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414화
우주급 시나리오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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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연자여, 오랜 시간이 흘렀도다. 검의 파편에 잠들어 있던 진실을 마주한 소감이 어떠한가. 아아 오염된 신도여. 네가 자랑하던 신성모독의 무구가 오히려 네 심장을 찔렀구나. 거짓된 평화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이제는 진실을 향해 나아가리라.
(12) 진정한 진실은 그 너머 닿지 않는 곳에 있으니 그곳을 찾아 개척하라. 그곳에서 모든 것을 얻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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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말로만 때우는 느낌이 들지?’
처음에는 우주급 시나리오 진행에따라 보상들이 척척 들어었는데 말이다.
(11)을 스킵한 건 그렇다 치고, (12)를 활성화시켰으니 그에 따라 뭔가 주어져야 할 것 같은데 아무런 보상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조금 더 기다려봤지만 (12)에 대한 보상은 없었다.
‘이거 사기 아냐?’
처음에만 그럴듯하고 뒤로 갈수록 점점 흐지부지되는 것은 인간사를 통틀어 늘 있어온 문제였다.
차진혁의 수학책도 집합 부분만 까맸다.
‘시스템이 플레이어에게 사기를 치는 경우도 있나?’
아무래도 욜린과 함께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악마왕이시여! 위대한 힘을 가진 이여! 제게 당신을 초대할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해 주시겠나이까?
[절벽 위 그림성 백작, ‘피클루’의 초대에 응하시겠습니까?]
그와 동시에 김이사엘에게도 알림이 들려왔다.
[절벽 위 그림성 백작, ‘피클루’가 계약해지를 요청합니다.]
“계약해지?”
위대한 이를 초대하기 위하여 차원문을 더 크게 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내 힘으로는 부족하지. 너와의 계약에 많은 힘을 소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를 위해 계약을 해지해 주면 좋겠군.
“싫은데?”
어, 어째서지? 위대한 이를 초대하는 건데도?
차진혁은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을 쉬고 말았다.
정상인의 시야를 갖고 보니, 이 세상에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 백작도 그랬다.
“그게 너한테도 훌륭하고 좋은 일인거지, 김이사엘한테 좋은 건 아니잖아?”
보통의 사람은 이렇게 말하면 다 이해하겠지만, 눈앞의 악마는 보통이 아니었다.
이건 엄청난 일입니다, 군주시여. 수천만 악마군세가 악마왕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는 기쁨과 환희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그게 김이사엘한테는 좋지 않다고.”
???
차진혁은 소중한 팬인 김이사엘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줬다.
“내가 경험해 보니까 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더라고. 좀 어리석긴 한데…….”
그래도 악마계를 방문하는 것은 나름대로 큰 이벤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주급 시나리오가 걸려 있는 데다가 엘튜버 최초였으니까.
차진혁은 어렵사리 말문을 뗐다.
“조금 어려운 부탁인데…….”
“들어드릴게요!”
“?”
차진혁은 조금 당황했다.
“아직 말 안 했는데?”
“들어드릴 수 있어요!”
“내가 뭐 신장 같은 거 달라 그러면 어쩌려고?”
“신장 필요하세요?”
김이사엘이 갑자기 검을 뽑아 들었고 차진혁은 저도 모르게 당황하고 말았다.
김이사엘의 광기 앞에 잠시 압도되어버린 것이다.
“……너한테 있어서 저 계약이 중요한 거지?”
“음, 네, 중요하죠?”
남들은 모르는 김철수에 대한 정보와 감정을 더 많이 읽어낼 수 있으니까.
김철수와 함께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니까!
“그러면…… 됐다.”
우주급 시나리오도 중요하고 엘튜브 각도 중요하지만, 팬이 소중히 여기는 계약을 해지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된 차진혁은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김이사엘은 빨랐다.
김철수가 무엇을 원하는지 귀신같이 파악해서 곧장 질러버린 것이다.
으하하핫! 드디어 해지다! 해지! 파클루는 자유다!!!
* * *
차진혁이 말했다.
“나중에 일이 마무리 되면 재계약 해라.”
그, 그건 좀…….
“싫으면 말고.”
차진혁은 관심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협상은 결렬.
악마계에는 눈길도 주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이 엿보였다.
아, 알겠습니다, 크흑.
피클루는 울며 겨자먹기로 차진혁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인 차진혁은 빙그레 웃으며 김이사엘을 바라보았다.
“고마워, 이사엘.”
“혹시…… 김이사엘이라고 불러주실 수 있어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싶었지만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김이사엘.”
“꺅!”
그 말에 김이사엘은 세상을 다 가진듯 함박웃음을 지으며 몸을 배배 꼬았다.
“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피클루는 카메라 형상의 전신을 절레절레 저었다.
적당한 오염은 맛 좋은 양식이었지만, 지나친 오염은 악마의 영혼까지 타락시키는 법.
가능한 모든 핑계를 대고 재계약을 미뤄야겠다고 다짐했다.
차원문을 열겠습니다, 대악마시여!
“아, 잠깐만. 너 대악마라느니, 악마군주라느니, 그런 말 한 번만 더하면 안 간다.”
사실 차진혁으로서도 도박이었다.
차진혁 입장에서도 악마계는 반드시 가야했으니까.
혹시라도 ‘그럼 이쯤에서 그만두시죠 대악마님’하고 말하면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피클루는 꽤 절실해 보였다.
차원문을 열겠습니다!
* * *
차진혁은 차원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쑥-
무언가가 차진혁의 몸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났다.
마치 세계 자체가 차진혁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꽤 신기한 기분입니다. 진공 청소기에 빨려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현재 녹화는 1인칭 시점으로 진행하고 있는 중.
레벨이 높아짐에 따라 이 신기한 감각을 시청자들에게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느낌.
아주 사소한 어지러움을 동반하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신기한 세상이군요.”
이곳은 아무것도 없는 캄캄한 밤이었다.
그저 눈 앞에 액자 하나가 보일 뿐이었다.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담겨 있는 액자.
그 안에는 높다란 절벽 위에 외로이 서 있는 성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이 차원에는 저 그림 하나만 존재하는 것 같군요.”
차진혁은 그림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다시금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림 속으로 빨려들어갑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하하하하! 속았구나, 이 멍청한 놈!
피클루의 목소리였다.
작은 카메라 형상이었던 피클루는 거대한 오염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마치 시꺼먼 물로 만든 거대 슬라임 같은 형상이었다.
나의 세계에 온것을 환영한다, 이방인이여.
차진혁은 이 공간이 크게 낯설지 않았다.
이와 비슷한 기운을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탓이었다.
‘전능의 연출가. 그 공간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지금 이 그림 속 세상은 피클루 백작의 세계.
차진혁이 전능의 연출가를 사용하여 그 공간을 지배하였듯, 피클루 또한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진명은 포식의 드라건.
그것이 피클루의 진짜 정체.
피클루는 드라건이 포식한 악마 중 하나였다.
영혼을 포식하여주마!
포식의 드라건.
거대한 슬라임이 차진혁을 향해 꿈틀거리며 다가왔다.
“날 속인 건가?”
차진혁은 곧장 미리를 휘둘렀다.
풍덩!
미리는 커다란 타격을 주지 못하고 드라건의 몸체에 박혔다.
감히 이 세계의 지배자를 향해 삿된 시도를 하는구나.
미리를 집어삼킨 드라건이 꿈틀꿈틀, 차진혁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라건이 차진혁의 몸 전체를 집어삼켰다.
으하하하! 이제 나는 대군주가 되어 전대 악마왕 가르비누의 대계를 이어갈 것이다!
* * *
포식의 드라건은 기뻤다.
이렇게 정순한 오염체를 만날 수 있다니.
물론 김이사엘도 어마어마한 오염을 가지고 있기는 했으나 그 영혼이 꽤 혼탁했다.
영혼 자체가 스스로 오염된 것이 아니라 외부의 다른 요인에 의하여 오염된 것에 가까웠다.
그것은 ‘포식의 드라건’에게 어울리지 않는 영혼이었다.
이제야 마침내 순수한 오염을 집어삼킬 수 있게 된 드라건은 크게 웃었다.
‘가르비누의 대계를 잇는 것은 바로 나, 포식의 드라건이다!’
“그…… 혹시 이게 끝인가?”
차진혁이 조금 아쉬운 듯 물었다.
한껏 웃고있던 드라건은 약간 당황했다.
그러고 보니 오염이 하나도 흡수되지 않고 있었다.
포식 작용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고.
그제야 드라건은 이상한 결계가 차진혁을 뒤덮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저 결계를 분석해 보기로 했다.
그는 배 속에 들어온 모든 것을 분석하고 알아낼 수 있었으니까.
‘모르겠다!’
아무것도 분석이 되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감정 정도는 전해졌다.
‘아쉬워하고 있어?’
차진혁이 말했다.
“강력한 권능인 건 알겠는데…….”
강력하기만 해서는 의미 없었다.
겉보기에도 좀 위력적이어야 시청자들이 환호하는 것이다.
“너무 시시하다.”
차진혁은 드라건의 몸체로부터 걸어 나왔다.
???
드라건은 당황했다.
어째서 포식이 안 되는 거지?
영겁의 시간을 살아온 악마군주 중 한 명이었으나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가르시아한테 좀 배워야겠다.”
가르시아처럼 방송을 잘 이해하고 적절한 위기감을 연출해 주면 참 좋을 텐데.
하지만 기준을 거기에 맞출 수는 없는 노릇.
일반인에게 그 정도 기준을 요구하는 건 너무 가혹했다.
“이 연출은 못 쓸 거 같네.”
‘날 속인 건가?’ 하고 슬쩍 놀라는 척을 해봤지만 딱히 놀라지도 않아서 좀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을 수 있었다.
‘너무 용두사미야.’
포식의 드라건이라고 선전하기에는 지나치게 과했다.
영겁의 세월을 살아온 드라건은 스스로 지혜로운 군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수많은 악마들을 잡아먹으며 쌓아올린 지혜가 상당했으니까.
‘이유는 알 수 없다. 일단 협력하는 척 하면서…… 포식권능이 왜 적용되지 않는지 알아봐야겠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저 몸을 감싸는 기이한 결계(절대결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하! 제 성을 방문한 모든 이들에게 이런 식으로 환영인사를 하곤 합니다!
“난 또. 나를 공격하는 줄 알았네.”
?!
“농담이야, 농담. 그렇게 약한 게 진짜 공격일 리는 없지.”
……그렇습니까? 오해 없으셔서 다행입니다. 하하하!
일단 너무 약했기에 딱히 오해할 것도 없었다.
“넌 방송에 막 엄청 자질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 그렇습니까?
포식의 드라건은 왠지 모르게 떨떠름했다.
“그러니까 너무 무리해서 방송각 잡으려고 안 해도 돼. 괜히 억지스런 연출이 될 수도 있어서.”
…….
“뭐, 모두가 방송에 재능이 있을 수는 없는 거니까. 노력해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감사…… 합니다.
포식의 드라건은 자존심이 몹시 상했지만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그럼 이제 가르비누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보자. 전대 악마왕 가르비누의 대계가 도대체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