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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412화 (412/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412화

김철수가 마시멜로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번 일로 궁금한 게 많아서 얘기를 좀 나눠보고 싶은데 백과사전을 좀 만나게 해줄 수 있나?]

마시멜로는 알겠다는 답신을 보냈다.

약속 시간이 다가왔다.

‘곧 오겠군.’

마시멜로의 마시멜로 형상의 머리는 그의 감정을 대변해 주는 신체 부위였다.

그의 머리가 단단하게 굳더니 조금 커졌다.

이것은 그가 약간 민망하면서도 화가 났다는 의미였다.

“야. 왜 그런 표정 짓냐?”

그가 짜증을 낸 사람은 다름 아닌 백과사전이었다.

책의 형태를 하고 있는 서인족(書人族).

백과사전은 책장을 촤르륵- 넘기며 반박했다.

“나한테 표정이 어디 있냐?”

“너한테 표정이 왜 없어?”

책의 형상을 하고 있는 백과사전이기에 표정이 없다는 것은 반쯤 사실이었다.

그러나 마시멜로쯤 되는 엘튜버의 뛰어난 관찰력으로 보면, 백과사전에게는 분명히 표정이 있었다.

지금 백과사전은 아주 한심하다는 듯한 눈으로 마시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인족한테 표정이 있다고 우기는 건 좀 억지 아니냐?”

“너 방금 나 되게 한심하게 봤잖아.”

“그건 충분히 유추 가능한 거였지 내 표정을 본 건 아니잖아.”

백과사전은 촤르륵- 촤르륵- 책장을 넘기며 마시멜로를 도발했다.

“이쯤 되면 슬슬 인정해야 하지 않나? 철수랜드 마시멜로.”

“철수랜드는 누가 철수랜드냐!”

마시멜로의 마시멜로가 더욱 커지고 단단해졌다.

검은색으로 물든 그의 머리는 그의 단호함을 대변했다.

“너 철수랜드 맞아. 지금 되게 설레하고 있어.”

“아닌데? 아닌데? 하나도 안 설레는데?”

마시멜로가 설레는 이유는 하나였다.

김철수가 이쪽으로 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냐. 너 지금 되게 설레.”

“미래의 경쟁자를 만날 수 있어서 약간 긴장하는 것뿐이지.”

“어? 저기 김철수다.”

“어디?!”

마시멜로가 휙!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아직 김철수는 이곳에 오지 않았다.

백과사전은 촤르륵- 거리며 크게 웃었다.

“그래. 너 철수랜드 아니다.”

* * *

마시멜로가 백과사전을 소개해 줬다.

“크흠, 이쪽이 내 오랜 친구 백과사전이다. 싸가지는 없지만 박식한 편이지.”

“인터넷 논객 백과사전이다. 반갑다, 김철수. 정식으로 인사하는 건 처음이군.”

차진혁은 백과사전을 빤히 바라보았다.

서인족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영상 찍어도 되나?”

백과사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찍어도 된다.”

“얼굴 팔려도 돼?”

“그래.”

“사람들이 너 알아보고 귀찮게 할 수도 있는데?”

“그럼 그냥 책장 가서 꽂혀 있으면 돼.”

“그래도 눈썰미 좋은 사람은 금방 알아볼 텐데?”

“아니, 눈썰미가 나쁘지 않은 편인 마시멜로도 내가 작정하고 책장 들어가면 못 찾는다.”

백과사전에게는 나름의 프라이드가 있는 것 같았다.

사회성이 생긴 인간 차진혁이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겠지만, 엘튜버 차진혁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에이…… 서인족이 무슨 특급 암살자도 아니고.”

“어? 지금 서인족 무시하냐?”

책장에 숨은 서인족을 못 찾는 게 왜 무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백과사전은 발끈했다.

“그럼 한번 숨어볼래? 내가 찾아볼게.”

“좋지. 밖에 나가서 5분 뒤에 다시 들어와라. 날 찾아내면 내 얼굴에 낙서를 하게 해주지.”

서인족은 수많은 지혜를 지닌 종족.

얼굴에 질문을 써넣으면 어떻게든 정답에 가까운 답을 내놓게 되어 있었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공부를 해서라도.

“대신 날 못 찾아내면 토마스가 했던 것처럼 네 발로 기어서 왈왈 짖어라.”

* * *

5분 후.

백과사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바르르 떨었다.

“어, 어떻게 날 찾은 거지?”

솔직히 차진혁도 좀 놀랐다.

육안이나 중계자의 통찰로 서인족의 은신(?)을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책장에 꽂히는 순간 진짜 책이 되어 잠에 빠져들어서 그렇다나 뭐라나.

인격이 아예 사라지고 책과 똑같아져서 일반적으로는 구별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차진혁에게는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었다.

“녹화기능 켜놓고 갔거든.”

“야 그건 반칙이지.”

차진혁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엘튜버가 원격으로 몰래 촬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진짜 몰랐나?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을지도…….”

“이 자식이!”

백과사전은 크게 분노한 듯 책장을 쫙- 펼쳐서 차진혁의 머리를 꽉꽉 깨물었다.

어차피 종이이고 이빨이 없어서 아프지는 않았다.

마시멜로는 옆에서 풉풉대며 웃었다.

“어이. 생각보다 안 똑똑한 백과사전?”

“…….”

백과사전은 억울했다.

엘튜버에게 그런 힘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잘 아는 편이었기에 안심했다.

이곳은 최상위 랭커 엘튜버의 집이고 보안수준이 굉장히 높았다.

사생활을 중요시 여기는 마시멜로의 ‘나의 사생활을 소중하니까’ 결계가 항상 가동되는 곳이었으니까.

‘언제 결계를 푼 거야!!!’

철수랜드 아니라더니, 김철수 온다니까 결계를 풀어버리는 저 철두철미함에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저 자식의 팬심을 미리 염두에 뒀어야 했는데, 친구라서 방심했다.

차진혁이 물었다.

“왜 그렇게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냐?”

마시멜로가 옆에서 깝죽거렸다.

“설마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겠다는 건가?”

너무 억울해진 백과사전은 순간 놓치고 말았다.

김철수가 백과사전의 억울한 ‘표정’을 읽어냈다는 사실을.

* * *

차진혁은 볼펜을 들어 백과사전의 빈 페이지에 글씨를 써넣었다.

[김철수가 어떻게 악마가 소환될 차원문을 정령문으로 바꿀 수 있었지?]

백과사전은 즉각 답을 내놓았다.

사각사각- 소리와 함께 저절로 글씨가 써졌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세 가지 정도로 유추해 볼 수 있다.

(1) 우주급 시나리오의 영향을 받았다.

(2) 무구 ‘미리’에 특별한 설정값이 걸려 있다.

(3) 김철수가 악마와 같은 파장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

(1)과 (2)는 어렵지 않았다.

굳이 백과사전의 자문을 구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차진혁도 저 둘 중 하나가 답이 아닐까 생각하던 중이었다.

“이 몸의 넓고 깊은 지식의 샘에 따라 판단을 내려보자면 아마도…….”

“아마 1이나 2?”

“3일 확률이 제일 높다.”

차진혁은 어이없다는 듯 백과사전을 바라보았다.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진짜 생각보다 덜 똑똑할지도……?’

인터넷 너머로 본 백과사전은 유능하고 지혜로웠는데 실제로 본 백과사전은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약간 키보드워리어 같기도 하고.

“악마와 같은 파장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게 뭔데?”

“말하자면 공명할 수 있는 존재값을 뜻한다.”

백과사전은 책장을 닫고 한동안 고민하더니 쉬운 예를 하나 들어주었다.

“인간은 가청진동수보다 높은 진동수. 그러니까 약 2만 헤르츠 이상의 소리는 듣지 못한다.”

“…….”

차진혁은 또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난 들을 수 있는데…….’

차진혁뿐만 아니라 고수반열에 든 엘튜버들은 시각 및 청각에 무척 예민한 편이고, 일반인들보다 시력과 청력이 아주 좋은 편에 속했다.

차진혁은 초고레벨 엘튜버로서 초음파정도는 들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백과사전의 명성에 거품이 좀 낀 것 같았다.

“그 소리는 분명 존재하지만 들을 수 없지. 비슷하다. 아르비스에 모습을 드러낸 차원문은 존재하지만 인간이 만질 수 없는 차원값을 가지고 있었을 거다. 이를 차원 주파수가 다르다거나 차원값이 다르다고 표현하기는 하지만 용어는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고…….”

대화를 나눌수록 차진혁의 마음 속에는 의심이 깊어졌다.

‘잘 몰라서 넘어가는 거 아닌가?’

“아무튼 일반적인 사람들은 차원문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데, 네가 영향을 끼쳤다는 건 네 존재가 악마의 차원과 차원값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차원값이 비슷하다는 게 어떤 건데?”

“네가 악마같은 놈이라는 뜻……이라기보다는.”

백과사전은 크흠, 헛기침을 했다.

자신을 노려보는 마시멜로의 눈빛이 오늘따라 좀 무서웠다.

‘자기를 욕하는 건 괜찮아도 자기가 좋아하는 김철수를 욕하는 건 참을 수 없다’ 같았다.

“정설은 아니지만 아주아주 많이 오염된 영혼을 경우 악마들의 차원문과 같은 차원값을 지니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을 수 있다는…….”

차진혁이 백과사전을 탁! 덮었다.

더 들을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아니? 내 생각에는 우주급 시나리오와 관련이 있을 거 같다.”

“그건 네 생각…… 으버버버!”

난데없이 강제로 덮어진 백과사전은 발버둥을 쳤으나 차진혁의 힘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지혜를 구하러 왔다가 괜히 이상한 소리만 들은 차진혁은 다시금 볼펜을 들어 백과사전의 빈 페이지에 낙서했다.

“나, 나는 더 이상의 낙서를 허락하지 않…… 크어억!”

[나(백과사전)은 사실 꽤 멍청한 편이다?]

백과사전은 진리를 탐구하는 서인족.

진리 앞에서 한낱 개인은 미천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세상에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았고, 아는 것이 많을수록 오히려 더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세상의 수많은 진리 앞에, 현인 조차 멍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백과사전의 지론이었다.

[그렇다.]

백과사전은 지자(知子)로서의 겸손이 방송을 통해 널리 전파되길 빌었다.

모두가 진리 앞에 겸허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백과사전은 생각보다 거품이 좀 심하군요.”

세상에는 ‘겸손한 백과사전’ 대신 ‘백과사전 거품설’이 더 널리 알려졌다.

* * *

헬렌제국의 교황 올리베르 3세는 성마봉인전에 참가한 사제들과 성기사들을 독려하며 치하했다.

“그대들의 신실한 기도와 신앙이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이번 우리의 성전은 길이길이 기록되어 후세에 전해질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교황청을 비난했다.

-사실 김철수가 한 거 아님?

-김철수는 쏙 뺐네?

-교황이라면서 양심도 없누 ㅋㅋㅋ

욕을 꽤 많이 먹기는 했지만 교황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었다.

성마봉인전은 사제와 성기사들이 해낸 것으로 기록되어야 했으니까.

그 어떤 신앙도 제대로 보여준 적 없는 김철수가 성마봉인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기록되면, 신성제국 헬렌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금이야 여러 반발이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 판단했다.

훼일러의 가주 가르시아는 개인적으로 차진혁을 초대했다.

“할 얘기가 있습니다.”

가르시아는 교황의 공적 치하나 선물 같은 것에는 관심 없었다.

성마봉인전에 참여하는 것은 성기사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본인에게도 그랬고 타인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했다.

“김철수 경. 사제나 성기사가 되어볼 생각 없나?”

[특수 직업, ‘훼일러의 후계자’로 전직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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