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410화
신변의 위협을 느낀 세 자매 예언가는 훼일러 가문을 찾았다.
훼일러 가문에서 암살을 당할 리는 없었으니까.
힘겹게 고행길에 올라 겨우겨우 훼일러 가문 정문에 도착하자 그녀들은 까무러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김철수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녀들은 놀란 티를 낼 수 없었다.
여기서 놀랐다가는 <세 자매 예언가들은 사실 허풍쟁이들이었다>라든가 <예언 못하는 예언가들>과 같은 소문이 퍼져 나가고 말 테니까.
물론 여기에는 조금 억울한 부분이 있었다.
예언이라고 하는 것은 막대한 정신력과 체력을 소모하는 행위.
미래를 엿본다는 건 그만큼 어렵고도 정교한 작업이었다.
제아무리 세 자매 예언가들이라고 할 지라도 24시간 내내 미래를 엿보지는 않는 법.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는 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대중들에게 <쟤네는 지네 미래도 못봄>과 같은 소문이 퍼져 나가는 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김철수.”
“너를 만나러.”
“우리가 왔다.”
놀란 마음을 감추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척하느라 오히려 중계자의 통찰에 뚫려 버렸다.
[#당황 #기겁 #침착하자 #속마음을_들키면_안 돼 #얘들아 #우리는 안 놀랐어]
차진혁은 저들의 속마음을 읽어냈지만 굳이 방송에 공개하지는 않았다.
일부러 눈을 크게 뜨고 깜짝 놀란 척했다.
“역시……! 세 자매 예언가인가?내가 여기있다는 걸 알고 찾아온 거겠지?”
“미래를 보는 건.”
“우리에게.”
“아주 쉬운 일이지.”
“왜 나를 만나려고 하는 거지? 우리가 친한 사이는 아닐 텐데.”
첫째가 말했다.
“김철수의.”
그 순간, 둘째는 조금 당황했다.
한 문장을 세 부분으로 쪼개서 말하는 것이 보통이기는 했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언니의 무책임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일단 ‘김철수의’라고 던져놓으면 둘째나 셋째가 알아서 하겠지하는 대단한 악의가 느껴졌다.
둘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래를…….”
셋째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첫째와 둘째의 무책임함에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미래를 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
심지어 ‘개인’의 미래를 보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었다.
그녀들이 보는 것은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미래였지 미시적 관점에서 개인사는 아니었으니까.
이를테면 어떤 던전에서 훌륭한 아티팩트가 나온다는 것은 예지할 수 있었지만, 그걸 누가 어떤 방식으로 획득하느냐까지는 볼 수 없었다.
아무튼 셋째는 첫째와 둘째를 용서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매번 마지막에 말하느라 뒷말을 이어가기 어려웠었는데, 그간 정신적으로 벼랑에 몰려 있던 막내의 설움이 여기서 폭발해 버렸다.
“봐주도록 하지!”
* * *
개인의 미래를 정확히 보는 것.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었다.
“셋째가.”
“무리한 제안을.”
“하지 않았다.”
첫째와 둘째는 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무책임했던 첫째와 둘째는 셋째의 철퇴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회수만 잘 나와준다면야.’
암살자도 용서하는 판국에, 암살 의뢰 정도는 얼마든지 용인해 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어떻게 보면 암살도 엄연히 플레이의 일부였으니까 말이다.
그녀들은 정신력을 끌어올렸다.
‘김철수의’
‘주변을’
‘읽어내자’
사실 김철수의 미래가 궁금한 건 세 자매 예언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김철수의 손에 피가 묻는지 묻지 않는지.
김철수가 과연 자신들을 해할지 해하지 않을지.
미래를 엿보려고 노력하던 그녀들은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눈에서 피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그녀들은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김철수를 엿보려던 순간, 우주에 잡아먹히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는.”
“김철수를.”
“볼 수 없어!”
컥! 피를 토해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포감이 그녀들의 온몸을 지배했다.
“김철수.”
“그대는.”
“끝없는 우주.”
끝없는 우주와 비슷했지만 달랐다.
인간의 시야로는 볼 수 없는,
“지독히.”
“광활한.”
“오염!”
지독하게 깊은 오염이었다.
그 심연을 엿보려다가 오히려 심연에 물들어 버릴 것 같았다.
잠깐을 엿보았을 뿐인데 두 눈과 귀에서 피가 터져 나왔을 정도로.
차진혁이 재빨리 물었다.
“환상을 본 건가?”
“끔찍한.”
“환상을.”
“보았다.”
세 자매 예언가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미친놈이 망치를 들고 쫓아오며.”
“나는 정상이다를 외치고 있어.”
차진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사기꾼들인 것 같습니다.”
* * *
차진혁은 중계자의 통찰로 읽어낸 그녀들의 속마음까지도 모조리 공개했다.
[#당황 #기겁 #침착하자 #속마음을_들키면_안 돼 #얘들아 #우리는 안 놀랐어]
이것은 자신을 미친놈이라고 모욕한 세 자매 예언가들에 대한 복수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예언했다매?
-미래 본다는 거 다 개뻥아님?ㅋㅋㅋㅋㅋㅋ
-설마 아직도 사기꾼 새기들을 믿는 흑우 없제?
차진혁은 진지했다.
“저는 정상인데 말입니다.”
미쳐있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정말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사람으로 거듭났다.
수많은 대중과 소통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타당한 감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런 사람의 미래를 본다면서 저따위 예언을 내놓다니.
-김철수 화났넼ㅋㅋㅋㅋㅋㅋ
-송하영이 사제복 훔치려고 했을 때도 화 안 내던데?
-원래 좀 찔리는 게 있으면 더 화가 나는 법
정말 똑똑한 사람에게는 바보라고 욕해봤자 타격이 없지만, 내가 조금 모자란가? 고민하는 사람에게 바보라고 욕하면 버럭! 하기 마련이었다.
-어 근데 예언 성취된 거 아님?
-어쨌든 정상인이라고 열심히 외치고 있는 거 같은데?
-예언은 틀리지 않은 듯 ㅋㅋㅋㅋㅋ
“아, 그러고 보니 정말로 암살자들에게 사주했는지를 물어보지 않았네요?”
원래 그걸 확인하려고 했었는데 세 자매 예언가가 예언해 준다는 말에 혹해서 물어보지 못했다.
“근데 뭐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사소한 것에 신경 쓰다 보면 제대로 된 콘텐츠 만들기가 어려웠다.
콘텐츠 제작에나 신경을 쓰기로 했다.
* * *
세 자매 예언가는 벌벌 떨었다.
그녀들이 엿본 미래가 또렷한 실체가 되어 그녀들을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으!”
“아!”
“악!”
으아악! 비명을 지른 그녀들은 악몽에서 깨어나 식은땀을 흘렸다.
당장이라도 김철수가 망치를 들고 습격해 머리를 깨부술 것만 같은 공포에 시달렸다.
“부작용이.”
“너무.”
“심해.”
예지는 원래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김철수의 미래를 엿보려고 했던 것은 그녀들의 심신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김철수가 짊어진.”
“미래의 무게를.”
“우리가 측량할 수 없다.”
더 위대한 존재일수록 미래를 엿보기 어려웠다.
그녀들은 단언할 수 있었다.
“김철수는 우리가 만나본.”
“모든 이들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자일지도.”
그녀들은 벌벌 떨었다.
차진혁이 방송을 통해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정말로 암살자들에게 사주했는지를 물어보지 않았네요?”
-“근데 뭐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그것은 마치 기회를 줄 테니 찾아와서 잘못을 빌라는 얘기처럼 들렸다.
위대한 군주가 내리는 마지막 면죄부.
“가자. 가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며…….”
셋째는 또 입술을 깨물었다.
가자.
가서 무릎 꿇고.
사죄하자.
이렇게 깔끔하게 마무리하면 되는데 또 자기들 좋은 말을 먼저 해버린 것이다.
무릎 꿇고 사죄하자는 말을 먼저 했으니, 사실 이어서 할 말도 궁색했다.
첫째와 둘째가 셋째를 지그시 쳐다봤다.
“용서를 구하자.”
사죄하다와 약간 중복되는 의미이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 * *
어두운 방 안.
공식 철수랜드 1호 김민지는 후후후 웃었다.
몽마 릴리아가 김민지 옆 테이블에 오렌지 주스를 내려놓았다.
“민지 님께서 하신 거죠?”
“뭐가?”
“세 자매 예언가가 피 흘리며 쓰러진 거요.”
김민지는 정색했다.
“무슨 말인지 완전히 전혀 하나도 아예 모르겠는걸?”
“네. 무슨 말인지 완전히 전혀 하나도 아예 모르시는군요. 알겠습니다.”
오렌지 주스를 내려놓은 릴리아는 몸을 돌려 사뿐사뿐 걸었다.
“릴리아. 진짜야.”
“예. 알고 있습니다.”
릴리아가 문을 닫고 나가자 김민지는 오렌지 주스를 벌컥벌컥 들이마신 뒤 소매로 입을 슥- 닦았다.
“근데 진짠데……”
세 자매 예언가가 감히 김철수의 미래를 엿보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중죄였다.
김민지 입장에서는 그들이 김철수의 삶을 해킹하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래서 역으로 공격해서 뇌를 녹여버리려고 했는데, 한발 늦었다.
그녀가 손을 쓰기도 전에 세 자매 예언가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버린 것이었다.
김민지는 방문 밖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뭐…… 안 믿어도 별로 상관은 없겠지?”
* * *
성마봉인전은 아르비스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커다란 행사였다.
악마들의 강함을 익히 알고 있는 아르비스 시민들은 성마봉인전에 크게 관심을 갖고 있었다.
“제발 이번에도 무사히 넘어가기를.”
“무탈하게 이 위기를 극복하게 해주소서.”
교황이 직접 나서서 시민들을 안심시키고, 훼일러 가문을 필두로 한 고위 사제와 성기사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500년 만에 열리는 이계의 차원문.
쏟아져 나올 이계의 악마들을 상대하기 위해 모인 그들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교황이 40일 기도를 통해 차원문이 열리는 곳을 미리 알아냈다.
“이번 차원문은 우클라 평야에 열린다더군.”
“이런……!”
“큰 재해가 일어나겠어.”
우클라 평야는 헬렌 제국에 위치한 거대 곡창지대였다.
헬렌 제국에서 소비되는 밀과 쌀의 70퍼센트 이상이 생산되는 곳.
그곳에서 성마봉인전이 벌어진다면 곡물 수확에 큰 피해가 생길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어쩔 수 없지 않겠나.”
“악마가 튀어나온다면 그보다 더 큰 피해가 일어날 테니.”
차진혁은 가르시아와 함께 우클라 평야에 먼저 도착했다.
훼일러 가문의 깃발이 나부끼는 천막에서 대기 중.
“정확히 언제 차원문이 열릴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하늘이 순간순간 보랏빛으로 변하는가 하면 갑자기 폭우가 내렸다가 벼락이 떨어지기도 했다.
차원이 흔들리고 불안정해지면서 각종 자연현상들이 널뛰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차원문 개방의 징조이기는 했으나 정확한 시기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어? 반가운 얼굴이 있습니다.”
뮈엔느를 발견한 차진혁은 뮈엔느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오랜만에 차진혁과 만난 뮈엔느가 활짝 웃었다.
“김철수 경!”