐츠로 방향을 틀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러나 드라건에게서 배신의 낌새를 찾을 수는 없었다.

가르비누가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을 직접 목격한 드라건은 차진혁에게 감히 반기를 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차진혁은 이를 바드득 갈며 허공을 노려보았다.

“비겁한 놈. 도망치다니.”

* * *

스웨딘 제국의 제1 황자 델리악크 드막 스웨딘.

검황전에서 무명을 도와 차진혁을 제거하려고 했었던 그는 은밀히 명령을 내렸다.

“당장 가르비누를 찾아라.”

현시점에서 가르비누는 김철수에게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패였다.

가르비누가 왜 도망친 건지 확실하게는 알 수 없었다.

아직 힘이 다 회복되지 않았거나 어떤 모종의 이유가 있겠지.

‘가르비누를 찾아서 가르비누와 협력한다.’

그의 기준에서 김철수는 어떻게든 없애야 할 위험 요소였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철수에 대한 우호도가 지나치게 높아졌다.

스웨딘 제국의 국민들 가운데에서도 김철수에게 호감을 품는 자가 너무 많아진 상태.

때문에 황가의 권위마저 흔들릴 지경이었다.

‘성장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김철수. 그자는 위험하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정말로 제국을 집어삼킬 야욕을 부릴지도 몰랐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어떻게든 김철수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명분도 나쁘지 않았다.

“이번에 보았듯 김철수는 순수한 오염 그 자체다. 오염으로부터 태어난 악마들과 똑같은 존재. 아르비스는 오랜 시간 악마들에게 위협을 받아왔고, 악마는 통제불가능한 위험요소. 김철수는 당장 명령을 받들어 스웨딘으로 와서 심문받으라. 그대의 심문은 신성한 핏줄의 적통 후계자, 나 델리악크 드막 스웨딘이 직접 도맡을 것이다. 검황대는 직접 지구를 방문하여 김철수를 데려오라.”

스웨딘이 자랑하는 검황대가 지구 서버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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